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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의 의미와 효과, 그리고 보편적 복지국가

무상급식의 의미와 효과, 그리고 보편적 복지국가 -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1. 무상급식이 몰고 온 우리 사회의 미래 논쟁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한 존재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여된 권리이다. 이 권리는 성별과 나이, 지역과 빈부, 종교와 인종, 그리고 신체조건과 장애 등의 모든 개별적 조건에 앞서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이다. 누구도 이런 권리를 누리는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최대한 모든 이들에게 예외없이 적용한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정부와 국가의 책임이며 존재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선진 복지국가들은 교육과 보육, 의료, 노후, 일자리, 주거 등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본적 요소들 대부분을 ‘권리’의 범주로 인식하고, 국가는 국민들의 그러한 권리를 옹호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그 ‘권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경제발전 정도와 사회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국가와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향으로서 ‘보편적 복지’를 상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동안 우리사회는 그 많은 복지 영역 중에서 교육과 의료 등 일부 영역에 제한적으로만 ‘보편적 복지’를 적용해 왔다. 그 결과는 소득수준이 늘어나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사회적 통합력은 더욱 약화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6.2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무상급식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은 역으로 그 동안 우리사회가 얼마나 ‘복지 불감증’에 걸려 있었는가를 확인하게 했다. 우리 미래인 어린이들의 급식만이라도 국가가 보편적 방식으로 조금 더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과 정책에 ‘사회주의적 발상’, ‘북한식 포퓰리즘’이라는 색깔론까지 등장하는 모습이 이미 모든 것을 웅변한다.


필자는 2009년 4월 8일 실시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당선되어 5월 6일 초대 주민직선교육감에 취임하였다. 임명제, 간선제 시대의 중앙정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관료’로서의 교육감이 아닌, 자치 정신에 충실한 ‘직선제 교육자치 시대의 교육감’ 역할 수행에 대한 전례가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갈등과 시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선거공약과 취임사에서 “무상급식으로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 공교육 정상화 모델인 혁신학교 운영, 고교평준화 확대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을 도민들에게 약속한 바 있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법칙이 적용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이라고 생각한 이 같은 정책은, 그러나 취임 초기부터 교육계 안팎의 거대한 시련에 부딪쳐야 했다.


취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출석한 도의회에서, 당시 집권 다수당 의원들은 필자를 향해, 무상급식과 같은 정책은 “도민들을 기만한 후안무치, 일장춘몽, 야바위 행위”이며 “선거에서 표나 얻으려는 어설픈 포퓰리즘”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석고대죄’를 요구하기도 했다.


필자는 무상급식 논쟁의 핵심은 우리에게 어떠한 복지가 필요한가에서 출발하여 우리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장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국가주도 경제개발 성장모델의 후과로 우리사회의 지배적 복지 관념은 ‘선별적, 시혜적 복지’였다. 복지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온정’의 개념이며 따라서 납세자와 수혜자가 다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나라살림의 많은 부분을 경제개발에 쏟아 부을 때 복지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그 결과 저소득층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커져 왔다. 이러한 경제 양극화는 교육양극화로 이어지고 ‘부의 대물림’ 현상을 고착화시키면서 교육의 본질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왜곡해 온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실제 한국의 복지예산 등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바닥권이다. 우리나라 공공복지지출 수준은 8%대로, OECD 평균인 2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복지병’을 앓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예산은 그 규모가 작은 데다 경제 분야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작은 나라살림에서 큰 덩어리는 경제 분야로 간다. 경제여건이 안정궤도에 들어섰음에도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며 큰 재정을 투입한다. 정부의 전체 지출 중 경제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의 정부총지출 중 복지예산의 평균비율은 대부분 50%를 넘는 반면 우리는 20% 후반대를 넘지 못한다. 나라 살림 자체를 적게 꾸리고, 그 살림 중에서도 복지에 들어가는 재원이 후순위로 밀리다보니 당연히 복지에 쓸 돈이 없고, 따라서 ‘선별’ 할 수밖에 없다.


정부지출에서 국방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복지 예산구조는 선진외국에 비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정부 지출구조의 방향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 같은 한국의 예산구조는 세계적인 추세에 견주어 보면 비정상적이다. 유독 우리만이 오랫동안 토건산업을 중심에 둔 경제 예산이 복지예산을 압도해 왔다. 따라서 경제부문 재정지출 비중을 감소시켜 복지지출을 늘리는 것은 한국사회의 미래와 삶의 질을 위한 바탕이 된다.


이제 복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G20’ 소속 다수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은, 복지야말로 수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정책임을 말해준다. ‘부자아이들에게도 무상급식이 필요한가?’, ‘무상급식 때문에 다른 교육예산이 부족해져서 교육의 질이 악화된다’는 일부의 그럴듯한 주장은 우리사회 복지에 대한 인식 부재이자 악의적이고 정파적인 왜곡일 뿐이다.


예산이 없다는 주장에도 진정성이 없다. 무상급식 예산 연 1조 9000억원이면 초·중학생 모두가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 토건사업과 전시성 예산을 조금만 줄여도 다른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무상급식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전라북도가 무상급식 실시 비율이 가장 높았고, 자립도 95%인 서울이 0%였던 것은 무상급식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대변한다. 여당 인사도 다른 복지예산의 희생 없이도 전면적 무상급식이 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사회는 무상급식에 이어 반값 등록금, 의료, 노후, 일자리 등을 보편적 방식의 복지로 확대하자는 국민적 공감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의제를 확산시켜 나가기 위한 철학과 정책이다.



2. ‘무상급식이라고 쓰고 인권이라고 읽는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무상급식을 ‘부자급식,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기존에 실시하던 저소득층 무료급식은 학생들에게 눈칫밥이라는 ‘낙인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인권과 교육권 침해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학생이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서 학교를 떠날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살피는 일은 그 자체가 학교 교육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교육을 단지 입시를 위한, 지식을 위한 기계적 전달 과정으로만 이해하는 철학의 빈곤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난맥상을 더욱 깊게 한 주요원인이 아니었던가.


서울대 조흥식 교수는 무상급식은 이념이나 경제논리보다는 아동인권 논리에서 무상급식 논쟁의 핵심이 찾아져야 하며, 공교육의 일환으로 그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1)고 주장하며 ‘무상급식이라고 쓰고 인권이라고 읽는다’는 말로 명제화 한 바 있다.


무상급식, 나아가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하는 당위성은 다음과 같이 짚을 수 있다.


첫째로 무상급식은 헌법에서 규정한 의무교육의 연상선이라는 것이다. 헌법 31조 3항에서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원칙과, 학교급식법 제6조 1항에서 “학교급식은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종합하면,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일환이므로 마땅히 국민의 권리의 영역이며 동시에 정부의 책무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저소득층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급식지원은, 무료급식 대상 학생에게 심리적 ‘낙인효과(stigma effects)'를 초래하여 상처와 좌절을 남길 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일으키며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신체적, 정신적 발달을 위한 기성 사회의 책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 무상급식은 국민 대다수가 그 취지에 공감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무상급식이 사회적 의제가 된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많은 국민들이 ‘복지’를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2009년 조흥식·안현호 교수팀이 경기도내 학부모·교직원·학생 4,3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학부모의 89.6%, 교직원의 81.3%, 학생의 89.3%가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상급식 찬성률보다 그 이유다. 학부모와 교직원 등 절대다수가 ‘부모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급식이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의무교육 기관에 대한 급식은 헌법에도 보장된 국가책임’이라는 인식 또한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무상급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상급식 실시에 대한 찬성의견이 연령과 남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대부분 87%에 육박하는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나아가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비율도 절반을 훌쩍 넘었고, 직영화 필요에 대한 공감도 69%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이미 무상급식을 기본적 교육복지이자 의무교육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데, 이를 ‘현실의 인기에 급급하고, 도민을 현혹시키는 인기위주의 포퓰리즘’, 혹은 ‘좌파급식,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 부자급식, 여타 교육인프라 구축을 막는 요인’으로 폄하하는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무상급식은 과중한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교육의 양극화를 줄이는 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학부모 교육비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사교육비 규모는 총 21조원으로 국내 총생산의 1.8%에 달한다. OECD 발표는 이보다 더 높다. 학원 수업료로 한국의 각 가정이 한 달 수입의 8%를 지출하며 이는 GDP의 2.2%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사교육비가 학벌사회와 과도한 입시경쟁이 낳은 고통의 결과물이라면, 공교육비와 정부의 교육재정 규모는 정부의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복지의 수준을 말해준다. 작년 9월 발표된 '2010년 OECD 교육지표 조사'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7.0%로 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아이슬란드, 미국, 덴마크에 이어 4위이며, 이는 평균 공교육비 5.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공교육비는 학생수와 연동되는 것이므로, 학생 수를 감안한 1인당 공교육비는 OECD 평균보다 낮거나 회원국 평균 수준에 그치는 것이어서 공교육에 더 많이 투자한다고 볼 수 없다.


심각한 것은 공교육 비중에서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이 낮다는 데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부담 공교육비가 높아서 공교육에 보내면서도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4.2%이고 민간 몫은 2.8%로 조사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다. 반면 OECD 국가들을 보면, 평균 공교육비 GDP 대비 5.7% 중에 정부재정은 4.8%로 우리나라보다 많고, 민간 몫은 0.9%로 우리보다 3배 이상 적다. 결론적으로 OECD 국가들의 전체 공교육비 중 정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4%지만, 우리나라는 60%에 불과하다. 결국 공교육비 구성이 ‘공공적’이지 못한 탓에 학부모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부담 공교육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급식비이다. 따라서 무상급식이 시행되면,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 교육복지 확대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넷째, 무상급식은 전체 국민의 복지수준을 한 단계 높임과 동시에 선순환 성장으로 나아가는 강력한 방안이다. 무상급식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임과 동시에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보편복지 정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성장·복지의 선순환’ 모델이 될 것이며, 지역 경제와 국내 농업발전 등으로 이어져 고용창출과 생산 유발효과를 가져 온다.


3. 경기도에서 무상급식이 실현되기까지


교육감에 취임한 직후부터 작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단계적이고 보편적인 무상급식안은 저소득층 학생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경기도의회 절대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선별적 무상급식 주장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되는 과정을 겪었다.


출발은 2009년 7월, 2차 추경에서 농산어촌 초등학생 전원과 300인 이하 도시지역 학교 학생들을 위한 예산안 171억원을 상정했으나 의회를 거치면서 전액 삭감되고, 대신 원래 120%였던 저소득층 자녀 급식지원비가 차상위 130%로 확대된 재편성안이 의결되었다.


같은 해, 2010년 본예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무상급식 예산을 책정하고 우리의 안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의회에 청원하였다. 농산어촌과 도서벽지 초등학생 전원, 그리고 도시지역 차상위 130%에 해당하는 초등학생의 무상급식경비를 도교육청이 지원하고, 도시지역 5, 6학년 학생 전원의 무상급식은 도교육청과 기초지자체가 협력하여 지원하자는 안이 바로 그것이다. 130%까지는 ‘저소득층’의 개념으로 지원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비율에서는 경제능력 서열화일 뿐, 저소득층 복지지원의 개념이 아니며, 따라서 비교육적인 상처만 유발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기도 의회는 도서벽지와 농산어촌 초등학생 급식비를 제외한, 도시지역 5, 6학년 학생 대상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우리 교육청 안은 면지역과 도서벽지 지역은 교육청에서 전원 지원, 읍지역과 도시지역은 지자체와 대응투자로 5, 6학년 무상급식)하고, 도시지역 월 소득 200만원 이하(차상위 150%) 초·중·고 학생에게만 무료급식을 시행하자는 것으로 의결하였다. 부족한 교육예산 때문에 무상급식을 반대한다던 입장이 바뀌어 도교육청이 계상한 650억 보다 무려 90억원이 늘어난 740억으로 증액편성한 것이다.


차상위층이 무료급식을 신청하려면 건강보험증이나 부모의 실직 여부를 확인할 근거를 학교에 내야 한다. ‘밥을 얻어먹으려면 먼저 가족의 무능을 증명하라’는 식이니, 교육을 한다는 학교에서 할 일이 아니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비교육적 안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고 불법 의결된 안에 대하여 재의를 요청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 3월부터 경기도 내 농어촌 및 읍지역 초등학교 15만 여명, 그리고 일부 지자체 무상급식 대상자를 포함한 약 22만 여명에 대한 보편적 무상급식이 실시될 수 있었던 점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0년 3월, 2010년도 제1회 경기도의회 추경예산 심의과정에서도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결국 도시지역 5, 6학년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에서 야당이 승리한 이후 가능해졌고, 올해 2011학년도부터는 지자체와 도의회의 협조에 의해 대응투자방식으로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광명·평택·광주·이천·용인·시흥은 3~6학년) 현재는 무상급식 사업을 올 2학기부터 유치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도의회에 추경심의를 요청한 상태이며, 2013년까지 도내 전체 중학생을 포함시켜 의무교육기간의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완료할 계획이다.


6.2 지방선거 이전까지, 우리는 매번 의회를 향하여, 무상급식은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길러내기 위하여 공평하게 누려야 할 제도적 권리와 인간적 존중을 정책으로 담는 출발이며, 이는 정파적, 이념적 사안과 별개의 사안으로 정책의 참 뜻을 이해하고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주민직선 교육감의 대표적인 공약사업인 경기도의 무상급식은 수많은 ‘정치적 판단과 이해’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늘 ‘누더기 결론’을 내고야 말았다. 이는 그동안 무상급식을 추진해왔던 그 어느 타시도와 기초 지자체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와의 갈등은 오히려 우리 사회 전체에 무상급식 논쟁을 일으키는 진앙이 되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복지’를 둘러싼 화두를 생산하는 도화선의 역할로 이어졌다. 결국 교육복지의 영역인 무상급식이 우리 교육과 복지의 방향과 미래를 가늠할 뜨거운 사회적 관심으로 증폭되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지난 해 6.2 지방선거의 과정과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국민들은 6.2 지방선거를 통해 복지의 방식에 대한 정책대결에서 분명하게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정치적 성숙을 보여주었다. 또한 무상급식 의제는 교육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을 잠재우며 우리 공교육 전반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이는 이른바 ‘진보교육감’의 대거 등장으로 이어졌다.


4. 무상급식에서 무상교육으로, 보편적 방식의 복지와 사회서비스 확대로 나아가야


최근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단순히 한끼 ‘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 국민과 사회적 관심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되고 있다. 국민들은 또한 우리사회의 경제수준과 문명화 정도, 그리고 복지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공교육에서만큼은 학생들의 신체와 정신의 건강한 발달을 국가가 책임지고 도와줄 의무와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된 ‘보편적 복지’ 담론은 우리사회의 향후 방향에 대한 가늠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교육적 진정성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국민적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교육복지 확대는 본디 ‘김상곤표’, 혹은 ‘한나라당표’로 구분될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정당소속도 아닌 교육감에게 특정한 정파적 이해를 적용하여 다수권력으로 정책추진을 무산시킨 사안은 국민적 지탄으로 이어져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물론, 풀뿌리 시민사회와의 거대한 연대 및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사회가 그 동안 누려 왔던 고도성장의 신화가 이미 효력을 다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양극화 확대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심화, 고용 없는 성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와 저출산,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등 우리 사회는 새로운 구조변화의 길목에 서있다. 21세기 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 성장 동력은 더 이상 SOC와 같은 토건사업에서 나올 수 없다. 결국 보편적 방식의 복지와 사회서비스 확대에서 그 해법이 찾아져야 한다.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한다면, 민주개혁세력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비전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세계화의 충격과 양극화의 심화라는 안팎의 조건을 고려할 때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무상급식 확대와 같은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보편적 복지의 강화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복지의 강화가 그것이다.


특히 교육영역은 개혁이 시급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사회계층간 이동을 활성화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기반이 되는 교육혁신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교육혁신은 크게 복지 확대와 새로운 학교문화 창출이라는 접근을 통해 공교육 전반의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 무상급식은 무상교육으로 이어져 보편적 교육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이는 소득재분배와 교육의 실질적 기회 균등이라는 교육 공공성 강화로 완성되어야 한다.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 그리고 고등학교 교육을 완전 무상화하여 무상교육의 범위를 양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한편, 학교운영지원비, 체험학습비, 학습준비물 비용 등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공공의 책임으로 넓혀나가는 무상교육의 질적 내용도 확충해 나가야 한다.


또한 학교와 교사는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통제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습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진정한 경쟁력을 지닌 교육으로 거듭 나야 한다.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 논쟁을 통하여 새로운 민주화 단계에 진입했다. 정치적 독재와 권위주의를 넘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이후의 과제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미래지향적 복지국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상급식 의제는 우리사회가 이제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교육계는 물론 우리사회 전체가 냉철하고 생산적인 지성을 발휘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 때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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