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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권리인가? 시혜인가? - 복지철학과 사회정의의 실현 -

복지, 권리인가 시혜인가? - 복지의 철학과 사회정의의 실현 -


         


1. 서론


 최근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3+1 정책’이 지난 수년간 지속되던 복지논쟁을 더욱 가열차게 만들고 있다. 여당과 보수언론이 극심한 반론을 전개하는 한편, 그동안 흩어졌던 야당들과 시민단체, 진보언론이 복지를 중심에 두고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가 복지방안을 발표하였다. 그간 한국에서 복지담론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보수진영의 복지 제안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와 복지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었다. 복지국가의 태동기에 서구 사회에서 이를 주도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었다. 복지정책의 한 전형을 제시했던 비스마르크(O. von Bismarck)도 독일의 강력한 보수주의자였다. 보수진영이 스스로 복지담론을 꺼내게 된 것은 더 이상 복지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전략적 고려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 더 어려워진 사회경제적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며, 진보진영이 그간 노력한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보수의 복지와 진보의 복지는 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복지국가의 형성에는 보수주의자의 기여가 ‘크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보수진영에서 진보의 복지담론을 받아 들어 복지를 하겠다고 주장하니 많은 사람들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안심하고 환영해도 되는 것일까?  


이제 진보진영에게도 새로운 과제가 던져진 셈인데, 보수진영의 복지와 진보적 복지를 차별화시키는 일이다. 국내 진보진영이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단일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진보진영은 보편주의적 복지원칙 아래에서 연대하고 있지만, 이후 이 원칙을 현실 정책에 적용해야 할 때에도 이 연대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서구 역사 속에서도 보편주의 원칙을 현실 정책에 적용하려는 순간 여전히 복지정책의 대상과 급여수준을 둘러싼 매우 복잡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보편주의적 복지체제의 전제라 할 수 있는 완전고용 보장이나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계급연대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서구 사회의 복지체제 발전사를 살펴보면 강력한 계급연대와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교차되면서, 복지국가가 형성되고 적응해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서구 복지체제 발전역사를 세 쌍의 대응개념으로 재구성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 적합한 복지원칙을 모색해보려 한다. 첫 번째 대응개념은 복지를 자선적 국가의 시혜로 바라보는 관점과 권리로 인식하는 개념이다. 두 번째 대응개념은 복지의 잔여주의적 원칙과 보편주의적 원칙이며, 세 번째 대응개념은 소극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이다. 이를 통해 복지의 철학, 방향, 그리고 전략을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시혜에서 권리로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대규모의 빈민층이 형성된 영국은 1601년 구빈법(Elizabeth Poor Law 또는 Old Poor Law)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구제의 방법을 공공작업장 안에서의 원내구호에 한정하고 강제노동, 이주금지, 처벌 등을 병행하는 극도로 억압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국가가 빈곤문제에 최초로 책임을 지기 시작한 사례, 즉 국가복지의 기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복지 수혜의 자격으로 자산조사(means test)를 실시하여 이후 복지제도에 오랜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점에서 잔여주의적 복지의 기원이기도 하다. 1782년에 공공시설 밖에서의 선별적 구제를 인정한 길버트법(Gilbert's Act)이 제정되고, 1795년에는 최저생활비 미만의 빈민에게 차액을 보상하는 스핀햄랜드 제도(Speenhamland system)가 시행되는 등 좀 더 발전된 제도가 시행되었다.


1834년 제정된 신구빈법(New Poor Law)은 스핀햄랜드제도의 최저임금 보조체계를 제거하면서, ‘노역장 테스트’와 ‘열등처우 원칙’을 내세웠다. 이 원칙들에는 빈민들이 구빈을 청하기보다는 어떤 열악한 조건의 노동이라도 마다하지 않도록 유도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신구빈법이 이처럼 역사적 역행의 길을 갔던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빈곤은 개인의 나태와 무분별함의 결과이고 국가의 보호는 빈민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해석되었다.


자유주의적 구빈 원칙은 산업혁명으로 빈곤층이 다시 급격히 증가하고 노동계급이 형성되면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곡물법과 구빈법 개정, 참정권 확대를 둘러싼 대립이 심화되었고, 노동계급은 차티스트(Chartist)운동을 통해 6개 정치권을 포함한 인민헌장의 채택을 요구하였다. 대규모의 경제공황이 영국을 휩쓰는 와중에 1884년 페이비안협회(Fabian Society)가 결성되었고, 1900년 영국노동당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계급적 자각과 더불어 부스(C. Booth) 및 라운트리(S. Rowntree) 등에 의해 수행된 일련의 사회조사사업은 빈곤이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안이한 견해를 깨트렸다. 이들의 통계적인 연구는 빈곤이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자선이나 인도주의에 의해 해결될 한계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보다 적극적인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한편 빈곤을 둘러싼 계급적 대립이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났던 곳은 독일이었다. 유럽을 휩쓴 1848년 3월 혁명을 기점으로 독일에서도 정치적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사회주의 정당간의 동맹관계가 형성되는 등 노동계급의 진출이 가시화되었다. 독일의 산업노동자들은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을 맺고 1863년 전독일노동자동맹을 결성하는 등 조직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871년 독일제국 건설과 함께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자에 대한 억압정책에 나서자, 전독일노동자동맹과 독일사회민주노동당은 1875년 고타(Gotha)에서 통합하여 독일사회민주당을 출범시켰다. 1877년 선거에서 독일사회민주당이 49만 3천표를 획득하는 등 정치적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자, 비스마르크는 1878년 반사회주의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자를 강하게 탄압하는 한편, 공장 및 광산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병보험법(1883), 재해보험법(1884), 노령보험법(1889) 등 일련의 사회보험정책을 시행하였다. 대립적인 두 가지 정책을 양립시켰던 비스마르크의 의도는 따른 사회주의운동을 억압하는 동시에 노동계급의 불만을 사회보장으로 무마하려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사회민주당은 비스마르크의 집권 시기(1870-1890) 동안 제국의회의 활동에 의의를 두지 않았고 사회보험법에도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소위 수정주의 노선이 제기되면서 적극적으로 의회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1899년 사회보험법에 최초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각국의 사회민주당은 복지를 기본적인 정책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1880년대에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정된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는 ‘세계사적으로 사회정책의 방향을 바꾼’ 사건이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광범위한 나라에서 사회보험은 공공부조와 함께 현대적 복지제도의 양대 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11년 국민보험법을 제정하였던 영국 자유당 정부의 재무장관 조지(L. George)도 1908년 독일을 방문하여 비스마르크의 질병보험 제도를 관찰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빈곤이 그 사람이 아무런 통제력도 미치지 못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은 것인 한, 국가는 그 자원의 최대한도까지 개입해 들어가서 그를 극도의 궁핍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어야 한다." 라며 국가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발전 초기에 시혜적 차원에서 또한 체제 포섭적인 목적으로 도입된 국가복지는 노동운동과 사회민주당이 이를 자신들의 프로그램으로 채택함에 따라 사회적 권리의 한 부분으로 변모하였다. 1911년 홉하우스(L. T. Hobhouse)는 “노동할 권리와 생계임금에 대한 권리는 인신의 권리나 재산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것이었으며, 훌륭한 사회 질서에는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주장하며, 노동과 생계임금을 정당한 권리로 규정했다.


마샬(T. H. Marshall)은 이러한 권리를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 rights)’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적 시민권이야말로 복지국가의 핵심 개념을 구성한다”고 설명하였다. 사회적 시민권은 공민권(civil rights), 정치권(political rights), 사회권(social rights) 등 하위개념들이 특정한 조건에서 역사저긍로 결합되어 온 복합체이다. 마샬은 이 세 가지 권리가 모두 갖추어진 사회를 ‘완전한 시민권(full citizenship)이 확립된 사회’로 보았으며, 그 구체적인 형태로 근대적 복지국가를 제시하였다. 세 가지 권리 중 공민권과 정치권이 사법체계와 의회제도를 중심으로 19세기까지 제도적 형태로 안착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사회권은 현재까지 진행 중인 개념이다. 


사회권에 내재된 권리항목들의 양적, 질적 수준과 정도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복지서비스의 제공 주체와 대상 범위에 대한 규정도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사회권에 대한 마샬의 정의 중 다소 모호하게 표현된 ‘적정 수준’과 ‘보편적 기준’을 국가가 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역량에 따라 구체적인 수준과 정도로서 결정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복지체제 혹은 복지정책에 있어 ‘보편주의(unversalism) 원칙’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3. 잔여주의에서 보편주의로


잔여주의(residualism)는 자산조사를 통해 특별한 욕구가 있다고 인정된 개인에게 복지급여의 수급자격을 부여하는 할당원리이다. 19세기까지 유럽 사회 대부분의 복지정책들은 고전적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에 기반한 잔여주의적 원칙에 따라 시행되었다. 이에 비해 보편주의(universalism)는 계급이나 시장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20세기 초반 복지정치 속으로 도입되었다. 


유럽의 복지체제 중에서 보편주의 원칙에 충실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영국의 베버리지체제와 스웨덴 복지체제이다. 이 체제들은 빈민 혹은 산업노동자보다 더 큰 포괄적 인구들을 수급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 정액급여제 등을 통해 급여 수준의 차이를 지양하려 했다는 점에서 보편주의적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42년 출판된 베버리지보고서는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이다. 1929-1932년의 세계대공황과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영국 국민 사이에 전례 없는 사회적 유대감을 조성하여 평등주의적 정책과 집단주의적 국가개입의 확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었다. 또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유럽국가들 중 영토의 침입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영국은 전쟁을 치르면서 다른 한편으로 전후의 영국 사회에 대한 구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베버리지보고서는 그 결과물이다.


베버리지보고서는 사회문제를 5가지 악, 즉 무지, 불결, 질병, 나태, 결핍으로 규정하고, 보편주의를 원칙으로 소득의 고저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소득을 국민최저수준으로 평생 동안 보장하고자 했다. 완전고용, 포괄적인 보건서비스 및 아동수당 등이 핵심적인 전략이었다. 또한 기존의 복잡한 사회보험을 단일체계로 통합하고,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인구를 대상으로 하며, 기여와 급여의 방식은 정액기여제와 정액급여제로 할 것을 제안하였다. 전후 집권한 애틀리(C. R. Attlee)의 노동당 정부는 이 구상을 바탕으로 장애인고용법(1944), 가족수당법(1945), 국민보험법(1946), 국민산재보험법(1946), 국민보건서비스법(1946), 국민부조법(1948) 등을 연이어 제정하여 영국의 현대적 사회보장제도가 완성되었다.


이 제도 안에서 보험 가입자는 질병, 실업, 퇴직, 과부, 고아, 출산, 장례에 따른 수당을 일괄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국민보건서비스법은 전 국민에 대한 무료의료의 제공을 목표로 하여 국민보건서비스(NHS) 운영에 의사들의 참여를 보장하되, 모든 병원을 완전 국유화하고, 유상 의료행위의 전면 폐지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의사들과의 협상과정에서 일부 유료병상을 남겨 두게 되었다.


한편 스웨덴에서는 1917년부터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사민당이 국민의 지지를 통해 내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민당은 복지를 구빈적 인식으로부터 분리시켜 사회정책 영역으로 포함시키면서, ‘일을 할 권리’이자 동시에 직업과 기능의 편차에 관계없이 생활에 필요한 ‘임금을 받을 권리’로 규정하였다. 1932년 사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복지는 주요한 영역으로 부각되었다. 그 시기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저출산 문제는 스웨덴 사민당이 보육을 중심으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가는 바탕이 되었다.


1935년 연금법을 확대 개정한 것을 기점으로 양로원법(1939), 학생건강관리법(1944)등이 제정되었다. 1930년대까지 스웨덴의 공적 복지지출은 서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복지수급 대상을 늘리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전후에는 국가복지의 확장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고,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보편주의 원칙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전후에 무상급식 및 학자금보조제도(1946), 주택보조비(1948) 등이 시행되었고, 1950년대 이후 국민의료보험법(1953), 출산보험(1953), 사회보조법(1955), 부가연금법(1959) 등 보건과 실업방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사회보장정책들이 실행되었다.


1938년에는 생산력을 높이고 다수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자-고용주 사이, 그리고 노동자-농민 사이의 역사적 협약이 이루어졌다. 스웨덴노동조합연맹과 경영자총연합체 사이에 이루어진 ‘잘트*바덴 협약(Saltsjöbarden Agreement, 1938)’은 자본 측이 해고의 자유를 가지는 한편 노동측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로의 조기 이행을 위한 물질적 기반 확대라는 사민주의 연합의 이해관심과 생산성의 증대라는 자본의 우파적 이해관심이 협력적‧호혜적 관계를 이루면서 배태된 교섭의 산물이다.


이에 이어서 1951년에는 연대임금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렌-마이드너 모델(Rehn-Meidner Model)’이 노동조합연맹에 의해 제안되고 이를 정부가 채택하였다. 이 모델의 독창적인 측면은 연대임금, 즉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축소되고 임금인상이 억제되어 우량기업은 확대된 이윤을 투자비용으로 활용하게 되고 한계기업은 자연도태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실시하여 노동자들의 고용가능성을 높이고 노동이동을 촉진하였다. 산업과 노동 양측이 모두 더욱 경쟁력 있는 형태로 개편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는 성장하고 고용률은 높아져 실질적 완전고용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긴축적 재정정책이 가능하여 인플레이션이 방지됨으로서 가계지출도 보호되었다.


잘트*바덴 협약과 렌-마이드너 모델은 노-사, 노-농, 노-노 간의 합의를 통해 경제와 복지가 상생하는 구조를 갖추고 스웨덴 복지국가가 지속가능성을 가지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사회적 협의와 합의의 전통은 스웨덴을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본을 가진 나라가 되게 하였다.   


1990년대 이후 비교연구들은 보편주의적 원칙에 바탕을 둔 복지체제에서 그렇지 않은 복지체제에 비해 더 큰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르피와 팔메(Korpi and Palme)는 사회시민권지표프로그램(SCIP)과 룩셈부르크 소득보장연구(LIS) 자료를 분석한 결과, OECD 국가들 중 보편주의를 채택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선별주의를 채택한 미국, 호주 등에 비해 불평등 정도가 낮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현상을 ‘재분배의 역설(paradox of redistribution)’이라 표현하면서, 일견 재분배효과가 강할 것 같은 선별주의가 보편주의보다 오히려 불평등 개선효과가 낮음을 지적하고 있다. 보편주의적 정책이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어서 재분배 재정의  규모도 커지는 점, 그리고 낮은 수준의 복지 급여가 중산층의 민간보험 가입을 촉진하여 오히려 불형등이 악화시키는 점 등을 그 배경으로 강조하였다.


결국 보편주의는 기계적인 소득이전보다 정치적 지지와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재정정책과의 선택적 친화성을 통해서 실현 가능하다. 내각 관료들로부터 지나치게 혁명적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베버리지보고서는, 보고서를 사기 위해 1마일 넘게 줄을 섰던 국민들의 폭발적 지지 속에서 입법화될 수 있었다.


국민보건서비스는 ‘대처주의(Thatcherism)’가 함락시키지 못했을 정도로 영국 국민들의 높은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또한 1945년 이후 스웨덴의 보편주의적 복지체제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강한 복지동맹을 가능하게 하였고, 조세에 대한 중간계급의 불만도 높은 수준의 급여와 서비스로 상쇄해갈 수 있었다.


4. 소극적 복지에서 적극적 복지로


서유럽 복지국가는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OECD 회원국 전체를 볼 때, 1960-1975년 사이에 사회복지 지출은 매년 8%씩 증가하였는데 1975-1981년에는 증가율이 4%로 감소하였다. 이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복지국가들의 경제상황 악화와 재정적자 증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1973년 석유파동과 이에 더해진 자본의 세계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저출산 및 고령화, 실업 및 비정규직 증가 등의 요인 때문이었다.


테일러-구비(Taylor-Gooby)는 이를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 즉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 사회변동의 결과로서 사람들의 생애기간에 직면하는 위험들’로 규정하였다. 여기에는 저숙련 여성의 일․가족 양립의 어려움, 노인인구 증가로 인한 노인 돌봄에 대한 경제적 부담 증가,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심화되는 실업과 장기빈곤의 위험,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라는 네 가지 측면이 포함된다.


이러한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으로서, 1979년 이후 영국 보수당은 베버리지의 보편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고전적 자유주의 원칙으로 회귀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이른바 ‘대처주의’로 표현되는 이 신자유주의의 기조는 첫째 자조와 개인책임의 원칙, 둘째 보편주의 원칙에서 후퇴한 선별주의, 셋째 전국민 최저생활유지 원칙에서 후퇴한 열등대우의 원칙 등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자조, 선별주의, 열등대우 원칙 등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신구빈법(New Poor Law, 1834)의 정책기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스웨덴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복지체제의 기반이었던 렌-마이드너 모델의 위기로 나타났다. 우선 연대임금정책은 1982년 금속노조의 이탈에서 드러나듯이 고임금분야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와 고물가, 실업률 증대의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실패’라는 보수진영의 비판을 감당해야 했다. 1990년대 이후 사민당정권과 보수당정권이 연달아 교체되는 변화를 겪으면서 스웨덴 복지국가의 위기대응은 여전히 진행 중이나 그 기조는 크게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기든스(A. Giddens)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 앞에서 “전통적 복지국가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선언하면서 그 대안으로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를 제안하였다. 그는 1942년 베버리지체제를 완전히 소극적인 대응이라 규정하였고, 당시 보고서가 지적했던 5개의 ‘부정적인 것’들을 사전예방적인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핍은 개인적 자율성, 즉 기회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바뀌어야 하며, 질병의 회피나 치료 대신 삶의 목표로서 적극적인 건강모형을 개발해야 한다. 무지 대신에 적극적 덕목으로서 교육을 강조하야 하며, 비참 대신 번영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은 일하고자 하는 능력과 의지로 대체되어야 한다’ 등이 그 내용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새롭게 제안된 복지전략이 ‘사회투자전략(social investment strategy)’이다. Giddens, A. The third way: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 Cambridge: Polity Press 1998(한상진과 박찬욱 옮김, 『제3의 길』, 생각의 나무, 1998.
 이 전략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합시키기 위한 것으로, 전통적인 소득재분배를 통한 평등보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기회의 재분배에 대한 투자, 특히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였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근로연계복지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포괄하는 활성화 정책, 아동 및 여성과 관련한 사회복지서비스 정책, 자산형성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든스의 사회투자전략에 대한 비판은 특히 전통적 복지국가의 소득보장정책에 대한 유보적 태도에 집중되었다. 에스핑 앤더슨은 기든스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지나치게 선택적으로 도용했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로서 첫째 활성화 정책이 전통적 소득보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단순한 낙천성, 둘째 활성화 정책이 성인교육이나 직업투입과 같은 치료적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실 기든스의 사회투자전략은 형태적으로 1950년대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과 매우 유사하다. 이 둘의 차이는 스웨덴 모델이 소득보장을 포함한 모든 사회정책을 투자적인 것으로 보는 데 비해 사회투자전략은 특정의 정책들만 그렇다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복지국가가 강력하게 보편주의적이고 급여 수준이 매우 높으며 포괄적인 한편, 경제와 복지의 상호관련성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기든스의 사회투자전략은 후자를 수용하되, 전자를 경시하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베버리지보고서가 국민최저수준 보장을 목표로 ‘빈곤의 완화’를 추구했다면 스웨덴은 전반적 ‘형평성의 확대’를 추구했었다. 기든스의 ‘선택적’ 사회투자 전략이 스웨덴의 ‘보편적’ 사회투자 전략과 대비되는 것도 경로 의존성을 가지는 것일까?


5. 결론


이 글에서는 시혜와 권리, 잔여주의와 보편주의, 소극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라는 세 가지 대응개념으로서 서구 복지체제 발전역사를 재구성하였다. 1601년 엘리자베스구빈법으로부터 이어져 온 시혜적 관점은 산업혁명 이후 빈곤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계급연대에 힘입어 정당한 사회적 권리로 전환될 수 있었다.


또한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반하여 자산조사를 통해 선택적으로 수행되어 오던 잔여주의적 복지정책들도 20세기 이후 영국의 베버리지체제와 스웨덴 복지체제의 보편주의적 원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이른바 복지국가의 위기가 나타났지만, 사회투자전략이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과 같은 적극적 복지모형으로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11년 현재 한국에서도 보편주의와 잔여주의로 상징되는 복지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 저출산 및 고령화, 실업 및 비정규직 증가 등 우리 눈앞에 닥친 상황은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들과 유사한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서구 복지국가 발전의 역사는 시혜에서 권리로, 잔여주의에서 보편주의로, 소극적 복지에서 적극적 복지로 전환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복지국가로의 길을 떠나온 우리가 그 길을 반복해야 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교육, 보건, 5대 사회보험 등에서 보편주의적 제도를 기초해 놓고 있다. 폭넓은 연대에 기반하여 사회적 권리로서 보편적이고 적극적 복지원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다만 구체화의 과정에서 나타날 논쟁들은 수없이 많다. 이미 ‘무상의료’를 두고 구체안과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 진보진영 내부에서 다양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런 논쟁은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연대의 정신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복지국가의 역사 중 많은 부분이 보수주의자들의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와 목표는 진보주의자들의 것과는 언제나 달랐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도 진실이다. 극단적 보수주의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지국가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나마 중도우파적 보수주의는 복지를 추구하지만 그들의 사고는 언제나 제한적이다. 이 역시 지금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김 용 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원장


특별기획-복지 권리인가 시혜인가.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