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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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얼굴 - 강정마을

1. 강정마을에 비친 대한민국의 얼굴
2012년 3월 19일 제주 어느 화약고의 정문 앞. 10여명의 활동가는 구럼비 폭파에 사용되는 화약의 운반을 막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서로의 팔을 PVC 파이프로 연결한 것이다. PVC 파이프 안은 연결이 풀리지 않게 붕대와 등산용 자일을 이용해 서로의 팔을 결박했다. 해외에서 ‘공간’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팔을 파이프나 기타 구조물(시멘트로 팔을 연결한 사례도 있다)로 연결해 연좌시위를 벌이는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러한 방식을 ‘슬리핑 드래곤(Sleeping Dragon)’이라 부른단다. 그렇게 부르는구나. 언젠가 그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돌아설 때, 그 이름이 가진 뜻에 대해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로를 이렇게 결박했으니 차량이 화약을 운반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해체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공사는 지연될 것이다. 무자비하고 무차별하게 시위대를 연행하는 경찰이라도 이번 ‘인간띠’는 쉽게 어쩌지 못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팔을 PVC 파이프 안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다. 파이프로 연결된 팔이 위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찰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내려치는 망치에 그런 바람들은 산산이 부서졌겠지만. 외국에선 적은 인원으로 도로, 거리를 점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위방식으로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성인용 기저귀를 찬 채 하루 동안 공권력을 막아 낸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잠자는 사자의 콧털’이란 표현이 있듯- 의미는 좀 다르지만 -, 잠들어 있는 용을 어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슬리핑 드래곤’이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우리가 간과한 점은 잠자는 사자는 우리나라 속담에, 잠자는 용은 외국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과는 전혀 무관한 표현이란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드래곤 헌터’쯤 되는 것일까,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하던 경찰은 몇 시간 후 망치를 들고 와 파이프를 힘껏 내려치기 시작했다. PVC 파이프 두께는 1cm도 안 됐다. 겁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과 비명 소리가 상상됐다.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무차별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 그곳은,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이다. 믿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모습이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2.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그들의 맹목적인 광기
얼마 전 인터넷의 한 미디어를 통해 해군 한 명이 수중에서 강정마을 주민을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된 바가 있다. 그들의 칼끝은 대한민국 밖이 아니라, 내부를 향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강정마을에 다녀 온 한 지인은 주민들과 대치하는 그들의 눈에서 광기가 느껴진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밀어 붙일 거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럼비에서 발파가 시작됐고, 문정현 신부가 낙상을 당했다. 2011년 여·야 합의로 2012년도 제주해군기지 예산 1,278억이 삭감됐다. 남은 49억의 예산도 육상설계비 38억과 보상비 11억 등으로 사실상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를 지속할 수 없는 예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럼비는 깨지고 있으며, 주민과 군경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매일 10여명의 사람들이 연행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국무총리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위원장 전준수 서강대 교수)는 “해군의 설계로 15만t급 크루즈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어렵다”고 인정했으며, 1조에 가까운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 예산 중 ‘관광미항’을 위한 예산이 530억에 불과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거짓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6월과 2008년 8월 작성된 사전환경검토서에는 연산호 군락과 그 외 천연기념물, 멸종야생동식물에 대한 조사가 졸속으로 진행된 사실이 밝혀졌고, 환경부 주관으로 공동생태계 조사가 이루어졌다. 결과보고회에 참석한 10명의 위원 중 8명의 위원이 ‘추가조사’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무시당했다. 문화재청에서 강정포구 발굴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의 ‘문화재 발굴조사 전문가 검토회의’ 내용 중 ‘지표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물 산포지 확인됨’이란 내용이 서술돼 있다. 이러한 경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사가 중지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공사는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절대보전지역 해제 과정에서의 문제,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불과 87명의 박수로 통과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의 문제 등등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멈춰야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다. 강정마을 주민의 반대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규정된 행정적 절차에서도 명백히 하자가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민주적 제도를 무시하고 국민을 폭력으로 억압하면서까지 제주해군기지는 건설돼야 하는 것일까. 왜 강정마을 사람들과 구럼비는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3. 강정마을은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한다
2007년 2월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가 전 강정마을회장 윤태정, 어촌계장 김정기와 대포마을 모 횟집에서 회동하며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동년 4월 26일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된 강정마을 임시총회에 참석한 87명의 주민들은 윤태정 등에 의해 사전 모의된 주민들이었다. 6월 강정마을회 감사 3인이 주도한 주민투표에선 경찰의 방조 하에 해녀들이 투표함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해군 측은 사업초기부터 찬성 측 주민들에게만 대민봉사, 식사 대접, 여행제공 등을 하며 주민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이런 사례를 하나하나 다 쓰면 이 지면 전체도 부족하다.
이런 게 민주적 절차와 어떤 상관관계가 놓여 있단 말인가. 제주해군기지를 밀어붙이는 정부와 해군의 방식엔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 국민의 안녕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발견할 수 없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선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그들의 맹목적 신념과 건설하지 말아야 할 민주적 절차가 대결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이상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밀어붙이기 위해 ‘안 되는 일은 되게 하라’는 구시대의 잔해를 신념으로 온갖 비이성적인 사건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한민국은 법 위에 정치권력, 군사권력, 재벌권력이 군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법으로 국민을 통제함과 동시에 법 존재 자체를 무시하며 온갖 ‘탈법적 행위’를 저질렀다. 제주해군기지 뿐만 아니라 최근 벌어진 민간인 불법사찰, 각 종 파업·집회 현장에서 가혹한 공권력의 폭력,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에서 벌어진 부정의혹 등등 우리가 잊고 지내던 과거의 망령들이 이번 정부 들어 하나 둘 되살아나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왜 그들은 시대를 역행하면서까지 그러한 광기를 부리는 것일까.
내가 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의 ‘광기’ 어린 눈빛에서 발견한 건, 자신들의 권력에 한낱 국민 따위가 도전한다는 불쾌감이었다. 그들에게 여전히 민주주의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이념일 뿐, 현실지배의 원칙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여전히 국가와 국가를 장악하는 단일권력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신민’에 불과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이 누군가에겐 ‘항쟁’으로, 또 누군가에겐 ‘반역’으로 읽히는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제2의 4·3으로 불리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의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5년 동안 투쟁해온 이들. 그들의 광기와 억압에 맞서 굴하지 않고 굳게 버티고 선 이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많이 이들이 함께 싸우고 더 많은 이들이 지켜야 할 그곳은, 제주 강정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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