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내용 바로가기

가난한 집, 집 때문에 더 가난해진다

 


* 이 글은 김수현 외, 2009, 『한국의 가난』, 한울아카데미, 제7장의 내용을 활용해서 보충했다. 


 



 


 


1. 가난한 사람은 나쁜 집에 산다


 


 우리 주택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다. 소득대비 가격이 높은 데다 주기적으로 가격이 폭등함으로써 온 국민들이 부동산 가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에 잠겨있고 건설투자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만 오르거나 내려도 가계와 경제는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 역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계비에서 주거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특히 우리 특유의 전세제도는 목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사정은 종종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이미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1989년에는 오르는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빈곤층들이 일가족 자살을 택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 뒤 이런저런 대책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공공임대주택이나 임대료보조제도와 같은 주거복지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나름의 적응방식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해 왔다. 바로 좁고, 나쁜 환경이지만 싼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빈곤층이 반드시 나쁜 주거사정으로 살아간다고는 할 수 없다.


 가난은 주로 소득으로 측정되는 반면, 주거사정은 별도의 물리적인 기준이 있으므로 둘 사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리적인 조건이 나쁜 주거가 대개 저렴한, 즉 낮은 소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쁜 주거와 가난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 저소득 가구와 일반가구의 부엌 및 화장실 사용형태를 비교해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사정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소득으로 따져서 일반적인 가구는 0.7%만 재래식 부엌을 쓰고 있지만, 저소득 가구는 아직도 6%가 옛날식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다. 화장실 역시 저소득 가구는 무려 13.9%가 재래식 화장실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나쁜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 즉 불량한 주거지역에서 살아왔다. 과거에는 판자촌이 그러했고, 1990년대 중반 들어 대부분의 판자촌이 사라진 다음에는 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의 (반)지하방이나 옥탑방들이 주된 거주지가 되었다. 201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반)지하나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이 전체 가구의 7%에 이를 정도이다. 또 아직도 수재, 화재 등 각종 재난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비닐하우스촌에 약 3,000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더구나 합판으로 칸막이 친 한 평짜리 방인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울에서만 10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시내에 1인 가구가 83만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8가구 중 하나는 고시원에서 살아간다는 얘기가 된다.


 


2. 가난을 더 심화시키는 주거문제


 소득이 낮을수록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낡고 싼 주택에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만큼 비용이 싼 집을 찾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주거비를 지출하고 있다면 이는 다른 문제가 된다. 즉, 주거문제가 가난을 더 힘겹게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중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그 추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중·고소득층에 비해 소득대비 주택가격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임대료 부담 역시 훨씬 높다.


 



 


 이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임대료를 제때 못 내서 이사를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게 된다. 다음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소득 가구는 일반가구에 비해 주거문제로 인한 고통을 훨씬 심각하게 겪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특유의 전세제도가 갖는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주택가격의 30∼70%를 전세금으로 맡겨두고 주택의 사용권을 갖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목돈이 부족한 빈곤계층은 일반인들에 비해 전세 대신 월세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고(), 이는 특히 단신가구일수록 그러하다. 여기서 문제는 월세를 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즉, 전세금을 기준으로 월세를 산정하면서 은행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이자율보다도 30∼40%가 높다. 또한 월세라 하더라도 1년 치 정도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보증부 월세가 대부분이어서 이 역시 부담이다. 이 때문에 보증금이 없는 순수 월세로 갈수록 상대적 부담은 더 높아지고, 주거사정도 더 열악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원룸 같은 경우는 보증부 월세가 많고, 고시원은 순수 월세이며 쪽방은 일세를 기본으로 한다. 고시원의 월 20만 원을 전세금으로 환산하면 (즉, 그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두었다고 하면) 약 4천만 원의 보증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전세 4천만 원이면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곳을 구할 수 있지만, 이를 월세로 이용하니 합판 칸막이의 1평짜리 방밖에 못 구하는 것이다.
쪽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동네 자체가 열악하지만 하루씩 세를 내다보니 한 달로 치면 20만 원이 넘어서는 것이다. 역시 전세금과 비교하면 훨씬 나쁜 주거를 비싸게 이용하는 셈이다.



 저렴주택이 계속 줄고 있다



 이와 함께 빈곤층의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저렴주택 재고자체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산동네가 사라진 다음, 저소득층들이 가장 많이 살아가는 노후·불량지역에는 최근 뉴타운 바람이 몰려왔다. 서울에서만 뉴타운(재개발)사업에 서울시민의 15%가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던 뉴타운(재개발)사업이지만,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뉴타운사업을 시행하게 되면 소형주택의 절대량이 줄어든다. 서울시의 원래 계획은 2006년부터 10년까지 136,346호의 주택을 부수고 67,134호를 새로 지으려던 것으로,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주택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더구나 새로 지은 주택은 넓고 비싼 집이 대부분이다. 전용면적 60㎡ 이하 비율은 사업 전에 63%이던 것이 30%로 줄어들고, 매매가 5억 원 미만 주택 비율 역시 약 1/3로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세가 4천만 원 미만의 서민용 주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개발사업 전에는 서민들의 주된 거주지였던 지역이 사업 이후에 중소득층 이상의 주거지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렇게 주민 수준과 동떨어진 중대형 고가 아파트가 건립됨에 따라 원거주민의 재정착률은 매우 떨어지게 된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 4구역의 예를 보면 가옥주 등 소유자는 15.4%, 세입자까지 포함할 경우는 10.9%만이 그 지역에 다시 입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90% 가까운 주민들은 개발사업 이후에 그 지역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길음 4구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사업구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다.
 이렇게 사업구역을 떠난 사람들은 그러나 멀리 가기 어렵다. 자녀교육이나 직장, 생활권 등이 그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인근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재개발사업이 시행되면 인근의 주택가격은 물론이고 전월세가격이 대폭 오르는 일이 벌어진다. 실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7~2008년도 서대문구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의 전세가격은 서울 평균에 비해 월등히 많이 오르는데, 그 시기가 가재울 3구역 개발사업 시행과 맞물려 있다.



 정부의 주거지원은 미미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우선 정부의 가장 적극적인 저소득층 주거지원정책인 공공임대주택은 아직 전체 주택재고의 4%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빈곤층들이 주로 입주하는 영구임대주택의 경우 1.2% 정도이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 중에서 영구임대주택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5%가 되지 않는다. 물론 입주하더라도 빈곤층들만 대단지에 모여 사는 데 따른 눈총이나 격리현상은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전월세 보증금이 오르는 데 따른 지원책으로 효과가 있는 전세보증금 융자제도는 저소득층의 경우에도 이용경험이 있는 비율이 1%밖에 안 된다. 따라서 민간시장에서 주거사정이 악화되는 데 대한 안전망으로서 공공 주거복지 프로그램은 아직 양적, 질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주거복지정책이 별도로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난 그 자체 때문이다. 그럼 가난이 해결되면 주거문제는 저절로 해결될까? 답은 ‘아니요’다. 설령 빈곤문제가 완화 내지 개선된다 하더라도 주거문제는 별개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역이 상위계층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되는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빈곤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택은 고가의 자산이며 공급에 장시간이 소요된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왜곡이 일어나기 쉬운 재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택은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빈곤층들이 주로 살아가는 단독주택 지역은 날로 사라져가는 반면, 새로 지어지는 주택은 대부분 중대형 아파트이다. 더구나 전반적으로 주택가격이 오르게 되면 그 영향이 서민들의 주거에도 영향을 끼친다. 집값이 오르면 전월세값이 시차를 두고 따라 오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최근 전월세값 상승은 결국 2000년대 상승한 집값의 여파가 시차를 두고 임대료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주택정책 차원에서 특별히 경제적 능력이 취약하고 연로·연소·장애 등으로 상황대처 능력이 부족한 가정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별도로 펼쳐야 한다. 바로 주거복지정책이다.
 주거복지정책은 크게 ①공공소유의 장기임대주택 공급, ②주택구입 자금이나 임대료 지원 등을 통해 일반 주택시장에서의 구매력 지원, ③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지원, ④집수리나 주거환경개선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임대주택과 임대료 지원(보조)은 선진국 주거복지정책의 오랜 역사에서 핵심적인 두 축을 이루는 것으로, 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1950∼60년대까지
공공소유의 임대주택 건립에 주력하여 주택시장에서 일정 재고가 확보된 다음부터 임대료 보조제도를 강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복지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이 10% 이상이고, 임대료 보조정책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10%는 최소 목표다
 공공임대주택은 시장이 아닌 공공부문, 즉, 탈시장 영역에서 주택을 제공함으로써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을 막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주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 공공임대주택은 자본주의 주택정책의 꽃이다. 2차 대전 이후 전쟁의 폐허 위에 대량으로 건립된 공공임대주택은 복지국가의 상징이었으며, 체제경쟁의 우위를 자랑하는 상징물이었다. 공공임대주택은 사회적 불안과
불만을 예방하려는 차원에서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의 소산이었다. 복지국가 체제를 도입하는 대신, 자본주의의 체제 불안정을 방지하도록 자본-노동 간의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중간소득의 노동자계층에게까지 쾌적한 수준의 주택을 직접 공급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공임대주택이 갖는 문제가 표출되기 시작한다. 복지국가의 재정위기에 봉착하면서 공공임대주택에 재정지원이 줄어들고 신규 건립 임대주택 역시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1960년대까지는 중산층이 입주하던 공공임대주택이 이제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락하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중산층 이상은 민간주택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공공임대주택은 대중적인 주택이 아니라(mass model), 저소득층 위주의 주택(residual model)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진국의 공공임대주택은 1970년대 후반부터 빈곤층 집중, 슬럼화 문제 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특히 1980년대 들어 복지국가 재편의 일환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일어나면서, 상당수 국가에서 공공임대주택은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영국은 대처 정부 시절부터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거주자에게 불하하는 정책을 취한 바 있다.


 어떻든 공공임대주택이 한때의 전성기를 지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유럽 주택 재고의 10%에서 35%를 차지하는 등 가장 중요한 주거복지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저소득층 주거문제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공공임대주택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비록 관리상의 문제, 사회적 격리 문제 등이 불거져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복지국가체제의 역사적인 진전이었고 발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1989년부터 영구임대주택을 19만호 건립한 다음, 2000년대 들어 국민임대주택이 매년 10만호 가까이 공급된 바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그 기간 중 모두 47만호의 국민임대주택 공급에 착수하였고,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도 도입한 바 있다. 이들 물량이 최근 전월세난 속에서 서민들에게 소중한 사회안전망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들 국민임대주택의 성과에 힘입어 공사 중인 물량을 포함할 경우 전체 가구의 6%가 넘는 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한참 부족하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국민임대주택을 ‘보금자리 주택’으로 바꾸고 공급물량을 반 토막 내고 말았다. 특히 주 공급 기관인 LH공사의 부채문제를 핑계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미적거리고 있다. 최소한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를 10%로 늘릴 때까지는 꾸준히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것도 단순히 공급 물량에만 집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적절한 위치에 부담이 되지 않는 임대료로 제공해야 한다.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민간임대시장이 계속해서 월세로 전환되는 마당에 전세방식은 좀 더 주거안정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주택을 매입해서 임대하는 방식은 기존 생활권을 유지하면서도 공공임대주택의 집단화를 방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를 더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임대료 보조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의 절대재고를 확보하더라도 임대료 보조제도가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은 그 수량이 제한될 뿐 아니라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다양한 위치에, 적절한 규모로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소득층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민간임대주택을 구하고,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함으로써 복지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임대료 보조제도는 기본적으로 소득 중 주거비로 지출되는 액수가 일정비율을 넘어설 경우, 그 만큼을 보조한다는 개념에 입각해 있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최저주거수준을 유지하는 데 소득의 30% 이상 들어갈 경우,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보조하는 것이다. 이때 과다한 수준의 주택에 살면서 임대료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적정주거 수준과 적정 임대료 수준을 행정당국이 평가하여 지원액을 결정하게 된다. 아울러 이 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바우처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 임대료 보조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공소유의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충분치 않고, 임대료 보조제도 시행에 필요한 소득파악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경 시행을 목표로 해서 단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일부 지역을 지정해 시범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본격 시행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두어야 한다. 또한 현재 서울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차상위 계층에 대한 소액 임대료 지원을 단계적으로 늘려서, 2018년 본격 시행시기에 맞춰갈 필요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은 보호받아야 한다



 빈곤과 주택문제는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과 극심한 소유편중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즉 주택은 빈부격차 확대의 주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손낙구(2008,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는 이를 ‘부동산 계급사회’로 이름붙일 정도로 주택을 매개로 우리 사회는 깊은 단절을 겪고 있다. 최근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저변에는 바로 부동산이 놓여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양극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이를 더 확대하고 세대를 넘어선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원인’이다. 상위 20%는 하위 20%에 비해 소득은 다섯 배 차이가 나지만 재산은 20배나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빈곤해지고 있으며, 토지와 주택의 지니계수가 0.9를 넘어 거의 완전 불평등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비싼 주택과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다른 부분의 지출을 억제
해야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주택가격이 오르는 데 따른 자산양극화와 상대적 빈곤의 확대로 박탈감이 심화되는 악순환이다. 더구나 좁고,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공부방도 없고, 볕도 안 드는 공간에서 건강마저 부실하다. 한국 사회에서 주택은 단순한 잠자리를 넘어 대를 이어 전승되는 부(wealth)의 원천이며,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다. 반대로 집이 없어 월세를 전전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집으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 자체가 돈벌이 공간이 되고 말았다. 종전에는 판자촌 재개발이 그러했고, 요즘은 뉴타운이다 재개발이다 하여 서민층 주거지역이 대부분 해체의 위기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 개발이 자산 양극화의 진원지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임대주택을 매년 수만호씩 짓고, 전월세 보증금 융자를 수조 원씩 퍼붓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사정이 개선될 도리가 없다. 주거복지정책의 성공은 전반적인 주택시장의 안정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공간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는 개발방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공간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개발하는 한 빈곤은 더 깊어지고, 사회는 더 큰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