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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정권의 붕괴와 한국에의 시사점

간 나오토 정권의 붕괴와 한국에의 시사점



김영필(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1. 하루살이


하루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곤충 하루살이. 아마 대개의 하루살이들이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하루살이도 종류에 따라서는 성충이 되고도 3-4일 정도는 산다고 한다. 목숨이 질긴 녀석은 길게는 10일 정도까지 산다고 하니 이름을 다시 지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하루살이가 성충이 되어서 사는 그 며칠 동안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세상을 등진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유충으로 2-3년 인고의 시간을 보낸 하루살이는 성충이 되면 영양분을 더 이상 섭취할 수 없게 돼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다고 한다. 바로 종족보전이다. 하루살이는 종족보전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마지막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해 후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우리 인간에게는 크게 효용가치가 없는 곤충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한해살이


지난 6월 8일은 일본의 간 나오토 정권이 출범한 지 딱 한 해가 되는 날이었다. 다행이도 나는 도쿄 일본민주당 본부에서 간 나오토 정권 1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행여 간 나오토 정권 출범 1주년 기념식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행운을 기대했지만 민주당사는 조용했다. 2009년 11월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고 방문했던 민주당사는 기자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당직자들은 활기에 넘쳐 있었는데, 1년 반 만에 다시 방문한 민주당사는 들어갈 때부터 공안경찰의 신분증 요구에 불쾌감을 느꼈고 만난 당직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인 6월 1일 자유민주당에서 발의한 간 나오토 내각불신임 결의안이 중의원에 상정되었고, 내각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하겠다는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 그룹이 71명의 민주당 중의원 의원을 호텔에 모아놓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으며,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간 나오토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간 나오토 내각은 물론 민주당 정권의 붕괴가 임박한 듯 보였다.


간 나오토의 전임자인 하토야마 유키오가 266일, 그 전의 아소 타로가 358일, 후쿠다 야스오가 365일, 아베 신조는 366일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1,980일이라는 장기집권을 예외로 하면 모리 요시로 수상의 387일까지 더해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총리직은 임기 1년의 한해살이 총리였던 것이다.


6월 2일 실시된 간 나오토 내각 불신임 결의안 투표는 결과적으로 부결되었다. 투표 직전에 열린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간 나오토가 일정한 시점에 총리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하려던 의원들이 반대와 기권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일본 민주당으로서는 최대의 위기는 회피했지만 일본정치에서의 한해살이 총리라는 등식은 더욱 굳건해 지는 사건이었다.



3. 간 나오토 정권은 왜 붕괴했는가?


아직 간 나오토가 정식으로 내각 총사직을 표명하지 않았고, 차기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는 일본국의 총리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간 나오토 정권 붕괴라는 표현은 미래형 서술이다. 그러나 이미 일본에서는 간 나오토 정권은 기능부전에 빠졌으며, 차기 총리를 둘러싼 여당내의 줄다리기, 제1야당인 자민당과의 대연립정권 구성 등의 논의로 의회중심제 국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레임덕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간 나오토 정권의 출범은 일본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앞서 언급한 2000년대에 총리를 역임한 모리 요시로에서 하토야마 유키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었고, 게다가 모두가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간 나오토 만이 평범한 가정 출신에 사민련이라는 군소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시민운동가 출신의 총리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과거 사키가케라는 군소정당 출신으로 자민당, 사회당과의 연립정권에서 후생대신으로 재직 시에는 관료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혈액수혈로 인한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경로를 밝혀내어 일약 주목받는 정치인, 기대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급성장하였다. 간 나오토에 대한 내외의 기대가 클만했다.


간 나오토 정권의 출범은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권을 내팽개친 상황에서 출범하였기에 기대도 컸지만 우려도 컸다. 간 나오토는 후텐마기지 이전문제로 총리가 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간 나오토에게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묘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간 나오토는 이 문제에 더 이상 손을 담그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국내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는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를 타겟으로 한 금권정치의 타파였으며, 또 하나는 자유민주당 보수정권에 의한 지속적인 감세정책으로 파탄난 국가재정의 재건이었다. 두 가지 이슈 모두가 간 나오토에게는 자신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줄 전가의 보도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이슈는 모두 간 나오토의 목을 옥죄어 오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10년 참의원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총리에 취임한 간 나오토는 느닷없이 소비세를 5%에서 10%로 올리는 증세안을 들고 나온다. 물론 민주당내에서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 아니었으며, 자민당 정권하에서 부자감세로 나라 곳간을 텅텅 비게 만든 관료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증세안에 간 나오토 총리가 부화뇌동한 결과였다. 참의원 선거결과는 민주당의 대참패였다. 간 나오토는 단지 취임 1개월이라는 구실로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간 나오토는 금권정치의 타파를 기치로 당내에서 오자와 이치로를 척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했으나 당내 최대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의 저항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였다. 그럴수록 당내 대립과 갈등의 골은 깊어져갔다.


오자와 이치로는 2009년 민주당 정권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매니페스토를 국가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무력화하려는 간 나오토에게 매니페스토는 국민과의 약속임으로 민주당 정권이 지켜야 한다며 역공으로 나왔다. 오자와 이치로의 금권정치를 타파하려는 간 나오토와 매니페스토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오자와 이치로의 대의명분은 민주당내에서 길항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엄습하였으며, 이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등으로 인해 모든 정치적 이슈가 묻혀버림으로써 오자와 이치로와 간 나오토의 민주당내 대립은 물론 민주당과 자민당의 여야당 간의 대립도 2-3개월 동안의 휴식기에 들어간 것이다. 만약 3월 11일의 동일본대지진이 없었다면 차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공방으로 일본의 회계연도 말인 3월말에 이미 이와 같은 정치적 공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일본대지진이 간 나오토 정권을 약 3개월 정도 연명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간 나오토 정권의 붕괴는 정권 자신이 선택한 몇 가지 실패에 의한 결과이다. 첫째는 소비세 증세였다. 신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자민당 장기집권 하에서 법인세 인하 등 무분별한 부자감세를 지속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일본의 국가재정건전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이즈미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국가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자국채 발행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재정건전성의 악화를 방지할 뿐이었지 국가재정건전성을 담보하는 조치는 아니었다. 그것도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자민당 총리들에 의해서 다시금 낭비예산을 편성하고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 국가재정도 다시 악화되는 악순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에 간 나오토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소비세 증세안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 못 짚었다. 법인세를 정상화시키는 등의 부자감세의 철회 없이 서민들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가는 소비세만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낭비예산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매니페스토를 재검토함으로써 지출을 줄이겠다는 발상은 정권교체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통치행위였다. 오자와 이치로는 간 나오토의 이러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척결하려는 간 나오토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둘째는 오자와 이치로를 척결하기 위한 무모한 출혈이 당내기반을 스스로 약화시킨 것이었다. 오자와 이치로는 민주당 정권을 탄생하게 한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오자와 이치로가 없었다면 민주당 정권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하에서 오자와 이치로의 역할은 이미 한정적이었다. 금권정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자와 이치로가 당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간 나오토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오자와 이치로는 자연 도태되던지, 검찰이 알아서 오자와 이치로를 척결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간 나오토는 오자와 이치로가 주도한 정권공약인 매니페스토에 손을 대려했다. 사람은 미워해도 정책을 미워해서는 안 되었는데, 간 나오토는 오자와 이치로를 회생시키는 결정적인 미스를 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목을 옥죄어 왔던 것이다. 오자와 이치로는 일관되게 매니페스토를 무력화시키려는 간 나오토를 공격했으며 그러한 공격 포인트는 대의명분에 충실한 것이었다. 결국 다 죽어가던 오자와 이치로가 살아 있는 권력 간 나오토를 이긴 것이다.



4. 한국에의 시사점


한국에서도 기대가 컸던 간 나오토 정권의 붕괴를 계기로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해보자.


우선 한해살이 정권에 대한 검토이다. 우리나라는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다. 대통령 본인이 사임하지 않는 한 5년 임기는 보장된다. 아마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의회중심제 국가였다면 이미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이명박 정권은 붕괴했을 것이다. 혹자가 이러한 의회중심제 국가의 다이나믹한 정권교체 현상을 보고 한국에도 의회중심제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하는데,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일본보다도 못한 반년 살이 정권이 지속적으로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이 5년 동안 지속되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의회중심제의 타당성을 검토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둘째는 국가재정건전성과 증세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의 국가재정건전성 문제는 우리나라보다도 심각하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버블경제, 신자유주의 정책, 부자감세, 적자국채의 발행으로 인해 국가재정은 파탄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이다. 2009년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이러한 문제를 전략적으로 해결해야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소비세 증세를 들고 나온 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국가재정파탄에 대한 책임 추궁과 정책의 우선순위, 장기적인 로드맵에 의한 정책의 실현 등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정부정책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나라 곳간을 들여다보니 걱정만 앞섰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정권교체를 했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십 년 간 장기집권 한 자민당 정권이 넘겨준 곳간에 빨리 무언가를 채우고 싶었던 욕심이 소비세 증세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우선은 곳간을 털어간 사람들로부터 회수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이명박 정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자감세로 우리나라 곳간도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다. 부자감세 철회하고 낭비예산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권의 아류정권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내년의 정권교체가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5년은 어떻게든 회복 가능하겠지만 10년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유능한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정상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지난 6월 8일 일본민주당 당직자와 나눈 대화중의 한 소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위해 일했다. 좋은 정책 만들고, 마음을 울리는 알기 쉬운 메시지로 유권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당내에서는 권력투쟁만 있었던 것 같다.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지금은 이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