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5세∼39세의 비정규직 노동자·구직자 등 청년들이 만든 노조의 설립신고서가 고용노동부에 제출되었다. 한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며 백수노조라 불리는 ‘청년유니온’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행정소송 1심에서 구직자들의 노조결성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받고 희망을 가졌지만, 올해 3월 11일 고용노동부는 ‘청년유니온’이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서를 재차 반려했다. 네 번째 좌절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88만원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의 고통이 취업대란과 열악한 노동환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입시지옥, 미친 등록금, 고리대금업에 가까운 취업후상환제도, 스펙 쌓기 등 대학교육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고통도 통과의례가 되었다.
위의 문제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으로의 진입과정과 노동으로의 진출과정에서 표출되는 현상들이다. 이는 한국교육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대학교육, 불평등한 노동여건과 좁은 취업문으로 대표되는 경제·사회구조의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양극화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고통은 가속화 단계에 있는 양극화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결국 교육과 노동부문에 이르는 현재의 시스템을 국가차원에서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 원인은 교육과 경제부문에 적용된 신자유주의 논리에 있다. 문민정부가 마련한 5·31교육개혁안은 민주정부를 거쳐 현 정부 에 이르는 교육정책의 기틀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현장의 자율성 등 진보적인 방향을 제시했지만, 경쟁과 효율 등 시장의 논리를 교육부문에 적용함으로써 과도한 경쟁을 유발시켜 오히려 공교육의 황폐화와 사교육의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의 논리는 대학부문에서 절정을 이뤘다. 경쟁을 통한 대학교육의 질 제고라는 목표 하에 대학설립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에 이른다.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 발표로 4년제 대학이 108개에서 2010년 152개로, 진학률은 1991년 33%에서 2010년 80%로 급증하게 된다.
서강대 교정. 취업난에 등록금 인상까지. 대학생들이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스템을 마련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노동시장은 크게 위축되었다. 질 좋은 일자리인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의 대기업의 청년 일자리 수는 1993년 88만개에서 2010년 47만개로 절반수준으로 급감하였다. 취업시장에 일시적으로 인력이 몰리는 깔때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미덕으로 삼는다. 하지만 경쟁이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경쟁에 참여하는 개인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는지, 공정하게 진행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부문의 모든 단계에서 일상화된 경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하다.
한국사회에서 최고 수준의 학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모의 경제적 배경이다. 특목고를 향한 경쟁, 명문대를 향한 경쟁에서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 수준까지 도달한 듯 보인다. 또한 대학의 과도한 선발경쟁으로 불공정한 경쟁, 고교등급제 적용 및 입학사정관제 위반 등 불공정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대학교육과 노동으로의 진출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쟁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우선 미친 등록금과 수탈에 가까운 사립대의 재정운영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능력보다는 학벌을 따지는 한국 사회의 관행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스펙을 쌓아야 한다. 스펙의 질은 물리적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좌우한다.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다수의 대학생들이 ‘꺾기알바’, ‘30분 배달제’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교육과 노동부문의 부조리가 조우하는, 대학교육과정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희망고문’의 과정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경쟁의 과정 및 결과에서 나타나는 도태·낙오·실패, 이를 두고 청년들은 ‘잉여’, ‘루저’라고 자학한다. 이는 일부 부유계층을 제외한 계층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회적 약자 계층으로 갈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더군다나 우리의 교육제도와 경제구조에서 패자부활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불평등·불공정한 경쟁과정과 경쟁결과, 패자부활정책의 실종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는 결국 양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청년이 고통을 겪고 있는 영역, 대학과 노동부문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든 부조리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전부를 상징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지속불가능한 구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청년이 직면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사회구조의 변혁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학벌중심사회 해소 등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 대학서열체제의 철폐, 균등한 교육의 질 제공과 기회의 보장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각 분야별로 다양한 힘의 논리가 대립하고 있다는 점, 대기업 등 자본권력에 대한 국가의 견제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간 해결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화·고착화 되어가는 양극화에 대해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개정된 민주당 강령은 이러한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중심의 시장경제, 교육복지 확대, 차별없는 균등한 교육기회, 공정한 노동시장, 일자리중심의 보편적 복지국가 등이다. 올해 초 발표한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 3 1정책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것이다.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2009년 OECD 조사에 따르면 사립대 연간 등록금 8,519달러(미국 2만 5천 달러), 국공립대 4,700달러(미국 5,670달러) 수준이다. 원화로 환산했을 때 사립대의 경우 1,0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등록금만 그렇다는 얘기다. 2010년도 서울대학교 장학금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활비는 기숙사 이용 학생이 월 73만 원, 전·월세에 사는 학생이 월 103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 학생들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부모의 경제적 배경 없이 정상적인 대학교육이 불가능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전면적인 무상교육이 실시되었는데, 당시 그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00달러에서 1만 달러 수준이었다. 유럽 국가들이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게 된 이유는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교육 기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사회적 평등의 실현 정도, 대학진학률 차이 등 한국의 여건과 다른 측면이 있지만, 당시의 유럽 상황이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값등록금과 함께 되짚어 봐야할 것은 대학교육의 87%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재정운영이다. 사립대의 재정에서 등록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그런데 적립금은 계속 쌓여만 간다. 2009년 133개 사립대학의 적립금은 7조 원으로 2005년 대비(146개 대학 4조 3천억 원) 63%나 증가한 규모다. 건축적립금 비율이 46%,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이 35%나 된다.
한편, 대부분의 사립대 법인은 수익용 재산의 확보와 수익금의 학교전입을 의무화한 법령을 위반하고 있다. 부동산 위주의 재산이라 수익률도 낮고, 정부의 제재 수위도 낮기 때문이다. 사립대가 학생의 미래를 담보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값등록금이 의미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미친 등록금의 원인 중 하나인 사립대의 재정운영을 개선하는 정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청년의 고통은 취업단계에서 절정을 이룬다. 현재 청년이 요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질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고 말하는 관료, ‘눈높이를 낮추라’는 대통령, 비정규직을 권고하는 청년일자리대책에서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두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재벌 총수의 시각을 미뤄볼 때, 대기업의 일자리 나누기와 대기업·중소기업간의 상생에도 큰 기대를 갖기 힘들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이행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수반한다. 강령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인간다운 삶의 기반을 제공하고, 기회의 평등 보장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보육, 교육, 의료, 노인요양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곧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이미 민주당은 뉴민주당플랜에서 대규모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바 있다. 2009년 OECD 주요국의 사회서비스 고용비중은 평균 21.3%, 한국은 13.8%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OECD 회원국 평균수준으로만 올려도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제공을 위주로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활동 인구 중 사회적 기업이 차지하는 고용비중은 OECD 평균 4.4%이지만, 한국은 고작 0.03%에 불과하다. 즉, 보편적 복지가 신규 고용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상 대학과 취업을 중심으로 청년문제의 원인과 해결에 대한 민주당의 대안 등을 살펴보았다. 물론, 엘리트 영웅주의 교육관념 타파, 서열화된 대학체제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과정의 황폐화, 직종·학력 간 임금격차의 해소, 경제·사회적 평등의 실현,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 청년을 둘러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도 제시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교육과 경제구조, 즉 우리 사회 작동원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을 한정된 지면에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못 된다. 또한 이미 언급했듯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 대부분이다. 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구도 역시 복잡하게 얽혀있어 원론적인 수준의 대안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정책분야 사이의 연계성과 구체성을 높이고 소구력도 갖추기 위한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청년의 현재가 미래 어느 청년의 ‘데자뷰’로 반복될 것인지, 아니면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할 것인지,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
설인수(민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