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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통합의 길: 거대한 길일까? 쫀쫀한 길일까?

 대중의 무관심과 여의도 정치의 과잉이라는 불일치 현상이 너무 심화되고 있다. 정치라는 과정은 무의미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사회적 쟁점은 광장과 거리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진보와 개혁진영은 지지층을 확대할 수 없다. 정치가 무엇이든 지지층의 여론과 욕망을 대변하고 실천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은 정당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힘든 일상을 소진하면서 중요한 시기에만 정당의 부름에 응답하는 정치를 지속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전제가 없는 야권의 통합은 어찌 보면 '요행수 정치'에 불과하다.


이제 통합은 '승리의 열쇠'와 동의어가 되었다. 통합을 둘러싸고 난형난제, 백가쟁명 그 자체다. 통합으로 가기 위한 경로가 너무 많다. 아마도 통합경로를 통합하다가 2012년이 넘어갈 것 같다. 그래도 백가쟁명의 논쟁이 전개되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오히려 논쟁이 없는 것이 문제다.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공론의 장에서 치열한 토론이 전개되어 일정한 경향성으로 수렴되고 최종적으로 합의 가능한 경로가 결정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민주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통합이며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하다. 단지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뭉치자는 논리는 다수를 포괄할 수도 없으며 그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목적의식성도 확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최소강령 최대연합'의 길을 모색하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넓은 연대의 길을 가보자는 것이다. 초행길이고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길이며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비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길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처럼 길을 만들려면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한다.



지난 4월 8일,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민주당 곽진업 후보가 후보단일화에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첫째, 다양성을 인정하는 연대의 원칙이 합의되어야 한다. '빅텐트', '진보개혁 연합정당론' 등의 논의는 다양성을 무시할 가능성이 높고 다수에 의해 장악되는 정당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왜 국민들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아예 한 정당으로 지지를 몰아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국민들은 각기 자신의 위치에서 정치적 욕망과 선호를 정당을 통해 투사한다. 각 정당은 각기 다른 지지층을 대변하고 있으며, 국민은 그 다름에 의해 정당을 지지한다. 그런데 당장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 제 정당을 하나로 묶자는 것은 지지자연대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정당마다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지지층을 강제적으로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없다. 그것은 최대 연합의 원칙에도 벗어난다. 문제는 정당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각 정당의 정체성․지지층을 유지하면서 합의 가능한 연대와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둘째, ‘가치연대 공동정부’의 새로운 경로를 성공시켜보자는 것이다. 하나의 울타리에 모든 정당을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소강령의 기초 위에 권력을 공동으로 분점하는 연합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가치연합은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강령에 대한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최소강령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각 정당의 강령투쟁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선호와 욕망의 지점이다. 즉 최소강령의 기준을 진보개혁진영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선호와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도출하고, 이 도출된 최소강령을 기준으로 가치연대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틀로서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는 것이다. 가치연대를 통한 공동정부의 가능성은 2012년 총선에 각 정당 간에 ‘쫀쫀하게’ 계산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2012년 총선의 검증 없이 무조건적 야권연대는 오히려 필패구도가 갈 공산이 높다. 승리를 위해 무조건 합치자는 '거대한' 요구는 강압이다. '쫀쫀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 쫀쫀한 검증이 2012년 대선의 분열을 방지할 수 있는 핵심장치가 될 것이다.


셋째, 국민의 욕망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야 하며, 진보적 파퓰리즘을 구사해야 한다. 사회는 다양한 개별적 시민들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그 관계망은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시시각각 다양한 욕망들을 분출한다. 그 다양한 욕망은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그것을 학자들은 어려운 용어로 '시대정신'이라고 명명한다. 선거라는 선택의 공간, 정치라는 과정에서 국민의 욕망지점을 포착해내는 능력은 핵심적이다. 그것은 반민주적인 통치에 억눌린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갈구일수도 있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발생한 빈곤의 구조화에 대한 저항일수도 있고, 국민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희구일수도 있다. 그 지점에 대한 공감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적 파퓰리즘을 구사해야 한다. 조희연교수는 "파퓰리즘의 합리적 핵심을, 제도적 통로에 의해서 반영되지 않는 대중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 요구들을 정치 지도자 혹은 세력이 특정한 방식으로 수용·전유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스스로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 지점이다. 도대체 욕망이 표출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중들의 욕망을 분출하게 하는 것이다. 정책적 측면에서는 부유세, 토지공개념 등 진보적 방향을 통해 국가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일 수 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규정이 될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각 정당이 대선후보를 선출하여 연합후보에 합의하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야권의 단일 후보를 선정하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전선을 명료(1대1 구도)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넷째, 공동정부에 참여하는 각 정당 간 ‘쫀쫀한’ '흥정의 정치'가 전개되어야 한다. 야권 단일후보 선정절차와 동시에 공동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내부적 흥정이 ‘쫀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대의를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라는 것은 강자의 논리다. 오히려 강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공동정부의 각료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배합과 비율이 결정되고 국민에게 공표해야 한다. 적어도 각 정당의 지지자들이 납득가능한 수준이기 위해서라도 ‘쫀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누구든 더 많은 것을 잃으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흥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012년 대선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진보개혁진영 연합정치의 구체적 청사진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것의 핵심 고리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개헌문제다. 각 정당이 대선 이후에도 정당의 정체성을 유지․발전시키고 연합정치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절실하다. 또한 87년 헌정체제의 재편은 불가피하다. 단 개헌문제는 2012년 총선결과에 대한 존중과 2012년 대선 이후 논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 이전 논의는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섯째, 공간과 일상의 공공적 재구성을 위한 지역정치과 시민사회 혁신운동이 동시에 전개되어야 한다. 공간과 일상의 진보적 변화 없는 선거공학은 분열의 전조다. 공간의 공공성 강화와 일상의 민주적 변화는 연대와 공동체의식의 기초가 될 것이다. 우리가 향유하는 일상과 공간에서 지역정치가 꽃을 피워야 한다. 이미 6․2지방선거를 통해 진보개혁진영 지역정치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각자 도생과 재선을 위한 ‘이미지 정치’를 전개하겠지만 정당차원에서 공간의 공공성 활용문제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시민이 사용할 때, 지역정치는 변화될 수 있으며 시민의 삶은 민주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시민운동도 혁신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문화운동 전개를 통해 일상 삶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정치에 경도된 시민운동은 대중과의 거리를 더 넓힐 뿐이다. 지역차원으로부터, 일상의 문화로부터, 공간의 공공성으로부터 변화하는 지역정치와 시민사회 혁신운동은 야권연대의 흐름과 동시에 선순환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야권연대,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다. 1987년 양김의 분열, 19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라는 기형적인 연합의 길은 당대의 수준을 반영한다. 즉 당대의 시민수준을 넘어서는 연대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2012년 새로운 연합의 정치를 준비하면서 이 역사적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욕망과 기획으로 연합정치가 실현될 것이라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대중의 여론과 욕망의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좀 더 과단성 있는 민주적 정책을 통해 대중의 욕망과 접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더욱 ‘쫀쫀하게’ 계산된 공동정부의 과정을 밟아야 하며, 공존과 연대의 미덕을 기본자세로 갖추어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가. 그런데 돌아보자. 6․2 지방선거에서 아래로부터 전개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개발과 성장지상주의에 열광하던 국민들이 이제 복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질식할 것 같은 세상에 대해 스스로 저항하기 시작하는 20~30대를…. 시간은 오고 있고 민심은 이동하고 있다.


 


김종욱(동국대학교 연구교수/ 민주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