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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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전략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1. 다시 살아나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전략

현재 남북관계는 최악이다. 동북아 질서도 변했다. 2010년 서해에서 군사충돌을 겪으며, 동북아는 ‘신냉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한중관계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안보는 미국만 쳐다보면서,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시대착오적 불균형 외교 전략의 결과다.

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한중관계도 불편해지는가?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최우선시 한다. 당연히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 책임을 방기하고, 긴장에 편승하거나 부추기는 정책을 선택하면,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충돌한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중국의 한반도 전략과 공감을 이뤘다. 북핵문제를 비롯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중 양국의 협력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동북아 정세를 바라보는 인식도 변하고, 당연히 지역전략의 기조도 달라졌다. 인식론의 기저에는 ‘북한 붕괴론’이 있다.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고, 그래서 대화와 협상보다는 붕괴를 촉진시키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전략은 대북 제재다. 남북 교류협력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강화하고자 한다. 물론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역시 중국변수 때문이다.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중국의 참여가 없으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중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중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들의 낡은 냉전적 이념으로 정세를 오판했다.

중국은 오히려 북중 경제협력을 양적․질적으로 확대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특히 2010년 서해 군사충돌을 겪으며, 미중 군사대립을 한반도 서해로 끌어 들이면서, 한중 양국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냉전시기의 한미일 남방 삼각체제라는 낡은 전략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고, 현실화되기도 어렵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근본주의적인 북한인식은 남북관계를 관리하지 못하고, 동북아 지역의 대립을 심화시켰다. 바로 여기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전략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왜 동북아 전략을 중시했는가? 첫째, ‘북한 문제’가 당사자관계이면서 동시에 동북아 지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대표적이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북아 관련국들의 다자협상이다. 중요한 것은 북핵문제에 대한 기본인식이다. 북한 핵문제는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냉전해체전략이 당연히 필요하다. 두 개의 전후, 즉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체제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외교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 또한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중요하다. 에너지 경제지원과 같은 경제적 수단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포괄적인 외교와 군사 분야의 질서변화가 중요하다. 그것이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핵심 합의사항이다. 

둘째, 달라진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 외교 전략의 변화가 불가피했다. 인적교류와 경제협력 분야에서 한중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대외무역이나 투자에서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비중이 늘어났다. 다른 한편으로 한미 관계의 미래지향적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미군 기지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작전통제권 환수를 비롯한 중요한 한미 동맹 현안들이 재조정 과정을 거쳤다. 한국의 필요도 있었고, 미국의 해외군사전략의 시대적 변화 필요성도 작용했다. 동북아 균형자론과 같은 담론들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의 외교적 역할과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모든 것이 무너졌
다. 그중에서도 9.19 공동성명 채택과정에서 빛났던 한국의 외교적 위상과 역할이 사라진 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명박 집권 5년이 끝나면,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가혹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그중에서 북한을 잃어버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북아 지역 전략을 상실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2. 한반도 정세와 미국의 역할 : 희망의 한계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전환할 것인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변화를 ‘희망의 근거’로 삼는다. 오바마 행정부 2년은 최소한 한반도에서 전략의 부재와 전술적 이익의 추구로 나타났다. 북핵문제보다 한미 FTA와 같은 당면 이익을 중시했다. 서해의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는 한국의 강경정책에 편승하기도 했다. 과연 오마바 행정부는 생각을 바꿀 것인가? 그래서 미국 변수로 한반도의 평화가 이루어질까?

미국 내에서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상황이 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이후 이제 무시전략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동시에 한반도에서 관리하기 어려운 군사적 긴장에 부담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기 이익을 위한) 무시 혹은 방관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미중 양국이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2011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를 분석할 때, 부정(유지)적 변수와 긍정적(변화) 변수가 동시에 존재한다. 외교보다 경제를 중시하는 경향은 한반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동맹국에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경향은 지속할 것이며, 한미 FTA 재협상이나 쇠고기 수출과 같은 분야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의 과도한 긴장 격화는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국방비 감축을 추진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동북아에서의 안정과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의 필요성은 한반도 정책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2010년 중간 선거이후 하원이 공화당을 장악한 것은 부정적이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은 향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를 비롯해서 협상국면 조성에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미국 보수와 한국 보수의 연대 경향도 빈번해 질 것이며, 미국 공화당과 이명박 정부가 서로를 자신의 명분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가 재선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제 외교 분야에서 성과도 필요하다.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중동 등 중요한 외교현안들이 적지 않지만, 북핵문제 역시 세계적인 확산 방지의 상징적 평가지표라는 점에서 해결의 가닥을 잡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과도하게 기대하기 어렵다. 한반도 정책은 오바마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높지 않다. 세계질서가 미중 양국이 주도하는 G2 시대, 혹은 리더십 부재를 의미하는 G0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냉전붕괴이후 지속된 단극체제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중동의 민주혁명이 가져올 중동질서의 변화는 현재의 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 오바마 외교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중동의 질서변화는 오바마의 동북아 정책의 집중도를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외교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에너지 경제지원 등의 상응조치를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결국 북핵 폐기의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경우, 초기 이행조치인 군사적 신뢰구축의 당사자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과거 냉전시기의 ‘북한 억지’ 역할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분쟁해결을 위한 역할로 전환하고 있다. 당연히 DMZ 관리 권한을 비롯해서 한국군의 정전체제 유지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중요한 군사적 신뢰구축 분야는 이제 한국이 실질적인 당사자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적극적 의지가 없으면, 미국이 주도하기 어렵다.
당장 현안이 되고 있는 서해 평화정착도 마찬가지다.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포괄적 원칙을 합의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평화정착 조치는 한국이 결정할 문제다. 한국 정부가 평화정착 의지가 없는데, 주변국이 개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결정적으로 당사자가 아니기에 절박성도 약하고, 당사자만큼 적극적이지도 않다. 

다시 말해 미중 양국이 합의해서 6자회담을 개최한다고 하더라도 잘 되기 어렵다. 북한은 이미 핵 포기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연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또한 회담이 열려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평화정착이 아니라, 군사적 대결 노선을 추구하는 한, 남북관계도 어렵고, 한반도 평화체제도 진전되기 어려우며, 그래서 6자회담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것이 한반도 정세의 냉정한 현실이다. 매우 안타깝지만.  


3. 이명박 정부는 왜 변화하기 어려운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가? 6자회담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관계나 동북아 정세를 바라보는 실용주의적 관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교정책에서 실용이 배제된 보수주의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미국의 경우, 반공주의자 닉슨조차도 베트남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 소련과 역사적인 데탕트를 추구했다. 가장 최근에 부시행정부도 초기의 네오콘적 근본주의를 포기하고, 북한과 대화를 하고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한국의 역대정부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박정희 정부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려 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도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이명박 정부의 ‘뉴 라이트적 정세인식’은 한국이나 미국의 현대사에서 보기 힘들다. 어떤 보수적인 정부라도 국정운영에서 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근본주의를 고집하는가? 배후에는 바로 ‘북한 붕괴론’이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대북전략 개념은 크게 붕괴론과 접근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1988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접근을 통한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추구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붕괴론을 추구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포용정책을 대북정책의 핵심기조로 삼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다시 붕괴론을 대북전략으로 삼고 있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대화나 협상은 무의미하다. 붕괴를 촉진시키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붕괴이후의 상황인 흡수통일에 대한 국내적 정당성에 주력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남은 임기 동안 붕괴론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첫째는 국제사회의 6자회담 재개노력과 상충된다. 붕괴론은 장기 전략이지만, 6자회담 재개는 당면한 현안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에서 이명박 정부의 붕괴론은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  둘째는 실적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제 실적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붕괴론이라는 근본주의적 접근법에서 보면,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성과를 부정한 것도 성과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최소한 이명박 정부가 정책 목표로 내세웠던 분야에서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전통적인 대북정책의 성과지표에서도 현저하게 미달되며,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해결과 같은 보수적인 현안에서도 성과가 거의 없다. 북한 인권 수준의 개선수준도 마찬가지다.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대북전략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시기를 놓쳤다. 앞으로 레임덕의 진행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지지기반에 매달려야 한다. 중도층의 지지가 급속히 빠지는 상황에서, 보수언론들이 미래권력으로 말을 갈아타고자 하는 시점에서, 대북정책의 전환은 ‘정치적 자살’을 의미할 뿐이다. 근본주의에서 실용주의로 전환할 시점을 놓친 것은 이명박 정권에게도 안타까운 일이고, 국가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4. 평화 전략,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어두워야 별은 빛난다. 평화는 그런 것이다. 한낮에 별이 보이지 않듯이, 평화는 평화로울 때 빛나지 않는다. 2010년 우리는 전쟁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만큼 평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계기였다. 이런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던가? 평화의 상실은 이제 일상의 불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진각의 상인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하고자 하는 보수단체와 충돌하고, 서해 5도의 주민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남북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군사적 긴장으로 재산권의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평화가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이제 정치의 계절이 오면, ‘평화’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교는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이념과 무능한 정책이 생존의 위협이 된다면, 달라진다. 진보개혁 진영이 평화 전략을 준비하고, 다듬어서 내놓아야 한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1)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의 의미


진보개혁 진영은 햇볕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퍼주기 이데올로기’는 보수 진영의 성공한 프레임이다. 현재의 남북관계 악화에는 북한의 책임도 있다. 특히 연평도 포격의 경우, 북한은 명백히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북한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북한문제에 대한 여론이 갖는 이중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다수 여론은 북한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강경정책으로 남북관계가 불안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중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 여론에 일시적으로 편승할 수 있지만, 국민들은 동시에 정책의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삼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공백의 5년’을 보낸 것은 역설적으로 일시적인 여론에 춤췄기 때문이다. 

포괄적 정책효과로서의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낮지 않다. 시대적 정당성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햇볕정책의 내용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득력 있는 프레임으로 보여줄 것인지가 과제다.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햇볕정책’은 정확히 말해 정책이 아니라, 철학이요, 접근법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가 핵심이다. 그 반대는 북한 붕괴론이다.

‘접근을 통한 변화’는 사실 서독이 추구한 (신)동방정책의 핵심 개념이다. 통일이 아니라 공존을 추구하는 접근법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동시에 7.4 남북공동성명이후 역대 한국 정부가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접근법이기도 하다. 최소한 탈냉전이후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만이 예외일 뿐이다.

물론 한반도의 현실은 달라졌다. 북한은 후계체제 이행기로 전환하고 있으며, 북핵문제도 이명박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악화된 것이 사실이다. 달라진 환경을 반영할 수 있는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서 변화라는 것은 한반도 질서의 변화, 즉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포함하는 관계의 성격 변화를 의미한다. 남북 양측의 상호변화도 필요하다. 북한도 변해야 한다. 개혁 개방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변해야 한다. 대북접근법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국내적 합의기반을 넓혀야 한다. 이 문제는 불안정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수의 계몽’이 이루어지면 더욱 좋겠지만, 현재 극우가 보수의 이념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상투적인 초당적 협력이나, 혹은 왜곡된 보수와 진보의 대화 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수 시민의 희망과 기대를 공감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세부적으로 공존정책과 공영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진행 중이던 사업들이 적지 않다.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하고 10.4 합의의 이행계획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정책들이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지나간 정책은 공과가 있다. 잘된 점은 지속해야 하고, 잘못된 점은 과감히 바꿔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의 성찰을 통해 더욱 설득력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2) 동북아 평화전략의 필요성


우리는 이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를 겪으면서, 한반도 정세 악화가 동북아의 ‘신냉전’으로 비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군사는 미국에 매달리면서,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모순적 동북아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을 유지할 수 없다. 동북아 전략은 한반도 전략을 지역 전략과 결합하는 것이다. 서독의 동방정책이 우선적으로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서독 관계를 풀어 나갔듯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사회주의권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갔듯이, 동북아 지역질서의 변화와 함께 한반도 질서를 변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도 마찬가지다. 동북아의 대립구조가 남아 있고, 영토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한만의 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군축은 한계가 있다. 주변국의 군비경쟁 구도가 그대로 존재하는데, 남북한만 군축을 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동북아의 냉전 질서의 핵심에 바로 한반도가 있다. ‘북한 문제’는 일본의 재무장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미사일 방어망을 비롯한 군비경쟁의 중요한 근거도 되었다. 다시 말해 동북아 안보협력의 질적 발전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유리한 환경이 되며,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평화정착의 동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국 외교의 시대적 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으면, 그 과정에서 동북아 협력안보를 주도하는 근거와 명분을 가질 수 있다. 동북아 평화에서 한반도 문제가 갖는 중요성이 있기에, 지역 평화질서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제기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을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동북아에서 균형외교는 지역 평화질서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한미동맹과 충돌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를 과거 냉전의 추억에 사로잡혀 과거로 되돌리려 하지만,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세계질서에서 미국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글로벌 전략도 변화중이다. 미래 동북아 질서의 방향을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는 냉전시대의 잔재인 ‘진영 외교’가 아니라, 탈냉전적인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을 지향해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한국이 주도하면서, 한미 양국이 평화를 지향하는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으로 성격전환을 하고, 6자회담이 항구적인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에 운명을 맡기는 망국의 외교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외교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3) 세계 속의 한국, 어떤 국격 인가?


이명박 정부처럼 실속 없는 행사의 정치학으로 한국의 국격이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제3세계의 성공 모델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인권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진보개혁 진영은 세계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세계 질서가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브라질, 인도와 같은 신흥강대국들이 등장하고, 패권의 그늘에 가리어져 있던 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이 독자적인 국가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엔 외교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며,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적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국격’을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국격’인가 하는 점이다. 동남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나 국내에서 서서히 쟁점이 되고 있는 ‘공격적 인종주의’는 바꿔야 한다. 김구 선생의 소망처럼 ‘아름다운 문화강국’, 혹은 평화애호국가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하드파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력은 ‘소프트 파워’가 강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고 전략이다. 진보개혁 진영의 외교 전략은 한반도 차원, 동북아 차원, 그리고 세계적 차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이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세차원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시대’라는 국정 담론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전략의 연결고리를 고민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이제 이 구상을 더욱 구체화하고, 한 번도 상상력의 날개를 펴보지 못한 세계적 차원의 한국 외교를 상상할 때다.



 


정책논단-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전략.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