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동북아 평화 -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기회
이 해 찬
(민주통합당 한반도・동북아 평화 특별위원장)
존경하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님과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발표와 토론을 맡아주신 국내외 전문가 여러분!
오늘 저는 동북아의 정세 변화를 진단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국제세미나에서 환영인사를 드리게 되어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이든 평화는 인간 공동체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평화가 보장되면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지탱할 경제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보다 품위 있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활동을 파괴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마저 말살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가치입니다.
특히 우리 한민족에게 평화는 매우 각별한 단어입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불법적인 강제병합, 식민통치, 동족상잔의 전쟁과 냉전의 최전선을 경험한 우리에게 평화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 냉전이 끝나고 20여년이 흐른 오늘에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아직도 찾아오지 않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평화는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냉전이 끝나기 전부터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비록 군사정권의 후예였지만 1987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냉전의 해체기를 맞이하여 러시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시대를 열고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마지막에 경직된 남북관계를 남겨놓기는 했지만 김일성 북한 주석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진심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는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 교류를 위한 중대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故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민족의 공동번영과 화해협력의 약속을 담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故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10・4선언’을 발표하여 남북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남겼습니다. 비록 난관도 많고 뜻대로 이루지는 못했지만 탈냉전 이후 20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이 모든 노력의 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과거의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이미 끝나버린 ‘남북대결’의 구도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결과 남북간에는 상호비방과 위협을 넘어 군사적 충돌까지 발생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명박 정부는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를 발전시키지 못한 무능한 정부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와 다시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올해 2012년은 변화의 해가 될 것입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습니다. 러시아는 얼마 전 대통령 선거를 마쳤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권력교체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역시 올 연말에 정부가 교체될 예정입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과거 20년의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큰 도전에 직면하여 저는 오히려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봅니다. 일찍이 토인비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인간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기록이며, 또 인간은 그 응전을 거쳐 역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인간은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내고, 단순히 위기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새로운 시대의 자양분으로 삼곤 했습니다.
이미 미국은 북한과 새로운 협상과 합의를 통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북미합의를 계기로 굳어져있는 동북아 다자대화구조를 복원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그릇된 외교안보정책을 바로잡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만들어갈 새로운 정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 역시 결코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동북아 국가들의 권력교체기라는 변화가 바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때를 잘 살려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안정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해법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빨리 매듭짓는 것입니다.
탈냉전 이후 동북아에서 최초로 맺어진 안보협약인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은 평화체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합의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체제로 ‘관련 당사국들 간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을 활성화하자는 내용입니다. 북한이 ‘평화체제’ 논의를 협상용 카드 정도로 생각할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계산과 달리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어 ‘핵 이후의 북한’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평화체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되면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미국은 고사하고 남북 간 군사 균형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억지력은 상실되는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도 중요하지만, 동북아 각국이 제도적 차원에서 합의한 평화체제야 말로 이 위험천만한 국제관계에서 스스로를 지켜줄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북한이 안정을 느껴야 남북대화와 협력도 과거의 성과를 넘어 ‘남북공동체’ 건설을 위한 진정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북핵 폐기를 위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북핵폐기 절차와 방법 논의와 병행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본격화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평화는 경제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방비는 260억불로 GDP 대비 2.7%에 달합니다. 물론 미국의 4%, 중국의 4.3% 보다는 낮지만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OECD국가들인 독일의 1.4%(410억불), 프랑스의 2.4%(440억불), 일본의 0.8%(700억불)에 비해 훨씬 큰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우리 국방예산에서 최소한 50억불 이상의 재원을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에 당장 투입할 수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에까지 평화구조가 수립된다면 국방비는 현재의 절반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북한 역시 과도한 군사비의 부담에서 해방되어 그 재원을 국가경제 재건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평화가 바로 경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세미나는 이처럼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지혜를 모으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았고 현재 민주통합당의 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송민순 의원님을 비롯하여 다년간 한반도와 동북아를 주시하고 연구해 오신 각국의 전문가들이 고견을 발표하시고, 한국 최고의 대북전문가들이 패널로서 수준 높은 토론을 해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많은 전문가들께서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활발한 토론으로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기꺼이 사회와 발표, 토론을 맡아 주신 전문가들과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번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문정인 교수님,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님, 그리고 실무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자리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정착에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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