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의 계절, 찾아온 한 문장의 유산
나른한 봄날의 기운이 일상의 피로를 조금씩 키워 간다고 느낄 즈음, 단비처럼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할 긴 여정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저는 제 삶이 많이 바뀌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자연스레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고, 세상을 해석하는 제 잣대의 눈금들이 재조정되어 가는것을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술자리에서 쉽게 꺼냈던 ‘공정’, ‘정의’, ‘상식’ 같은 단어들은 어쩌면 제 내면에 있던 열등감과 알량한 자존심이 만들어낸 자기 과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치기 어린 잔치를 끝내고, 묵묵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저는 이제 현실 정치에 저의 감정을 과도하게 실어내거나 특정 이념에 골몰하는 것은 철부지 같은 행동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연휴 초입,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의도적으로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며 이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치 가십 정도로 해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의 정체가‘기시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 전,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이 사회의 기득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던 그 시절. 젊은 저는 의분에 사로잡혀 정의와 진실을 이야기하며 주변에 담론을 토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결은 예견된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랑거철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만큼 무기력했던 결말이었고, 그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이들은 소위 우리 사회‘오피니언 리더’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수많은 조연들도 확신인지 변덕인지 모를 불안정한 논리 속에서, 그 비극의 공조자가 되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채의식조차 무뎌진 지금, 다시 그 감정이 되살아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해 온 제 자신을 위해, 저는 속으로 궁색한 변명을 해보았습니다.
노무현의 투쟁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그가 남긴 유산이 우리 사회에 되돌릴 수 없는 흔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책임 없는 자위였고, 변덕스러운 판단으로 제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이기도 했습니다.
20년 전, 검찰조서를 비롯한 어떤 공문서에도 존재한적 없던‘논두렁 시계’라는 저급한 가십으로 한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려 했던 그 연대의식이, 지금은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향해 같은 방식의 장막을 펼치며 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세력들이 우리 사회 기득권의 지위로 다시 무력하고 뻔한 결말을 시도할 때, 20년 전 그의 유훈이 어떤 혜안을 넘어서 예지력의 존재로 저에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이제는 유치한 논리와 자기과시가 아닌, 우리사회 소시민의 책임감 있는 자세로 확신에 찬 견고한 지지를 보낼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전 그의 당부가 오늘의 저에게 향해 있음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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