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임금피크제에 대한 평가와 정책 제언
2013년 4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정부는 60세 정년제의 안착을 위한 제도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공공부분은 물론 민간기업들도 근로자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행정지침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노동법 체계를 행정지침으로 무너뜨리려는 독재적 발상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본고는 현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임금피크제가 일방적으로 기업만을 위한 제도임을 밝히고, 원리로나 상식적으로도 적합하지 못한 세대간 상생지원금에 대해 비판하였다. 끝으로는 정년연장을 조건으로 동일한 업무량에 임금만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대안으로써, 근로시간의 단축을 핵심적 정책수단으로 하는 점진적 퇴직제도의 취지와 기능에 대해 검토하였다. |
Ⅰ. 배경
임금피크제도는 고령근로자의 임금삭감과 고용연장을 맞바꾸는 제도
❍ 임금피크제도는 고령자의 고용보장과 함께 기업의 인건비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일정한 연령을 기준 으로 정년을 연장하거나 고용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
❍ 임금피크제도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개발된 용어로, 그 원류는 일본기업에서 흔히 발견되는 ‘연령- 임금 프로파일’에 착안해서 창조된 한국식 개념[1]
- 일본에서는 고용과 임금을 교환하는 다양한 ‘연령-임금 프로파일’이 논의되었는데, 이 중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특정 연령 이상이 되면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퇴직 후 재고용 과정에서 임금이 하향되는 경우 가 일반적이었음
- 반면, 우리나라의 임금피크제는 대개 정년보장을 대가로 정년 이전 일정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 으로 운영해 왔음.[2] 즉,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조기퇴직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고령층을 중심으로 고용보 장과 임금삭감을 교환하던 관행이 임금피크제라는 형태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추정됨[3]
❍ 임금피크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려움
- 임금피크제도는 일본에 원류를 둔 한국식 제도로서, 아직 제도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 지지 못한 상태임
- 반면에 유럽의 경우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12개 국가에서는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대신 근로시 간을 줄이는 점진적 퇴직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음
[1] 최강식 ․ 김민준, 2011, “고령자 고용와 임금체계”, 「직업능력개발연구」, 14(3): 127-154.
[2] 하지만 정년보장형은 정년의 연장없이 지원만 이루어진다는 비판에 따라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내년 60세 정년이 의
무화될 경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의 대다수는 정년보장형을 적용할 가능성이 큼.
[3] 이영면 ․ 정선아, 2014,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기 임금피크제의 정책적 활성화 방안에 대한 탐색적 연구”, 「노동정책
연구」, 14(1): 35-67.
Ⅱ. 논의
정부는 임금피크제도의 필요성으로서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의 임금체계가 연공형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
❍ 연공형 임금이론(seniority-based wage system)은 개인의 임금이 자신의 생산성과 다르게 결정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음. [그림 1]에서 근로생애 동안 개인의 생산성(P)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역U자형 으로 변화하는 반면, 임금(W)은 지속적으로 증가함
- 개인별로 근로생애의 중반부(M)를 중심으로 전반부는 P>W로 그 차액은 근로자의 ‘암묵적 자산(implicit wealth): A'으로서 사내에 유보되고, 이는 후반부 P 돌려 받게 됨(B). 그리고 근로자들의 정년시점은 A=B 가 상호 일치하는 T점에서 결정됨
- 만약 근로자가 정년(T)을 지나 계속근로를 희망하게 되면 그림에서 S에 상당하는 임금삭감을 감수해야 함.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임금이 생산성보다 높으므로 국가는 고령근로자의 고용안정 및 연장을 위해 기업 과 고령자 개인에게 보조금(Q)을 지원해야 하며, 이러한 차원의 급여로는 임금피크제지원금, 세대간 상생 지원금, 근로시간단축형 지원금, 고령자고용연장지원금 등이 있음
-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단계적으로 시행될 경우 기업들은 보수수준이 높은 고령자의 고용연장에 따른 추 가적인 비용을 부담하여야 하므로 임금피크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임. 나아가 소위 ‘고용 없는 성 장의 시대’에서 정년연장은 청년들을 ‘고용절벽’으로 내몰게 되므로 세대간 상생을 위해 고령근로계층의 통큰 희생과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임
❍ 전체 근로생애기간 동안 총임금과 총생산성이 상호 일치하는 점(T)에서 퇴직이 이루어지지 못함
- 연공형 임금체계는 원래 기업이 근로자의 조기퇴사를 억제하고 장기근로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 된 임금체계(Anti-shirking model)이지만, 연공형 임금체계에서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정년까지의 암묵 적 계약을 해지하고, 근로자를 조기에 해고하고자 하는 유인(Cheating model)을 강하게 가지게 되며, 그 시작시점은 개인별로 근로주기의 중반부(그림의 M) 이후가 될 확률이 높음에 해당[4]
- 그리고 기업이 중고령근로의 ‘자발적’ 퇴사를 조건으로 제공하는 명예퇴직금은 은혜적 보상이 아니라 근 로자 자신이 축적한 암묵적 자산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에 불과함
- 이와 같은 이론은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에서 40대의 중견간부들까지 갖은 고용불안과 조기해고의 위협 에 시달리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음. 특히 이 시기의 경우 기업들은 근로자들 개개인의 생산성이 나 기타 수익과 관련한 정보들을 충분히 구축하고 있어 해고대상의 선별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점도 가짐
❍ 근로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유효한가?
- 기존의 노동생산성 측정방식은 근로자 개인별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음. 왜 냐하면 분업과 협업이 고도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생산성은 근로자 개개인보다는, 오히려 팀별 로 구성원들 상호간 협력관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임
- 이러한 협동과정에서 젊은 근로자는 창의력과 역동성을 통하여 생산성에 기여하고, 고령근로자는 경험과 지혜, 그리고 균형감각 등을 통해 조직의 생산성에 기여하게 됨
- 근로자의 생산성은 단순히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협동-고령친화적 작업환경 등 제도 적 개선노력을 통해 충분히 교정하고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임
- 동시에 고령근로자들의 생산성은 비록 나이가 들면 하락하게 된다는 기존의 이론을 수용하더라도, 생산 성 하락의 시작시점 그리고 임금과의 역전시점은 현재보다 훨씬 늦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
❍ 연공형 임금체계는 사실상 전적으로 기업만을 위한 제도임
- 연공형 임금체계는 기업이 근로자의 중도 이탈을 방지하여,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인적 투자 회수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질 수 있음
- 기업은 근로자들이 사내에 축적해둔 유보임금을 빌미로 애사심의 강요, 작업강도의 상향, 연장 및 야간근 로 등 불리한 작업조건을 강압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음
- 이러한 무언의 강요나 억압은 역설적으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요인이 될 수 있음
- 연공형 임금체계는 전적으로 기업을 위해 그리고 기업의 주도로 도입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년연장 을 대가로 임금을 삭감하는 조치는 기업의 이윤만을 더욱 보장해주는 불합리한 정책행위가 될 수 있음. 반면에 근로자는 임금감소는 물론, 향후 연금의 감소와 같은 불이익을 겪게 될 것임
세대간 상생지원금은 원리로나 상식적으로 적합하지 못함
❍ 정부는 2015년 임금피크제로 인한 청년고용 절벽문제에 대처하여 ‘세대간 상생지원금’이라는 새로운 제 도를 도입하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임금피크 근로자 1명 + 청년고용 1명’ 당 한 쌍으로 연간 1,080만원을 2년간 지원한다는 것임
❍ 그러나 세대간 상생지원금은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세대간 경쟁 또는 갈등모형이 될 가능성이 존재함
- 임금피크제 자체는 고령근로자들이 자신의 근로기간을 연장하고, 대신 임금을 기준비율이상 삭감하였을 경우 지원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노동공급을 증대시키는 기능을 가짐
- 나아가 임금피크제의 적용에 따른 고령자들의 임금삭감은 노동의 수요곡선 자체를 우측으로 이동시키게 되고, 이는 고령자가 젊은 계층에 대한 노동수요와 대등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함
- 따라서 한정된 노동시장을 두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고령인력과 젊은 인력 상호간 경쟁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음
❍ 만약 세대간 상생지원금이 성공하여 청년고용이 활성화된다고 하더라도, 단기적 효과에 불과하고 수반 효과[5]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
- 일반적으로 청년고용은 기업들이 인력구성의 활성화와 조직의 영속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기업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이루어지게 되는 기업의 독자적인 인사행위로서 반드시 기업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져야 만 하는 행위임
- 단순히 15세 이상 35세 미만의 모든 청년들을 정부 지원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대상 효율성(target efficiency)이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올바른 정책판단이 아님.[6] 가령 우순한 학력, 건강한 신체 그리고 경제적 배경을 가진 청년도 임금피크제와 쌍을 이루게 되면 2년 동안 최대 2,16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고 볼 때 이러한 방식의 지원은 결코 적절하지 않을 것임
- 또한 2년간의 세대간 상생지원금이 끊길 경우 고용되었던 청년은 다시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게 될 것임. 즉 이러한 정책의 효과는 단기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므로, 청년의 고용절벽 문제를 단순히 시기적으로 미 루는 효과만을 가짐
❍ 따라서 정부는 청년고용 문제를 임금피크제와 연동하여(세대간 상생지원금) 제시할 사항이 아니라, 장기 적인 안목에서 별도의 청년고용 해법을 마련해야 함
※ 종합하면, 현행 임금피크제도는 임금삭감에 대한 공감대 형성의 부족은 물론, 임금피크자의 중도 해고나 기업의 파산 등에 대비한 고용보장 그리고 연금이나 산재 등에 대비한 사회보장의 미비 등 전반적으로 매우 준비되지 않은 제도로 판단됨
[4] Rozen, M. E. 1985, "Labor Markets, Wage Policy, and Macroeconomic Equilibrium", Journal of Economic Issues, 19(1): 153-174.
[5] 수반효과란 정상적인 시장에서 경제주체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을 국가가 굳이 개입하여 자원낭비와 사회계층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는 이론임.
[6] 청년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임금피크제와 연동된 세대간 상생지원금을 통해 접근하면 안될 것이며, 오히려 고
용보험의 적용을 받은 경력이 있는 장기실업자와 상생지원금을 연동하는 것이 대상효율성 차원에서 더욱 적합할 것임.
따라서 청년고용의 해법은 별도로 제시되어야 할 것임.
Ⅲ. 제언[7]
고령자의 고용안정 및 정년연장은 임금삭감이 아닌, 근로시간의 단축으로 접근해야 함
❍ 임금피크제는 동일한 업무량에 임금을 삭감하는 것을 주된 정책수단으로 하고 있지만, 본고가 정책 대안 으로 검토하는 점진적 퇴직제도는 근로시간의 단축을 핵심적 정책수단으로 하고 있음
- 임금피크제도는 일본에 원류를 둔 한국식 제도로서, 아직 제도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 지지 않아 위험부담이 큼(특히 한국형 모델인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도는 더욱 그러함)
- 반면에 점진적 퇴직제도는 이미 유럽의 12개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시행한 경험 그리고 국가별로 다양한 모형의 운영 경험을 구축하고 있어 제도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적음
❍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근로소득 하락에 대해서는 보충소득을 통해 지원[8]
- 다만, 유럽국가들의 보충소득에 대한 비용부담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하므로, 한국에 적합한 모형을 개발 해야 할 것임[9]
점진적 퇴직을 통한 근로시간 단축의 장점은 다양하게 존재함
❍ 근로시간 및 고용기회의 나눔(work-sharing)을 목표로 하는 세대간 상생모형
- 고령근로자들의 근로시간 단축은 젊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될 수 있 음
-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확보된 일자리는 젊은 실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반면, 임금피크제의 경우 근로 시간을 줄이지 않고 임금만을 삭감하므로, 청년고용을 위한 일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의문임
❍ 노년학적 측면의 장점
- 작업부담의 경감을 통해 근로주기의 연장을 지원하고, 노후대비와 노후생활의 적응을 지원할 수 있는 장 점이 있음. 그리고 점진적 퇴직시 고령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변동이 없고, 동시에 일정한 보충소득의 지 원과 연금 및 사회보장의 보충이 이루어지므로 제도에 대한 수용성이 높을 수 있음
- 반대로 임금피크제는 작업부담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노후소득은 줄어들어 노후대비 및 노후생활 적응 에 역행함
❍ 점진적 퇴직제도는 기업의 인사정책적 측면에도 도움을 줌
- 숙련된 노동력의 장기간 이용, 세대간 기술전수의 통로, 인적자본 투자에 따른 비용회수기간의 연장효과, 기업 차원의 사회공헌활동 인력을 활용 가능
❍ 점진적 퇴직제도는 연금정책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짐
- 근로자들의 조기퇴직을 방지함으로써 연금재정의 안정화, 노후대비가 부족한 사람의 경우 근로기간의 연 장과 연금수급의 연기를 통해 연금확충의 기회제공
- 제4층(4th pillar) 노후소득보장제도로서의 기능을 가짐.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에서 노후대비가 부 족한 사람의 경우 점진적 퇴직을 통해 근로의 연장과 함께 연금수급을 연기하게 될 경우 매 1년당 7.2% (최대 5년간 36%)를 증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7] 본고의 제언 부분은 2015년 8월 10일 민주정책연구원 내부 간담회에서 발표된 이정우 교수의 ‘고령자의 퇴직이행 지원제도 로서 점진적 퇴직제도의 도입방안’을 요약한 것임.
[8] 보충소득의 수준은 국가별로 차이를 보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용보험과 연계한 모형은 개인별로 각각 상실소득의 50% 그리고 근로소득의 20%의 수준에서 결정됨. 프랑스의 경우 보충소득은 개인의 종전 기본급여를 기준으로 30%의 수준에서 지급함. 국민연금과 연계한 국가들인 노르웨이, 스웨덴 등 국가의 경우 개인별로 근로시간의 단축수준에 따라 법으로 정한 일정비율의 부분연금(partial pension)이 보충소득으로 제공되고 있음.
[9] 비용부담 방식은 크게 ‘개인부담형(저축-인출형, 차입형)’과 ‘외부지원형(단체협약형, 사회보험형)’이 존재함. 단체협약형의 경우 기업부담형과 노사분담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사회보험형도 고용보험과 연계하는 방안과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 안이 있음. 또한 국민연금과 연계할 경우에도, 내부형과 부분연금제도형으로 구분할 수 있음.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