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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언제까지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 할 것인가?

MB정부, 언제까지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 할 것인가? - 버블경제의 붕괴와 토건국가의 몰락, 일본의 교훈


 


박일환(민주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1.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 - 버블경제의 붕괴와 위기를 방치한 정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컬어지는 일본경제의 붕괴과정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그 발단은 부동산 불패신화의 붕괴였다. 일본의 기업과 개인은 1984년 금융자유화조치이후 잇따른 금리인하(85년 5%였던 금리를 87년 2.5%까지 인하)와 80년대 후반 엔고극복을 위한 금융완화 조치 등으로 시중의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앞다투어 부동산에 투자했다. 지가가 토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세차익에 의해 결정되며 또한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초하여 금융기관이 신용이 약한 중소기업이나 부동산 회사에 무분별하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었던 시점도 바로 이때다.


지가가 급등하여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일본은행은 저금리가 버블을 발생시켰다는 비판을 의식하여 금리를 급격히 인상(1990년 8월까지 5차례에 걸쳐 6%까지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규제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시장의 수요 부재와 은행의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인한 신용경색이 지속되어 일본경제는 주가폭락과 부동산 가격의 동반 폭락에 빠지게 되고, 버블붕괴와 장기침체로 요약되는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지게 된다.


버블붕괴 초기 일본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위해 금리인하와 주가부양책을 동원하였으나 그 효과는 미흡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일본 대장성의 무리한 주식 부양으로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유동성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특히 부동산을 담보로 잡았던 은행에서 대량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도가 불가능해지자 일본의 금융권은 실질 손실의 누적을 각종 회계부정으로 은폐하였다. 1990년 노무라, 니코 증권의 투금계정 회계부정 사건, 총 20억달러 규모의 스미토모은행 불법주가조작 및 부동산 투기 사건, 1991년 후지은행의 2600억엔의 CD 위조 사건 등은 이의 대표적 사례이다. 


1992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7개 주택금융전문회사(住專)의 부실대출은 4조6500억엔 규모였으나 95년 6월 말에는 7개 주전의 대출총액 10조7200억엔의 76%에 해당하는 8조1300억엔이 불량 채권이 되고, 이중 46%에 해당하는 4조9500억엔은 고스란히 주전의 손실로 남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성과 각 은행은 자산가치가 조만간 바닥을 칠 것이고, 따라서 몇 년이 지나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사태를 낙관하여 부실채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95년 전후 최초로 은행 인출 사태가 발생하고, 이후 도쿄신협, 코스모 신협의 파산을 필두로 오사카신협, 효고은행의 파산 등 주택금융신용조합들의 연쇄도산, 1996년 부동산 전문 대출 은행인 한와은행의 파산, 1997년 11월 일본 10위권의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殖)은행과 일본 2위 야마이치 증권이 파산 등으로 금융권의 위기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채권처리보다는 경기대책에 중점을 두어 1996년에 제2금융권인 주택전문회사(住專)처리를 위해 6,850억엔의 공적자금을 처음으로 투입했을 정도로 안이하게 대처하였으며, 은행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기 보다는 부실채권을 자회사 등으로 이관하여 처리를 연기하는 등 미봉책으로 일관하였다.



'부동산 공화국'의 상징.  강남 구룡마을에서 바라 본 타워팰리스


 
2. 실패한 공공투자와 감세정책


  90년 대 이후 일본 정부는 미야자와 내각에서 모리 내각에 이르는 10년동안 버블붕괴에 대등하여 10차례에 걸쳐 무려 124조 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과 감세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기대책은 경제적 합리성과는 무관하게 자민당 지지자인 건설업계나 농민의 수입을 늘려주는 공공사업에 투입되어 자원배분의 비효율로 일관하였다. 공공투자를 여전히 토건사업에 치중하고, 과도한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일관하여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 건설업체가 오히려 증가하는(91년 602만개이던 건설토목업체 수는 96년에는 오히려 647만개로 증가) 난맥상을 드러낸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공공투자와 함께 일본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94년부터 99년까지 소득세에 대한 특별감세정책을 실시하고 소득세의 각종 공제를 확대하는 등 감세정책을 병행했다. 소득세와 관련한 대표적인 감세조치는 소득세 세율을 인하하고 누진구조를 완화시킨 것이다(94년 10, 20, 30, 40, 50%의 구조를 99년에는 10, 20, 30, 37%로 변경). 법인세의 기본세율 또한 94년의 37.5%에서 99년에는 30.5%로 7%포인트나 인하했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이러한 공공투자와 감세정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버블붕괴후 10년간 평균 GDP성장율은 1%내외의 수준으로 경기부양책 실시 후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는 듯 하다가 경기부양책이 종료되면서 다시 침체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였으며, 재정적자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의 구조조정과 우정산업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작은정부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구조개혁으로 일관한 고이즈미 정권의 대책도 별 소용이 없었다. 


1990년  GDP의 61.4%수준이었던 정부의 국가채무는 감세를 동반한 경기부양책이 본격화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9년에는 100%를 상회하였으며, 2005년 재정수지를 기준으로 GDP 대비 6.4%로 OECD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였다. 기업도산도 97년 17,496건에서 2001년 19,164건으로 계속 증가하여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을 해도 희망이 없는 장래가 불안한 젊은이가 증가하는 ‘격차사회’라는 용어가 대두될 정도로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빈곤층은 더욱 확산되었다. 


1994년 전체 노동인구의 20%이었던 파트타임 노동자는 2004년에는 32%까지 늘어났다. 연간소득이 정규직의 1/4수준에 불과한 프리터족의  비중도 15~34세 노동인구 중 ’01년 21%에서 ’04년 25%로 늘어났다. 1990년도에 1,014,842명이었던 생활보호대상자는 2003년도에는 1,344,327명으로 증가했으며, 일본의 빈곤율은 1996년 8%에서 2005년 15.3%로 급증해 주요선진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억 총중류’로 지칭되는 중산층 신화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 일본실패의 교훈과 MB정부  


 일본의 정책실패와 관련하여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는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일본 경제불황을 초래한 주요한 축인 부실채권문제와 관련하여 각종 부정과 분식행위를 일삼은 은행의 임직원은 하등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또한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에 대해 재정 및 법적인 조치들을 취하여 시장의 규율을 세워야할 금융당국은 이를 방조 내지 은폐하고 규제자로서 하등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기만과 표리부동의 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시장의 규율을 확립한다. 


 둘째, ‘토목국가’, 또는 ‘건설국가’로 지칭되는 재정의 상당부분을 불필요한 인프라에 과다하게 지출하는 정책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지방정부가 불요불급한 지출을 공공사업에 투자하면 할수록 보조금을 많이 받는 왜곡된 지방재정구조를 개선한다. 소비의 진작은 전통적인 대규모의 전국적인 공공사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지역실정에 맞는 소규모 공공투자와 복지관련 서비스의 투자에서 찾아야 한다. 


 셋째, 최소국가의 전제에서 출발하여 사회안전망을 협애하게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에서 탈피하여 실업과 빈곤의 가능성에서 발생하는 위험뿐만 아니라 토지와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위험까지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또한 재정적자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인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에 대비하고,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한다. 


 넷째, 소득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가 확대되고,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보다 유리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고, 직업선택의 측면에서 부모의 뒤를 있는 사례가 증가하는 ‘격차사회’ 도래에 대비하여 교육이나 직업에 있어 차별없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정책을 적극 개발해야만 한다.


 이 글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일본의 사례를 언급한 까닭은 지금의 MB정부가 거의 판박이에 가까울 정도로 일본의 사례를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세, 종부세, 법인세 감세에 더하여 양도세 완화까지 치닫고 있는 감세정책, 건설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에 기초하여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미봉책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64조에 달하는 건설사 PF 대출관련 대책, 7조원대 달하는 저축은행의 불법대출과 횡령을 사실상 수수방관한 금융당국, 친환경사업이라는 요설로 포장한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정책, 그리고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노동과 복지정책에 이르는  지금까지의 MB정부의 정책은 일본의 실정을 그대로 밟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의 기본 얼개가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이에 귀기울일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두려운 것은 그 파국의 끝은 ‘먹튀’ 이명박 정부의 부담을 다음 정부와 미래세대가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언제까지 일본의 실패를 되플이 할 것인가? 그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