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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세계의 민주화 운동과 중동 정치지형의 재편

2011년 아랍세계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청년 행상의 분신자살로 촉발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튀지니의 국화)이 이집트의 ‘코샤리 혁명’(이집트의 전통음식)을 거쳐 리비아, 바레인, 예멘, 알제리, 시리아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아랍의 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화 운동을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유럽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과 비교한다. 하지만 2011년 아랍세계는 1989년 동유럽과 비교해 볼 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첫째, 1989년 동유럽은 당시 초강대국 미국의 영향 아래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 아랍세계의 민주화 운동은 반미 국가(리비아, 알제리, 시리아) 뿐만 아니라 친미 국가(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예멘)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탈이데올로기 현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둘째, 1989년 동유럽은 전면적인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하나의 경제 모델을 형성했고 서구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토대로 신속하게 서구 질서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2011년 아랍 민주화 운동의 주된 원인은 장기집권과 권력세습 시도에 대한 저항과 만성적인 실업과 빈부격차 등 경제난에 대한 불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식품 가격의 폭등은 경제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아랍세계의 억눌린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시켰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화 운동은 1989년 동유럽보다 덜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고 사회정치적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내 언론에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서구 언론은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화운동과 1979년 이슬람혁명을 매우 중요하게 비교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2011년 민주화 운동은 1979년 이슬람혁명과 매우 주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은 호메이니의 카리스마와 이슬람주의자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지만, 2011년 아랍민주화 운동은 리더가 없는 혁명이었다. 2011년 아랍세계에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등장했다. 또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는 반미 이슬람 국가가 수립되었지만, 2011년 아랍세계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한 세속국가, 터키 모델 및 이슬람 국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고,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중동지역의 민주주의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구심이 든다. 미국은 반미 국가인 이란에 대해서는 시위대의 용기를 촉구하면서 이란 정부를 압박했지만, 친미 국가인 바레인에 대해서는 폭력사태를 언급하지 않고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에게 우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반미 국가인 이란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자 2월 1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부의 폭력진압을 비난하면서 “이란 국민이 자유와 대의정부 확대를 표명할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고 시위대를 지지했다. 반면에 친미 국가인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랍 동맹국들에게 '당신들은 더 큰 기회를 추구하는 젊고 생기 넘치는 세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면 당신들은 보다 빨리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중 잣대가 지속하는 한 진정한 ‘중동의 봄’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에너지 전략을 토대로 중동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자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에너지원이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당시 헨리 키신저는 “석유를 장악하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또한 석유왕 록펠러는 석유를 악마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이는 석유를 둘러싼 전쟁과 갈등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석유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세계 패권의 원천이다.

19세기 영국은 석탄경제, 20세기 미국은 석유경제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석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석유시대가 도래하면서 영국을 대신하여 석유경제를 장악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석유경제를 장악한 미국에게 중동은 세계전략에서 제1의 관심지였다. 냉전 시기 미국의 중동정책은 세 가지 전략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안정적인 석유자원의 확보, 대소련 방어망 구축, 이스라엘의 안보가 그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주요 전략목표는 탈냉전 시대인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소련이 더 이상 미국의 이해관계에 장애요인으로 등장하지 않자 미국은 중동의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이슬람으로부터의 위기’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2011년 아랍세계의 혁명적인 변화를 결코 예상하지 못했고 친미 독재자의 장기집권이 지속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오판이었다. 아랍의 정치체제는 공화제와 군주제로 나눌 수 있지만 형식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공화제이든 군주제이든 전제정치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아랍의 독특한 정치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아랍의 정치문화는 사막이라는 특수한 자연환경과 관련되어 있다. 험난한 사막 횡단과 끊임없는 여정에서 위기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문화를 보다 더 강화시킨 주된 요인은 미국의 개입이었다. 미국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독재정권을 지원해 왔다. 아랍에서 독재자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친미인가 반미인가의 이중 잣대로 나누어져 있다. 아랍세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행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아랍민주화 운동의 최대 패배자이다.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중동의 정치지형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첫째, 터키는 중동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으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인 친미국가 터키는 2000년 이후 유럽연합의 가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기존의 일방적인 친서구 정책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07년 총선 승리 이후 신중동정책을 표방하면서 중동과의 관계를 강화시켰다. 또한 터키는 이슬람세계에서 유일하게 정교분리를 채택하면서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조화를 이룬 국가로 알려져 있다.

둘째, 시아파 연대와 이란의 영향력의 확대이다. 이란은 2009년 대선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으로 녹색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내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중동에서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시아파가 중동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 정권이 수립되었고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란은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로 이라크, 헤즈볼라와 함께 시아파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셋째, 미국의 대중동 전략의 변화이다.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에서 시아파의 저항이 거세지자 미국은 전략적 목표를 정권교체에서 정권변화로 선회하면서 이란을 견제하였다. 바레인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미 해군 제5함대의 주둔지이다. 미국의 주요 협력파트너인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는 미국의 중동 전략의 전면적인 수정을 의미하며, 친미 아랍 국가의 위기를 상징한다. 2011년의 아랍세계는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적 구도를 초월한 실용주의 노선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될 전망이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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