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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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1. 지역감정에서 세대로 

나는 서울 출생이고, 부모도 양가 모두 서울 출생이다. 인천을 빼면 서울 바깥으로 나가본 것도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다. 그것도 1학년 여름 MT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곳에 나가본 것이다. 그런 내가 부모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은 전라도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부모들이 했던 얘기는 중학생 이후로는 전부 콧등으로만 들었던 나라서, 그 말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완전히 서울 사람들인 부모들도 왜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했는지, 그 연유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정치만이 아니라 한국의 많은 일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 중의 일부는 악의일 것이고, 어떤 것은 전혀 악의가 없으면서도 당사자들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로 작동될 것이다. 사람들의 정서나 감정은 과학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듯하면서도 때때로는 과학이나 통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는 놀이를 종종 한다. 대표적인 게 그 악명 높은 B형 남자. 빨리 변한다는 걸로 유명하다. 내가 그 B형 남자다. 최근에 난중일기를 분석하면서 이순신이 AB형일 것 같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는데, 이게 한동안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지, 한동안 내부적으로 이순신의 혈액형을 추측하는 게 유행하기도 했었다.

혈액형과 지역감정, 과연 어떤 것이 더 과학적이고, 더 많은 통계성을 보여주고, 일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자동차의 우측통행과 좌측통행의 기원을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 섬나라들은 주로 좌측통행을 한다는 설명이 있기도 하다. 물론 별로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사회라는 것은 복합적이라서, 명확하게 연유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뒤섞여서 움직여나간다. 그건 아무리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이렇게 신화와 미신들이 섞여서 움직이게 마련이다. 만약 혈액형에 대한 얘기들이 지금보다 더 인기를 가지게 된다면, 대통령의 혈액형 혹은 국회의원의 혈액형을 따지려드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게 과학이든 아니든, 어쨌든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정치적 변수 1번은 출신 지역이었던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과거만이 아니다. 당장 호남에서 서울로 출마지역을 옮기는 정세균 전대표의 경우나, 관악을 출마지로 결정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나, 지역거주민들의 출신 지역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지역분할 구도는 미신과 편견 여기에 박정희와 DJ라는 전설이 뒤엉켜져서 만들어진 매우 특수한 한국적 구도이다. 2010년대, 누구나 이게 문제라고는 어느 정도 생각을 하지만, 막상 투표장에 들어서는 순간에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지역이라는 구도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국의 정치 지평에, 세대라는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하였다. 투표상으로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추세로 자리 잡은 것은 2011년의 일이지만, 한국에서 세대 현상들이 등장한 것은 조금은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듯싶다. 졸저 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의 일이지만, 최소한 경제적 문제에서 20대에게 전혀 다른 패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내가 목격해서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의 일이다.

일본식으로 얘기하면 ‘프리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한국에서도 관찰되는 것은 물론, 일본보다는 훨씬 약한 지자체의 역할 등을 이유로 나는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열악한 집단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가 참여정부 시절이었는데, 그 후로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대체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했던 경제 정책은 최소한 청년 정책에서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아무 것도 없었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대졸 초임 삭감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황당한 조치였는데, 사회적으로 비교적 큰 저항 없이 그냥 통과되었다. 대략 20~25% 정도의 초임이 삭감되었고, 중간간부, 한전의 경우에는 차장으로 진급할 때까지 이 삭감된 임금 테이블은 유지된다. 여기까지 진급하는데 20여년 정도, 이 조치는 5% 정도로 얘기할 수 있는 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데 성공한 20대들의 경제적 상황마저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대를 축으로 정치에서 세대현상이라는 것이 본격화된 것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보궐선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99:1이라는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슬로건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20대 혹은 청춘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으로 청춘들에게 경제적 고통이 처음 시작된 것만도 아니다. 충격적 발현은 2008년 이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이미 2005~2006년 경으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항목별 문화지출비를 살펴보면, 도서, 음반 등 많은 문화 영역의 지출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은 2002~2003년이 한 축이다. 이 시기가 바로 개인들의 저축이라고 할 수 있는 순저축이 급격하게 줄어든 해이기도 하다. 지표만으로 보면, 지금 한국 경제가 맞게 된 어려움의 출발점은 2003년, 이게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6년, 그리고 본격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이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도 아니고, 경제 역시 그렇게 순차적이며 합리적으로만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신화와 우상 혹은 편견들이 2012년을 정점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이 속에서 흔히 2040이라고 부르는, 그런 정치적 측면의 세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 여기까지는 알겠다. 그리고 SNS라는 매체를 축으로, 이 새로운 힘이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까지? 그 한계치를 가늠하고 싶어지지 않으신가?

 

2. 힘은 어디까지? 

한국보다 조금 먼저 세대 현상을 겪은 곳이 일본이다. 한국의 청년 유니온의 모델이 되기도 한 수도권 유니온 등, 일본에서는 세대 현상이 68 전공투 이후로 노령화되어가던 시민운동의 형세를 바꿀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마아 카린이라는 극우파 밴드 ‘유신적 성숙’의 보컬 출신인 영웅도 등장하였다. 이 흐름은 결국 영원할 것 같은 자민당 정권을 내리고 새로운 민주당 정권을 만들게 하였다. 물론 일본의 자민당 정권을 내리게 한 힘은 꼭 이렇게 청년들의 투표 참여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농가에 소득보전을 해주는 직불제를 전면 도입함으로써, 자민당 지지구역인 농촌지역이 민주당 지지구역으로 변하기도 하였다(직불제는 한국에도 도입되었지만, 이걸로 인해서 정치 지형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런 일본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를 놓고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그 힘의 강도가 보이기는 할 것 같다. 일본의 청년 운동을 이끌어간 또 다른 영웅인 유아사 마코토는 동경대학 법대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빈민운동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30대 문제라고 불리는 파견사원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토요타 등 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에서 벌어졌다. 일본 기업들은 위기가 벌어지자 파견 직원들을 우선 해고하였는데, 그들이 대체적으로 30대였다. 당시 파견 직원들은 회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토요타 직원이 바로 다음날, 잡리스이며 홈리스인 그런 일이 집단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이들이 ‘파견 마을’이라는 집단 농성을 시작하였고, 이들의 농성을 지원한 사람이 바로 반빈곤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이었던 유아사 마코토였다.

프리타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아마미아 카린, 파견마을의 영웅 유아사 마코토 같은 새로운 청년 운동 혹은 빈곤 운동의 지도자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일본은 정권을 바꾸었다. 유아사 마코토는 새로운 민주당 정부의 총리 자문관으로 정부에 직접 참여해서 빈곤층의 원스탑 서비스를 직접 행정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주도하기도 하였는데, 아쉽게도 이러한 실험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못했고, 그는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왔다.

일본과 비교하면, 일반 노조라는 규정의 틀을 청년 노조에게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적용해주지 않는 한국의 노동부는 좀 더 악랄하다. 그렇지만 이런 중간 장치들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알바 등 한계 계층의 상황이 더 어렵다. 에너지는 더 넓고 깊지만, 일본처럼 조직화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건 한국의 시민사회나 청년의 조직력이 더 약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청년 노동 등 신빈곤 현상이 등장한 것이 한국이 더 짧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4년 정도를 격차로 일본과 한국의 흐름이 거의 같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도 곧 영웅이 등장할 것으로 나는 예상하고 있다.

투표행위라는 것만을 놓고 본다면, 한국에 남아있는 변수는 한 가지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혹은 영남과 세대투표, 과연 어느 것이 높을까? 이건 일본과는 좀 다른 변수이다. 물론 일본에도 지역별 차이라는 건 분명 존재하지만,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한국처럼 영남과 영남 아닌 곳,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부산, 대구, 울산, 이런 곳들이 남아있는 주요 변수이다. 적은 샘플이지만, 나도 계속해서 수 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는데, 확실히 분위기는 그 때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총선이라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의미하게 작동할 것인가, 아닌가, 아직은 판단이 쉽지 않다.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천지개벽할 정도의 변화가 없다면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지금의 흐름을 뒤엎기는 어렵다. 다만 총선에서 영남을 근거지로 어느 정도 보수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예전의 자민련처럼 구시대의 정당 혹은 소멸 중인 정당으로 확 세가 줄어들 것인가, 그 정도만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3. 청년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지금의 20대에서 40대 사이에 문화적 공통점은 그렇게 많지 않고, 정서적이든 이념적이든, 그렇게 균질하지 않다. 그들을 움직이는 지금의 정치적 흐름의 밑에는, 근본적으로는 MB가 있고, 그 밑에는 그가 강바닥에 처박은 22조원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대한민국 청춘의 미래를 강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요즘 MB의 경제운용을 설명하면서 내가 종종 쓰는 말이다. 이 말만큼 현 상황을 잘 요약해주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이며, 전형적인 토건행정의 폐해가 결국은 개개인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게 지금의 한국이다.

“시멘트가 아닌 사람에게”, 민주당이 토건 일본을 이끈 자민당으로부터 정권을 받아오면서 썼던 구호이다. 우리도 거의 유사한 구호가 아마도 금년 총선과 대선에서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개혁이 얼마나 성공했을까? 결과만을 놓고 보면, 구호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정책이 바뀌지는 않았고, 관료라는 눈으로 보면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일본의 알바들은 한국보다 최저 임금이 2배 정도로 좀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이 질문이 지금 반MB를 명분으로 연정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청춘에게 어떤 경제를 약속할 수 있는가? 투표라는 순간은 드라마틱하고 격렬하며, 동적이지만, 하나의 점일 뿐이다. 진짜로 세상이 변하는 것은, 그 점이 연결된 하나의 선이 될 때의 일이다. DJ 당선의 순간, 노무현 당선의 순간, 화려했지만 하나의 점이었고, 그 점들은 연결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지난 10년간 하나의 경향처럼 굳어졌던 정치 무관심의 근본 원인 아니었을까?

나는 다음 번 출범하게 될 정부는 결국 ‘시민의 정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민들이 지금 탄생하고 등장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20대에서 40대, 그들의 정치 참여는 시민 참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지도자 없이, 조직 없이, 그렇지만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진행되는 중이다. 그 힘으로, 정권은 바꿀 수는 있다. 결국 투표는 유휴투표수가 결정하는 것이고, 지금과 같은 사회적 흐름이라면 이번 대선은 OECD 국가 내에서는 상상초월의 투표율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역시 꿈은 꿈이었을 뿐이야”라고, 5년 후에 지금의 이 시간을 회상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시민의 정부’ 5년, 그 후에 ‘민중의 정부’ 5년, 그렇게 10년을 거치면서 한국이 훨씬 더 합리적인 경제이고, 진짜로 넉넉한 나라가 되어있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다음 정권이 성공한 정부가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지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20대에게 약속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지금 공약이나 약속의 형태로 그런 것이 제시되지 않으면, 지금 민주통합당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금방 ‘보수의 회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대현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문화 현상이고, 그래서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크다는 것, 세상사의 간단한 이치이다. 청년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지금 그 고민이 빠져있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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