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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2012 아젠다 점검] 교육개혁 청사진, “헌법31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교육복지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출산부터 대학졸업까지 2억 6천만 원(2009년도 기준). 올해 초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이다. 2003년도 조사당시 1억 9천만 원에서 매년 1천만 원씩 부담이 증가한 셈인데, 같은 기간 매년 1천만 원씩 소득이 증가한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등록금만 1천만 원 시대, 돈 걱정 안하고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敎育百年之大計’, ‘개천에서 용 난다.’ 교육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며, 계층이동의 유효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교육은 저출산과 가계부담의 주범이며,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교육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버거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2011년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복지였다. 교육부문도 예외는 아니어서 6·2지방선거에서 반향을 일으킨 친환경무상급식을 비롯해 영유아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교육복지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민주진보진영에서 제시한 교육복지정책에 대해 보수진영은 노골적으로 반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진영에서 유사한 교육복지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교육복지가 균등한 기회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최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유아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실현되었다고 해서 창의교육, 인성교육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국영수 위주의 점수따기 경쟁이 없어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OECD 대부분 국가들은 교육복지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회 경제적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소외와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복지정책의 수립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다. 다만 OECD 국가들이 교육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과 이들 정책을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해 일시적 도움이 아닌 국민의 권리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차이가 있다. 즉,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개념 정립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토대위에 교육복지정책이 제시될 때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5·31교육개혁안을 넘어 새로운 교육개혁 청사진이 필요하다

1995년 문민정부가 마련한 5․31교육개혁안은 국가가 제시한 최초의 종합적 교육청사진이다. 5․31교육개혁안은 창의력 교육, 수요자 중심교육, 교육현장의 자율성, 능력중심으로 전환 등 진보적인 방향과 동시에 자유, 경쟁, 교육의 다양성과 선택, 효율성, 수월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교육 개념을 내재하였다. 민주정부시절 진보와 보수의 상반되는 교육정책들이 동시 진행되는 결과도 이에 기인한다는 민주정부10년위원회의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5․31교육개혁안은 교육에 시장주의 논리를 적용했다. 학교 설립 규제 완화와 자율화를 기반으로 학교간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며, 그 혜택은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대표적인 정책사례로는 문민정부시절 대학설립준칙주의, 현 정권이 추진한 자율형사립고 100교 등 고교다양화 정책, 일제고사 정보공개 등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현재 교육현장을 파행으로 이끈 주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에서 경쟁과 수월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국영수 학습 능력 중심의 제한적인 영역에서 점수따기 위주의 왜곡된 경쟁을 하고 있고, 따라서 수월성 역시 제한적이고 차별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릇된 경쟁과 수월성을 토대로 학교는 물론 개인의 삶까지 서열화,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정부와 MB정부 교육정책의 근간을 제공한 5·31교육개혁안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정확하게는 시장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육철학이 실패했다. 국가와 국민에게 교육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게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5·31교육개혁안을 넘어서는 국가차원의 교육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교육개혁 청사진, ‘헌법31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敎育을 뜻하는 Education의 어원은 e(밖으로)+ducation(ducare, 끄집어내다)로써 ‘밖으로 끄집어 내다’라는 의미로써 ‘잠재능력 이끌어내다’로 의역할 수 있다. 이에 비해 敎育은 ‘가르치고 기르다’라는 다소 획일적이고 수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어자체가 국가 교육 정책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이 처한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는 국민 개인이 가진 능력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교육정책의 방향은 소수의 엘리트만을 집중 육성하는 것에서 벗어나 국민 개인이 가진 소양과 역량을 높여서 사회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국민 개인은 각자의 능력을 내재하고 있고, 국가는 국민이 가진 능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즉 교육은 국민이 누려야할 기본권이며, 교육기본권의 보장은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의 능력을 국영수 과목 위주로 획일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학생을 구분하여 선발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헌법 제31조 제2항 및 제3항에서 의무교육의 범위와 무상교육의 원칙을, 제5항에서 평생교육의 진흥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교육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책무 범위가 평생교육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하위법률에서 규정하는 바에 따라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학교 무상교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학습사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2011년 12월 16일 민주통합당은 새로운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문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유효한 수단임을 명시하면서 상생교육, 창의교육, 고등학교 의무교육 등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평생교육 확대를 제시하였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제시되었던 교육정책과제들을 재검토하고, ‘헌법31조’의 가치아래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여 국민들에게 ‘교육이 희망’임을 보여줘야 한다. 이에 국가 차원의 교육개혁 청사진 ‘헌법31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헌법31조 프로젝트’의 몇 가지 원칙

헌법31조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다음의 몇 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이에 따라 세부 정책과제들을 배치함으로써 정책추진의 당위성과 가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장주의 교육 논리 배제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영유아 보육과 교육, 대학의 80% 이상을 민간사립에 의존하고 있다. 학교간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논리로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으나 실패했고, 가계의 교육비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단계적으로 국공립 비중을 확대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둘째, ‘국민은 누구나 각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의 평등을 가능성의 평등이라 한다.’ 균등한 교육기회는 국민의 다양한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역간·학생간 발생하는 격차의 외부적 요인을 보완함으로써 동등한 교육조건을 제공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책임교육, 패자부활교육을 실현한다. 개인의 차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의무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최저 수준 이상의 학력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이다. 성장단계에서 나타나는 학생 개개인의 무수한 실패들(기초수준 미달, 적성의 미발견)의 원인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책임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획일화된 교육이 아닌 다양한 교육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책임교육, 다양화교육을 위한 최선의 길은 더 적은 학급당 학생 수, 더 많은 교사, 더 넓은 학교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이다.

넷째,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교육의 질은 좋은 교사에서 비롯된다.’ 학교와 교사는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지속되는 한 사교육과 동등한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고, 학교와 교사는 영원히 교육개혁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좋은 교사의 기준이 협동교육·창의교육·집단학습의 멘토링 능력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교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다섯째, ‘지방교육자치의 실현을 위해 분권적, 상향적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상이한 조건을 무시하고 전국 공통의 기준으로 비교 평가하는 것은 교육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학생의 능력에 따른 개별화교육은 학교와 교사가 자주적으로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초중등교육과정과 관련된 사항을 교육감에게 대폭 이양해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기본원칙의 토대 위에 2010년에 민주당이 발표한 뉴민주당플랜 교육분야 정책과제, 2011년 지방선거 정책공약 및 3+1보편적 복지정책과제, 야당 및 진보진영 교육시민단체 등이 제시한 교육정책과제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교육희망네트워크 100인 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분야 및 고등교육분야 정책과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여섯째, ‘학력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여전히 특정과목 중심의 암기능력을 평가하여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인성교육, 창의교육, 집단학습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오래고, OECD의 PISA는 2004년도 보고서에서 교육의 핵심역량 과제로 소통능력, 협력 능력,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제시한 바 있다.

 

기존 교육정책과제들을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의 의무 관계로 설정하자

영유아 무상보육 및 교육, 일반계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보수진영에서도 정책과제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영유아교육단계부터 헌법31조에 기반한 일관성 있는 교육철학을 토대로 정책추진의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정책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단순한 무상의 개념에서 벗어나 국민 누구나 생애 출발단계부터 질 높고 다양한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뉴민주당플랜에서 영유아교육의 완전한 국가책임제를 선언하면서 이를 ‘출발점 평준화 프로젝트’로 제시한 바 있다.

영유아단계부터 교육의 기회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의 의무 관계에서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률이 정하는 의무교육단계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하고, 마찬가지로 질 높고 다양한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무교육의 확대가 단순히 무상을 넘어서기 위한 정책과제로 학급당 인원 20명, 교과교사 및 전문상담교사의 대폭 확충 등이 필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내국세 대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비율을 현행 20.27%에서 대폭 확대해야 한다.

초중등교육과정은 위에 제시한 둘째, 셋째 원칙에서 언급한 ‘가능성의 평등’, ‘책임교육’의 기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단위학교와 교사의 자율적인 교과과정 편성과 일제고사 방식이 아닌 자율적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교육현장에서 판단하도록 하고, 다양한 교육경로를 마련해 이를 보완 또는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교육현장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지만, 혁신학교 성공사례에서 보듯 진화하는 교육현장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정책으로 혁신학교를 초등학교 전체로 확대하고, 학교의 다양화가 아닌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위해 특목고 및 자사고의 전면 재검토 또는 폐지, 고교평준화 등을 제시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중등교육 과정을 통합하여 초등6-중등6년의 학제로 개편하는 방안도 향후 논의해야할 정책과제이다.

 

남겨진 과제와 교육개혁만의 한계

고등학교체제와 대학입시, 대학과 노동시장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학벌·학력중심주의 사회현상은 초중등교육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들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명문고, 명문대 진학을 위한 열망, 서열화 된 대학체제, 학벌중심의 노동환경은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체제의 구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따라서 평생학습사회 실현도 마찬가지이다. 고등학교-노동-대학-노동의 경로, 고등학교-대학-노동-대학-노동의 다양한 경로가 가능한 노동환경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교육개혁만으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부조리들이 더욱 그렇다. 현재 진보진영 교육시민단체들이 대학교육의 재구조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대학교육이 사회경제체제의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 대학교육과 관련한 많은 과제들(사립학교법, 대학의 기업화, 국립대 법인화, 시간강사, 대학서열화)들을 고려하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단계이다.

프랑스의 대학평준화는 68혁명의 산물이다. 당시 대학평준화와 함께 진행된 논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평등국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스웨덴은 2007년에 대학교육의 개혁을 상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과제는 대학교육 기회의 평등이다. 박사 과정 학생의 출신배경을 분석한 결과 노동계층 출신의 학생들이 수적으로 열세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에 사회적 출신 배경뿐만 아니라 성별, 출신국적, 종교, 장애유무에 의해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두 국가의 사례는 교육개혁이 사회경제체제의 변화가 선행하거나 또는 동시에 병행했을 때, 그리고 사회경제체제 철학의 기본 토대 위에서 같은 교육철학을 견지하며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교육개혁이 절실한 것은 분명하지만,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거대담론과 병행되어야 한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노동시장, 학벌중심의 채용관행, 대기업 중심의 약탈적 경제시스템이 계속 존재한다면 교육개혁은 아주 더디게 진행되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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