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를 휩쓰는 광풍
황사였다. 희뿌연 흙먼지가 창공을 휘몰아쳐 텅 빈 캠퍼스의 빈 공간을 할퀴고 지나갔다. 바람이 막힌 현수막이 한껏 부풀어 올라 포만감 가득한 자태를 뽐냈다.
텅 빈 게시판. 누덕누덕 붙은 테이프 자국과 스템플러가 할퀴고 간 벽면이 갈등을 웅변하는 듯 했다. ‘등록금 3% 인상안 철회’라는 타협안을 제시한 경희대를 찾았다. 학생총회가 끝났기 때문일까? '모범답안'을 제출한 주말의 캠퍼스를 감안하더라도 학교는 차분했다. 경희대는 등록금 인상분 철회에 따른 환급금 2%와 0.5%를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에, 0.5%를 차상위계층의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곳곳에서 천안함 1주기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목격되었다. ‘보수화된 대학생’과 비정규직 ‘88만원 세대’라는 표현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몇몇 학생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되돌아오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등록금투쟁을 뜻하는 ‘등투’가 대학가를 ‘휩쓸고’있다. 각 대학 총학생회가 등록금인상에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4일 경희대를 시작으로, 29일 우석대, 30일 서강대/덕성여대/인하대/인천대, 31일 이화여대/고려대가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총회를 개최하였다. 이화여대는 4월 4일부터 채플거부를 의결했으며 덕성여대는 총.부학생회장이 삭발까지 감행했다. 무엇이, 대학생을 ‘뿔나게 하고 있는’ 것일까?
4월 2일. 한국대학생연합과 전국등록금네트워크 회원 1,000여명은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를 개최했다. 학생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공약을 이행하라”며 “신공항 건설 무산에는 사과를 하면서 등록금 반값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강남훈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록금이 높지만 대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생의 투표율이 80%가 넘으면 무상등록금까지도 가능하다”며 대학생들의 정치참여를 촉구했다.
몇몇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동덕여대 여학생들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여기 왜 나왔어요?”
“등록금 인상에 화가 나서요”
“왜 화가 나죠?”
공격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힌 여학생들이 서로 자신들을 쳐다보며 웃었다.
“솔직히 더 좋은 스펙을 쌓는다면 지금보다 3배 정도 되는 학교라도 거기 가고 싶지 않으세요?”
“그거야 그렇죠”
예상답변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힘이 빠졌다. 너무 쉽게 ‘스펙’을 인정해버리는, 남들과 다른 경쟁무기를 획득하기를 바라는 속내를 들여다 본 것 같았다. 80~90년대 집회현장과는 사뭇 다른 낯선 집회문화도 한몫했다. 성명서를 낭독하고 집행부가 결의에 찬 떨린 목소리를 토해내도 곳곳에서 ‘웃고 떠드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어느 집회인들 아니겠는가마는) 인기가수의 노래에 맞춰 등장한 또래들의 몸짓에 열광의 환호성을 울리는 장면에서는 콘서트장인지 집회장소인지 모호한 순간적인 해리현상을 경험했다. 비장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경건해야 할(아니 경건하기를 바라는) 집회에 아이돌 그룹의 춤이 등장하고 노래가 울려 퍼졌다. 책임감과 사명감(시대상황에 강요당한 것일지라도)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둘러매고 살아 온 ‘70년 개띠 대학생’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들으며 성장한 지금의 대학생은 달랐다. 박수소리를 따라 연단으로 향했다. 야당의원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정권탈환하여 등록금 반값 실천하겠다’고 했다.
등록금 인상이 이명박 정권 때문일까?
진보 10년 집권기에도 등록금은 꾸준히 인상되었다. 반값등록금으로 ‘표심을 훔친 도둑놈’으로 비난하고 끝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학원재벌과 민간자본의 캠퍼스 습격이 노골화되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성장과 무한경쟁을 구분하지 못한 ‘우리들의 아둔함’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닐까? 자기반성은 없었다. ‘정권탈환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대학주식회사
다음날. 대학교가 밀집한 신촌지역의 서강대로 갔다. 잘 차려 입은 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교수님들의 패션감각이 남다르다’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의문점은 곧 풀렸다. 길바닥에 노란선이 달라붙어 있었다. ‘결혼식 안내선’이었다.
‘어떤 낭만적인 캠퍼스 커플의 결혼식일까?’
아니었다. ‘삼민광장’을 밀어내고 들어선 ‘곤자가플라자’에 예식장이 있었다. 대학캠퍼스에 침투한 민간자본의 노골적인 마케팅이 예식장까지 입점시킨 것이다.
‘대학주식회사’
이 대학뿐만이 아니었다. ‘In 서울’ 캠퍼스 곳곳에 최신식 건물이 건축되고 그곳에 휴대전화 대리점부터, 브랜드 커피숍, 대형서점, 고급레스토랑, 영화관까지 들어서 있었다. 2010년 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펴낸 ‘대학상업화 실태진단’이라는 국정감사 자료집에 의하면 2009년에 국내의 사립대학들이 벌어들인 임대수익이 총 1,225억 원이다. ‘자본주의의 최후의 꽃’이라는 임대사업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까지 파고들었다. 지배권력과 기득권에 저항하고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했던 ‘어제의 대학’이 오늘은 철저히 시장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 대학은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되었다" 며 “역사상 어떠한 권력도 오늘날의 시장권력처럼 대학을 완전히 지배한 적은 없었다"고 계간지 에서 지적하고 있다. (언론보도 재인용)
취직, 그리고 취직
4월 4일. 중앙대 캠퍼스에서 만난 10학번 김모군(생명과학과, 경북 구미출생)과 05학번 손모군(사회복지학과, 경북 대구출생)은 조심스럽게 등록금 고민을 쏟아냈다. 부담스럽고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왜 미안하냐?”
“객지생활해보니 알겠습니다”
“‘In 서울대학’ 다녀서 덜 미안해도 되는 것 아니냐?”
엷은 웃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취직 걱정에 더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얼 해야 하지?”
쉽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다.
“학점, 토익, 해외연수, 자격증, 다양한 경험. 뭐 이런 것을 해야 조금 안심이 됩니다”
김군은 ‘자취를 하고’ 손군은 ‘하숙을 한다’고 했다.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 과외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마련한다’는 마음 깊은 청년들.
학내분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학과통폐합과 회계학 의무이수와 같은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해 퇴학당했던 독문과 3학년 노영수씨(29)와 김주식씨(27. 철학과4), 김창일씨(21. 철학3)가 최근 퇴학처분 무효판결을 받고 학교로 돌아오자 중앙대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노씨에게는 1년2개월의 유기정학을, 김주식씨에게는 무기정학을, 김씨에게는 1년6개월의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주위 친구들의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학교측을 지지하는 쪽은 ‘학생들이 너무한다(버릇없다)’는 것이고 학생들을 지지하는 쪽은 ‘학교가 너무한다(오버한다)’는 것이다. 입장에 따라 의견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했다.
‘스펙에 밀려 이성교제가 어렵겠다’는 말에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적이기에 그리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들의 표현처럼 ‘쿨cool’했다. ‘술도 자주 먹는다’고 했다. 술값은 ‘더치페이하냐?’고 물었더니 ‘별걸 다 묻는다’고 사부작거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게 주말은 고통이었다. 교내식당이 문을 닫아서 ‘끼니를 거른다’는 것이다. 하숙집에서 밥을 주지 않아서 대충 ‘과자 부스러기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블루미르홀(중앙대 기숙사)은 어떠냐?”
“성적순으로 입사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중앙대 민자기숙사는 1학기 118만원에 의무식비 40만원을 낸다고 했다. 초호화판으로 소문난 ‘건국대 쿨하우스보다는 싼 것 같다’고 했더니 ‘진짜냐?’며 되묻는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냐?’고 했더니 ‘좋아보이기는 하지만 자취보다 비싸기 때문에 어렵다’는 김군의 대답이 돌아왔다.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
“취직!”, “취직이요!”
동시에 되돌아 온 대답이었다.
고통받는 청춘이여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웬만한 4년제 대학 나오면 취직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대학생 아들’을 둔 부모님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소 팔아 대학 보냈던 ‘우골탑’의 전설이 각인된 시절이 있었다. 어느 노래구절처럼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거리로 내 몰려 독재타도를 외쳐도’ 취직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진학율 30~40% 시절에는 그럴 수 있었다.
685만원. 대한민국의 대학평균 등록금이다. ‘상아탑이 우골탑으로’, ‘우골탑이 인골탑으로’ 변한 오늘의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빚을 지고, 나오면서 빚을 불린 저당 잡힌 세대가 되어버렸다.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버린 대학교육. 의무에 대한 댓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은 ‘연수입이 10만달러(약 1억원) 이하인 가구의 입학생들은 등록금을 면제하고, 6만달러 이하인 가구의 입학생들은 등록금 일체(기숙사비 포함)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대학들이 이와 유사한 조건으로 ‘차별 없는 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미국이 부럽기는 얼마만인가?
배움의 권리가 돈에 의해 침해당하는 현실에 대한 교육당국의 인식은 어떨까?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젊어서 하는 고생은 옛날부터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용기를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공부를 하기 위한 여러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등록금 고민이 ‘젊어서 하는 고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젊어서 하는 고생’ 때문에 학자금 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두 장을 남기고 자살하는 대학생이 이 땅에 존재한다.
대화를 끝내고 나오는 대학 입구가 돌풍에 휩싸여 희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캠퍼스는 공사판이었다. 학내교육시설 개선이 명목이라고 했다. 공사가 많을수록 학생들의 등록금 고민도 깊어진다.
청춘이 고통받고 있다. 또다시 황사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사진. 글 윤영선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