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평가와 향후 과제
배경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지난 2일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정상이 만나 관계 회복의 의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최대 쟁점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있어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해 박근혜정부 외교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사 문제에 관한 양국간 인식의 격차를 줄이고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역대 정부의 담화와 선언 등 주요 문서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나아가 이를 발전시킨『21세기 한일 공동 비전』을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과거사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되 경제분야 등 기타 협력적 이슈들을 투 트랙(Two-track)으로 다루는 외교적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한일 양국간 인적 네트워크가 현저히 약화된 상황이므로 ‘한일의원연맹’을 재구축하고 ‘한일미래구상’을 활성화하는 등 의회 차원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일외교를 양자 차원의 고려를 넘어 동아시아의 외교안보 지형 변화에 따른 국가전략(Grand Strategy) 차원에서 조망하고 이를 토대로 ‘대일 외교의 목표와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
Ⅰ. 한일 정상회담 평가
지난 2일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로 평가되었던 한일관계가
정상간 대화의 물꼬를 튼 점에서 의미를 지니지만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
회담이었음
❍ 이번
정상회담은 2011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간의 회담이후
3년 5개월만에 개 최된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첫 번째 정상회담임
- 2011년 12월 교토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담판이 결렬된 이후 갈등이 증폭된 한일관계는 역사수정주의를
바탕으로 “전후체제 탈피”를 표방하는 아베정권의 집권 이후 최악의 관계가 지속된 것임
❍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능한 조기에 타결하 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선에서 합의함
- 일본의 사죄나 책임 인정의 언급이 없었을 뿐더러 구체적인 타결시기와 방법 등도 제시되지 않은 것임
- 또한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아픈 역사를 치유할 수 있는 대승적이고 진심어린 회담이
되어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반면 아베 총리는 "미래
지향적 일한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언급없이 미래만
강조함으로써 상호 인식차를 드러냄
- 전날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세 나라 정상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공통의 메시지를
낸 반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시각차를 드러낸 바 있음
❍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양 정상이 만나 양국관계 회복 의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갖 지만, 최대 관심사였던 위안부 문제에 있어 어떠한 해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입장 차이만 확인 해 박근혜정부 외교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됨
II.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고려사항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국간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실질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역대 정부의 담화와
선언 등 공식 문서를 계승하는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
❍ 일본에 적절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촉구하는 가운데 서로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해결방식 모색에 주력해야 함
-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한일 양국간 인식차가 큰 상황이므로[1] 상호 인정하고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다차원적 대일 협상 채널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
❍ 과거사 문제 관련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와 양국이 합의한 선언을 존중계승하는 것이 한일관 계 복원의 출발점임을 강조
-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은 위안부 관련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를 비롯
‘무라야마 담화’(1995),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 (1998), ‘간담화’(2010) 등 중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음
- 특히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 및 사죄가 명문화됨과 함께
한국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발전과 국제사회 번영을 위한 공헌을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됨
-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고노담화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고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여
새로운 역사담화를 내놓겠다고 입장을 밝혀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던바, 아베정권이 역대 정부의
공식 문서를 존중할 것을 촉구
외교정책을 국내정치화하는 문제를 경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일외교 구상’을 마련해야 함
❍ 한일관계 악화 요인으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권이 외교정책을 국내정치화하는 문제가 제기되 는 가운데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대일정책의 국내정치화로 인해 전략적인 외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음
❍ 그동안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삼았으나 이번 정상 회담은 전제조건 철회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개최된 것임
- 또한 박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을 제시했으나 이마저도 아베총리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상실함
- 박근혜정부가 지향하는 대일외교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임
한일관계를 양자관계 차원의 고려를 넘어 변화하는 동아시아 외교안보 지형 변화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이를 토대로 ‘대일 외교의 목표와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
❍ 현 동북아
정세는 양자간 관계가 독립적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작동 하는 바, 거시적 차원의
대외전략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필요
-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화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 역학관계 변화가 자리하는 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가운데 동맹국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신
안보구상’을 제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외교적 행보를 강화하고 있음
- 동아시아에서 미중관계는 전략적으로 악화될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으므로 21세기 협력적
동아시아 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한일간 협력이 필요
- 한일관계는 한미일 관계와 한중일 관계를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역할이 가능할 것
❍ 과거사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나, 과거사 문제와 기타 현안을 연계하는 것은 대일외 교 뿐 아니라 미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에서도 운신의 폭을 상실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이 고려되어야 함
- 아베정권은 역사 수정주의적 행태를 지속하는 가운데 자국의 주장을 강조하는 외교를 전개하며 대외
홍보를 강화해왔으며,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이 역사문제에 매몰되어 과거사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함
- 그동안 미국은 우리 정부에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며, 이번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로 평가됨
- 박근혜정부 외교정책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일본과의 협력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우며, 북핵 문제와
TPP 문제 등 각종 현안에 있어서도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임
[1] '위안부 문제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는 우 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 아베 총리는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잘못된 이유로 일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2014년 12월 15일)고 밝힌 바 있음
Ⅲ. 정책 제언
과거사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경제분야 등 다른 협력적 이슈들은 실용적으로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 추진
❍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양국간 인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수용 가능한 ‘진정성 있는 사 과’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일본 측에 전달하고 대일 협상 채널을
강화해야 함
- 외교부는 위안부 문제관련 후속협의가 국장급 협의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으나 2014년 3월부터 총
9차례 개최된 국장급 협의에서 논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한 바, 국장급 협상의 격을 높이고 다차원적
협의 채널을 구축하는 방안 검토
- 또한 ASEAN+3회의를 비롯 연말까지 예정된 다자 정상회의에서 양자 회담을 활용하는 등 추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
❍ 아울러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FTA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경제통상 협력을 지속하고 고위급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바, 후속조치를 가속화시켜야 함
-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 등 한일 양국간 공통의 이익을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 협력의 면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 한편,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 필요
- 아베 내각이 지난 9월 집단적 자위권의 해금을 골자로 하는 안보법제를 통과시키고, 지난달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방한 중 '자위대의 북한 진입 시 한국 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등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대두되고 있음
- 일본정부는 자국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 있는 의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허용될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문제는 미일동맹에 따른 미군 지원과 한반도 개입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고 일본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임
- 정부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경우 우리 정부의 사전 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위한 양국 협의를 추진해야 할 것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발전시킨『21세기 한일 공동 비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
❍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토대로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의 비전과 가치 를 추구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방안
- 역사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정권을 떠나 일관성 있는 역사인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바,
아베정권이 역대 일본 정부가 밝힌 입장을 존중하고 계승할 것을 촉구
- 한일관계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공동의
비전을 제시
동아시아의 외교안보 지형 변화에 따른 국가전략(Grand Strategy)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대일
외교의 목표와 가치’를 새롭게 정립
❍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과정에서 한일간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모색
- 동북아 국제질서가 미중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안정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한일
양국이 상호 전략적 가치를 인정할 필요
-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다자적 관점에서 풀어가려는 노력을 기하는 가운데 한미일, 한중일 등 다양한
‘소다자주의 외교’를 추구
❍ 아울러
한일관계 발전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성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설명하고 한국의 대일정책을 이해시키는 노력
필요
- 위안부 문제는 역사문제이자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임을 강조하여 미국내 여론 주도층의
공감을 확산하고, 유엔총회와 인권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
한일 정치인 간의 인적 네트워크가 현저히 약화된 상황인 바, ‘한일의원연맹’의 적극 활용 등을 통해
이를 복원하려는 노력 필요
❍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정치인 간 수많은 공식, 비공식적
채널이 양국간 민감한 갈등 사 안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러한 네트워크가 급격히 약화됨
- 한일간 정치네트워크의 핵심인 ‘한일의원연맹’을 재구축하고[2], 연맹 산하의 분과위원회 등을 활용하여
양국 의원간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
- 젊은 차세대 의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일미래구상’을 활성화하고 양국 의회의 상임위원회 간 정책
네트워크 구축
❍ 아울러 양국 국민간
존재하는 상호 불신과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민사회 연대를 강화 하고 공공외교를 확대
- 한일 지방자치포럼 등 양국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와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함
[2] 전체 국회의원 수 대비 한일의원연맹 가입비율은 2000년 70.3%, 2008년 6.13%로, 2012년에는 51%로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임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