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방지를 위한 법원행정처 개혁방안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일선 판사들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상고법원을 위한 ‘야심’이 아니라 그 야심에 무방비로 농락당한 ‘사법구조’가 문제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구조의 민주적 허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Ⅰ. 사법개혁의 필요성
□ 국민의 불신과 사법부 권위의 추락
○ 국민의 신뢰에 기반한 사법부의 권위는 법치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것으로서, 사법부의 신뢰 상실은 국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
-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사법 신뢰도는 27%로, 이는 OECD국가의 평균인 54%보다 낮아 평균 미달인 수준
- 조사대상 42개국 중에서도 39위를 차지하여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
-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도 법원의 기관 신뢰도는 4점 만점에 2015년 2.2점, 2016년 2.1점, 2017년 2.2점으로 3년 연속 최하위 기록
○ ‘사법 불신의 주된 이유는 돈’과 ‘권력’에게 관대한 법 적용 때문
- 재벌의 기업범죄는 범죄의 수준에 비례한 엄격한 처벌보다 집행유예를 받는 사례가 많음. 2000~2014년 재벌이 저지른 기업범죄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확률은 72%로, 특히 재벌의 기업범죄에서는 1심보다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임1)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혐의 재판관련 1심에서는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뇌물을 준 정경유착 사건의 전형”이라고 판단하였음에도, 상고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국민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음
○ 전관예우 등의 관행으로 ‘동일범죄 동일처벌’의 기본 원칙이 흔들리고 있음
-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형사사건에서 부장급 이상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쓸 경우 집행유예를 받을 확률이 비(非)전관 변호사에게 맡긴 경우의 약 2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음2)
□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사법구조
○ 법관 인사제도는 예비판사·평판사·부장판사·고법부장판사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법관의 서열화를 촉진하고 서열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장의 권력을 극대화함
- 모든 법관은 헌법 제103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독립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
- 법관의 서열이 정해지는 전보인사는 2~4년에 1회 이뤄지는데, 판사들은 더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인사권을 가진 법원장과 대법원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음
○ 대법원장을 견제하거나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대법원장에게 제왕적 권력이 주어짐
- 대법원장은 최고 사법권 행사기관으로서의 대법원의 수장이며, 법원 전체의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행정의 수장을 겸임하고 있음
- 특히, 법관 전보·해외연수·타기관 파견 등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며 모든 법관과 판사·각급 법원장·대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는 등 대법원장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음
- 대법원장과 사법행정권을 견제하는 대법관회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법관인사위원회, 판사 회의 등의 장치가 있으나 실질적 역할은 매우 제한적임
-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부의 권력을 견제할 최소한의 민주적 통제장치가 필요한 실정임
1) 최한수, 이창민, “법원은 여전히 재벌에 관대한가”, , 2018.4.23
2) 최한수, "사법부 전관예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 2018.4.11
□ 법원 위에 군림하는 법원행정처
○ 법원행정처는 재판업무를 보조하는 ‘행정’의 지원을 넘어서, 스스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짐3)
-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의 인사와 법원의 예산 조정 및 사법정책을 수립하는 행정기관임
- 특히, 법원행정처의 인사관리실은 전국의 법관들에 대한 인사의 중심권한을 가지며, 사법정책연구실은 사법 과정의 정보를 수집하여 전국의 법관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기준을 양산하고 있음
- 이러한 법관의 인사권과 통제권은 전국의 법관을 통제하고 재판을 획일화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임
○ 행정조직인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법관에게 사실상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법관들이 법원행정처에 예속됨 3)
- 현재 법원행정조직의 주요 보직에 판사가 배속되어 판사가 재판업무가 아닌 ‘행정’업무를 맡고 있으며, 이는 법원행정처에서의 근무경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 유리한 승진루트로 작용하기 때문
- 행정조직은 성격상 상급자의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데, 양심에 따라 독립된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이 법원행정조직에 예속하게 되는 문제 발생
3) 한상희, 법원행정처의 개혁방향, 민주법학 제29호, 2005, 59p.
Ⅱ.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태 양상
□ 진보적 성향의 판사에 대한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
○ 2017년 2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임 당시,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사찰하여 판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됨
- 법원 내 진보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관의 승진, 전보, 평정, 사무분담 등 모든 사법행정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개혁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는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정리를 위한 전산상 조치를 예고 공지함
- 이러한 법원행정처의 전산상 조치가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한을 지적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며, 법원행정처의 지시에 항의한 판사의 겸임발령이 해제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옴
○ 2017년 4월, 진상조사위는 세간에 불거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였으나 사실무근으로 결론내렸고,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는 일부 확인됨
○ 2018년 6월 5일, 판사들의 근무행태·성격을 분석해온 파일이 공개되어 사실상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사찰해온 것으로 드러남
-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이와 관련된 문건 98개 파일을 공개함
- 공개된 「문제 법관에 대한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 문건에 따르면, 판결문 개수와 분량·법정변론 진행 녹음파일 등을 이용하여 판사들의 근무행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였음
- 일부 판사에 대해선 “징계를 대신한 문책' 대신 '가급적 직무 태만 행위 내지 비위 행위로부터 전보 등 인사 조치를 정당화할 객관적·합리적 사유를 추출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적시
□ 삼권분립에 대한 명백한 훼손
○ 통진당 해산심판,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과 같이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협상 수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남
- 2018년 1월 추가조사위 및 특별조사단의 추가조사 실시 과정에서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와 긴밀하게 연락한 정황과 주요 재판의 동향을 파악한 문서 드러남
- 「BH(청와대) 민주적 정당성 부여방안」, 「조선일보 첩보보고」,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VIP(대통령) 거부권 정국분석」, 「하야 가능성 검토」 문건 등 발견
□ ‘국민이 재판받을 권리’가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전락
○ 본 사건은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해당 재판 피해자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사례가 다수
- 2006년 KTX 승무원들의 직접고용청구재판이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당시 해고된 승무원들이 해당재판 무효를 주장했고, 사상초유로 대법원 내 진입하여 농성을 벌이기도 하였음
- 2018년 5월 30일, 재판의 피해 당사자들(키코 공동대책위원회, 긴급조치피해자모임, 전국교 직원노동조합, 민주노총, 민변 등)은 자신의 재판을 청와대의 거래 대상에 이용한 사법농단에 대하여 공동으로 고발
Ⅲ. 법원행정처 개혁 방안
(1) 해외사례 검토
□ 사법 선진국은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법관의 서열구조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계급 구조를 생성해 내는 법관전보를 통제하고 있음
○ 우리나라의 직급구조는 일본의 ‘판사보, 판사, 고등재판소 장관, 최고재판소 판사, 최고재판소 장관’의 5단계 사법제도와 유사한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법구조가 일제 강점기 이후 진일보하지 못했음을 방증함
○ 그러나 미국, 독일, 영국에서는 직급이나 승진제도가 없어 판사의 독립성 강화로 이어짐
○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에 판사의 동의 없이 다른 법원으로 전출되거나 같은 법원 내에서 다른 직무로 이동되지 않는 ‘부동성의 원칙’을 두어 법관 전보 제한함
□ 사법 선진국의 경우,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을 사법부 외부에 두고 있음4)
○ 사법행정권은 사법부가 아닌 법무부와 같은 다른 국가기관이 담당하는 사례가 일반적으로, 독일과 영국에서는 법무부에서 행정사무 담당
○ 프랑스의 ‘최고사법관회의’, 스페인의 ‘사법 총평의회’와 같이 별도의 독립된 사법행정기관이 사법행정권을 담당하기도 함
□ 특히, 독일의 경우 법관의 독립적 대표기구인 ‘판사회의’를 운용하여, 민주적으로 사무를 분담함
○ 우리나라는 ‘법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특정한 부로 하여 사건을 담당하여 심판하게 할 수 있다’(법원조직법 제7조) 규정에 따라 법원장이 재판부 구성에 전권을 가지고 있음
4) 성창익, “독립적 사법행정기구 신설 제안”, , 2017.6.27
○ 그러나, 독일은 사무분담을 법관의 자치 사무로 보아 ‘사법권 독립’유지. 독일 법원조직법에는 법원장의 사무분담권 내용 없음5)
- 법원장의 사건배당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적 대표기구인, ‘법관사무분담결정 위원회’에서 사무분담
- 법원장과 각 법원의 선출된 법관들로 구성된 ‘대의원판사회의’에서 재판부 구성과 각 재판부의 사무분장 결정. 대의원판사회의의 사안 결정은 법적 구속력 가짐
(2) 개혁방안
□ 인사제도 개혁을 통해 법관의 독립성 강화
○ 인사제도를 ‘인사 이원화’로 개혁하여 법관 서열화의 주요한 원인을 제거해야 함
- 법관 인사 이원화는 일정 경력 이상의 법관을 고등법원 판사와 지방법원 판사로 분리해 고등법원 판사는 고등법원에서만, 지방법원 판사는 지방법원에서만 근무하는 제도
- 인사 이원화로 고법부장 승진제도가 근절될 수 있으며, 승진 탈락으로 사직해 전관 변호사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여 ‘전관예우’의 관행을 예방할 수 있음
○ 승진을 매개로 한 전보를 제한하는 법관인사규칙을 마련해 법관의 동의 없는 전보를 제한해야 함
- 앞서 이탈리아가 ‘부동성의 원칙’을 헌법에 둔 사례와 같이, 우리나라 법관인사규칙에 ‘부동성의 원칙’을 마련하여 명문화하는 것임
□ 법원행정처의 구조 개혁과 권력 분산
○ 독립된 최고 사법행정기구인 ‘사법평의회’를 신설하여 대법원장·대법관회의·법원행정처의 권한과 기능을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인 한계 존재
- 법원행정처의 기능을 별도의 기관으로 이관하는 것은 기존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법관에 대한 행정조직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 그러나, 사법평의회가 사법부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의 권력기관이 될 구조적 위험성이 있음
- 또한, ‘행정부-입법부-사법부-사법평의회’의 4권분립이 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3권분립 체제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다수
○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축소하고, 판사는 ‘재판’업무만 맡도록 하는 방안이 타당함6)
- 법원행정처가 담당했던 기존의 인사·예산·사법정책 업무를 축소하여, 예산편성 및 재판업무를 보좌하는 기능의 업무만으로 제한해야 함
- 사법정책의 연구는 법원행정처가 아닌 사법연수원과 같은 연구․교육의 기능을 하여 특수하게 설치된 기관에서 수행하도록 함
- 또한 법원행정처가 승진을 위한 요직이 되지 않도록 재판을 하지 않고 사법행정만을 전담하는 상근판사직을 없애야 함
5) 황도수, 우리나라와 독일의 최고법원 비교 고찰, 인권과정의 Vol. 411, 2010, 42p.
6) 한상희, 법원행정처의 개혁방향, 민주법학 제29호, 2005, 6
○ 법원행정처의 인사권 축소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 ‘대법관추천위원회’ 명문화해야 함
- 스페인의 ‘사법총평의회’ 사례와 같이 대법원장의 모든 법관과 판사·각급 법원장·대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관추천위원회’가 견제하도록 헌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임
- 문재인 대통령도 헌법 개정안에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임명 제청하도록 조정하고 법관인사위원회의 제청과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일반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음
□ 판사회의의 실질적 운영을 통한 의사결정구조 민주화
○ 법관 독립기구인 ‘판사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대법원장과 법원장을 견제할 수 있음
- 대법원장의 위임을 받은 법원장은 소속 법원에 근무하는 법관에 대한 평정권과 사무분담권을 가지기 때문에 판사들이 법원장의 권한을 상당히 의식할 수밖에 없음
- 따라서 각급 법원 법관으로 구성되는 판사회의에서 재판부 구성과 사무분장을 결정하도록 조치하면 법원장의 권한을 축소할 수 있음
- 독일의 ‘대의원판사회의’와 같이 판사회의를 기속력 있는 의결기관으로 구성하고, 일반 사법 행정 권한이 판사회의에 관여할 수 없도록 조치하면 ‘사법권 독립’ 가능
○ 판사회의를 통해 법원장을 소속 법원의 법관들이 호선제로 선출해야 함
- 2017년 12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판사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현재의 법원장 임명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질문에 79.6%가 동의할 만큼 해결이 요원한 과제임
- 호선제는 법관 경력 15년 이상된 판사들 중에서 호선 방식으로 법원장을 선출하는 방법으로, 판사회의가 실질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러한 호선제도 가능할 것임
- 호선제를 통해 소속 법관들의 실질적 의사반영과 투명한 사무분담이 담보되는 등 법관들이 수평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장점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