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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복무하는 군인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면....

국가공직자로서 헌법에 명시된 무상의무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학교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즉각 사퇴해야 한다.


학교 무상급식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초ㆍ중등교육은 국가의 무상의무교육이기 때문에 학교급식도 처음부터 국가의 의무로서 무상으로 제공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학교무상급식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학교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헌법에 따른 국가의 의무교육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하는 서울시장과 현 정부의 관료들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모두 국민에게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


국가가 초ㆍ중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무상 제공하는 목적은 단지 가난한 국민의 자녀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가 의무교육을 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국가사회 발전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빈부의 차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중등교육까지 무상으로 교육 받을 권리를 부여하고, 자녀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는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의 의무교육에는 국민 기본권으로서의 교육의 권리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무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당연히 의무교육은 무상이어야 하고, 이 무상의 범위에는 교육비만이 아니라 의무교육 이수에 필수적인 교재와 학교급식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무교육에서 학교급식을 무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들에게 무상급식을 해서는 안 되고, 부자 가정의 자녀들은 밥값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들에게는 무상으로 밥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간식도 주고 의복과 신발도 준다. 이것만이 아니라 봉급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밥을 안 준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억지이다.


한편, 국가는 빈부의 차별 없이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지하철 이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노인복지가 아니다. 빈부와 공사(公私)를 넘어 국가사회를 위해 살아온 어르신들에 대한 국가의 보답이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해서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고, 어르신들의 건강 증진은 국가 의료재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통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건강한 가정생활과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노인복지 정책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양로원 중심이 아니라 '사회적 일로의 복귀(return to work)', '사회생활로의 복귀(return to social life)'로 전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정책은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국가사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상의무교육에 따른 학교무상급식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을 정치적, 정략적 목적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 학교급식은 단순히 학생들이 도시락을 가져오는 불편을 덜어주고, 학교에서 편리하게 점심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학생복지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에서 학교급식은 교과학습과 똑같이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본래 학교급식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국민건강의 목적이다. 국가는 국민 건강을 위해 빈부의 차이를 넘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의무교육기간 동안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 건강과 체력을 향상시켜, 국민이 행복하게 살고 체력을 통한 국가경쟁력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의무급식은 보건의료정책 차원에서 국민건강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의 목적도 있다.


둘째는 인성과 사회성 함양이다. 학교급식은 단순히 학교에서 밥만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하듯이, 친구와 선후배와 같이 한솥밥을 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성과 사회성이 함양되도록 하는 것이고, 식사 예절을 통해 사회생활 예절을 습득하는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셋째, 학교급식은 사회통합의 교육목적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학교급식을 통해 빈부 차이를 넘어 서로 포용, 배려, 협동, 단결하는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통합, 국민통합에 필수적이다. 교육에는 '명시적인 교과과정'(manifested curriculum)과 '숨겨진 교과과정'(latent curriculum)이 있는데, 명시적인 것보다 숨겨진 교과과정이 인성과 의식형성에 더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학교급식은 가장 대표적인 숨겨진 교과과정이다. 학교가 학원과 다른 것은 인성과 사회성 함양 그리고 사회통합교육을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무상의무교육을 하면서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것은 반쪽짜리 의무교육을 하는 것이며, 국가가 공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무상급식 논쟁에서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갖가지 불법과 불의를 자행하면서까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왜 자기 자녀들의 학교급식을 무상으로 하자는데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재정을 염려하는 도덕의식의 발로일까?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기 자녀들을 빈곤가정 자녀들과 같이 밥을 먹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세력들, 보수세력들의 정치적 지지와 표를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두 가지가 학교무상급식 반대의 진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부도덕한 보수포퓰리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학교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은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국민의 권리를 빼앗고, 공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공직을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런 부도덕하고 불합리한 정략적 논쟁을 하지 말고 조건 없이 학교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해야 한다.


 


김성재 연세대 석좌교수 김대중도서관장


* 본 글은 프레시안에 공개된 글로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서 민주정책연구원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