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릉~~ 쿠르릉~~!
한참을 달린 엔진이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물오름이 시작된 연둣빛 봄이 산뜻한 미소를 보내고, 날렵하게 돌아선 차창 앞으로 골짜기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넓다. 그리고 깊다. 조그마한 땅덩어리를 한탄하고 ‘대륙적인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열패감이 있었는데 분침이 60바퀴를 숨차게 돌아도 산이 있고, 산이 있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첩첩산중 작은 마을에서 한줄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뒷산을 타고 넘어 온 전봇대 전깃줄 위에서 까마귀로 생각되는 검은새 몇 마리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남녘에 비해 쌀쌀한 날씨가 자못 날카롭다. 마을주민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인적이 드물다. 낯선 이방인의 몸가짐이 위축되었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달라붙은 선거포스터 속의 후보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선거포스터를 유심히 지켜보는 아저씨. 철원에서.
지난주 닷새(월, 수, 목, 토, 일)에 걸쳐서 강원도 일대를 둘러보았다. 깊고 깊은 강원도의 지형을 닮아서일까? 쉽게 속내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확실한 것은 여당 후보의 ‘불법 펜션 전화방’이 발각된 이후, 강원도가 요동치고 있었다.
복수의 선거관계자와 주민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선거 초반 격차가 컸으나 TV토론과 ‘불법 펜션 전화방’ 사건 이후, 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강원도의 판세는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동지역(강릉, 속초, 동해, 삼척)은 한나라당, 영서지역은 춘천을 기준으로 화천, 철원, 양구, 양양, 인제는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고 태백, 평창, 영월, 원주는 진보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강릉, 속초, 원주 같은 도시가 발달된 지역의 경우 세대 간의 차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선거’라는 단어에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투표의사는 불분명해 보였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3명이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투표한다면 어디에 할 건가요?”
“한나라당은 싫어요”
“그럼 민주당이에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요”
‘한나라당은 싫은데 민주당이 대안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은 왜 아닌가요?”
“잘 모르겠어요”
“한나라당은 왜 싫어요?”
“재수없어요”
“왜 재수가 없지요?”
“그냥이요”
좀 더 속내를 들여다 보고 싶었는데 ‘죄송하다’며 자리를 떴다.
어르신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재래시장을 찾았으나 ‘5일장 위주로 운영이 된다’고 했다. 연세가 있으신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국밥집을 찾았다. 소한마리 국밥을 시켜서 ‘맛있다’를 연발했다. 아주머니가 반응을 보이기에 선거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는 누가 될 것 같으세요?”
“나 같은 사람이 뭘 알겠어요?‘
“손님들이 뭐라고 안그러나요?”
“뭘라요.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런 이야기 합니까?”
“최문순이나 엄기영이 이야기는 안하나요?”
“엄기영이가 인물이라고는 합니다”
“최문순이는요?”
“아깝기는 하지요”
그리고는 말이 없으셨다.
현수막이 내걸린 철원에서.
'뭐가 아까운 것'인지, 엄기영 후보의 ‘무엇이 인물’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내세운 플랜카드의 문구나 선거공보물에서 미약하게나마 ‘인물론’에 대한 근거를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엄기영 후보 선거컨셉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웃어라 강릉’ 같은 캐치프레이즈도 그랬다. 반면,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의리를 지키는 서민도지사’를 내세웠다. 소구대상이 불분명해 보였다. ‘의리를 지키는’에서는 이광재 전 도지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공보물 또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보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는 ‘(출마)준비가 힘들었다’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사람 좋은 최문순(권력의지가 약한)’ 후보가 출마의지를 구축하기에는 짧은 시간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인물됨이 ‘법상치 않다’라는 뜻이리라.
‘온도차가 확연하다’는 철원지역으로 향했다. 16년만의 방문이었다. 철원지역은 90년대 초반 군인시절에 훈련을 자주 왔던 곳이다. ‘호국로’로 불리는 43번 국도를 따라 155mm 자주포를 타고 포사격 훈련을 나왔던 '눈물의 문혜리'. 강산이 한번 반이 바뀐 세월의 힘은 무서웠다. 농담으로 ‘껌 한통 값으로 땅 한 평을 살 수 있다’던 문혜리의 상전벽해였다. 민가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훈련장 바로 옆까지 민간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4차선으로 확장된 도로 옆으로는 음식점이 즐비했다. 철원지역으로 통하는 많은 도로는 고속화되어 있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추진한 결과일텐데 지역발전을 이끈 ‘민주당은 이곳에서 왜 고전할까?’, ‘민주당은 프로파간다가 약하다’, ‘기초조직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민들에게 물었다.
“지난 정권에서 한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민주당을 왜 싫어합니까?”
“싫어하기는... 그냥 눈에 안들어 오는거지. (그리고) 민주당이 해 줬나? 나라에서 해 줬지!”
“정권잡은 정당이 나라역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건 아니다"
그래 ‘이건 아니다’. 그러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갈말읍에서 동송읍으로, 다시 신철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곳곳에 위치한 군부대의 담벼락과 군부대 식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동공이 확장되었다.
3사단 예하부대의 담벼락. 냉전적인 문구가 눈길을 끈다. 철원에서.
‘북괴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백골부대’로 유명한 3사단의 구호였다. ‘멸북통일’. 관련자료를 찾아보니 3사단장이 '북한정권은 공산주의도 아니므로 멸공통일이 적합하지 않아서 멸북통일'이라고 했단다. 헌법에 명시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헌법정신과 민주정부 10년 햇볕정책의 성과가 이것이란 말인가? 분노가 치밀었다. '아침저녁으로 멸북을 눈과 가슴으로 세례받은 주민들’의 정서가 들이닥쳤다.
23일. 춘천에서 만난 몇몇 시민들은 엄기영 후보측의 ‘불법콜센터’에 즉각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도지사 하라고 했더니 불법하라고 출마했냐’는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할 일 없어서 대포폰 들고 선거운동하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결과에 대한 예측은 ‘그래도 모르겠다’였다. ‘초원 복집’사건을 예로 들며 ‘역풍이 불지도 모른다’, ‘보수가 결집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최대 20%에 달한다’는 부동층이 흔들리고 있었다. ‘투표 안할려고 했는데 (투표하기로)결심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강릉에서 ‘민심의 바로미터’라는 택시를 탔다. 선거이야기를 꺼냈더니 ‘한나라당은 사람도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 원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방사능 오염물질의 수도권 유입을 막기위해 인공강우를 계획했던 것’에 대한 분노였다. ‘자기들 살겠다고 강원도 다 죽으라는 이야기냐?’며 ‘해도 너무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주위 동료들의 투표참여 의사에 대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지지자)이건 민주당(지지자)이건 상당수 시민에게서 ‘살기 힘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분노를 ‘어떻게 투표장으로, 그리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이끌 수 있을까?’란 고민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부활절에 '대한수도원'을 찾은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이튿날(24일). 철원 한탄강변에 위치한 대한수도원을 찾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빗속에서 최문순 후보가 교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주민들의 수줍어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수줍어하기는 최문순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몸짓 사이사이에서 아직은 ‘정치인 최문순’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저것이 인간 최문순인데 왜 저것을 몰라줄까?’라는 원망이 빗속으로 사라졌다. 우산에 가려 최문순 후보를 알아보지 못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뒤늦게 최문순 후보를 알아보고 ‘파이팅!’을 외쳤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나가시오!”
“여기는 왜 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수행하는 선거운동원이 서둘러 그 분에게 다가갔다. ‘목소리 좀 작게 하시라’는 몸짓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수행원과 안면이 있는 사람의 언중유골 농담이었다. 그것이 ‘최문순 후보에 대한 반감인지 비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3시가 되어서 예배당으로 들어간 최문순 후보가 정성껏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춘천에서 다시 택시를 탔다. 시민들이 ‘TV토론하는 것을 보니 최문순 후보가 잘하더라’는 반응과 ‘불법콜센터를 엄기영 후보가 몰랐을 리가 없다’라는 ‘반응이 많다’는 것이다. ‘누가 이길 것 같으냐?’는 천기누설을 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투표율 아니겠냐?’는 의견이었다.
역시 투표율이 관건이었다.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정책선거는 이번에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는 불분명하다. 아직까지 우리 국민에게는 ‘정책선거라는 모범답안’ 보다는 ‘힘 있는 후보에 대한 욕구’가 투영되는 것이 선거라는 것 정도일까?
이제 내일이면 경쟁의 결과를 위한 투표가 진행된다. 선거는 경쟁이다. 민심을 얻는 경쟁이다. 그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낸다. 분명한 것은 승리의 결과는 ‘시민에게 되돌아 가야한다’는 것, 그리고 패자, 패자를 지지한 시민 또한 ‘승리자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승리를 위해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후보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부도덕한 경쟁자가 누구인지는 강원도민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런 힘이 강원도에는 있다고 믿는다. 내일 ‘강원도의 힘’이 증명될 것이다.
사진.글 윤영선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