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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불안이 삶을 잠식하다

1. 보수화 되지 않는 40대 

지금부터 무려 5천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자료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인의 평균 수명은 25년이었다. 당시의 40대는 평균수명보다 20년 정도 더 산 사람들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100살인 셈이다. 그들은 ‘젊은 것들’이 아니라,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20대 때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요, 40대 때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정의감에 진보적 성향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 감에 따라 점차 보수화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처칠(그는 보수당 소속이었다)이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은 심장이 없는 20대(즉, 보수적인 20대)가 아니라 뇌가 없는 40대(즉, 진보적인 40대)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는 40대가 20대~30대와 함께 진보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40대의 67%가 야권의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고, 33%만이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지지(출구조사 결과)했다. 2배 이상의 차이다. 지난 4월 27일 분당 보궐선거에서도 40대는 민주당의 손학규 후보를 69%,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30% 지지(출구조사 결과)했다.

만일 처칠의 비판이 옳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많은 생각을 해야 할 이들 40대들에게 뇌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처칠의 지적대로라면 보수화되어서 한나라당 지지의 기반이 되어야 할 우리나라 40대들이 왜 이렇게 민주진보세력의 강력한 중추세력이 되고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한국 40대의 역사적인 특징, 흔히 486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세대적 특징(연령적 특징이 아닌)이 그들을 나이가 먹어도 계속 진보적 성향을 가지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과 한국에서의 사회 양극화, 특히 이명박 정부의 1% 부자만을 위한 정책과 민생불안이 우리의 40대가 20~30대와 함께 진보진영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486세대의 역사적 진보성 

필자는 지난 10월 4일 발행된 졸저 『진보세대가 지배한다 - 2040세대의 한국사회 주류선언』에서 현재 유권자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2040세대가 ‘진보세대’이며 이들이 한국정치와 사회의 주류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내 책의 주장이 그대로 현실화 되어 책이 제법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2040세대’라는 단어가 거의 유행처럼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2040세대에서 2030세대와 40대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지금의 40대를 가리켜 흔히 ‘486세대’라고 호칭한다. 이는 이들이 현재 40대이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6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30대일 때 ‘386세대’라고 했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486세대’로 바뀐 것이다. 이 호칭은 이들 세대의 역사적 맥락 내지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들은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승리를 경험한 세대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한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충격 속에서 20대 젊은 시절을 보냈고,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결국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를 실현한 세대다.

이들에게 20대 때의 경험은 이후에도 그들이 민주주의와 진보적 성향을 지탱하게 만든 힘이 되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승리가 지역주의 체제로 귀결되는 것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이들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탈지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2030세대와 더불어 진보적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우리의 40대가 진보적인 이유는 계층적‧경제적 요인도 크지만 가치‧문화적 요인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 세대는 사회에 진출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전에 IMF 경제 위기를 맞았고 이로 인해 현재의 양극화 사회와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40대가 진보적인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젊은 날 겪었던 뜨거운 체험 때문이다.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 의식 세계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진보적인 것이다.

그래서 40대 중에서도 더 많이 배우고, 더 사회적 여건이 좋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진보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강남 좌파’의 전형이 바로 486세대와 일부 50대다. 강남에 거주하는 중산층이라는 계급에 속하면서도 정치사회의식이 진보적인 것은 이런 가치‧문화적 요인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 정치의 역사가 그들의 정치의식에 남긴 기록이다. 486세대가 같은 진보 세대이면서도 20~30대와는 다른 측면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근간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는 한국정치 변화의 ‘태풍의 핵’인 2030세대는 40대와는 조금 다르다. 40대의 민주적 성향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형성된 ‘가치‧문화적’인 것이라면, 20~30대의 진보적 성향은 IMF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겪으면서 형성된, ‘계층적‧경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0 대 80의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저항 의식과 세대 정체성을 키워 가고 있는 것이다. 신규로 사회에 편입한 20~30대에게 하위 80% 트랙만이 허용되는 ‘20 대 80 사회’가 이들을 진보적으로 만든 것이다.

정치학에서 ‘연령변수’와 ‘세대변수’는 다른 의미다. 앞에서 인용한 처칠의 말이 연령변수, 즉 정치성향과 연령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면, 다음의 케인스의 말은 세대변수, 즉 정치성향과 세대의 관계를 설명한다. 케인스는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에 결정되어 대체로 평생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에 개인이 적응한다기보다는, 개인은 자기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데 세상이 변화해 그 사람의 생각이 쓸모 있어지기도 하고, 쓸모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세대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신들 세대만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참으로 타당하다. 그래서 처칠의 지적과는 달리 나이를 먹어도 보수화되지 않는 세대를 역사에서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젊은 시절에 경험한 세대는 전후 복지국가를 만들었으며,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어도 계속해서 복지국가를 지지했다. 한국의 486세대도 그런 의미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칠의 지적대로라면 이제는 보수화되어야 할 한국의 486세대가 여전히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 세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그들 세대만의 정체성 때문인 것이다.

 

3. 40대의 삶과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40대는 IMF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사회 진출을 마친 연공서열의 마지막 세대다. 이들 세대만 해도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직장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IMF 경제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제대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갑자기 사다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40대는 ‘불안’에 떨고 있다. 지금의 40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불안’일 것이다. 우리의 40대는 오늘의 노동이 내일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자신들은 물론 자녀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불안’이 지금 40대의 삶을 잠식하고, 나아가 40대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40대는 일자리 불안, 주거불안에 고통 받고 있다. 대학에 보낸 자녀의 연간 1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 때문에 등골이 휘고 있다. 갈수록 생활고가 심해지고 부담이 늘어가는 데다가 노후생활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복지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면서 이들은 노후 불안에 떨고 있다. 고령화 사회는 이미 도달한 반면 외환위기 이후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 사회가 안전망마저 갖추지 못함으로써 40대가 이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자신이 지금 대기업 과장ㆍ부장이고 억대 연봉을 받고 있더라도 언제든 순식간에 중산층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추락에 대한 불안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부실한 사회안전망에 불안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40대는 여느 세대보다 더 위기감을 느낀다. 1970~80년대 한국경제가 본격 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혜택을 본 세대지만 사회에 안착하려던 무렵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는 경험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경제는 더욱 나빠졌고, 40대는 경제ㆍ생활 전선의 벼랑 끝에 서 있다. 남편은 ‘전세대란’에, 부인은 ‘물가대란’에 시달린다. ‘자수성가’한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고통이 심화된 것이다. 이는 이 정부 전부터 시작된 양극화가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20 대 80 사회’, 즉 20%의 부자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80%의 국민이 남은 20%의 몫을 놓고 경쟁하는 사회를 지칭하는 이 표현처럼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것도 드물다. 지금 한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20 대 80의 이중구조’가 구조화되어 있지만 특히 다음의 여섯 가지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여섯 가지의 ‘20 대 80의 이중구조’가 지금 40대의 삶과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의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자본소득분배율과 노동소득분배율의 양극화

전체 국민소득에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 주는 노동소득분배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반면, 자본소득분배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들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대부분 70~72%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2009년 기준 60.9%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2010년에는 59.2%로 떨어졌다. 개별 근로자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② 중심부 일자리와 주변부 일자리의 이중구조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은 중심부 일자리(정규직, 대기업, 공공 기관)와 주변부 일자리(비정규직, 저임금 근로, 중소기업)로 이중구조화 되어 있다. 노동인구의 20%는 중심부 일자리의 정착민으로, 80%는 주변부 일자리의 유목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이들 두 노동시장 간의 이동은 거의 없다. 중심부 일자리는 막혀 있고, 한번 주변부 노동시장에 들어서면 평생 주변부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

 

③ 중산층 노동자를 위한 복지와 넓은 복지 사각지대의 이중구조

우리의 복지제도는 시민권을 바탕으로 하는 보편주의에 입각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와 연계된 혜택과 기여도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안정적 일자리를 가지면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등 제때 제대로 기여를 해야 한다. 이는 20%의 중심부 일자리에 종사하는 중산층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복지제도다. 그래서 우리의 복지제도는 분배구조를 향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진성을 가진다.

 

④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

일자리의 8%를 담당할 뿐인 대기업은 갈수록 성장하는 반면, 일자리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갈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특히 친재벌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들어 친재벌 정책(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 분리 완화,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이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재벌들은 눈부시게 성장한 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⑤ 교육투자와 일자리 : 과다 투자와 과소 회수

현재 청년층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막대한 사교육비와 학비(일반 고등학교의 경우 연간 145만 원,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 연간 1,200만 원)를 지불해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 등록금(2010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 754만 원)과 취업 과외비(연평균 200만 원)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이들은 대부분 주변부 노동시장에 편입되기 때문에 이런 투자를 보상받지 못한다.

 

⑥ 부동산 소유의 이중구조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과도하게 올라 있어서 살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집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전세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시 근로자 가구의 저축 가능액(80만 원)을 매년 모았을 때 30평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47년이 넘게 걸린다. 201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상위 20%와 하위 20% 간 보유 자산의 격차는 무려 474배에 달한다.

 

4. 2012년이 40대에게 부여하는 두 가지 소명 

우리의 40대는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이었고, 1997년 김대중 대통령,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주역이었다. 그 동안 대한민국 민주화 가치의 중심이었다. 보통 40대가 되면 보수화되는데 반해 우리의 40대는 여전히 진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40대에게 1987년은 청춘의 기억 한가운데에 박혀 빛을 잃지 않고 있는 보석과도 같다. 그런데 그 1987년이 2012년을 맞아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2012년이 40대에게 부여하는 두 가지 소명이기도 하다.

첫째는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1987년이다. 1987년은 제13대 대선이 치러진 해로, 이때부터 정착되기 시작한 지역구도는 2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지역구도는 세대구도로 바뀌고 있다. 2012년은 1987년 이후 25년간 지속되어 온 지역구도가 세대구도(사실상의 계층구도)도 바뀌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40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2012년이 40대에게 부여하는 첫 번째 소명이다.

둘째는 경제‧사회적 의미에서의 1987년이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분배와 성장이 좋았던 시기였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도 이 시기에 가장 높았고, 지니계수도 이 시기에 가장 좋았다. 또 내수 중심 경제가 자리 잡은 시기도 이때였고, 그로 인해 경제성장률도 8.3%로 대단히 높았다. 그야말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이뤄진 시기인 것이다. 2012년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될 민주진보정부는 1987년 이후 10년간의 내수 기반 경제성장 체제를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40대의 강력한 지지가 다음 정부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2012년이 40대에게 부여하는 두 번째 소명이다.

민주화와 민주화 이후의 한국 역사를 이끌어온 40대에게 2012년은 그들이 또 다른 역사적 소명을 해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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