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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의 방식: 통합인가? 연대인가?

연합의 방식: 통합인가 연대인가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 정권교체 위한 연대, 야권 내부의 권력투쟁


야권 연합, 통합, 연대, 뜻하는 바가 조금씩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집권여당에 대응하는 단일대오를 만들자는 거다. 알다시피


야권연합은 반MB연대에서 출발했고, 차기 선거 국면에 들어오면서 그것은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가 됐다. 연대의 구체적인 방식이 논의되면서 야권연합을 둘러싼 다양한 속내도 보이고 있다. 정권교체의 명분과 함께 진보세력의 강화를 도모하는 쪽도 있
고, 야권 통합의 재편기를 자신의 정치적 세력 확장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쪽도 있다. “야(野) 닥치고 합해”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연합 당사자들이 공감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방향과 방식으로 야권연합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과연 어떤 야권 연대가 돼야 더 많은 국민이 정권교체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인가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후보 단일화 차원의 연합 논의는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연합정치론까지 등장하며,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한 총체적 야권연합이 논의되는 건 민주화 이후 새로운 경험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 추락한 야당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1야당 민주당은 한때 정당사상 가장 무기력한 제1야당이 돼 수권정당을 자임하지 못할 정도였고, 진보 소수 정당 역시
승자독식 체제가 만들고 있는 양당제적 경쟁구조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야권의 위기 상황에서, 야권의 강화, 야권의 재편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야권연합이었다.


야권통합 자체가 시대적 과제이며 희망이라며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보정당 통합을 호소하며 민주노동당 전 대통령 후보였던 권영길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도이다. 야권 통합과는 좀 다른 문제이다. 야권통합을 외치는 인사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그 통합 후보의 주역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야권 연합은 대 여당과의 권력투쟁 전략이지만, 그 과정은 야권 내부의 권력투쟁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파를 넘어선 시민사회의 통합운동 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통합의 촉매제가 될 수 있고, 통합을 상표로 권력투쟁에 새롭게 참여하는 또 하나의 정파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권교체라는 공통의 명분과 야권 재편 시기의 권력투쟁이라는 이권싸움이 혼재돼 있는 야권연합 논란이다.


 ▶ 연합정치, 승자독식 체제와 정당의 이합집산


알다시피 정치세력간의 연합은 유럽국가나 일본 같은 의원내각제 체제에서 주로 나타난다. 선거 결과 단일 정당으로 정부를 구성하기 어렵거나 여러 이유로 연합정부가 필요할 경우로, 우리가 자주 목도하는 바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연합도 있다.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는 야권연합이 그런 경우다. 소수 정당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후보를 단일화하거나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
는 방식이다.


소선거구제나 승자독식의 선거제에서 야권세력들이 집권세력과 1대1의 경쟁구도를 만들기 위해 연합하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의 정치 역사에서도 여·야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야권은 위기 때마다 통합 운동을 벌였다. 1954년 이승만 정부의 사사** 개헌 이후 전개된 야권통합 운동 이래, 몇 년 전의 대통합민주신당에 이르기까지 야당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왔다. 물론 1990년의 3당 합당처럼 집권여당이 확대 통합을 도모한 경우도 있다. 물론 민주화 이전에 집권여당은 합법·비합적인 또 다른 방법으로 다수당 지위를 확보했었다.


우리나라같이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까지 겹친 정치체제에서는 「1대1」의 경쟁 구조를 만들기 위한 통합 논란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승자독식 체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촉진한다는 이론도 있다. 소수당의 입지가 어렵기 때문에 거대 여·야당의 양당제로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양당체제가 구조화 돼 있다면, 추가적인 정당 연합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최근의 야권연합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일본, 이탈리아의 연합정치도 대부분 선거제도가 소선거구 체제로 개편되면서 나타난 경험들이었다. 일본의 경우 1994년 중의원 선거제도가 중대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비례대표 병립제로 개편되면서 정당의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선거연합이 두드러졌다. 이 이합집산과 연합을 거치면서 자민당 독점의 기성체제가 흔들리게 되었고,
2009년 결국 재편된 세력이 주도하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정치변동도 경험하게 된다.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당제적 경향과 다당제적 기반을 공존시키고 있다. 정당 간 연합은 다당제를 양당제 모형으로 중재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이탈리아 역시 1993년 완전 비례대표제에서 소선거구 중심체제(소선거구 75%, 비례 25%)로 제도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올리브연합(동맹) 등 선거연합이 활성화됐다.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촉진시킬 수 있지만, 이탈리아에서 소선거구제의 도입이 양당체제로 변화를 이끌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비례대표제의 영향에, 지역 분권 구조와 지역당 체제의 이탈리아 정치구조의 특성이
있었다. 다당제 체제가 계속됐지만, 대신 양대(兩大) 정치연합으로 소선구제에 호응했다.


특히 이탈이아의 올리브연합은 중도좌파 세력의 연합으로 선거승리를 이뤄 집권까지 한 사례로 우리나라 연합정치에서 자주 인용됐다. 그러나 지역당 체제가 강하고(우리나라 정당을 지역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특정 지역만을 근거로 활동하는 의미의 지역당과는 다르며, 굳이 지역당 개념으로 본다면 현재 자유선진당 정도가 지역당에 근접한다), 제도적으로 연합정치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도 우리와는 정치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정치연합을 활성화 시켰던 소선거구제는 2005년 베를루스쿠니(Silvio Berlusconi)의 주도로 비례대표제로 다시 복귀한다. 그럼에도 선거연합이 계속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정치연합을 인정하고 있으며, 정당이든 연합이든 제1세력에게 하원의석의 55%(630석 중 340석)를 보장해 정치연합을 유도하고 있다. 다수 세력이 되기 위한 연합이므로 대체로 중도적인 두 개의 좌, 우 세력이 정치연합을 형성해 경쟁한다. 개별 정당체제로 경쟁하면서 연합을 구성한 각 정당들의 득표를 합산하면 된다. 지역당 체제와 비례대표제의 정당 난립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 불안정한 다당 구조, 통합세력, 단일 후보의 승리


소선거구제가 만드는 양당제화 경향 속에서도 그 양당제가 분열되고 분화되려는 원심력도 존재한다. 거대 정당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분열로 이어지기도 한다. 양당제가 사회적 통합의 기반이 되지 못할 경우, 그 양당제는 언제라도 분열될 수 있는 불안정한 체제가 된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체제가 바로 불안정한 양당제와 불안정한 다당제 사이를 오갔다.「1대1」 대응을 요구하면서도 양당체제에 수렴되지 못하는 정치 이념적 간극, 지역균열의 구도, 권력욕과 리더십의 갈등 등이 불안정한 다당제를 만들어 왔다. 그러다가 선거를 앞두고 불가피하게 정당 통합을 도모하거나, 후보연합을 시도하고, 때론 성사시켰다.


「1대1」 대응 구조를 요구하는 제도적 조건에서 분립된 진영이 불리한건 당연하다. 다자간 경쟁 구도에서 연합하게 되면 연합 세력의 승리 가능성은 대체로 높아진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화 진영의 두 후보였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가 쟁점이 됐으나 이해관계의 갈등, 정세에 대한 판단 차이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1990년에는 위기에 처한 집권여당과 김영삼 진영 등의 권력 의지가 맞아 떨어져 정당 통합이 이뤄진다. 군부 및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운동세력 일부와의 연합이었다. 4당 체제에서 호남 기반의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이 홀로 야당으로 남게 되는 호남 고립 구도를 만든 연합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정치연합은 매우 불안정했다. ‘3당합당’에 가담했던 김종필과 「신민주공화당」은 1995년 통합정당 「민자당」으로부터 이탈한다. 이후에도 선거를 앞둔 연합이나 이합집산은 반복됐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호남 지역과 민주화 진영을 기반으로 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이 충청의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의 김종필과 후보단일화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이른바 DJP연합이었다. DJP연합은 정권 끝까지 가지 못하고 김대중 정부 중반에 붕괴된다.


참고로 정당통합은 대체로 이념적으로 유사한 정당끼리 이루어지지만, 정치연합은 이념적 거리가 있는 정당끼리도 이루어진다. 이념적으로,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서 거리감이 있어 단일 정당으로는 통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인 정치연합을 하는 것이다. 연합정부 구성이 일상화된 서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이념적으로 근접한 정당들의 연합과 거리가 먼 정당 연합의 사례는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정치연합은 목적과 전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력한 3명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승리해 집권했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연합의 불안정성은 이때에도 나타났다. 알다시피 선거운동 마감일 저녁에 정몽준 전 후보가 노무현 단일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것이다.


이렇듯 그동안 한국에서 정당통합이 아닌 정치연합이나 후보단일화는 주로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이뤄졌다.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에서도 연합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정 지역 선거에 한정된 매우 특별한 경우였다.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만일 전국적인 차원에서 국회의원 후보단일화가 필요하다면 정당자체가 통합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 민주화 진영의 추락, 수권정당의 실종


최근의 야권연대, 야권연합 주장 역시 한국정치의 승자독식 구조와 소선거구제의 특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대통령 선거만을 위한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기존 정당들의 약세에서 비롯된 정당 연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2008년 촛불집회 정국에서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던 야권연합은 사실상 야권 재편에 대한 의지와 요구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 동안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통해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별도의 선거 연합을 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고 승리하기도 했다. 여소야대를 만들기도 했고, 민주화 진영이 원내 다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민주화 진영과 후보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컸기 때문이다. 또 보수 상대세력뿐 아니라, 민주화 진영 내부끼리 경쟁하는 가운데, 유권자들이 때로는 유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사실상의 후보단일화 효과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소수당은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런데 참여 정부 중반부터 민주화 정권이 신뢰를 잃기 시작했고,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소수 야당이 되었다. 민주 진영과 야권은 이명박 정부가 초래하는 위기 상황에 대해 인식은 공유했지만, 대응할 수 있는 힘은 미약했다. 제도정치 영역에서는 소수였고, 추락한 국민 신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분열과 리더십의 실패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속수무책이었다. 제1야당이 수권정당을 자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 민주당의 이런 극단적 무기력은 최근의 야권연합 논의에서조차 피동적 눈치 보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제1야당 민주당뿐 아니라, 소수 진보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에 최초에 진입하면서 10석을 차지해 원내 제3당으로 도약했었다. 그러나 18대 국회 들어 지지율도 떨어지고 원내 의석도 절반인 5석(현재 6석)으로 축소됐다.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으로 일부 분파가 떨어져 나가 진보신당을 결성하는 분열까지 겹쳤
다. 여기에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체제에서 제3세력의 입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한계도 안고 있다.


이 점에서 당초 야권 연합은 단순히 기존 야당의 통합이나 연합이 아니라, 야권의 새로운 탄생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아직 가시적인 결과는 없다. 야권 통합이 확정되지 않는 가운데, 4-5개의 야권 정당들이 부분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이뤄 몇몇 선거를 치렀다. 지난해 6.2지방선거 승리와 함께, 야권연합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기도 했고, 어느 선거에서는 야권연합의 어려움과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 통합이냐 연대냐?


주어진 제목이 “통합이냐, 연대이냐”이다. 야권이 단일 정당으로 통합할 것인가? 아니면 각각의 정당을 유지하면서 후보단일화와 같은 연대 방식을 택할 것인가? 초점은 야권 단일 정당이 가능할 것인가가 우선적인 쟁점이다. 만일 이것이 성사되기 어렵다면, 나머지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유권자의 선택에 맞길 수밖에 없다.


단일정당으로의 통합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총선에서의 후보 단일화 문제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 선거에 주목한다면, 반드시 단일 정당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면 연합의 효과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통합정당을 만들지 못한 채 후보 단일화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 정권교체 이후 연합 정부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만을 놓고 본다면 단일 정당이 더 연합효과를 크게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각 정파들의 입장과 한국 정당체제에 대한 전망에 따라 정당 통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단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민주당이든, 새로운 통합야당이든 제1야당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주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정당이 재편되지 않는 정당체제라면 민주당 후보가 야권 후보가 된다. 현재 민주당 밖의 정치인이 차기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서는 부분 통합이든, 야권 단일정당이든 통합정당 소속이 되어야 한다. 제1야당 후보가
불출마한 채 집권여당 후보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 총선 야권 연합이 관건


대선과 달리, 총선에서 야권연합에 대한 전망은 야권통합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야권 단일 정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국적인 야권연합은 어렵다는 것이다. 역으로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연합해야 한다면,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단일정당으로 통합되지 않는다면,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재보선 과정에서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의 어려움을 목도한 바 있다. 대선에서는 연합세력이 승리할 경우 권력을 공유할 수 있지만, 총선 지역구의 단일화 향배는 완전한 승패 게임(all or nothing game) 구조이다. 중앙당 차원에서 적당히 정당 간 지분을 분배할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지난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순천지역에 단일 후보를 소수 정당에 양보한 것을 두고 야권연대의 승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석을 얻은 후보와 정당에게는 야권연대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야권연대를 고리로 한 이권 챙기기에 불과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일부에서는 당의 희생을 통해 야권연대의 정신을 살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부 자신의 희생이 아니라, 당과 그 지역 민주당 후보들의 희생이었다. 그러나 그 희생을 통해서 야권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역민의 의사를 반영한 민주적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민주당의 호남 지배력을 토대로 한 비민주적 전횡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야권연대 명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정당 통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 단일화 방식의 연대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전국적인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부분적인 후보단일화 방식이 되어야 하겠지만, 후보단일화의 원칙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결국 야권 통합정당의 태동 여부가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 ‘빅텐트론’, 미래 추세에 맞아


야권 단일정당은 크게 ‘빅텐트론’과 ‘(정파등록제)가설정당론’으로 집약되는 것 같다. 위 두 주장이 통합 방식에 초점을 둔 것이라며, 통합정당의 가치와 노선에 초점을 둔 ‘복지국가 단일정당론’도 있다.


먼저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 복지국가에 동의하는 세력만 모여 단일 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통합 야당이 지향해야 할 중심 가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기존 진보 세력들의 노선을 포괄하고 있다. 이 복지국가 정당론자들의 노선에 동의한다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과의 이념적 차이는 거의 없어진다. 사실상 민주당의 진보성 강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수권 대중정당이 반신자유주의 같은 소수 진보정당 노선과 전략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진보 진영 또한 야권 일반과 구분되는 고유한 진보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세력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만일 야권 단일 정당 구축 과정에서 노선이 쟁점이 된다면, 통합의 범위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빅텐트론과 가설정당론은 모두 현 야권세력에 노선에 차이가 있으나, 통합정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빅텐트 단일정당은 한국 정당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편으로서 야권 단일정당을 말하는 것이고, 가설정당은 당장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연합공천을 위해 일시적으로 가설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빅텐트 통합정당론은 정파 간에 이념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양당제적 정당정치가 불가피한 한국정치 구조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이 하나의 울타리에 단일정당으로 포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적 실천을 위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라 주장한다. 약화된 야권의 문제, 그리고 소수 정당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는 진보세력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담고 있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대안이다. 정확한 참고인지는 모르겠으나, 빅텐트 정당 사례로 미국의 공화-민주 양당체제를 말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정당의 규율이 아주 느슨하고 분권적인 반면, 한국은 정당의 규율이 아주 강하고 중앙집권적이라는 점에서 아주 대비되는 정치 환경이다. 그런데 앞으로 한국의 정당도 좀 개방적인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또 지방분권화에 동의한다면, 정당체제도 당연히 분권화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정당 재편 방향으로 보인다.


▶ 가설정당, 비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아


통합정당 체제에 다양한 이념 노선과 소수 정파들의 활동 공간을 보장하는 정파등록제를 도입해 통합의 장애요인을 극복하자는 주장도 있다. 가설 정당론자들은 주로 정파등록제를 말한다. 룰라의 「브라질 노동자당」 사례를 토대로, 분파가 심한 한국 진보세력의 내부의 통합모델로 거론됐던 것이다.


다양한 사회주의 이념투쟁의 불가피한 유산 때문에 만들어진 브라질 노동자당의 사례를, ‘작은 차이를 넘어’ 연대하자는 한국의 야권통합 도구로 도입하자는 건 황당하다. 또 개방정당, 지지자 정당으로 가는 한국의 정당정치 환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파등록제를 일시적으로 활용하자는 통합정당 모형이 ‘가설정당’이다. 이탈리아의 연합정치에서 성공했던 ‘올리브연합’의 변용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다시피, 이탈리아의 선거제도에서는 연합을 보장하고 있다. 연합을 구성하되 각 정당은 개별적으로 선거에 참여한다. 각 정당이 득표한 결과를 토대로 연합세력의 득표를 합산하고 각 정당별로 의석을 배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중정당 후보등록 무효(공직선거법 52조) 등 제도적으로 이런 연합활동을 오히려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정당이 아닌 ‘정파등록제’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파등록제의 시대착오성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더구나 선거를 위한 일시적 가설정당론이 매우 정교하고 고심에 찬 대안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오히려 기성 정당의 기득권을 이용한 반MB 이권 챙기기 전략으로도 보인다. 그러면 다시 무엇을 위한 야권연합인가라는 문제의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 소수 진보정당 전략 전환 필요해


소수 진보정당의 이런 구조적 한계는 일시적인 야권 연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빅텐트의 논지처럼 현재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체제를 전제로 양대 정당체제로 합류하든지, 아니면 정부형태와 선거구제를 승자독식이 아닌 다원적 체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 등이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편할 것을 주장해오기는 했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에 비해 제3세력의 원내 진출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등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정당 책임정치의 의원내각제(의회중심제)에 정합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싶다면, 당연히 현행 대통령제의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진보세력이 정당통합이 아닌 일시적 연합을 도모한다면, 정책연합 못지않게 이런 제도개혁 부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 야권 통합 안 되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에 맡길 수밖에


결국 야권연합의 정치는 단일정당으로 통합되어야 야권통합 구호에 부합하는 연대를 이뤄낼 수 있다. 통합야당 구축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가설정당이나 정파등록제는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시대착오적이고, 혁신이 아닌 기득권 나눠먹기이다. 한국 정당정치 환경의 추세로 보아 ‘빅텐트론’적인 통합야당 모델은 바람직해 보인다. 이번 선거 일정에 맞춰 통합야당이 태동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통합야당이 구축되지 않더라도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 전략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15대, 16대 대선의 후보 단일화 경험이 보여주었다. 더구나 지금은 그때보다 야권연대와 단일화에 대한 요구가 아주 강한 상황이다. 후보 단일화 당사자들의 문제만 변수일 뿐이다.


통합야당을 이루지 못한 상태라면, 총선 후보의 전국적인 단일화는 어렵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부분적 후보단일화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야권 전체의 지지 확대, 야권의 쇄신과 더 좋은 후보의 선출이라는 후보단일화의 취지를 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저것도 아니라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통한 실질적 후보단일화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의지가 강하고 야권에 의석을 주고 싶다면, 유력한 후보에게 전략적 지지투표를 할 것이다. 그동안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민주화 진영, 또는 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야권 통합세력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점차 야권 자체도 비교 평가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권 진영과 후보들이 얼마나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를 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연합의 방식-통합인가, 연대인가.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