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에 대한 세 가지 오해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 논의의 중심에 부상하고 있다. 헌법에서 기본권과 함께 권력구조는 중심 내용일 수밖에 없지만, 이를 논의함에 있어 한국 헌법과 제왕적 대통령의 관계, 이원정부제의 특성, 연임제에서 두 번째 임기와 단임제의 차이 등에서는 일부 부정확한 이해들에 기반한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규범으로 오랫동안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현 헌법적 상황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대안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본고는 한국 헌법이 결코 제왕적대통령제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이원정부제를 분권형대통령제로 치환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연임제의 두 번째 임기와 단임제의 임기는 소통과 책임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
현재 정치권의 개헌론은 주로 현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새로운 권력구조의 모색에 집중됨.
❍ 정치권의 개헌론은 주로 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음.
- 대통령의 권력 전횡, 소통의 미흡, 정권 차원 국책 사업의 졸속 추진 등을 과도한 대통령 권한,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임기의 단임제에서 주로 원인을 찾고 있음.
- 정치권이 대안으로 추진하는 대통령중임제[1], 이원정부제(분권형대통령제)[2]는 각기 소통 활성화,
책임성 제고와 충분한 국정 운영 시간의 부여, 대통령 권력의 분권을 명분으로 하고 있음.
❍ 국민과 여론의 관심 역시 권력구조에 집중되고 있음.
-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개헌 필요성과 권력구조에 대한 질문을 주로 하고 있으며,
대부분 4년 연임 대통령제와 이원정부제에 선호가 모아지고 있음.
- 국회의원 여론조사(CBS. 10월초)에서도 4년 중임제 39.2%, 분권형대통령제 35.4%로 나타나
개헌의 논의 주체인 국회도 양 권력구조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음.
그러나 권력구조 논의들이 일부 부정확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가 발견됨.
❍ 특히 한국 대통령제와 제왕적대통령의 관계, 분권성을 포함한 이원정부제 권력구조의 특징,
중임대통령제에서 두 번째 임기와 단임제의 차이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이해가 필요함.
- 제왕적대통령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권력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권력구조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이원정부제의 분권성과 권력구조적 특성에 대해서도 제도적 구성만이 아닌
정치적 운영 현실에 대한 이해가 요구됨.
- 또한 중임대통령제도 결국 두 번째 임기는 단임의 단점을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 역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나타나는 시기적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 본고는 위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권력구조 논의가 제도와 현실 운영을 모두 감안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제언하고자 함.
[1] 중임제라 하면 미국식 4년 중임제를 떠올리기 쉽지만, 미국과 한국은 국가형태(연방-단방제), 정부 기능, 의회와 사법의
위상 등 한국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만 가능한 제도라는 지적은 이런 면에서 타당하다.
따라서 대통령중임제를 택한다 하더라도, 한국 현실에 맞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함은 당연한 전제라 하겠다.
[2] 현재 한국에서는 ‘분권형대통령제’란 용어를 쓰고 있으나, 이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본문에 상술한다.
Ⅰ. 한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제왕적인 권력을 제도적으로 부여하고 있는가?
한국 대통령이 ‘제왕적대통령[3]’일 수는 있어도 헌법상 대통령제가 ‘제왕적대통령제’인 것은 아님.
❍ 헌법상의 공식 권력구조로서 제왕적대통령제와 정치-정당 구조, 정치문화, 정치 상황,
개인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제왕적대통령은 구분할 필요가 있음.
- ‘제왕적대통령제’는 권력분립의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는 수준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것으로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한 1971년 유신헌법의 대통령제, 교도민주주의를
내세웠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시대의 대통령제가 대표적임.
- ‘제왕적대통령’은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 대통령제이나, 대통령이 입법과 사법을 전횡하는
통치 스타일을 보이는 것을 말하며, 미국과 같이 위기상황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고 한국과 같이
정치와 정당의 낮은 제도화 수준, 대통령의 人治에 의지하는 국민의 정치 문화, 대통령 개인의
권위적이거나 절차를 무시하는 리더십에 의해 나타나기도 함.
❍ 한국 헌법상 권력구조를 ‘제왕적대통령제’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합의된 사항
-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지 않으며, 최소한 제도적으로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이 대통령을 견제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
- 42개 대통령제/이원정부제 국가의 대통령 권한을 입법적 권한, 정부구성적 권한을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제의 대통령 권한은 중간 수준으로 나타남.[4]
‘제왕적대통령(제)’ 타파를 권력구조의 변경 이유로 삼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며, ‘제왕적대통령’을
막기 위해서라면 정치/정당, 인사제도, 교육/문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정확한 처방이 될 것임.
❍ 정치-정당의 제도화를 촉진시켜 개인의 전횡을 방지하는 정치/정당 개혁, 인사 제도의 개혁,
국민의 정치의식을 제고시키기 위한 시민교육 추진 등 전반적 정치제도·문화의 개혁을 통해
대통령이 제왕적 통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개헌에 우선되거나 병행되어야 함.
[3] 제왕적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은 1973년 미국 역사학자인 슐레징거가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닉슨행정부의 강력한 권한 행사를 가리키며 비유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2001년 9.11 이후 부시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과정에서 의회와
사법부의 고유권한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예산을 집행하자 미국 언론들은 부시를 제왕적대통령이라 불렀던 것에서
보듯이 이는 제도적 현상이 아닌 상황적/개별적 현상이다.
[4] Matthew S. Shugart & John M. Carey, President and Assemblies: Constitutional Design and Electoral Dynamics,
(Cambridge: Cambridge Unive. press, 1992) 참조. 관련하여 정준표, 최장집, 정해구 등 국내의 연구자들도 제도적 수준에서 한국 대통령 권한이 ‘제왕적’이란 것은 부정하고 있다.
Ⅱ. 이원정부제(분권형대통령제)는 정말 ‘분권’적인 '대통령제'인가?
이원정부제가 대통령과 수상이 각자의 권한을 가지고 병존하는 ‘제도적인 행정부내 양두 권력
구조’임은 맞으나 실제로는 ‘동거정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제 또는 의회정부제[5]로 나타남.
❍ 이원정부제는 ‘직선’의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과 ‘의회 다수’의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수상의 병존 형태로 구성된 권력구조임.
- 국가원수로서 국민통합의 상징이자 의회해산권, 비상조치권 같은 대권적 권한, 외교와 국방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의회 다수를 배경으로 외교안보의 일부 권한과 내정을 담당하는 수상이
행정부내에 병존하여 서로 견제하도록 권력구조는 구성되어 있음.
- 국왕제의 전통이 없는 국가에서 국민통합적 국가원수와 정파적 수상 양자의 특성을 모두 살려
대통령제의 안정성, 의회정부제의 반응성을 가지면서 대통령제의 독단성, 의회정부제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선택으로 이해되고 있음.
❍ 실제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보다 강력한 대통령제’ 또는 ‘실질적 의회정부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프랑스 동거정부의 혼란을 전후하여 제도개혁, 정치관행의 축적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제 또는 의회정부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
- 이원정부제에서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다수당인 경우 대통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하고
의회해산권까지 가진 강력한 대통령제로 운영됨 :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은 ‘공화국 군주’라고
불렸으며 핀란드의 케코넨 대통령은 ‘계몽적 전제군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음.
- 핀란드,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등 20c 중반까지 대통령의 권한이 강했던 국가들은 이후 개헌등
제도개혁과 대통령 불개입의 관행 축적을 통해 현재는 거의 의회정부제로 운영되고 있음.
- 동거정부를 겪은 프랑스는 2007년 개헌을 통해 대선과 총선을 일치시켜, 강력한 대통령제로
운영되고 있음.
동거정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별로 분권적이지도 않으며, 실제로는 강력한 대통령제 또는
의회정부제로 운영되는 이원정부제를 ‘분권형대통령제’라 명명하여 '분권'적인 '대통령제'라는
인식을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 이원정부제는 행정부내 양두가 ‘제도적으로 권력을 나누고 있는’ 제도일 뿐, 실제 운영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제나 동거정부 또는 의회정부제로 나타남.
- 프랑스 권력구조의 권위자인 R. Elgie는 단점정부는 ‘잘되면 대통령 업적, 못되면 수상 잘못’으로
수상이 교체되는 대통령중심정부, 동거정부때는 대통령이 아닌 수상중심정부라 평가[6]
- Sartori 역시 새로운 권력구조가 아닌, 의회 다수당 구조에 따라 행정부의 수장이 변동하는
정치시스템[7]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Lijphart는 대통령 지지 정당이 의회 다수당이냐
아니냐에 따라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오가는 권력구조로 개념화함.[8]
❍ 이원정부제의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분권형대통령제’란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음.[9]
- 그림 1) 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국민에게 이원정부제와 분권형대통령제가 다른 것으로
오해를 주고 있으므로 이를 사용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이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음.
[그림1) 이원정부제와 분권형대통령제 여론조사 결과 차이]
[5] 의원내각제란 표현이 한국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으나, 최근에는 Parliamentary system을 번역한 의회정부제로
정착되고 있다.
[6] Robert Elgie, The role of the prime minister in france, 1981-91 (New York: St. Martin's press, 1993)
[7] Giovanni Sartori, Comparative Constitutional Engineering: An Inquiry into Structure, Incentives and Outcomes
(Houndmills: Macmillan, 1997)
[8] Arend Lijphart ed. Parliamentary versus Presidential Government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92
[9] 이원정부제는 영문으로 semi-presidential system 또는 semi-parliamentary system 양자가 모두 쓰인다는 점에서
‘분권형대통령제’라 번역할 수 있다면 ‘분권형내각제’라 부르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Ⅲ. 4년 연임(중임)제에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어차피 단임제와 같지 않은가?
임기 종료로 퇴임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국정 운영에서 연임제의 두 번째 임기는 단임제와
차이가 있음.
❍ 첫 임기후 평가를 받는 연임제 대통령은 자신의 Agenda의 기획 및 초기 실행 단계에서 소통과
책임을 강제 받을 수밖에 없으며, 두 번째 임기는 첫 번째 임기의 실행/완료 단계임.
- 대통령이 자신의 Agenda를 실제 국정 운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첫 임기에 기획-예산조달-사업
시작의 단계를 거치게 되며 이 단계의 소통, 책임성이 재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 두 번째 임기는 첫 임기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민주적 소통을 통해 설정된 Agenda들의 실행과
완성 단계임.
❍ 소통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첫 임기를 거치기 때문에, 단임의 불통과 무책임은 매우 완화됨.
- 이미 소통과 책임성을 확보한 사업을 시행/완료하는 두 번째 임기와 처음부터 소통과 책임성을
확보할 유인이 없는 단임제가 실제적 국정운영에서 결코 같을 수가 없음.
■ 개헌, 특히 권력구조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모색과 각계 및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문제와 해법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
❍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개헌을 주도할 국회와 이를 여론화하는 언론, 그리고 개헌의 각
분야를 연구하는 학계 모두 각 이슈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 위에서 방향과 대안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임.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