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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의 땅을 찾아... 첫 번째 이야기 - 영국 NHS 탐방기 -

무상의료의 땅을 찾아... 첫 번째 이야기 - 영국 NHS 탐방기 -



2011년 1월의 대한민국은 복지국가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지난해 선거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올해 ‘무상의료’와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을 더하여 3+1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좌파 포퓰리즘 정책’이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현실가능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연일 공격에 열을 올렸다.


정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상복지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현실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공공재, 공공서비스를 국민들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좌파정책일까?


고개를 조금만 돌려봐도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 ‘좌파 포퓰리즘’이고, ‘재정이 많이 소요되어 할 수 없다’던 정책을 이미 많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국은 이미 1948년부터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일명 NHS)를 도입하여 모든 국민들이 빈부에 상관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절대 못한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제도를 어떻게 그들은 이미 63년 전부터 해오고 있는 것일까? 때 늦은(?) ‘무상의료 논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영국 NHS는 부러우면서도, 하나의 좋은 탐구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7월 2일부터 10일까지 일정으로 영국 NHS 탐방길에 올랐다.

최소한의 경비로 짜여진 여정은 나리타와 프랑크푸르트를 돌아 편도 20여 시간 마음공부의 기회를 보너스로 선물한 후, 탐방단을 ‘무상의료의 땅’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려주었다. 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의사, 간호사, 노조원, 연구원 등 한국에서 출발한 25명과 영국현지에서 NHS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 5명까지 합쳐 NHS탐방단은 30명에 이르는 비교적 큰 규모가 되었다.비록 여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비는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지만, NHS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일행의 현지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이들은 어떻게 전쟁이 막 끝난 가난의 시대에 무상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Waiting time이 무상의료의 불치병일까?”, “무상의료가 의료과잉과 복지병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NHS의 수혜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NHS 개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으로, 현지 전문가들의 눈과 입에 주목했던 일행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국 NHS 탐방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선 NHS의 도입시점을 살펴보면 이처럼 전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지정책의 가능여부가 “돈이 있는가?”하는 재정의 문제이기 보단, “꼭 필요한가?”하는 절실함과 의지의 문제에 더 큰 비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 NHS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1946년 영국 노동당 정부 하에서 NHS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1948년 7월 5일 전국가적으로 시행되었다. ‘모든 국민(Universal)에게 포괄적인 서비스(comprehensive)를 무료로(free) 제공하는 의료체계’를 제공하는 최초의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럼,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보수주의자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보편주의적’ 의료제도인 NHS를 정치적 타협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이를 설명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강경해진 노동계급의 요구와 그들의 급진화를 막기 위한 지배 계층의 어쩔 수 없는 양보로 이루어졌다는 견해이다. 이는 박정희가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김동영, “복지국가의 가치와 진정성”,『사람과정책』창간호, 민주정책연구원, 2011년 참조).


다른 하나는 의료부문 내부의 재정적, 조직적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NHS를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즉 전쟁 이후 체계화되지 못한 의료분야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못하였고, NHS를 통한 국가의 개입은 의료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의료공급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떤 설명이 더 설득력을 가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은 국가적 보건의료시스템 도입에 정치, 사회적으로 합의(NHS Deal)를 이뤄냈다.


NHS가 처음 도입되던 1948년 7월 5일, 엄청난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50% 이상의 사람들이 병원에 갈 수 없는 무보험자, 저소득 계층이었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NHS로 인해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진료를 기다리는 이들로 병원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NHS로 열린 ‘새로운 세상’은 그에 따른 새로운 과제도 안겨주었다. 해마다 의료비는 급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waiting time)도 길어졌다.


국가의료체계의 도입과 강화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반대의 근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NHS를 처음 도입할 때처럼 정치적, 사회적 합의는 잘 이끌어 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