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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경제의 허술함

• 서평 :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지음. 어크로스. 2012. 3)

 

 

탈성장은 금융자본주의라는 파괴적 성장체제를 낳았다

사실 탈성장 시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선순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지표상으로는 선순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모두 허구적 지표에 불과한 것이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는 그의 책 ‘에콜로지카’를 통해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한 바 있다.

 

20세기 후반 전산화와 로봇화 때문에 기업은 노동량을 적게 들이면서도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노동력을 적게 투입하기 때문에 상품의 금전적 가치도 하락했다. 여기서 생기는 역설은 기업이 더 이상 생산과 생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축적된 자본의 많은 부분을 금융자본의 형태로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금융자본주의는 오로지 돈 만을 사고팔면서 돈 버는 법을 끊임없이 세련되게 만드는 허구에 불과하다. 이는 대부분 부채와 선의, 불안과 공포에 근거해 작동한다.…(중략)…그러나 이 경제성장은 안팎의 부채에 토대로 하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을 포함한) 세계 성장의 주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실물경제는 금융산업이 먹여 살리는 투자의 거품에 달린 꼬리격이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면 부풀어 오른 이 거품이 꺼지고, 은행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전 세계적 신용체계는 붕괴 위험에 처하고, 실물경제는 오래도록 이어지는 극심한 불황의 위협을 받는다.

 

아이슬란드, 왜곡된 경제 질서의 축소판

저자는 이 책에서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며 금융자본주의의 폐단을 설명한다. 특히 북유럽의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일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탐욕이 어떻게 전 세계의 아주 평범한 개인을 변화시켰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아이슬란드는 골드만삭스와 모건 스탠리의 조언을 받아들여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국민에게 전파한다. 우선 아이슬란드는 외국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였다. 갈 곳을 헤매던 국제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몰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아이슬란드의 은행이 이 돈을 기업의 생산 활동이 일어나는 부분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은행은 이 돈을 국민들이 부동산과 주식, 각종 자산을 사들이는데 사용하도록 풀었다. 국민들은 너무나도 쉽게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아 각종 상품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국민 모두가 투자자가 되어 주식 붐이 일어나고 부동산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슬란드 은행은 거액의 외국 돈을 빌려 해외의 자산을 매입하는 데에 집중했다. 나라 전체의 부가 채무를 통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모두 미래를 굳게 믿고 있었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부자가 될 것이라는 허구적 낙관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무너진 것은 한 순간이었다. 2008년 10월 아이슬란드의 3대 은행이 모두 붕괴했다. 아이슬란드의 국내주가는 5분의 1토막이 났다. 이에 투자했던 국민들은 수백억 달러를 날린 것이다. 연이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이슬란드의 국민 3분의 1이 이민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탐욕’만을 추구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 경제학 및 경제 시스템의 실패와 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현 경제 질서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금융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에 근거해 작동한다. 이는 국민 모두가 탐욕만을 가장 높은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들이 본능적인 이기적 욕구에 충실해 경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국민은 오로지 숫자의 상승과 이윤창출에만 집중하는 존재다. 행복이 GDP, 주가 상승, 신용평가사의 등급 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삼성전자의 주가가 올라서, 국가에 대한 신평사의 등급이 높아져서, GDP 수치가 높아져서, 우리는 한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행복추구권’은 기본적으로 ‘자유권’을 전제로 한다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국가 권력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포괄적(包括的)인 의미의 ‘자유권’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이 법령을 확장해 해석해보면 행복추구권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 국가권력이나 경제체제의 간섭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하에 우리의 ‘자유’는 얼마나 거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당신이 만약에 핵발전소 건설에 완고히 반대하는 일반 시민이라고 치자. 하지만 당신이 가입한 국민연금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었다면? 당신이 정말 필요에 의해 산지 2년이 채 안된 스마트폰을 새 핸드폰으로 바꿨다고 치자. 그러나 만약 그 ‘필요’가 기업이 만들어낸 허구적 욕망이었다면? 기업은 수많은 광고를 통해 소비자가 끊임없이 신상품을 구매하도록 강요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심지어 상품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시키기도 하고 A/S가 불가능해지도록 상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파괴적 성장의 결과물이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탐욕을 추구해야 하며 이런 과소비에 근거해 후기 자본주의는 작동해왔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말한 ‘자유’라는 근본적 명제와 맞닿는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본으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여기서의 자유란 단지 ‘~을 할 자유’(freedom)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의 자유는 독재정권의 시대에서 존재했다. 나치정권 때도 시민들은 먹을 수 있는 자유, 입을 수 있는 자유, 사랑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했다.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으로부터의 자유’(liberty)를 의미한다. 이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체제로부터의 자유, 집단주의 및 헤게모니부터로의 자유 등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와 파괴적 성장으로부터의 자유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이는 분명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

박노해의 시중에 '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는 시가 있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이 늘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던가? “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 좋은 대학 나와 ‘전문’ 직업을 가지고 상위 1%의 경제체제에 편입돼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리고 살아라.” 8090세대의 부모님들은 IMF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다. 그 당시 직장이라는 개념은 평생의 동반자였다. 그러나 IMF는 정리해고라는 제도를 도입했고 조기퇴직을 유발했으며 대량 실업자를 양산했다. 저자도 감탄하지만 이런 충격 속에서 한국 국민들은 큰 저항 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말대로 삶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고통 속에서 체제를 위협할 만한 집단적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때의 실직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저자는 책의 서론 부분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평범한 대한민국 3인을 소개한다. 그들도 한 때는 사장님, 은행원, 기업가였다. 그러나 20년 뒤 그들은 성벽 밖의 경제에 편입된 비정규직과 소규모 자영업자로 전락한다. 성벽 안의 경제는 1% 만을 위한 경제다. 글로벌 대기업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한국경제의 11%만을 차지한다. 한국경제의 89%의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영역은 성벽 밖 경제이다. 비정규직과 자영업 등이 여기에 속하며 대부분 낮은 소득과 낮은 생산성을 보인다. 문제는 11%에서 활동하는 경제인구 조차도 가까운 미래에 또는 먼 미래에 언제라도 89%의 불안한 경제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8090세대는 대기업 취업과 동시에 20년 뒤 어느 장소에 치킨집을 내야 장사가 잘 될지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모님께 진실을 말씀드려야 할 때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는 좋은 대학을 나와도 빚내서 훌륭한 자격증을 따도 집 한 채 살 수도 없고 빛나는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어요."

 

타임지는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the protester)'를 선정한 바 있다.

 

새로운 경제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제 당당히 거부해야 한다.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우리의 부모님의 말처럼 우리가 그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선 이상한 나라의 괴상한 경제시스템을 거부해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이 경제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출구를 안내한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포스트 금융위기체제를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경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과 만족을 어떻게 극대화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기본적인 명제에 충실한 ‘착한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GDP만으로 주가만으로 신용등급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인간은 탐욕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공정무역이라는 트렌드와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통해 증명된다. 이제 공동생활과 소비, 생산, 분배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사회적 실험’이 필요한 때다. 공유와 나눔이 국가회계도표에서 손실로, 국민총생산의 하락으로 표시되는 이상한 나라의 경제 질서를 당당히 거부하자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의 경제적 자유(liberty)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경제 시스템에서 우리의 자율공간이 커질 수 있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회적 경제를 향해

저자는 새로운 시스템을 사회적 경제라고 정의한다. 이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제다. 탐욕 대신 이타심, 상호성, 협동, 사회적 목적, 명예와 헌신과 같은 동기가 이 사회적 경제를 움직인다. 소비자들은 공정무역과 같은 착한 소비를 추구하며 건물이나 돈, 시간 등과 같은 자원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협동소비를 한다. 새로 구축된 경제에서 소비자는 과소비가 아니라 윤리와 협동으로부터 즐거움을 찾는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월급 뿐 아니라 가치와 보람의 형태로도 주어지게 된다. 기업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책임경영을 시행하고 투자자는 기업의 지배구조, 환경, 사회를 고려해 책임 있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 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려고 노력하며 각 지역구는 협동조합이 육성되도록 도와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러한 경제체제의 핵심은 무엇보다 우리의 ‘자율성 확보’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보이지 않던 거대경제의 손이 보이고 그들에 의해 침해됐던 우리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곤 어떻게 하면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경제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된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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