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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벨탑, 부산저축은행!

초량(草粱)을 아십니까?


 조용하다. 평소와는 다르다. ‘부산(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끄럽게 떠들어 어수선함)스럽다’고 농담 삼았던 활기 넘치는 부산이 아니다. 비온 뒤 때문일까?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초량동으로 이동했다. 


'새뛰(새뛰는 억새, 갈대를 뜻한다) 또는 새터'라는 순 우리말 뜻을 가진 초량(草粱). 그곳은 바닷가였고 항구였다. 일찍이 외래의 영향을 받은 부산의 입구와 같은 거리. 부산항이 워낙에는 초량향이었던 이곳을 통해 물자와 사람이 넘나들었다. 19세기 후반, 왜관과 비유되는 청관(淸館)거리가 자리 잡았고 6.25이후에는 텍사스 거리가 들어섰다. ‘미군이 권총을 차고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활극을 무시로 일으켜 생겨났다’는 텍사스 거리. 그곳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이 자리하고 있다. 초량역에서 내려 9번 출구 계단을 올라가다보니 부산저축은행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부산 초량역 9번 출구앞의 부산저축은행 광고판


 


“가족파괴범이라~!”


날카롭게 파고드는 쇳소리에 화들짝 놀란 적막(寂寞)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50대 중년의 아저씨가 부산저축은행 광고판을 보면서 내지른 소리였다.


“없는 사람 돈 빼 묵고, 있는 놈들이 판치는 더러운 세상 아닌교~!”


성큼성큼 발걸음을 떼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연신 우산 든 팔을 휘둘렀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가까운 부산저축은행은 굳게 잠겨 있었다. 10여 분 동안 대여섯 명의 시민들이 그곳을 서성거렸다. 불안감이 스며든 얼굴들. 무표정한 노년의 아저씨 또한 영업정지 공고문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이 잠겼다. 어디로 가야할까?’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내어 은행직원들이 드나들었던 뒷문으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김옥주 부산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언론 인터뷰에도 그녀는 에너지가 넘쳤다.


“정부가 정책 실패, 관리, 감독 실패해 놓고 왜 피해자인 우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가?”


“책임진다는 말만 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민주당도 반성해야 한다. 사전인출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금감원, 금융위가 책임져야 한다”


“정부가 우리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5.0% 이자율은 정부가 만든 것 아닌가? 부동산 투기한 것도 아닌데 평생 모은 재산을 빼앗긴 피해자들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이든 피해자들을 봐라. 피맺힌 울음이 들리지 않는가? 이분들은 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살아온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격정적이다. 그리고 정연하다. ‘국가기관의 묵인, 방조에 의한 범죄행위이기에 피해자 보호는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는 김옥주 위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에서 피해자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초조하게 은행안을 살피고 있다.


 


꿈을 빼앗겨버린 우리들의 이웃
금감원과 부산저축은행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한 집단 법죄현장.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부산저축은행 3층으로 향했다. ‘민주당에서 왔다’는 소리에 피해자들이 모여들었다. ‘80세가 넘으신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속여 (후순위)채권을 가입하게 했다’고 억울해하는 할머니부터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홀몸의 노후 재산을 빼앗겼다’는 초로의 아주머니까지. 9일 낮부터 저축은행 매각중단을 위해 점거농성에 들어간 피해자들의 절규가 가슴팍에 부딪혀 날아다녔다.


침이 튄다. 절박함을 호소하는 애원에 가까운 염원을 육두문자가 날카롭게 베고 들어왔다.


“도둑놈들!”


**끼들!”


이 정도는 양반이다.  대통령도 없고 금융위 수장도 없다. 단지 도둑놈이 있을 뿐이고 서민의 피눈물을 빨아먹는 더러운 흡혈귀가 있을 뿐이다.


“다 도둑놈이라. 김석동이하고 이명박이가 책임져라”


“서민보호하고 경제 살린다꼬 대통령한다더니 가난한 우리돈 빼 묵을라고 대통령했습니꺼?”


“소. 돼지도 보상해주면서 우리는 왜 나몰라라 합니까? 일본도 도와주면서 우리는 와 이랍니까?”


“금감원은 뭐하는 뎁니꺼? 부도난 은행이 후순위 채권 발행하는 것이 사기 아닙니꺼? 사기 친 놈들 돈 받아 묵꼬 뒤봐주는 디가 금감원이라카이”


“있는 놈들이 다 해묵고 힘없고 불쌍한 서민들만 쥑이뿌는 이런 것도 정부랍니꺼?”


“내 돈 못찾으마 폭동 일어난다케라. 두고 보소”


한 푼, 두 푼 모아 살림에 보태려던 소박한 마음이, 서민의 피와 땀이 빠져나간 부산저축은행. 그들의 인생을 빼앗고 노후를 부셔버린 탐욕의 공간을 피맺힌 목소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후순위채권이 뭔지도 모르고 이자 조금 더 준다하기에 돈을 맡겼다’는 그들은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단 한 푼도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입 당시 '채권은 영업정지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보장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자가 세다’는 말에 채권을 사버린 것이다.


현재 부산저축은행은 고객 2,947명에게 1,132억 원의 후순위채권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부산저축은행의 행태는 고금리 상품을 미끼로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불완전판매’로 금융거래법상 불법행위이다. “후순위채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가입한 예금자는 거의 없다”며 “일부 피해자는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이 예금자 동의 없이 보통예금을 후순위채권으로 바꾼 사례도 있다”고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전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비리내용이 보도된 신문을 살펴보고 있다.


 


‘악마의 바벨탑’과 ‘금융강도원’
금융회사를 관리 감독해야할 금융위와 금감원은 ‘부산저축은행의 비리를 묵인 또는 방조한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7조 6천억원에 달하는 부산저축은행의 비리. 부동산PF으로 부실을 키우고 3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하고 임직원의 친인척, 지인에게 불법대출한 돈이 (170여명에게) 7,500억원에 달한다. 불법과 탈법으로 구성된 악마의 바벨탑을 쌓은 것이다. 도덕적 해이의 극은 영업정지 전이다. 임직원들이 혈안이 되어서 자신들의 예금을 인출해갔고 금융당국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월25일에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방침이 정해지고 실제로 영업이 정지되기까지의 3주 동안 5,000만원 이상을 찾아간 사람이 4,338명으로 밝혀졌다.


검찰조사로 밝혀진 금융당국의 부정과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당국에 근무할 때는 뇌물을 받고 퇴직 이후에는 월급을 받았다’는 비대위 관계자의 표현처럼 금융당국은 부산저축은행과 한통속이었다. 금융당국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과 참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뱅크론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었다’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관리감독을 잘못한 범죄의 묵인. 방조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 기만하고 우롱하는 심각한 일탈행위이다. 국가 기관들끼리 힘겨루기와 네 탓 공방을 하는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관리감독 부실의 당사자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통합감독이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김중수 한국은행장은 ‘위기시의 상황대처가 빠르다’는 이유로 금융회사 감독권을 놓고 싸우고 있다.


50대 초반의 아주머니는 ‘억울함을 호소하러 서울 여의도에 갔을 때 사법당국이 법(집시법)을 지키라고 했다’며 ‘집회에 참가한 피해자들에게 강요하는 집시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을 잘 지켰으면 이런 일이 있어났겠는가? 탈법과 불법의 결과물에 항의하는 피해자에게 법을 강요하는 국가가 정상인가?’라며 분노했다. "이 땅의 권력이여!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바라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도덕성만이라도 가져라. 국민들이 너희들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라는 어느 피해자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이 땅에 정의는 있는가?
5월 16일자 한국일보는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한 어느 60대 여인의 편지를 소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소처럼 일했습니다. 파출부, 세차장, 폐지수집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불평하거나 누구한테 미운 소리 한번 한 적 없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면 노후에는 편안해지겠지 하며 30여 년 소처럼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2월17일 새벽, 일하러 나가기 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방송을 보며 충격에 덜덜 떨렸습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내가 모은 돈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된다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라에 내가 저금한 돈을 빼앗아가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가슴이 뛰다가도 한숨에 눈물이 납니다. 나는 그 돈 포기 못합니다. 내 평생의 세월이 담긴 그 돈은 나와 남편(장애인으로 일곱 살 지능이라고 한다)의 생명 같은 돈입니다. 내 돈 돌려주세요. 나는 그 돈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평생을 소처럼 일만하며 살았다'는 우리 이웃들. 그 이웃들의 피와 땀이 사라졌다. 블랙홀이다. 블랙홀이 삼켜버린 것은 우리 이웃들의 피해뿐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이 사라졌고, 저축은행 관계자들의 도덕성이 사라졌으며 그들을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위, 금감원의 존재이유가 사라졌다. 법을 집행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행위 당사자들이 범죄자인 나라.



부산저축은행 내부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풍수지리학에서 부산은 엎드려 있는 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와우형(如臥牛形)이라고 한다. 소(牛)는 초원(草原)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초량(草梁)이란 명칭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 순박, 우직함을 뜻하는 한국인의 원형질, 소(牛). 그 소가 필요로 하는 풀이 자라야 할 초량동에 탐욕과 불법과 부정과 부패가 자리 잡았다. 원칙과 질서가 무너지면 탐욕이 꿈틀댄다. 반칙과 탈법, 편법이 득세한다. 비리가 춤을 춘다. 원칙과 정의가 빠져나간 빈 공간을 서민의 눈물과 피와 땀이 채웠다.


란 책이 100만부가 넘게 팔린 사회의 도덕률이 이 정도인가? 정의란 머리로만 인식하고 가슴으로 외면하는 것이 이 땅의 윤리도덕인가? 피해자들이 국가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 ‘내 평생이 닮긴 저금을 빼앗아가는 나라’. '그 나라에 정의가 살아갈 수 있는가?'. 이제 국가가 답을 해야 한다.


 


 


사진.글  윤영선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