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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다

눈을 감고 희희낙락 즐거워하기만은 상황이 녹녹하지 않고 시간도 없다. 4.27 재보선의 결과는 "저주스런 3년"에 대한 대중 스스로의 반성이었다. 권력을 전리품으로 취급하고 공정사회 등 그들이 내세우는 온갖 아름다운 수사들을 정확히 배반해온 치졸한 약탈적 정권에 대한 명확한 심판이자, 환란 이후의 이 사회를 지배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각개전투로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서민과 중산층의 아우성이었다. 강남좌파가 어떻고 분당우파가 어떻고 개별 선거의 성공과 실패 요인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분석될 수 있으며 이미 그런 해석과 논평은 넘쳐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남은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2년 앞에서 모든 것은 전조에 불과하다. 호사가적 비평에서 벗어나 진보진영이 이번 보선을 통해 얻은 것과, 배워야 할 것과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자.    



I. 연합정치를 위한 제도 논의를 시작해야


이제 연합정치의 방법론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다. 작년 지방선거와 두 차례의 보선으로 야권연대의 장단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간단히 요약하면, "야당이 연대하여 한나라당과 1:1 구도가 되면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연대를 하느냐는 국민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가의 문제뿐 아니라, 각 정당 당사자들의 행위와 미래에까지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선거정치 전체의 맥락을 바꿀 수 있다. 이제 후보단일화라는 결과만 가지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김해을의 경우 18대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을 단순 비교할 경우, 후보 단일화 없이 민주당이 47.8%, 한나라당이 45.6%, 민주노동당이 5.2%를 얻어 민주당 최철국 의원이 당선된 지역이다. 또한 작년 지방선거 때 김해시에서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61.9%,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38.1%를 득표한 것을 보면, 이 지역의 정치적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는 야권단일화에도 국민참여당 후보가 패하였다. 상대인 김태호 전 도지사는 비록 영남에서 인정과 동정을 받는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총리 인준 과정에서 입은 도덕성의 상처가 작지 않은 후보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패배는 선거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러 이유를 따질 수 있지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많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누구를 탓하는 것과는 별개로 문제는 순천처럼 정치적 양보와 협조가 순조로울 수도 있지만 김해을과 같은 상황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는 이 같은 후보단일화 과정을 백오십 번이 넘게 겪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모두 겪으며 단일후보전술을 쓰고 또 단합해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진보적 가치가 밑바탕에 깔린 고도의 정치적 전략으로 총선과 대선의 과정을 주도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허풍쟁이에 가까운 낙관주의자이거나 아예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 비현실적인 극단적 원칙주의자들일 것이다.


작금의 현실은 야권 연대를 확실하게 실현할 도구와 장치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제도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일률적으로 적용하자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 제도는 선거 이후의 집권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권력의 공유와 분배에 이르는 연합 혹은 연립정치(coalition politics)의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제도는 연합세력들이 공유하는 가치의 현실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연합 밖의 세력과 효율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그 제도는 연합 내의 개별 세력들이 의미 있는 차이를 바탕으로 존속하고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보장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즉, 쉽게 말해 연합정치의 제도는 한나라당과 1:1로 경쟁할 수 있는 효율적 결과를 보장해야 하며, 집권플랜을 중심으로 민주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권력공유가 가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현 진보정당들)의 정체성을 보전하거나 나아가 오히려 소수가 다수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방법의 명칭은 빅텐트론일 수도, 가설정당일 수도, 민주진보연합당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가능성 속에서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치밀한 설계와 계획이어야 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정가능하고 융통성 있고 열려있는 제도여야 한다.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도 늦은 감이 있다. 5월 중으로 최소한 야당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상설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각각 별도의 통합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이런 논의를 얄팍한 정치공학이라 치부하고 논의의 대상도 아니라고 경멸할지도 모른다. 그 경멸의 언사를 받아들여보자. 하지만 우리가 간단한 건물 하나를 짓는다 해도 수많은 건축공학의 지식과 방법들이 필요하다. 하물며 국가를 경영하고, 개혁하며, 그를 위한 집권의 계획을 밟는 데 필요한 정치공학의 방법들을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 정치공학의 지식들은 결코 얄팍하지 않다. 얄팍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쉽게 이룰 수 있을 테니. 그것은 복잡한 정치지식이 동원되어야 하고 설득과 타협이 주를 이루고 통 큰 양보가 곁들여지는 불확실한 과정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연합정치의 제도화 속에서 불확실성을 믿어야 한다. 암울한 현실의 확실성보다 무엇인가 가능한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오늘 잃고 양보하는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더 많은 것을 얻을 내일을 상상해보아야 한다. 그런 정치적 리더십과 상상력을 동원하는 지도자와 정파만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던 때의 노무현 대통령이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생각하는 당신들에게 남겨준 가장 큰 교훈 일 것이다.



故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에 헌화하는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        ⓒ 윤영선



II. 박근혜는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다


이와 다른 차원에서 4.27 보선은 진보진영에게는 정치 현실적인 의미에서 몇 가지 희망을 주었다. 가장 큰 것은 박근혜 의원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는 도전할 수 없는 차기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 어떤 야권의 대안도 박근혜 의원에 대한 지지율의 절반을 넘기 힘들었다.


그러나 분당과 강원의 도전과 승리는 무기력에 빠진 민주당에게 정치에 있어 도전이 얼마나 큰 가치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연대가 얼마나 달콤한 열매를 가져오는지를 다시금 경험하게 했다. 박근혜가 간접적으로 개입한 강원도지사 선거의 승리는 허황된 인지도와 색깔론 등의 구태보다는 원칙과 설득력 있는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준 윤리적 승리였다. 정치에서도 도덕이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일러 줌으로써 모두에게 희망을 준 선거였다. 야당은 박근혜 의원을 깰 수 있는 방정식의 해법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반면 박근혜 의원은 여러 쌍의 곤란한 정치적 방정식 속에 놓여 있다. 무너진 한나라당의 당내 권력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판단과 한나라당이라는 토대가 너무 급히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계산은 첫 번째 차원의 고민이다. 더하여 이조차 완전히 허용하지 않으려는 친이계의 견제도 거북스럽다. 이재오-정몽준-박근혜의 공동지도부를 제시하는 친이계의 전략은 박근혜의 힘으로 당을 안정시키면서도 그를 이명박 정부와 공동운명체 속에 가둬 통제하려는 낡고 따라서 현실성은 없지만 설득력 있는 전략이다. 이재오는 박근혜로 대세가 완전히 굳어질 때까지 수많은 다른 수를 모색할 것이다.


19대 총선을 앞둔 인적 청산은 박근혜의 또 다른 고민일 것이다. 수도권 전멸의 공포 속에서 인적쇄신 없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을 도모할 수 없다. 함량미달의 의원들을 대체해 젊고 새로운 세력들을 전면에 배치해야 하는데, 그나마 친이계뿐 아니라 노회한 구세력들이 많은 친박계도 예외는 아니다. 버리자니 자신의 사지를 잘라야 하고 내버려 두자니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를 험난한 선택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박근혜 의원의 정치력이 갖는 특징은 수동성에 있었다. 기다림, 무대응, 모호성, 원칙을 가장한 대중추수 등으로 차별성을 부각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박 의원에게 능동성을 요구하고 있다. 천막당사를 제외하고는 박근혜 의원의 행동목록에서 찾기 어려운 특질이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번 보선같이 민심이 확인 될수록 "박근혜"에 대한 피로현상이 나타날 단초가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잠재적 피로현상은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박근혜가 재차 노출되는 순간 현실성을 지니며 발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오랫동안 "다음"권력이었다. 그러나 1인자의 후원을 받지 못한 2인자의 한계는,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의원은 국가 지도자로서 어떤 설득력 있는 비전도 제시한 적이 없다. 2007년의 "줄푸세" 정책은 2011년의 "한국형 복지"와 완전히 정반대의 것이다. 국가 경영의 철학이라는 부분에서 박근혜는 '진공' 혹은 '공동(空洞)' 상태란 의미다. 이미 조직된 많은 학자와 참모 집단이 만들어낼 길고 긴 정책 리스트는 있겠으나 그 안에 "박근혜"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아이러니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4대강과 747안에는 "이명박"의 실제가 담겨 있었다. 그 앞에서 대중은 윤리적 판단을 접었을 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07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개발독재와 발전국가의 산업시대를 상징하는 박근혜 의원이 복지, 상생, 공정, 연대의 가치를 요구하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받아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내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와 보선을 통해서 국민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학습해 오고 있다. 그 학습의 속도는 현실 정치권 내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때로는 고집으로 보이는 일차원적인 원칙만 되새김질하는 박근혜 의원이 이런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없을지 대중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시대정신으로도 "박근혜"는 오래된 이름이다. 문제는 이 오래되었으나 아직은 잠재된 피로감을 진보진영이 어떻게 새로운 비전으로 노출시키는가이다.   


 
III. 손학규의 부상을 진보세력 전체의 부상으로


이번 보선을 통해 읽어야할 정치적 변화에서 박근혜를 언급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부상 때문이다. 아마 조만간에 발표될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여러 지지도 조사에서 손학규 대표는 상당한 상승 국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혹자는 "손학규 대통령"이 상상이 아닌 현실 가능성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한다.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서 야권이 어쨌든 경쟁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정책과 이념 속에서 대안이 만들어져도 선거라는 현실 정치의 게임 안에서 이를 대표할 정치 지도자가 없다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야당과 진보진영은 "대안으로서의 손학규"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오해를 피하자면, 손학규 대표만이 아니라 그를 포함해서 박근혜 혹은 다른 한나라당의 후보와 대결할 대표주자들에 대한 전략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의 문제로 표현된다. 반가운 문제의 부상이지만 조심스런 전략이 필요한 부분이다.


야당 내부의 진보세력들에게 손학규는 딜레마의 정치인이다. 정치적 강단과 득표력도 확인되어 가고 있고 상대적으로 중도·보수적인 집단에게도 설득력이 있다. 행정경험도 풍부하고 경기고-서울대-옥스퍼드대를 나온 정치학박사라는 학벌과 대학교수라는 전직은 심지어 보수엘리트들 사이에서의 반감도 줄이는 강점이 있다 (이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과 크게 차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강점은 손학규의 진보대표성에 못미더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도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뉴라이트에 대해 보여준 그의 입장과 자세 등은 손학규를 통한 집권이 과연 의미 있는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곤 한다. 심지어 진의가 어떻든 공개적인 자기반성과 함께 진보적 노선으로 좌클릭을 한 정동영 의원과 비교할 때도 복지, 대북문제 등 여러 정책에 있어 색깔도 모호한 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손학규 대표의 독주를 막고자 견제해야 하는가? 때이른 세력다툼과 섣부른 견제는 손 대표 밑으로 일렬종대로 서서 '손학규 대통령'을 위해 돌격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럼 민주당 내 진보세력, 나아가 야권 전체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일단 손학규 대표가 지는 게임에 나가는 골목대장 이인제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손 대표의 부상을 야당과 진보세력 전체의 부상과 연결시켜야 한다. 야권 전체에 한나라당과 박근혜에 대항할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들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손학규 대표의 부상과 함께 연합정치의 과정에서 그와 파트너가 되는 당내외의 다른 인물들도 큰 무대로 나설 자격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손 대표 스스로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손 대표가 선두일 수밖에 없겠으나 단독질주는 위험하다. 이미 자천타천으로 회자되고 있는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많은 차기 대권주자들과 예상외로 떠오를지도 모를 이인영, 이정희 등 젊은 정치인들도 새롭게 주목을 받아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유시민의 실패는 뼈아프다. 스스로의 패착이기는 했으나 그가 이대로 침몰하는 것이 야권 전체에 득보다는 실이 크다. 뼈를 깎는 반성을 하던, 백의종군을 하던 자신의 정치력으로 헤쳐 나올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패자에 대한 관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중적 분노와는 달리 민주당, 민노당 등의 야당이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연대의 경험이 준 깨달음이란 점에서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IV. 복지, 진보, 연대가 최대의 무기다


또한 손학규 대표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손학규이던 다른 누구이던 진보세력의 대표로서 평등과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와 정책 그리고 연합정치의 틀 속에서 경쟁하도록 추동하는 길 밖에 없다. 인물뿐 아니라 인물이 선도하는 가치를 그 인물이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인물의 경쟁력을 최대한 강화하는 구조를 진보진영이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싱크탱크와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지는 추상적 정책비전과 구체적 아이디어들이 논의되고 이런 논의를 주도 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돈 몇 푼 벌게 해주겠다고 사탕발림하는 보수가 아니라 바로 유능한 진보라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


진보 집권을 위한 논의의 백가쟁명이 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또 한데 모여야 한다. 북 콘서트 같은 대중 작업에서부터 조세, 예산, 복지, 교육, 여성, 지방정부 등에 대한 최근 여러 진보적 싱크탱크들의 생산적 연구, 그리고 '백만 민란'이나 '내가 꿈꾸는 나라' 같은 한국 판 무브온이나 진보 통합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진보집권으로 향하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뚜렷한 궤도를 놓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진보진영은 정부와 보수진영을 향해 끊임없이 논쟁적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생활과 복지 쟁점에 대한 주도권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무상(의무)급식의 사례가 너무나 잘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이런 조건을 개척해 나갈 때 진보진영은 한 개인 정치인에 대한 불안한 믿음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강력한 대표선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확실한 연합정치의 구조 자체는 야당과 진보세력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집권과 정책실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골고루 나누어 줄 것이다.  


이번 4.27 재보궐 선거는 민주·진보 세력에게 2012년의 집권을 위해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첫째, 단순히 후보단일화 전술이 아니라 연정까지 바라본 장기적인 안목으로 함께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둘째, 박근혜 의원은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 연대와 진보의 가치로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셋째, 손학규 대표의 부상을 민주·진보 세력 전체의 부상으로 연결시켜야 하며 그 방법은 복지, 진보, 연대의 가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와 진보의 복원을 바라는 연합정치의 모든 주체와 대상들에게,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면 그 목표로 가는 구체적인 길과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생존과 단기적 이익에 급급한 정치적 소자영업자(political small holders)가 되지 말고 작은 양보로 파이(pie)를 크게 키워 나눠 가질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을 해보자. 그런 꿈꾸는 현실주의자의 자세만이 지난 3년간의 부끄러운 퇴보를 이 사회에서 몰아내고 사람 사는 세상을 다시 건설하는 길로 나가게 해줄 것이다. 그것이 6.2 지방선거, 7.28 보선, 그리고 4.27 보선의 성공과 실패가 민주·진보 진영에게 가르쳐주는 정치적 교훈이다. 2012년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다 눈을 뜨면 상황이 녹녹하지도 않고 시간도 없다. 그러나 시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분명한 징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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