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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방학 이사철이 끝났는데도 전세난은 계속되고 있다. 진원지가 되었던 강남권을 넘어선 지는 오래되었고 수도권 여러 곳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이제는 대학가 원룸, 하숙집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구제역, 물가고와 함께 최근 서민고통 3대 과제 중의 하나다. 도대체 이 전세난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는 왜 전세금이 오르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있다.

전세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이다. 역사적으로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집값이 곧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남의 돈을 전세금 형식으로 빌려 미리 사두려 하기 때문에 성립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전세제도는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만약 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집값이 계속 오르지 않는다면 아예 월세로 전환하고자 할 것이다. 실제 장기간 집값이 정체되어 있는 지방도시는 전세보다 월세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서울·수도권도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은 이미 보증부 월세 비중이 더 높다.


고가 전세시장의 악순환, 선순환


따라서 최근 고가 아파트 전세금이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집값 자체가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강남권 전세금 상승에 대해 여유를 부린 이유이기도 하다. 즉, 전세난이 계속되면 집을 안사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구매수요로 돌아설 것이고, 그렇게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신호가 나타나면 다시 전세가 안정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면 전세금이 안정된다는 것도 그런 논리이다. 전세대책에 왜 분양가 상한제나 DTI 규제 완화가 포함 되었는가 의아해 하던 분들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 30년간 계속된 악순환이다. 집값 상승 → 전세금 상승 → 집값 상승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언론을 앞장세운 건설업자들은 이런 논리를 유포하는 데 열심이다. 이제 집값이 오를 때이며, 정부는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차를 두고 오르는 것을 악순환이라고 한다면, 함께 떨어지는 것이 선순환이다. 집값 거품을 빼겠다는 의지가 없는 한 전세금 상승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말 집값이 내릴 수 있는 정책을 펼친다면 전세금도 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바탕을 두고 있는 부동산 경기 부양론은 고가 전세금 상승의 진짜 뿌리일지 모른다.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서민의 대표적 난방연료였던 연탄재가 눈길을 끈다.



서민용 전세시장의 월세화


그런데 중저가 전세시장은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이다. 이미 전세가 월세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집주인들이 저금리 하에서 더 빨리 월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월 소득에서 생활비 떼어 내듯 임대료를 내야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당연한 월세제도지만, 우리로서는 아직 적응하기 어려운 월세의 시대가 찾아왔다. 당장 전세에 비해 상대적 부담액이 더 큰 것이 문제다. 월세 전환율이 은행 이자보다는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또한 월세는 형편이 어려울수록 상대적 부담이 더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저소득계층들은 수입의 거의 절반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 중고소득층으로 올라갈수록 부담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서민층들의 임대료 부담은 매년 더 늘어난다. 고소득층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운영하는 복지패널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저소득층은 ‘자가에서 전세, 전세에서 월세’로 내려가는 주거하향 이동 경향이 뚜렷하다. 여기는 월세 확대와 소득양극화 영향도 있지만, 뉴타운, 재개발이다 해서 서민들이 살아갈 주거공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동시 다발적인 뉴타운 사업이 위험한 이유이다.



임대시장의 새로운 단계와 임대차제도


이제 전세금 문제는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바로 전세 자체가 사라지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고가 전세시장은 앞에서 설명했듯, 거품 낀 고가주택의 집값을 낮추는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그러나 중저가 전세시장은 월세전환이라는 근본적 시장변화 속에서 이해하고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임대차제도는 월세에 대해서 사실상 무방비 상태이다. 임대차보호법은 기본적으로 전세금 반환에 중점을 둔 제도이다. 우선 변제권이라든지 확정일자 제도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월세 인상을 억제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월세를 낮출 수 있는 장치는 없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에 월세를 놓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월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지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선진국형 임대차 제도가 시급히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세를 놓는 여유주택은 무조건 임대전용주택으로 등록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는 세입자의 자동 계약갱신권이 보장되어 있다. 이렇게 계약이 갱신될 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정 수준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한다. 더구나 임대료 수준에 불만이 있을 경우 지역별로 설치된 임대료 사정위원회에 조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임대용으로 등록된 주택은 임대소득세를 부담하지만 동시에 정부의 임대주택 관련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정부가 차액만큼을 지원하는 임대료 보조제도를 실시하는데, 이는 세놓은 가옥주에게도 도움이 된다. 요컨대 민간임대차 시장을 투명화, 공식화함으로써 세입자와 가옥주 모두 보호 및 지원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최근 전세대란을 맞아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핵심은 자동 계약갱신제와 인상상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임대전용주택 등록제도, 임대소득세, 임대료 보조제도 등이 패키지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우선 급한 대로 계약갱신제와 상한제를 도입하더라도 다른 제도들도 도입일정을 미리 밝히고 단계적으로 착실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월세 시대를 앞두고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효과를 거뒀던 기존 시가지내 다세대·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마치 처음 도입하는 것처럼 얘기했던 그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재개발, 뉴타운 사업은 서민용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낡은 집을 새 집으로 바꾸는 도시재생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원래 서민들이 살던 곳에 고급주택만 짓는 것은 문제다.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도 함께 늘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개발, 뉴타운 사업 시 공공임대주택을 20% 이상 포함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 재정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부채 문제에 발목이 잡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LH 공사도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다.


모두 내 집이나 공공임대주택에 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전세금 오를 걱정은 안 해도 되고, 해마다 이사 다닐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나라는 없다. 오히려 단신세대가 늘고 직장이나 거주지 이동이 잦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민간임대주택은 편리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민간임대시장이라 하더라도 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공임대주택 안전망과 함께 우리의 전근대적인 임대차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전세대란은 시간이 가면 가라앉을 것이다. 다만 근본적인 대안을 늦춘다면, 머지않아 같은 대란이 반복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김수현(한국도시연구소 소장 /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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