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화인가?
‘1987년 체제’는 민주화의 실천을 위한 출발이었다면, ‘2013년 체제’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어야 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화’를 지향하는 체제이어야 한다.
민주화는 모든 국민에게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부여했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는 의회주의의 파괴와 국민의 자유로운 참여 제한이라는 신권위주의적 통치로 위기에 처해 있다. 동시에 정치적 민주화만으로는 다양하게 분출되는 경제․사회적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세계화는 글로벌 무한경쟁을 확대하고 지식정보사회로의 이동을 촉진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시장급진주의, 민영화, 유연화, 탈규제 등을 추구한 나머지 노동이나 복지에 대한 지출을 경쟁적으로 줄이는,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경쟁적으로 파괴하는 ‘하향경쟁’을 강제하고 있다.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역주행하고 있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는 민주화의 ‘제3의 역물결’(third reverse wave)과 함께 경제․사회적 양극화내지는 파편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어온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민주정부 10년과 MB정부 4년 동안 누적적으로 악화되어 ‘10:90의 격차사회’로 구조화되고 있고, 나아가 중산층의 하향분해가 가속화하고 있다.
어떻게 ‘더 좋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공한 사람은 더욱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이 재기할 수 있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과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한국은 민주주의 성과를 지켜내고 투명성과 책임성이 담보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냄과 동시에,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뛰어넘는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림] 한국의 시대담론 변화와 복지발전사
인간화란 무엇인가?
이제는 ‘인간화’다. ‘인간화’는 복지와 연대의 가치를 포괄하는 시대정신으로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근간으로 하는 사람중심국가발전모델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중심국가발전모델은 선성장 후분배모델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모델도 아닌, 성장과 분배를 동시화하는 성장=분배모델로서, 사회양극화를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발전전략이다. 이 모델은 넓게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적 사회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룰 수 있으며, 협의적으로 보면 ‘사람에 대한 투자정책’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적 사회정책’은 사람에 대한 투자, 사회적 서비스 확대 및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둔다. 사회보장정책과 공공부조의 확대를 통한 소득안정성을 도모하는 복지정책, 평생교육과 훈련체계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한 고용안정성을 담보하는 교육 및 노동·고용정책 등 삼각복지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적 사회정책’은 인적자원에 대한 사회적 투자, 사회서비스와 기초보장의 체계화, 사회투자의 인프라 구축이라는 전략과, 일자리 창출과 고용증대, 인적자원의 고도화, 건강사회의 실현, 사회서비스 강화, 기초보장의 합리화와 자활지원, 복지전달체계의 개선과 거버넌스의 구축, 사회지출구조의 합리화 등의 정책목표를 통하여 실현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사람경쟁력 확보를 통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룸으로써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여 사회통합이 가능하도록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고용창출의 보고인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켜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사람에 대한 투자는 기회의 확대와 빈곤 탈출을 통해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경제의 역동성을 강화함에 있어서 근간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투자정책의 핵심적인 정책은 교육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함과 동시에 출산과 보육, 의료와 노후문제 등에 대해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여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인간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민주정부 10년을 돌이켜보면, 연금·의료·실업·산재 등 4대 사회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정착시켰고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으로 일과 복지를 연계하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등 제도상으로 복지국가의 틀을 구축하였다. 또한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해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중학교 의무교육 완성,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 BK21·누리사업 등 대학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획기적인 교육투자를 추구하였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간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 노사정위원회(1998)를 설립하고 노사정 대타협을 도출함으로써 한국의 노사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4년,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복지지출은 축소되었으며, 일자리․주거․노후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나눔 없는 성장’과 양극화는 단순한 소득격차를 넘어서 자산격차로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자산의 격차는 다시 교육․보건의료․주거 등의 양극화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아가 누적적으로 심화된 양극화 해소를 기대했던 ‘또다시 성장’의 신화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가져오지 못함으로써 토건개발위주의 성장정책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화’ 실현을 위한 사람에 대한 투자는 바로 낭떠러지 없는 사회를 만들고 교육․복지․일자리․의료․주거 등에서 차별을 제거함으로써 힘들고 고달픈 국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2013년 체제의 시대적 과제이다. 사람투자정책은 저출산·고령사회를 극복하고 공평한 건강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임신부터 사회진출 시까지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버팀목이다.
그렇다면 2013년 체제의 시대정신인 ‘인간화’ 실현을 위한 ‘사람에 대한 투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실질적인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이라는 기조 아래 공교육부문에 대한 획기적인 투자 확대가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의 교육은 빈부 대물림의 수단이 되고 있다. 공동체사회를 살아가는 민주적 시민의식의 함양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이라는 보수적 이해측면에서 보아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공교육의 획기적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 한 병폐에 가까운 한국교육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다.
또한 교육부문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영역이다. 즉 교육을 둘러싼 사회구조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교육이 빈부 대물림의 수단이 되는 것부터 고쳐나가자는 것이다. 나아가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실천해야 한다.
둘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 역시 사람에 대한 투자의 핵심적인 정책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거시경제정책, 산업정책, 교육정책, 사회복지정책 등 모든 정책이 일자리를 중심으로 기획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기업프랜들리’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사람투자정책은 바로 성장의 축을 수출 대기업에서 고용의 중심인 내수위주의 중소기업으로 설정하고 ‘고용프랜들리’ 성장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복지․환경․공공안전분야 등 공공서비스 중심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전체 고용인구 중에서 사회서비스의 비중이 높다.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노르딕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동아시아국가인 일본․한국과 전형적인 영미권모델인 아일랜드는 경제수준에 비하여 사회서비스 고용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창출․확대는 사회복지 수요를 충족시킴은 물론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으며, OECD 국가들에서 그러했듯이 중요한 성장전략이기도 하다.
[표] 경제수준과 사회서비스 고용비중
셋째, 사람에 대한 투자는 국민기본선(national minimum line)의 확보를 전제로 하는 만큼, 이 토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안전망을 확대하여 복지사각지대와 사회적 취약계층의 빈곤 악순환을 해소함으로써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길이다. 사회보험과 공적부조제도인 사회보장시스템과 사회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동시장정책을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은 성장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이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계층은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예컨대 전체고용의 30%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이 고용보험과 같은 중요한 사회안전망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36.2%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직업훈련이나 재취업을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나아가 이들의 생존권마저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성장 메커니즘으로서 사회안전망은 고용친화적이어야 한다.
미래의 대한민국, 2013년 체제는 시대담론이자 정신으로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자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간화’를 지향하는 체제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이다.
[별첨] 생애주기별 사람투자정책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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