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왔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의 해체와 통합이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당들은 내년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와 쇄신을 외치며 몸부림치고 있다. 기존 정치권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후보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만큼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원순 시장을 도왔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수많은 정치인들을 제치고, 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를 한국 정치사에서 터닝 포인트라고 불릴 만한 이유다.
돌이켜보면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40(20대·30대·40대)이 주도한 선거혁명이었다. 시민진영의 박원순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과정에서 민주당 후보와의 예선전(후보 단일화)에서 승리한 데 이어, 본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마저 쓰러뜨렸다. 박원순 후보가 당선한 것은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젊은 층이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선거를 주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불과 4년여 만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촛불 집회를 주도했던 젊은 층이 기성 정치권에 레드카드를 빼든 것은 정치권의 철저한 폐쇄성에 따른 ‘불통 정치’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선거 때는 각종 공약을 쏟아내며, 국민들의 아픈 부분을 어루만져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국민들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면서 젊은 층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들이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에게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정치구호인 중도실용, 친서민, 녹색성장,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은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 했다.
과다한 등록금, 청년 실업증가. 육아와 보육문제, 치솟는 전세값, 갈수록 확대되는 양극화 등을 보며 더 이상 앉아서만 있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현실정치로 끌어들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 분석실장은 “젊은 층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상태에서 오히려 정치보다는 경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정치 무관심층’ 이었다”며 “하지만 생활하면서 과다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의식화되고, 특히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중 30대는 기존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강도가 가장 높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의 80% 이상이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30대의 70% 이상은 오랫동안 한국정치의 양대 산맥 역할을 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청산의 대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이 기존의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 원장에 폭발적 지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기성정당에 대한 혐오감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
왜 30대는 유독 정치권을 극도로 불신할까. 2011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을 보면 분명해진다. 1970년대에 태어난 30대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단계를 경험하며 자랐다. 때문에 이들은 전 세대와는 달리 경제적 혜택과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과도한 사교육의 틀과 경쟁속에서 자랐다.
이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 두 사건은 30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IMF 위기 때는 아버지의 실직을 직접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부모가 실직한 30대는 강의 수강과 ‘알바(아르바이트)’가 대학생활의 전부였다. 시급 4000원짜리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면 그들의 몸은 항상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이들에게 커피전문점에서 6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연애와 사랑은 사치였던 것이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려는 꿈이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어도 대학 때 받은 학자금 대출이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직장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으므로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다. 대학진학률이 80%를 상회하는 요즘 졸업생 두 명 중 한명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30대의 처지를 두고 최근에는 ‘삼포(三抛) 세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삼포(三抛) 세대’란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인데 이 세 가지는 연애, 결혼, 출산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는 전세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이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기약 없이 미루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서, 나이는 먹어가고/ 무슨 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결혼도 연애도 집도 차도 내 몫은 아닌 듯한 밤/…/대학 가면 빚더미, 난 평생 일개미/경쟁에 밀려, 시간에 치여/ 대학 가면 빚더미, 난 평생 일개미.”
아카펠라 그룹 원더풀(One The Full)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린 노래 ‘삼포세대’의 가사는 이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자이자 의 저자 엄기호씨는 “청년층에게 연애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하는 생애사적 기획이 불가능해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초혼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1990년에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8세, 여성 25세였다. 그러나 2010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2세, 여성 29세로 20년 만에 무려 4년이 늦춰졌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 가운데 불과 20년 만에 젊은이들의 초혼연령이 평균 4세가량 상승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이는 청년들이 ‘취업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더 이상 결혼에 대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과연 어떻게 대책을 세웠나.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구조조정을 덜 하는 대신에 대졸 초임 임금부터 깎았다. 반값 등록금 공약도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나왔지만 아직 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여야 모두 선거 때는 화려한 말잔치를 하지만 선거만 지나면 ‘나몰라라’하고 있다.
직장을 잡아서 겨우 결혼을 했지만 30대에게는 그 이후가 더욱 심각하다. 특히 대부분의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출산이 쉽지 않다. 그래서 첫째 아이 낳는 것을 미루고 있다. 출산해서 아이를 키우고 다시 취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다해도 육아비용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해마다 치솟는 전세값은 30대 부부들에게 주거불안의 요소다.
역대 투표 결과를 볼 때 30대는 항상 진보·개혁적이면서 합리적인 투표 성향을 보여 왔다. 최근 30대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보면 지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과 유사하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겨룬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30대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30대는 59.3%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회창 후보의 지지는 34.2%에 그쳤다.(KBS·미디어리서치 출구조사 결과) 또한 2년 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후폭풍까지 겹쳐, 신생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단숨에 과반수 의석(전체 299석 중 152석)을 차지, 최초로 민주진보진영이 의회권력을 장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는 30대가 한나라당의 후보에 손을 들어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전국 15개 광역단체장 중 유일하게 전북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하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30대에서 40.4%의 득표율을 보여,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여유 있게 물리쳤다.(SBS·TNS 17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촛불집회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급속히 민심이 이반됐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에서 30대가 대거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이명박 정부를 심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30대의 지방선거 투표율은 18대 총선 투표율(35.20%)보다 10%포인트 높은 45.95%를 기록했다. 이 같은 높은 투표율은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 몰표로 나타났다. 지방선거직후 발표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30대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64.2%의 지지를 한 반면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는 고작 27.8%의 지지에 그쳤다. 하지만 한명숙 후보는 아슬아슬하게 오세훈 후보에게 패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응징한 30대는 지난 4월 27일 재·보궐 선거에서도 ‘30대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경기 성남 분당을 선거의 경우 민주당 손학규 후보는 30대로부터 75.5%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21.1%)를 눌렀다. 소위 말하는 ‘넥타이 부대’ 와 ‘힐 부대’의 지지율이 민주당 손학규 후보로 쏠리면서 투표마감 한 시간 전인 오후 7시까지 42.8%에 머물렀던 투표율이 마지막 1시간 동안 6.3% 포인트 끌어올리며, 최종 투표율은 49.1%를 기록했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30대는 ‘선거의 여왕’이라 일컬어졌던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무력화 시켰다. 박 비대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재·보선 40전 40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늘 박 전 대표 이름 앞에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다. 박 전 대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열심히 뛰었다. 박 전 대표는 공식적인 서울시장 선거기간 13일 중 8일을 서울에 할애하며 나경원 후보를 지원했다. 하지만 30대는 ‘박근혜 신화’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결과 30대 투표자 74.7%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
최근에 30대는 반(反)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다. 특히 30대 여성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남성보다 더욱 강하다. 이들은 지난 촛불집회에서는 유모차 부대 역할을 했고,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 야당 후보를 찍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30대는 20대 보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고,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층”이라며 “특히 30대 여성은 지난 2008년 촛불집회에서 ‘유모차 부대’라고 불렸듯이 반 한나라당 정서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정치현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30대에서 무섭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SNS는 30대에게 정치의식을 높여주고, 선거참여를 견인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민주당도 ‘30대 지지 프리미엄’이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30대가 과거에 그래왔듯이 언제든지 민주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최근 30대가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는 것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더 싫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실정으로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들이 30대의 표심을 얻으려면 뼈를 깎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대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의외의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30대와 함께 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꾸준히 인식시켜줘야 한다. 민주당이 30대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기존의 선거에서 그래왔듯이 민주당은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통해 승리하려는 생각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과 연대를 위해 당과 30대를 잇는 소통의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30대 유권자들을 정책패널로 선정, 정책 입안 시 이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30대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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