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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의 부상 그리고 우리의 전략적 모색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종이 호랑이


새 밀레니엄 들어 중국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 7,451억 달러로 일본(5조 3,908억 달러)을 가볍게 제치고 국가별로는 미국(14조 6,241억 달러)에 이어 세계 제2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정확히 20년 전인 1990년 4,045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평균 10%의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불과 20년 만에 열다섯 배 가까이 경제 규모가 증가했다.


15배? 이렇게 수치로 적어놓으면 그 발전상이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 규모(국내총생산)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어떤 직장인의 월급이 2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딱 두 배 올랐다고 생각해보자.(물론 소득이 꼭 GDP 증가율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빠듯하게 꾸려가던 살림이 얼마나 윤택해질지 누구나 금방 짐작이 갈 것이다. 하물며, 15배라니!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을 일컫는 가장 일반적인 수식어는 ‘종이 호랑이’였다. 아무리 풍채가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그림 속의 종이 호랑이는 하룻강아지만큼의 위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이 홍콩,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군림하던 시기도 있었고 보면, 종이 호랑이쯤이 대수였을까. 가까운 시기의 이러한 기억 때문인지 20년 사이에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져 그림 속의 종이 호랑이가 이제 포효하는 산 호랑이로 우리 앞에 등장한 상황인데도, 중국의 부상은 우리 정가에서나 정부 정책에서 아직 그닥 중차대한 사안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인상이다. 아니, 어쩌면 현실 변화가 너무나 빨라 우리가 그 변화 속도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올바를지 모르겠다. 지구가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며 태양계를 선회하고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듯이.


1920.12.28.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대통령 취임식 당시의 이승만. 중국은 임시정부시절 중요한 외교무대였다.


장사는 중국과 외교는 미국과


변화하는 현실을 정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외교통상부의 대중국 외교를 담당하는 부서는 동아시아국 소속의 중국과 하나에 8명의 인원이다. 4개과에 20명 인원이 근무하는 미국과는 비교 거리가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대중국 외교 역량이 충분히 뒷받침되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한 사실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09년 23.9%에 달해 2위 미국(10.4%), 3위 일본(6.0%)을 합해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별 수입 비중을 살펴봐도 대중국 수입이 16.8%로 대미 비중(9.0%)과 거의 2배 가까운 격차를 보인다. 한마디로 한국의 제1 경제상대는 중국이지 미국이 아니다. EU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보면 우리나라 입장에서 우리 물건을 사주는 나라는 중국, EU, 일본이 1~3위를 차지하고 미국은 네 번째에 불과하다.


세계화 이후 글로벌 지형도가 경제를 중심으로 바뀌면서 정치나 군사, 외교의 모든 측면을 제치고 국가 이익이 교류 관계의 으뜸으로 부상된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대중국 외교 전략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점이 내재해 있음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경제 외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해 벌어진 천안함 사건 및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현 정부가 거둔 초라한 성적이 단적으로 군사, 외교 안보 정책의 문제점을 입증한다. 두 사건 모두 중국은 신중한 중립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나 남북 관계의 미묘한 모든 국면에서 번번이 한국 정부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서두에서 강조했듯이 중국은 이미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지금은 누구도 중국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인식이나 정책은 세계를 이끄는 그레이트 파워로서, G2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을 제대로 평가하고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의 외교 전략은 여전히 G2 세계 질서 이전의 미국 중심 외교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제1의 경제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발상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후퇴 그 이후


2010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항의, 천안함 사건 당시 류우익 주중 대사의 때이른 중국 정부 태도에 대한 비난 등으로 당시 양국간 외교적 긴장관계는 상당한 정도로 고조되었다.


이러한 외교적 마찰은 단지 외교 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외교 담당자들의 해프닝이었을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문제, 나아가 시스템을 결정하는 전략의 문제로 보아야 마땅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외교의 미국 편향성이 강화되면서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 정부 외교 정책이 미국 편향적이라 해서 중국과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중국이 이미 한국의 제1경제 대상국이자, 세계 경제의 견인차로 특히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의 공장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문제가 다르다.


한국 못지않게 미국 중심의 외교 정책을 세우고 있는 일본이 지난해 9월 조어도(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중국의 힘의 외교에 밀려 백기를 들고 만 사건이 변화된 세계 그리고 동북아 질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 참여 정부가 내세웠던 ‘동북아 균형자론’의 의미를 발전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세계화 이후 특정 국가 일변도의 외교 및 국제 정책을 수정하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발전을 모색하면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성에 따라 제기된 외교론이자 전략적 국제 노선이었다. 지금 보아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전략이고 여론조사 기관인 TNS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당시 국민 여론도 약 74.7%가 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나라당의 집권과 함께 전통적인 미국 일변도 외교 전략으로 완전히 교체되었지만, 참여 정부 당시에도 이 전략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측면이 존재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제기된 동북아 균형자론에 결정적 타격을 준 담론은 다름아닌 ‘샌드위치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샌드위치가 균형자를 몰아내다?


샌드위치론은 한국 경제가 위로는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아래로는 중국의 저임금 저가 수출품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경제적 2류 국가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한 담론이다. 주로 기업인들 중심으로 제기된 샌드위치론이 확산되면서 참여 정부의 대외 전략은 크게 표류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 후기에 들어서 샌드위치론이 주는 현실적 압박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표방했던 바, 한국이 동북아에서의 균형자를 자임하고 인근 국가들과의 경제 및 외교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보다는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한층 더 밀착시키는 방향으로, 최종적으로는 한미FTA 협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한미FTA 협상은 거기에 포함된 여러 독소조항 등 세부적인 협상 내용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제도 및 기술 격차가 큰 나라와의 FTA가 결코 우리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경제적인 반박(장하준 교수) 등 경제 전략 면에서도 이론이 많고 특히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기반 내부에서 수많은 반대와 격론을 낳았다.


그런데,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인들이 주장했던 샌드위치론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목격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한국은 직격타를 벗어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지만, 위기 이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경제가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다. 한국경제는 2009년 0.2%의 성장으로 침체를 보였지만 2010년 GDP 성장률이 6.1%로 최근 8년내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현정부는 이에 대해 ‘정부의 집중적인 경기부양책 노력’ 때문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이는 전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에도 굳건하게 유지된 중국의 성장세에 힘입은 바 큰 실적이었다. 한국산업연구원(KIET)의 보고서 에 따르면 ‘위기 이후 중국경제의 호조에 힘입은 대중 수출 증가가 경기 회복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2010년 상반기 기준으로 위기 이전 대비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52%)이 대중국(홍콩 포함) 교역 효과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실은 이러하다. 중국의 추격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샌드위치론은 동북아에서 한국의 균형적 역할을 흔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바로 그 중국과의 무역 관계 덕분에 금융위기에서 가장 먼저 성장세를 회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미국 편향 정책은 오히려 강화되기만 하고 이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동북아 협력은 갈수록 꼬이고 있는 상황이다.



몇 가지 시사점의 모색


필자는 정책 전문가가 아니기에 우리를 둘러싼 이러한 제반 현실 변화를 어떠한 전략 구상으로 한국의 앞날에 유리하게 이끌어 가야 할지, 그리고 우리 당의 정책에 반영해야 할지 자신있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급부상 그리고 참여정부에서부터 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대중국 관계 변화에서 몇 가지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과의 협력적 경제 성장은 향후 한국경제의 앞날에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샌드위치론’은 일면적이고 부분적인 담론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역할을 하는 가운데 한국경제와 경쟁 관계도 늘어날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협력관계, 이를 통한 우리 경제의 성장 가능성도 동시에 높여주고 있다.


둘째, 한중일 경제 협력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최근 한중일 간의 경제 교역 구조는 일본과 한국의 우수한 부품 및 중간재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이것이 중국에서 최종 제조물로 만들어져 메이드 인 차이나로 전세계로 수출되는 협력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자부품 수출의 대중국 의존도는 56%에 달하며 석유화학, 정밀기계, 비철금속 등도 중국 의존도가 40%를 넘는다. 석유화학 중간원료의 중국 수출 비중은 73%이며 합섬원료는 무려 83%에 이른다. 결국 중국과 한국 일본은 이러한 상호 관계를 통해 전세계의 생산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금융위기에서 서비스와 금융에 기초한 영미권의 소위 후기 산업형 경제는 맥을 못추었지만 제조업에 기반한 신흥국 특히 동아시아 경제는 매우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어설프게 이미 수백년의 자본 시장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영미 모델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재 가장 강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앞으로도 근본 수요가 사라지지 않을 이러한 산업경제 구조를 더욱 강력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경제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데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외교 전략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현정부 들어서 심화되고 있는 미국 편향 외교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든 경제적으로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든 심한 불협화음만을 빚고 있다. 지난 세기 후반기가 팍스 아메리카나에 기초한 글로벌 질서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명실공히 G2 시대 그리고 G20 등 패권이 분산된 다자간 경쟁과 협력의 시대다. 단순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하며 이익을 챙기자는 소극적 전략이 아니라 변화된 국제질서가 요구하는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할 때다.

아울러 최근 북한은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미 관계 개선이 뜻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관계 개선이 요원할수록 북한은 한국과 협력을 하거나 아니면 중국에 기대게 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북한은 중국으로 기울고 그에 비례해 남북관계는 거칠어져만 갔다. 연평도 포격 사태와 같은 비극의 배경에는 이러한 동북아 역학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국민의 정부 시절 햇볕정책으로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협력이 모색되었다면, 지금은 그와 같은 평화공존은 물론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남북협력이 절실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일방적 중국 의존도 심화는 한반도 평화에 결코 이롭지 못할뿐더러, 장기적인 통일 기반 조성에도 장애를 준다. 심하게 말해서 북한이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되는 결과가 사실상 초래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민족의 앞날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요컨대 지난 시기의 햇볕정책을 발전시켜 이른바 ‘햇볕정책 2.0’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김재수 (민주정책연구원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