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책임총리란 무엇인가[1]
-(II) 역할과 권한
현 헌법상 국무총리의 권한은 정부구성에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정부운영에 행정 각 부 통할권, 총리령 발령권, 부서권이 있으며 대의회 권한으로는 국회 출석 및 의견 제출권이 있다. 책임총 리의 헌법상 권한은 민주화 이후의 다른 국무총리들과 동일하고 따로 법률로 정해진 바도 없다. 책임총 리라 해서 법적 차원에서 역할과 권한이 변동한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책임총리의 역할과 권한 강화는 헌법상 역할 및 권한의 실질화, 대통령으로부터의 권한 위임 수준의 확대, 그리고 지원 체제 강화의 국정 운영 차원에서 뒷받침되었다. 헌법상 권한은 국무위원 임 명제청에서 대통령과의 협의 체제 구축, 정책관련 회의를 통한 행정 각부의 정책조정권 행사를 통해 실 질화되었다. 특히 정책조정권을 실질화하기 위해 대통령은 권한을 적극적으로 위임하였다. 일상적 국정 운영 분야를 관장하는 국정현안조정회의와 이를 의결하는 법정국무회의의 의제 설정권 및 주재권을 부 여받았고, 정부 행정에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차관 인사권을 보장받았다. 아울러 대통령에게 제출 되는 비서실과 정보기관의 자료 및 정보접근권을 공유하고 정보기관장의 대면보고를 받아 정보력을 강 화했다. 대국회 관계 중 정책분야를 총괄했으며 정책 분야 대국회 관계 및 당정협의에서 정부 대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런 강화된 역할과 권한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무총리 비서실 친정체제 구축, 국무 조정실 확대, 정책상황실 설치 등 지원 체계가 강화되었다. 한국 국무총리제는 대통령중심 권력구조에 의회정부제 수상의 일부 요소를 혼합한 제도이나, 유사한 외형을 가진 이원정부제 수상과 달리 헌법적 역할과 권한이 모호하고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임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제도의 창설 의도인 분권과 견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책임총리제는 제도를 창설한 헌법 의도를 살리고 한국 권력구조의 운영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서, 정부 운영뿐 아니라 이후 개 헌에도 시사점을 준다 하겠다. |
[1] 이 글은 2.26일 한국에서 책임총리가 탄생한 맥락과 구성을 살펴본 이슈브리핑의 후속편이다
Ⅰ. 헌법상 국무총리의 권한과 책임총리의 권한
헌법상 국무총리는 정부구성과 정부운영, 대의회 관계에서 역할과 권한을 가지고 있음.
❍ 헌법상 국무총리의 권한은 다음의 세 가지임.
- 정부구성권 :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제87조 ⓵, 제86조 ⓷)
- 정부운영권 : 행정 각부 통할권(제86조 ⓶), 총리령 발령권(제95조), 부서권(제82조)
- 대국회권한 : 국회출석 및 의견제출권(제62조)
- 이외 역할로서 국무회의 부의장(제88조 ⓷). 대통령 궐위/직무수행 불능시 1순위 대행(제 71조)
❍ 각 개헌 과정에서 한 두가지 권한 변동은 있었으나, 의회정부제를 실시한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는 본 질적 변화는 없었음.
- 임명제청권은 제헌 헌법에, 해임건의권은 5.16 이후 5차 개헌에 규정된 이후 지속
- 정부 운영과 대의회 분야 역할 및 권한은 제헌헌법 이후 단어 변화(제헌헌법에는 각 부의 통리감독)는 있으나 실제 내용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음.
헌법상 국무총리 권한과 역할은 의미와 한계가 모호하고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권한 없는 국무총리와 책임총리제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총리제 실행에 법률적 차원의 변경은 없었음.
❍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은 모호하고 이중적임.
- 임명제청권의 한계, 통할권의 의미와 한계, 국회 관계에서 정부 대표성 등이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도 록 모호성을 가지고 있음.
- 헌법상 모호성과 이중성 때문에 운용에 따라 의전상 역할과 권한만 있는 무임소 수석 각료로 활용될 수도 있고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책임총리로 운용하는 것 모두 헌법적으로 가능함.
❍ 책임총리제는 헌법상 국무총리의 역할과 권한을 ‘헌법 정신인 분권과 견제’에 따라 운영한 것임.
- 책임총리는 법률로 헌법상 모호성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법률로 역할과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님.
- 국무총리제를 도입한 헌법 정신이 ‘분권과 견제’에 있음을 인식하고, 헌법상 권한을 ‘실질화’한 것이 책 임총리 역할과 권한 강화의 기본 토대.
Ⅱ. 참여정부 책임총리의 역할과 권한
참여정부 책임총리는 헌법상 역할과 기능을 실질화하고 이에 필요한 권한을 대통령으로부터 폭넓게 위임받았음.
❍ 정부구성권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은 법리적/실체적으로 대통령과의 협의권이며, 책임총리는 이 협의 권을 최대한 보장받음.
- 국무총리가 독단적으로 임명제청을 한다면 대통령은 가/부만 결정하는 형태가 되어 실질적으로 임명 권은 국무총리에게 있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 => 대통령제 권력구조와 맞지 않음.
- 반대로 대통령이 결정한 국무위원을 서류상으로만 임명제청하는 형태로 한다면 이는 국무총리의 제청 권을 규정한 헌법 정신에 위배됨.
-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은 국무위원의 임명/제청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협의를 강제화 한 규정으로 해석해야 하며, 참여정부 책임총리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협의해서 결정하는 체제였 음.[2]
❍ 국정현안조정회의/법정국무회의 의제설정권 및 주재권과 차관인사권은 정부통할권을 실질화함.
- 일상적 국정운영(내정의 대부분)을 다루는 국정현안조정회의/고위당정회의에서 국무총리가 정책
조정권을 보유함. => 회의에서 국무총리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이 대부분 그대로 재가함.
- 국무회의를 일상적 국정운영을 다루는 법정국무회의, 국가전략 수립과 개혁, 외교안보 및 국민통합과 제를 다루는 테마국무회의로 구분하고 전자는 국무총리가 의제를 결정하고 회의를 주재.
- 차관인사권을 국무총리에게 부여함으로써,[3] 각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 행정에 국무총리의 영향력을 극 대화함.
❍ 대국회 업무를 전담하도록 하여 국회와 정당에 국무총리를 명실상부한 ‘정부대표’로 격상함.
- 일상적 국정운영의 기조가 담긴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국무총리가 작성하여[4] 연설하였고 예산안 조정을 국무총리가 전담.
- 정책상황실을 설치, 국회에 대한 자료 제출 및 입법 현황 등 대국회관계를 국무총리가 관장함.
- 여야 정당과의 정책 협의 창구를 국무총리로 단일화함.
헌법상 권한의 극대화 및 국무총리의 일상적 국정운영 주도력 확보를 위해 국무총리 지원체계를 강화 하고 비제도적인 방법을 통해 국무총리의 위상을 높이고 영향력을 강화.
❍ 책임총리의 역할과 권한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에 대한 지원체계가 강화됨.
- 국무총리에게 맡겨진 정책조정업무를 보좌하기 위해 국무조정실을 2차관제로 강화하고 비서실과 국무 조정실 및 각종 기획단의 인력과 업무 범위를 확대함.[5]
- 국무총리 비서실의 비서관급 인력의 일부를 국무총리가 직접 임면하고 임기를 같이함.
- 책임총리의 역할이 확대되고 권한이 강하기 때문에 국무총리실이 강화되고, 강화된 국무총리실에 의해 책임총리의 역할과 권한이 늘어나는 순환 구조가 구축됨.
❍ 대통령과의 정보 공유, 주례회동 등의 비제도적 방법을 통해 위상과 영향력을 극대화
-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청와대 비서실과 정보기관의 모든 보고서를 국무총리가 공유했으며, 대통령 직속 각 정부위원회 등의 공식 보고서 역시 국무총리의 관할에 속하는 영역은 청와대 비서실과 국무총리실 이 공유.
- 책임총리는 대통령은 받지 않는 정보기관장의 대면 보고를 받아 국정에 대한 정보력 강화.
-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주례회동을 정례화하고 수시로 비공개 회동을 통해 국정을 조율함으로써 국무총 리의 위상을 높이고 당·정·청에 대한 국무총리의 영향력을 극대화함.
[2] 이해찬 전국무총리는 “내가 재임할 때, 국무위원의 절반 정도는 내가 추천했고, 절반 정도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추천하시면 서 의향을 물어보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3] 실제적으로는 국무조정실장과 청와대 인사보좌관이 협의하고 국무총리에게 재가를 받아 임명하는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4] 비책임총리 시기에는 청와대가 작성한 시정연설을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형태였다.
[5] 이해찬 총리 시기 국무총리비서실과 국무조정실, 각종 기획단의 인력은 최대 650명까지 늘어났다. 이는 청와대 비서실의 정책보좌인력보다 100여명이나 많은 숫자였다. 이런 조직 및 인력 구조를 통해 국무조정실의 정책조정 주도력이 강화되면 서, 언론에서는 당시총리실을 “정책의 종말처리장”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학계에서도 청와대비서실과 국무조정실의 역할 변 화를 책임총리제의 핵심 변화로 간주하는 시각까지 있다. 관련해서는 정용덕 “행정개혁과 새로운 거버넌스의 지향” 양승함 편,『노무현 정부의 국가관리 중간평가와 전망』(서울: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2006) 참조.
Ⅲ. 한국의 책임총리제와 권력구조
한국 국무총리제는 대통령중심제에 의회정부제 수상의 일부 요소를 혼합하여 이원정부제와 유사한 외 형을 가지나, 근본적으로 이원정부제와는 다른, ‘한국형 대통령제’의 요소.
❍ 한국 국무총리제는 외형상 이원정부제로 보이나 권력구조상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6]
- 이원정부제 헌법에 비해 헌법적 위상과 권한이 모호하고 이중적이며, 무엇보다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임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내정분야까지 행정부 정책의 최종결정권자이자 책임자가 대통령이란 점 에서 이원정부제와는 근본적 차이.
- 따라서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의 이원정부적 운영’이지 ‘실질적인 이원정부제’는 아님.
❍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유지하면서 ‘대통령 권한의 분권화와 전횡의 견제’를 위한 국무총 리제의 창설 의도를 현 헌법체계의 한계 내에서 극대화시킨 한국적 정치시스템임.
- 책임총리제는, 현 헌법체계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한국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독단과 전횡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설계이기 때문에 실행 요구가 반복되고 있는 것임.
- 책임총리제는 제도적 요소 이외에 비제도적 요소들이 필요한 만큼,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국정을 운 영할 정치적/정책적 역량을 보유한 국무총리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
❍ 현 박근혜정부에서 책임총리제의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는 것은 상기의 두 가지가 모두 결여되 어 있기 때문임.
- 현재까지의 행태로 판단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의 분점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현 이완구 국 무총리가 책임총리제를 실행할만큼 인식과 의지, 역량이 충분한가에도 의문점이 있음.
책임총리제는 현 한국 권력구조의 운영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동시에 개헌에도 일정한 시사를 준 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 헌법적 권력구조로서 정치체제와 정치시스템은 구별될 수 있으며, 책임총리제는 권력집중적인 한국의 정치체제가 가진 최소한의 분권시스템의 운영 가능성을 보여줌.
- 헌법상 정치체제는 정치적 상황, 지도자의 리더십 등에 의해 다른 정치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음.
: 프랑스 이원정부제가 그 예로서 강력한 대통령제 시스템과 동거정부 시스템을 내재하고 있음.
-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한국 정치체제와 문화에서 헌법 기관인 국무총리의 역할과 권 한 변경을 통해 정부를 분권적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한 사례라 하겠음.
❍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의 선택에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경우, 책임총리제는 시사점을 제공함.
- 개헌 후 권력구조 선택에서 대통령제는 국민의 선호도가 높고 운영 경험이 축적되어 있으며, 변화에 따 르는 혼란이 최소화된다는 점에서 유력한 권력구조.
- 미국과는 다른 국가체제, 정치문화 때문에 미국식 대통령제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식 대통령제의 설계가 필요한데, 책임총리제는 참고할만한 국정운영 사례임.
[6] 외형상 유사성과 국회 동의 과정 때문에 Elgie는 한국의 권력구조를 ‘이원정부제’로 분류하고 있으나, Lijphart, Siaroff 등은 대통령의 자유로운 임면권을 들어 이원정부제가 아닌 혼합대통령제로 간주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