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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국가시대, 교육의 새판짜기 - 제2의 무상급식 운동을 찾아서 -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는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교육 문제를 변혁하는 지점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저는 21년 전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교육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교육민주화와 교육재정확보, 공교육강화 이 세 가지만 이루면 교육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서울대를 비롯해 일류 대학 입시제도가 정상화되면 초중등교육도 정상화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입시개선 등 정책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20년 동안 수없이 대학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개혁을 해봐도 점점 더 어린 학생들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게 되고, 사교육비 문제를 포함해 학부모들의 고민은 더 깊어가고 있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대학입시만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사회문제와 직결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육문제만 따로 해결하는 운동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경쟁에 낙오되지 않고 성숙한 인간으로 양육하는 것의 고통과 보람을 동시에 겪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교육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교육의 질에 대한 실망도 컸고, 인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스펙 논리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녀들의 취업문제는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과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교육문제는 학력, 학벌 등의 사회인식과 고용, 임금을 포함한 노동문제 등의 사회문제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교육을 바꾼다는 것은 한국사회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교육양극화-소득양극화-사회양극화의 고리가 깊어갑니다. 부익부 빈익빈 교육이 생기고 사회 불평등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재산과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과 동생의 희생이 일류 대학가는 필수조건’이라고 합니다. 서울 강남지역에서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학생들 학력차가 난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줄까봐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학력, 부모의 소득, 부모의 직업’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고려대 김경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아버지의 학력이 중졸 이하인 학생들과 대학원 이상인 학생들 사이에는 수능시험점수가 평균 50점 가까이 차이가 발생하며, 가정의 가계소득과 수능 점수 또한 정비례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실제 수능 점수는 태어나서 자란 장소와 고교 지역이 어디인지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최근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학생이 태어난 지역, ‘14살 때 어느 곳에 살았느냐?’가 수능점수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외국ㆍ서울ㆍ인천에서 성장하고 고교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수능 성적 상위 그룹을, 충북ㆍ제주ㆍ광주ㆍ전남ㆍ전북 학생들은 주로 하위그룹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자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태어날 고향을 선택할 수도 없는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특목고의 인기는 대학입시문제와 직결됩니다. 2005년 서울 6개 외고 졸업생 가운데 56%가 SKY 대학에 진학해 졸업자 2명중 1명이 명문대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나자 외고 경쟁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민족사관학교가 강원도 횡성에 있다고 해도 강원도 학생들이 민사고에 합격하기 힘들고, 대원외고가 광진구에 있다 해도 중곡동 학생들이 입학할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강남발 사교육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뿌리 채 흔들고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을 가르쳐준다는 학원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 가난한 부모, 교육적 혜택이 없는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교육을 블랙홀이라 말합니다.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아무리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교육 문제에 부닥치기만 하면 신념을 잃고, 한국 교육문화의 블랙홀에 빠지고 마는 현실입니다. 학부모들이 불안한 이유는 아이들의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주변에는 경쟁에서 낙오되어도 잘 살고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도, 잘 살수 있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를 예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교육 불평등 현상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지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돼 결국 우리 사회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성장 방식, 그리고 선택 방식 모두를 변화시켜야 한다."(라구람 라잔, ‘폴트 라인') 한국사회가 깊이 새겨들어야합니다. 지금 한국은 불평등한 교육, 서열로 유지되는 사회, 남을 밟고 서야만 내 존재감이 빛나는 교육, 경쟁으로 유지되는 사회, 남이야 굶든 말든 저 혼자밖에 모르는 교육이 판을 치고 있는데 이판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이기적인 기득권층과 불행한 중산층과 절망하는 소외계층만 양산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정부 관계 부처 인사들까지도 사석에서 ‘한국교육은 해답이 없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합니다만 정부수립 후 수십 년 동안 재정과 인사권을 주물렀던 교육부를 포함한 권력들이 이제 와서 해답이 없다며 한 발 뒤로 빼는 것을 보면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규모 10위권인 한국은 어느덧 양이 아닌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웰빙 국가시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웰빙 국가시대’에 국가가 책임지는 수준 높은 공교육, 교육과 일자리 기회확대, 교육복지를 향한 정치권의 관심과 정책생산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민주당이 시작한 복지논쟁과 한국 사회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다양한 의제들, 북유럽국가에 대한 관심이 단적인 예인데 교육기회균등을 포함해 교육복지문제에 대한 더욱 세심한 접근을 해야 할 것 입니다.

한국교육의 우수성은 인정하나 현행방식대로 미래를 준비하기엔 취약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있어 교육은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기존의 선거 이벤트성공약개발이나 대선 후보들의 각개약진은 예상합니다만 이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회적인 합의와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 운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 부러움을 받는 핀란드의 경우, 오랜 식민지로 인해 그 나라에 알맞은 교육제도가 없어 수십년 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낙오자 없는 책임교육이 그중 핵심입니다. 직업교육의 내실화와 사회적인 평등의식, 차별 없는 임금, 무상교육, 생산적인 경쟁, 학력차가 적은 학교들이 오늘날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핀란드교육의 모습입니다. 한국도 미래사회를 대비하기위한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제도와 기구를 만들어야합니다.


교육양극화가 사회양극화로 이어지는 한국사회를 개선하기위해서는 출발선의 평등이 중요합니다. 유아들의 건강과 인성, 잠재력, 지능개발을 위한 교육 기회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특히 저소득층, 소외계층 등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유아들에게 교육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기의 기초학력과 인내심, 자제력 등을 키울 기회가 부족하면, 학습부진이 누적되어 악순환이 되기 쉽습니다. 학습부진문제, 오늘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치면 내일의 짐으로 남습니다. 일자리 문제도 교육문제와 직결됩니다. 비숙련직은 비정규직비율이 높습니다. 높은 교육수준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국가가 본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수준 높은 일자리, 연봉이 높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교육의 기회확대와 직업의 기회균등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밖에도 오랫동안 강조되었으나 국가 재정이 부족하다며 늘 외면당했던 의제들(학급당 인원수 줄이기, 교육재정확충), 마지막으로 교사의 전문성강화 등 공교육을 혁신하는 시급한 과제들을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합니다. 이를 시급히 해결하지 못하면 이문제 해결은 미래로 누적되고,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출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2010년 연말, 무상급식 논란등 많은 제약 속에서도 서울시 교육위원 15명과 예결산위원 33명은 1인당 20억원씩 관행처럼 여겨지던 개인예산 증액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선심성 예산 1000억원을 절약한 것입니다.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심의하면서 불필요한 예산은 감액하여 집행부 예비비로 넣어주고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 도입을 통해 유권자가 개입하기 힘들었던 예산 부분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회의 여타 위원회도 마찬가지로 기존관행과 결별하고 새로운 의회정치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층 개혁적인 시의회가 보여주는 밝은 조짐입니다. 조만간 한국사회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생각합니다.


2011년 새봄을 맞아 혁신학교가 곳곳에서 개교하고, 친환경무상급식시대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교육시민단체가 주장해오던 친환경무상급식공약을 정치권이 적극 수용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부시도의 진보 교육감들과 집행부, 시도의회, 유권자 모두가 기존의 낡은 교육을 떨쳐내고 본질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 현장의 변화는 부드럽고 정확하게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려 변화를 추동하고 시민들과 깊이 소통하고 공명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유권자들은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이후 친환경무상급식공약과 혁신학교 공약이 실제로 추진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복지논쟁을 더 이상 강 건너 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은 ‘정치가 썩었다고 외면하지 말라’는 전직 대통령의 유지를 가슴깊이 **고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행위를 우리의 삶을 개선해 줄 중요한 계기, 필수적인 실천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시대정신은 변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넘어서 공교육의 선진화가 필요합니다. 한때 영원할 것 같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시대를 마감하면 다음에 어떤 시대를 준비해야할까요? 유권자들의 절박함과 열정에 정치인들은 가치와 전망, 정책으로 답해야합니다. 수권세력으로서 민주당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비정규직해소, 학력과 학벌에 따른 사회적 차별 해소, 지역할당제등은 교육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교육문제해결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국민들의 교육적, 일상적 고민거리를 풀어야합니다. 교육부문에서 무상급식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체감도를 높이고,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학습준비물, 무상체험학습, 대학장학금과 시립, 국립대학의 무상교육 등 제2, 제3의 무상급식운동을 발굴하여 세계10위권 한국의 경제수준에 적합한 교육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 교육에 대한 관심과 변화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 입니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새판을 짜야합니다.


민주주의와사람들-웰빙.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