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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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정. 벽을 깨다. 시대에 조응하다!

시대정신과 민주당의 진로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 6월 27일 오후 2시부터 2시간동안 17대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임채정 민주당 상임고문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는 박순성 연구원장이 임채정 상임고문에게 현 정국에 대한 진단, 민주당의 혁신과제, 야권연대 등의 정치현안은 물론 임채정 의장 본인의 인생역정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는 시종 진지하게 진행됐으며, 임채정 의장의 인생의 깊이가 제대로 전달된 인터뷰가 되었다. 인터뷰는 임채정 의장의 거주지인 종로구 소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단지 내 공원과 커피숍을 오가며 이루어졌다. 인터뷰 내용은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사람과정책』 2011년 여름호에 실릴 예정으로 본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를 먼저 공개한다.



박순성 : 지난 17대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직을 끝으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계신데요.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휴식도 중요하시지만 의장님께서 글도 좀 남겨주시면 현실 정치인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집필계획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임채정 : 주변에서 책 쓰라는 권유는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집필 계획은 없고, 가끔씩 내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정도만 생각을 하면서 지냅니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그동안 못 만났던 친지들과 지인을 만나기도 하고, 건강을 챙기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데, 아이러니하게 더 주관적으로 보이네요.
처음에 박 원장님이 민주정책연구원장으로 왔을 때 굉장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 근래 들어서 민주당이 한 것 중 제일 참신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조금 더 보태면, 벽을 깨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참여정치의 한 형태인데, 정치를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닌, 밖과 소통하면서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박순성 : 벽을 깨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재야에 계시다가 민주당에 들어오시고, 정권을 창출하시고, 정권 재창출도 하신 뒤, 국회의장도 하시고, 의장님 스스로 벽을 깨면서 살아오셨습니다.


임채정 : 내가 벽을 깼다기보다는 시대상황이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인생에는 크게 두 번의 전환이 있었다고 보는데요, 한 번은 동아일보에서 해직되면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싸워왔던 그 시절이었고, 또 한번은 치열한 투쟁 이후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었습니다. 실직하고 취직도 못해 가정이 벼랑에 몰리는 상황에서 20여년의 세월을 치열하게 투쟁 해온 것은 쉽게 말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가족 보기에도 참 미안한 일이었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의 투쟁방향이랄까 목표에 대한 고민도 그 못지않게 치열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와 위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어떤 파탄이 올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컸습니다. 젊은 학생들은 점점 더 많이 죽어가고, 노동자들도 목숨을 던지고,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싸움의  방법을 전환을 할 수 없는가 하는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이 재야 운동만으로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 끝에 입당을 하게 된 것이었죠.


박순성 :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재야운동을 하시다 제도정치에 들어오신 계기가 여러 대안을 고민하다가 정치사회가 사회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민주화로 가고, 사회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신건가요.


임채정 : 그런 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투쟁방법을 고민했고, 심지어 도시에서 강력한 힘의 동원이 가능할 수 있나하는 등의 생각도 했었지요. 그런 방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재야운동은 새로운 변화와 변혁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 진보개념이 포괄되어 있었지요. 크게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시민의 힘과 시민의 요구, 반독재 민주화 투쟁 이런 제도적인 정치의 힘이 합해져야만 군사독재를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순성 : 의장님 말씀을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봐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어린 아이들부터 가정주부까지 거리에 나서서 생존의 절박감, 4대강 등의 절박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거리에 나와 폭력시위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치사회가 안아줘야 하는데 민주당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민주당의 일원으로, 정치사회의 일원으로서 민주당의 무능력함 혹은 죄책감은 들지 않으십니까?


임채정 : 물론 많이 반성하고 과감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요. 하지만 지금은 제도 정치권 내에서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 편이지요. 그러나 그때는 우리사회가 벼랑 끝에 서있는 상황이었고, 정말 절박한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현재 농성 현장이라든가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대학생들의 절규, 그리고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문제는 어쩌면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처절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례 있을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강고히 하고 준비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반독재, 민주화라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 그렇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달렸지만, 지금은 그 기본적인 문제에서 나아가, 앞으로는 삶의 질을 포함한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박순성 : 흔히 하는 얘기이지만,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루어져있지 않다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와 함께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위기가 왔다고 얘기되고 있는데요.


임채정 : 맞습니다. 하지만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퇴행은 곧 극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이 시대착오적인 퇴행은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 속에서, 우리 삶의 문제를 그리고 역사를 어떻게 더 발전 시켜 나가고, 성취해 나아갈 것인가에 더 집중해야 됩니다.


박순성 : 민주당이 조금 더 진보적으로 나아가야한다. 그것이 곧 시민들의 현실적 고통을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혹자들은 민주당이 현장감도 떨어지고 조금 안이하게 사회 변화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데요, 따끔하게 한마디 하신다면?


임채정 : 민주당이 현실 변화에 대한 대응이나, 역사 변화의 방향에 민첩하지 못하고 날카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따갑습니다.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역사 인식도 무뎌지고, 일부 방만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치열성이 좀 부족하다고 할까?  그렇지만 민주당이 악조건을 뚫고 수권정당으로 성장하고, 집권정당이 되었던 것은 치열함 속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부터 시작되어 독재정권 이후까지 완전히 닫힌 사회에서 민주당이 벽을 깨고, 민중과 함께 손잡고, 민중의 요구를 나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함께 싸워왔기 때문에 국민에게 대안정당으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이 태도를 보면 이것이 과연 적정한 것인가, 그 당시만큼 치열하고 각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또 정치인으로서의 역할, 기능, 자세가 예전만큼 단호한가, 그리고 사명감이나 열의를 가지고 있는가에 의문도 듭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현 정국에 대한 안이한 생각은 민주당에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민주당은 더욱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여당에 대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공격적으로 공세를 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슈를 선점하여 과감하게 의제를 제안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요즘 사회안전망, 무상급식 등 보편적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만, 사회정책 뿐만 아니라 시장의 문제 예를 들어 재벌에 대해서 이제는 정치권이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재벌은 우리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과점이나 시장에서의 불공정문제가 특히 심각합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편법증여는 여전한데 사회적 책임은 나 몰라라 합니다. 정치권은 우리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재벌권력에게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야 합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권은 재벌권력에게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야


박순성 : 민주당이 ‘서민의 정당,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했을 때, 서민을 쫓아가는 모습이 아닌 민주당이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시대의 흐름과 조응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임채정 : 맞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현직을 떠난 뒤에도, 당에 이런 저런 일을 하자고 요구했습니다. 당이 추진해야 할 정책방향 등을 리스트 업해서 국민에게 제시할 필요성도 제기했고, ‘민주정부 10년위원회’도 맡았습니다. 당 지도부에게도 진로를 분명히 하라, 당의 깃발을 선명히 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그동안에는 민주대 반민주의 전선이 강고했지만, 이제는 국민의 삶의 가치, 삶의 질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다음 목표고 우리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나가야합니다. 이념적 진보가 아닌 생활에 있어서의 진보, 삶의 질을 높여가는 그런 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복지국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 진보적 가치로 순수복지적 측면만이 아닌 노동의 문제, 고용의 문제, 교육의 문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복지에 대한, 진보적 가치에 대한 민주당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적 외형과 구성원들의 인식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박순성 : 최근 복지논쟁에서 민주당이 우왕좌왕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민주당 내부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임채정 : 복지논쟁에서는 반드시 제도의 문제, 재정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에 대한 민주당의 고민과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복지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구조 문제랄까, 남북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합니다. 특히 분단으로 인해 재정이 과다하게 투입되는 상황에서, 복지가 어느 정도 제한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인식을 공유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덧붙이면, 그 동안 우리는 해양경제에 집중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대륙으로부터는 경제적으로도 고립된 섬의 위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냉전이 무너지며, 대륙개발로의 진출통로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활로를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를 협애하게 안보나 정치군사적 문제쯤으로 축소키기는 형국이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북문제는 새로운 경제 비전하고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점을 민주당이 얘기하고, 담론으로 새롭게 치고 나가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평화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입니다. 남북경제문제를 좀 더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남갈등의 한 가지 해결책이 되겠죠.


또 민주당이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에서 민생 대 반민생, 서민 대 재벌에서 자기 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민주당의 깃발을 세우자는 거죠. 깃발을 세운다는 것은 전선이 생기고 민주당 편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에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순성 :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 중에 저희들이 준비한 질문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복지 문제를 민주당이 잘 받아서 대응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지도는 올라가고 있지만 그것이 굳건하지 못하다 이런 주장이 있는데, 약 15%는 민주당이 잘못해도 지지하지는 층이지만, 아직 30% 조금 넘는 사람들은 신뢰가 굳건하지 못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요.


임채정 : 국민의 지지가 약합니다. 민주당의 치열함, 헌신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당의 인물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적인 자기 기준 같은 것이 존재하기도 하고, 민주당이 가진 한계도 있습니다. 내부적 한계가 있는데, 전에는 민주당이 투쟁정당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탈색된 모양입니다. 치열한 투쟁정당도 아니고, 완전한 정책정당도 아니죠. 그렇다고 쉽게 타협을 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고, 아직도 레드컴플렉스, 지역감정 문제 등의 큰 장벽이 있고, 진보 정당들은 쭉 올라와서 비판적인 지지층을 흡수하고 있는 형국이니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과 힘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민주당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언덕은 민주당뿐이다. 아직 진보 정당들의 힘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 하고요.


박순성 : 정권을 맡길만한 수권정당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냉정해지고 냉소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못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임채정 : 한 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민주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우리가 누구의 정당이다 누구의 편에 선다는 것을 뚜렷하게 해야 합니다. 당의 철학과 정체성을 견지하고, 그 가치를 위해서 싸우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당의 정책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박순성 : 민주당이 진정한 수권정당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려면, 당이 혁신되어야 하고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도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임채정 : 당의 혁신부터 말씀드리자면, 정체성과 가치를 분명히 한 뒤에 당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어떻게 바꾼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흐름과 새로운 목소리 등 저변에 깔려있는 의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필요한 곳에서는 사람을 좀 바꾸고, 좋은 사람을 많이 영입해야 합니다. 다음 총선에는 진정으로 개혁공천이 이루어져야 민주당이 살고 대한민국이 살 수 있습니다.


박순성 :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하셨는데, 의장님께서 민주당에 들어오실 때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그리고 새로운 분을 끌어들일 때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임채정 : 내 경우를 두고 보면 조금 다릅니다. 내가 정당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민주화를 위해서, 민주화 투쟁의 연장이었습니다. 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민당을 선택하고, 김대중 총재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평민당이 유일한 대안이었고, 민정당은 반평화·반민주·반민중의 당 아니었습니까, 그래도 평민당은 진보성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었습니다. 통일문제라던가 경제문제에서 있어서도,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김대중 총재의 철학이 앞서 갔었고 또한 당의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내세워 민주화를 이룰 것인가 고민했을 때에도, 그 사람이 김대중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지도자를 볼 때, 그 사람의 말 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에서 진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군사독재와 싸운 진정한 민주, 민족 정치인의 운명은 뻔했습니다. 암살당하거나 사형당하거나 국외 추방당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이외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길을 걸은 유일한 사람이 김대중이었습니다. 진보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김대중을 중심으로 정권을 바꾸고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생각해서 평민당에 입당한 것입니다. 그 때 나와 함께 했던 평민련 97명의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봅니다. 그 중에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이 치열했고, 그 역사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던 사람들 모두 같은 입장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치열함이 과연 지금까지 남아 있는가에 대한 생각에 서운하기도 합니다.


박순성 : 의장님의 말씀 중에 벽이라든가 치열함 이라든가 이런 말씀이 가장 와 닿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사람들,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자로 살아왔다는 것, 앞으로 민주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임채정 : 함께 사는 세상, 함께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정치의 영역이 치열해야 합니다. 아직 한국의 정치는 지사적인 면모가 필요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순성 :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장까지 지내신 것은 큰 영예라고 생각할 텐데요. 그 영예가 삶을 어느 정도 행복하게 해주었나요, 어떤 보람이 있으셨는지요?


임채정 : 내가 어찌하다 보니 의장을 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요. 시대상황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서 그 자리까지 간 것은 상징성이 있지요. 개인적으로 삶이 달라진 것은 없는데 위상이 높아져 불편하기도 합니다.


박순성 : 민주당원으로서의 자부심, 민주당을 이끄신 분으로서의 자부심은 무엇인가요?


민주당은 한국의 지난 100여년 역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꿔본 유일한 정당


임채정 : 민주당은 적어도 한국의 지난 100여년사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꿔본 유일한 정당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굉장히 크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서 100여년, 동학농민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쳐도 의병, 항일 독립운동, 민족 자주운동, 민주화 운동 등의 긴 과정 중에서 이른바 폭력적인 주류, 또는 자기 이익에만 매몰된 그런 세력에 대해 민중적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항을 했지만, 그것은 의미만 남아있지 현실에 있어서 이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적 경험은 후대의 국민 의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당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한 이 나라 세력의 판도를 바꿔본 유일한 정당입니다. 승리한 민주주의자의 당이고, 변화의 기초를 만들어 주었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성공한 경험이 있고 그 주체가 민주당인 것은 중요한 역사의 유산입니다. 나는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보석 같은 시대라고 자부합니다. 이 10년 동안은 보석 광맥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의미입니까? 그런데 그 큰 역할을 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정당인가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민주당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 사명감도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박순성 : ‘민주당은 승리한 민주주의자들의 정당’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의장님이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되면서 재야의 길로 들어가는 그 당시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임채정 : 그때는 어떤 이론을 가지고 거기에 맞춰서 싸웠다기 보다는 싸움밖에 길이 없었습니다.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전망을 떠나, 바꾸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당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 민주주의 회복을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싸움의 성과에 대한 막연한 낙관도 일정정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이것은 언론의 문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론투쟁에서 조금 더 나아가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통련을 만들어 싸워나갔습니다. ‘이기면 싸우고, 지면 안 싸울 것이냐’ 이건 그 당시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고, 역사조차도 의식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의식하게 되면 승자와 패자를 생각하게 되고, 이것은 불안으로 밀려 올 수 있기 때문에, 싸우다 죽게 되면 죽는 것이고, 살면 사는 것이란 생각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박순성 : 당이 보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임채정 : 우리 당에는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그런 담론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당의 운영도 물론 예전과 같은 조직으로는 안 되고, 국민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연결하여 끌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브나로드 운동’을 해야 합니다. 대중과 밀접하게 연결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대중적 아젠다를 개발하고 반걸음 앞서 대중의 문제를 파악하고 집중해야죠.


박순성 : 우리사회의 언론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시지요.


임채정 : 말할 것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몸부림치는 언론도 있지만, 일부를 빼면 언론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고유 의미로서의 언론이 맞는가, 사업으로서의 언론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헛웃음 나고, 허망한 생각도 듭니다.


 


박순성 : 최근 야권연대 논의가 한창인데요. 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야권연대를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말씀해주시지요.


임채정 : 민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대나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평민연이 평화민주당과 통합할 당시, 형식상으로는 5:5 통합을 했습니다. 평민연 그 자체만으로는 5:5 통합이 힘들었지만은 김대중 총재는 평민연을 재야 전체세력으로 대우해줬던 것이고, 재야전체에 대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대단한 정치적 능력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민련과의 연합해서 정권을 만들어 냈는데  연합으로 소수파 이면서 정권을 잡았던 것은 대단한 성과였지요.
대통령선거에서는 가치연합을 할 여지가 있지만,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가치연합을 하기엔 복잡하고 애매합니다. 통합이든 연대이든 그것이 유리한 선거구를 나눠가지는 축소지향이 아닌 어려운 지역을 개척하는 확대지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통합이든 연대이든 그것이 유리한 선거구를 나눠가지는 축소지향이 아닌 어려운 지역을 개척하는 확대지향이어야


박순성 : 지금 당에서 야권연대연합특별위원회가 야권통합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임채정 : 나는 처음에 연대는 어렵고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즘에 보니 통합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선 통합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있는 것인지 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연대해서 일정부분 갈 수 밖에 없는데, 상황이 또 만만치 않거든요. 지난 재보궐선거에서의 연합성공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되는 곳만 대상으로 한 연대 즉 단일화는 안 되는 말입니다. 대구나 경남 등 수도권이나 호남 등의 당선가능한 곳만 양보하라고 하면 키워가는 연합이 아니라 축소시키는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연합했을 때 안 될 곳이 될 곳으로 바뀔 수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나 노력도 없이, 어려운 곳은 다 버리고, 되는 곳만 뽑아가는 식은 안 되는 것이지요.


박순성 : 야권연대가 시너지 효과를 내야하는데 사람만 바뀌는 연대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임채정 : 그렇지요. 일부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야권 전체의 힘이 더욱 커져서 개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대안 세력인 민주당이 커져야 다른 야당도 같이 커질 수 있는 것이지, 민주당을 약화 시키면서 다른 야당이 커지긴 쉽지 않습니다.


박순성 : 민주당에게 집권을 위한 조언을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임채정 :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많이 팔렸다고 해서 많이 놀란 일이 있습니다. 책 내용 자체를 떠나서 저 밑바닥에서부터 사회의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임을 민주당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정치는 반걸음 앞에 나가서 끌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뒤에서 쫓아 가다가 당하고 늦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변화를 직시해야 합니다. ‘붉은 악마들’의 새로운 행태. 인터넷 세대가 노무현대통령 선거 때 보인 참여양식 등은 사회저변에서 변화를 준비하는 마그마라 할 것입니다. 우리사회 밑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는 선거 때가 되면 표심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지금은 복지, 삶의 질, 이런 것이 큰 변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철학을 위해서라도,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깃발을 분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박순성 원장님 취임도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당의 변화인 것이죠. 틀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을 모으고, 신뢰를 얻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그것을 잘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도력의 문제도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조차 어려워했던 문제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이지요. 당장은 지도부가 대통령 출마하겠다는 얘기 하지 말고 당을 바꾸는데 힘을 쏟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정치를 가치실현이라는 측면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순성 : 민주당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민주당이 성이고 성곽인데 성이 튼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임채정 : 개혁적인 당대표를 선출하고 모두합의를 하여 강력한 당권을 인정해 주면서 당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당을 크게 개혁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믿어줄 것입니다.
인재를 모으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당의 구심이 되는 국회의원 선거 때인데, 공천할 때 과감하게 개혁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면 국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해 줄 것입니다. 국민들이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고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물이 힘차게 흐르지 않고, 물이 고여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누가 누구와 함께 바꾸어 가자고 하는가? 민주당에 세상을 바꿀 사람과 세력이 있느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유권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박순성 : 당의 혁신과 개혁을 할 수 있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십시오.



임채정 : 몇몇 젊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어요. 정치는 눈앞의 일만 보는 것이 아니지요. 길게 봤을 때 인물론에 있어서는 우리당의 앞날을 좋게 보고 있어요. 우리의 원칙과 현실 그리고 방법을 부지런히 탐구하기 바랍니다.


박순성 : 의회원로로서 정치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임채정 :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치가 미약합니다. 그러려면 정치 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개헌입니다. 현행 헌법은 87년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4년 중임제이든 내각제이든 이원집정부제든 권력구조의 변화를 동반한 개헌이 필요합니다. 현재와 같은 막강한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는 여야가 정치의 주제가 되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의회정치가 어렵습니다. 대통령 입이 모든 결정을 좌우하는 형국이지요.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헌법이 민주주의의 가치, 행복권, 환경권 등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규정도 확립해야 합니다. 당략만 떠난다면 국민들을 위한 개헌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정치권이 지혜를 짜내야 할 일이지요. 정략적 개헌이 아닌 진정한 개헌이어야 합니다.


박순성 : 끝으로 민주정책연구원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임채정 : 민주정책연구원의 필요성은 진작부터 얘기했는데요, 당의 두뇌가 되어야죠. 당의 큰 정책 연구와 개발 당원훈련 등을 담당해야 합니다.


박순성 : 바쁘신 가운데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이 2012년 양대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당의 원로로서 많은 조언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