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할 직장이 없다
청년노동자들은 사회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림자다. 청년 실업률은 매월 8% 수준으로 전체 실업률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그 수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고용율도 마찬가지로 줄어들고 있다. 국가에서 실업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취업포기자, 혹은 취업준비생, 그냥 쉬는 청년이 100만 명에 달한다.
실업률에는 잡히지 않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실업상태의 청년들은 전체 수의 4명중 1명이 되었다. 졸업을 유예하면서 취업을 준비하거나,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실질적으로 취업을 포기한 주변의 청년들이 사회의 실업률 통계 뒤에 숨어있는 실질적인 청년 실업자이다.
청년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눈이 높아서 취직을 못 하는 것이니 눈을 낮추라고 말하지만, 일하기 싫어하는 청년은 거의 없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고등학교까지의 줄 세우기 경쟁에 지친 청년들은 대학에 들어와 짱돌을 들고, 사회의 정의와 거대담론에 대해서 공부해볼 시간도 없이 토익900, 각종 자격증에 어학연수까지 요구받고 있다. 요즘의 청년들을 ‘단군 이래 최고스펙’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다닐 수 있는 직장은 ‘단군 이래 최저 스펙’이다.
청년이 일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할 곳이 없는 것이다.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크지 않았고, 시험이나 근속제도등을 통해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과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직종별 임금 격차는 있었지만, 임금과 직급변동의 가능성은 지금보다 더 컸다.
2. 군대가 연상되는 청년노동구조
현재의 청년노동구조는 군대가 되어버렸다. 군대는 병사와 부사관, 장교로 계급이 나뉜다. 예전에는 병사로 들어가도 열심히만 하면 부사관이 될 수 있었고, 때로는 장교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노동자들은 대부분 병사로 들어가서 30년을 일해도 병장 이상 진급할 수 없다. 장교로 진입하는 599개 상장기업에 정규직으로 근근이 들어가는 1%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사관, 혹은 병사로 일하게 된다. 그것도 평생.
청년들의 병사 계급은 비정규직이다. 매출은 높아지는데 신규일자리는 늘리지 않고, 경력직만을 늘리고 있는 대기업, 직고용보다 하청만 늘려가는 대기업에 종속되어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바로 청년 병사 계급이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삼성전자 점퍼를 입고, 삼성전자제품을 고치러 다니지만, 결국은 삼성전자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직원일 뿐인 청년노동자가 바로 청년노동의 상징이다. 대기업이 서비스업은 하청으로, 제조업은 비정규직 확대로 나아가고 있는 경제 현실 속에서 스물다섯 한 젊은 여성 노동자의 꿈은 ‘정규직’ 단 하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이 그러하듯, 그 여성 노동자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고, 그녀는 婚테크로 대표되는 결혼을 통해 삶의 안정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이게 청년 노동의 현실이다.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취직하면, 대부분 평생실업 아니면, 비정규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첫 직장으로 하청업체에 취직하게 되면 다음 선택은 또 다른 하청업체에 취직하는 수밖에 없다.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을 해도, 기껏 통장에 찍히는 돈은 120만 원 남짓인 비정규직 직장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업무 역량을 키우고, 높은 직책으로 이직하려 해도 그 가능성은 대부분 제한되어 있다. 첫 직장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다면 직장 내에서 기술을 배워 고소득,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3. ‘삼포세대’에서 ‘삶포세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대의 가장 큰 걱정이 ‘노후준비’라고 했다. 청년들 스스로 어떤 직장을 가더라도 향후 소소한 삶을 위한 기본적인 미래소득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연 평균 800만원에 달하는 사립대 등록금과 그에 따른 대출 이자, 높아진 월세, 전세대출 등의 주거비용 등 생활비를 감당 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는 최소한의 생활비용도 보장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수준(혹은 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돈만 준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된 직장을 포기하고 부모님께 빌붙어 살거나,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반지하 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실업자로도 잡히지 않는 청년이다. 청년층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했지만, 어느 순간 청년들은 삶을 포기하는 ‘삶포세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가는 청년들이 있다. 꿈을 꾸는 청년노동자들이 있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프랜차이즈 미용실 스텝 일을 시작한 어느 노동자는 주 6일 노동에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월급 40만 원을 받고 있지만, 꿈을 꾼다는 것으로 감사해 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기센 소비자들에게 웃음을 팔면서 성과급제로 매장에서 화장품을 파는 청년 여성노동자는 다리가 퉁퉁 부어 앉지 못해 하지정맥류에 걸려서 수술을 해도 수술비용 청구는커녕, 해고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다. 중소 IT 회사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는 청년 노동자는 주 60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일요일 하루 쉬는 것을 감사해 한다.
4. 아파도 너무 아픈, 아파도 아픈지 모르는 현실
사회의 화려함은 더해가지만, 청년노동의 그림자는 더 짙어간다. 예전에는 공돌이, 공순이라는 비하적인 단어로라도 존재했던 청년노동자들이 백화점의 화려함에, 방송영상의 화려함 속에 숨어버렸다. 방송계의 작가, 스텝, 영세한 외주 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열정적인 청년노동자들이 화려한 방송을 지탱하고 있지만, 방송에서 그들의 이름은 잘보이지 않는다.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한 시간에 30~50잔씩 커피를 만들지만,시간당 임금은 커피 한 잔의 가격에도 못 미친다.
자본은 화려해져 가는데 청년들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 자신도 그 빛에 취했는지 이게 제대로 사는 건가, 이제 제대로 된 사회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항상 좌절하고, 또 그렇게 하루를 힘겹게 버티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한때 대한민국 사회에 유행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들은 아파도 너무 아프고, 김난도 교수가 말한 아파지고 나서 성숙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가 더 이상 아니다. 아픈데, 스스로 아픈지 알지 못하고 웃고만 있는 현실이 청년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석훈 교수의 말처럼 ‘짱돌’을 들고 일어나는 청년들도 거의 없다.
5.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청년노동자의 이야기를 담다
청년유니온은 시작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기 위해 청년유니온이 필요했다. 짱돌을 들고 싶을 만큼 답답해도, 다음날 아침 출근을 때문에 스스로 위로만 하고 사는 청년들에게 고통과 좌절들이 혼자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청년들 스스로에게도 싸울 힘이 있고, 지켜야할 자존심이 있으며,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한 것이 청년유니온의 시작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대변되는 정규직, 혹은 기업별 노동운동에서 조직화되지 못하고 파편화·주변화된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 바로 청년유니온이다. 개별기업에서 묶을 수 없는 하청과 파견,1~2인 자영업, 그리고 단시간 알바들. 기존의 노동조합 틀로는 묶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청년노동자들이다.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는 청년도 이제는 없고, 다양한 직군과 직종분류로 어디에 의탁할 곳 없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 곳이 바로 청년유니온이다.
청년유니온은 2010년 2월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조합원 50여 명에서 2년 만에 5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기존의 노동조합 규모와 조직확대에 비하면 미천하겠지만,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청년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천천히 대변해가고 있다. 2년 전 겨울, 피자배달 30분제 때문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청년 노동자를 계기로 청년유니온은 피자회사들의 가혹한 피자배달 30분제를 폐지 시켰다. 30분 배달제를 처음 만들었다던 미국이 수십 년 전에 폐지한 그 제도를 우리 사회에서 이제야 폐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체불임금을 떼였지만 “그래도 사장님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줬다.”라고 하는 우리의 청년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에 나와 있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조차도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 청년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이야기해주었다. 주당 15시간 이상 일을 하면 하루 치 시급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55조를 청년노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들에게 수만원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는 주휴수당을 챙겨주었다. 당연한 법적 권리였던 주휴수당이 청년유니온을 통해서 청년들에게 살아난 것이다. 청년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고자 했던 청년 당사자들의 최초 시도, 아니면 전태일 이후 40여 년 만의 시도가 바로 청년유니온이다.
아르바이트생 최저임금 실태, 간호실습생 문제, 뮤지션들의 생활실태 관련 문제 등 청년유니온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던진 일들은 대부분 사람의 공감대를 얻었다.
이 말은 반대로, 이전까지 청년들의 열악한 환경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젊은 노동자들의 실태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직화되지 못한 서비스 직종들은 여전히 어느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역할은 여전히 아르바이트와 첫 직장 등에서 우리 청년들이 말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실태와 권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노동계에서 청년노동은 여전히 조직률도 낮고, 문제점도 많은 블루오션이다.
6. 청년유니온, 청년노동의 현실을 바꿔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다
2012년 3월 청년유니온은 서울시로부터 노동조합설립신고 필증을 받았다. 법외 노조로서 지난 2년간 열악한 청년노동의 실태를 알리고, 사회적 문제제기를 해왔던것을 넘어서 교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게 된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앞으로 대 프랜차이즈 교섭이나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청년노동의 현실을 바꾸고 안정화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청년노동자 스스로 만든 노동조합이기에 거대한 이념이나 당위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바꿔나가고, 함께 꿈꾸고 일하는 청년들의 삶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잦은 승리의 경험으로, 함께 연대하는 경험을 통해서 2030 청년 세대들 또한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어른’들은 “우리 때도 배가 고팠고, 힘들었다. 부자인 사람들은 그 때도 부자였고, 가난한 사람은 그 때도 호구지책을 고민했다. 지금의 청년들만 특별히 더 힘든 게 아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20대가 스스로 사회적·물적 기반을 닦아나가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도 최소한의 소시민적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미래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어야 할 청년의 1/4이 일을 하지도 않는 구조라면, 국가 경제의 미래는 없다.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도, 근로시간도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불법사회일 수밖에 없다.
각 직장에서 청년노동자들에게, 커피전문점에서, 백화점에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연대하고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한다.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그림자로 감춰져 있는 모습이 익숙한 청년노동자들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 스스로 공고한 구조 속에서 스스로 살아갈 공간을 넓히고, 목소리를 크게 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 청년노동의 열악한 현실은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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