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 민주개혁진영의 승리인가? - 2012년 대전환을 위한 과제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 ‘야권연합의 시험대’ 등 다양한 의미를 부여받았던 4.27 재보선이 끝났다.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4.27 재보선은 반한나라당 연합을 이룬 민주개혁진영,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당의 승리다. 야권연합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대결함으로써 재보선의 승패를 가름했던 강원도지사, 분당(을)과 김해(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출전 후보 모두가 승리를 거두었고 국민참여당이 출전한 김해(을)만 연합후보가 석패했다. 민주당의 텃밭인 순천에서도 쟁쟁한 무소속 후보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야권연합후보인 민주노동당의 김선동 후보가 낙승했다.
승리를 거머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축배를 들었고 한나라당은 지도부가 와해되었다. 야권연합의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였던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는 김해(을)의 패배로 칩거를 선택한 반면, ‘천당아래 분당’이라던 한나라당의 아성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단숨에 대권주자 지지도 10%를 돌파하여 민주개혁진영에서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로 우뚝 섰다. 그런데, 여기서 물음을 던져보자. 과연 민주당이 승리한 것인가? 혹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아닌가?
4.27 재보선은 MB정부와 한나라당의 패배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정치경제적 상황같이 단기적으로 어떤 정당도 변화시킬 수 없는 요인을 제외하면,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으로 네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첫째,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했는가, 둘째, 정당에 대한 지지가 우세하게 유지되었는가, 셋째, 선거 준비와 켐페인 과정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거나 조성되었는가, 넷째, 중요한 정치적, 정책적 쟁점에서 우위를 보였는가가 그것이다. 이들 요인을 모두 앞서거나 혹은 만약 하나의 요인만 앞서더라도 다른 요인들을 압도할 정도여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자력으로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4.27 재보선은 야권연합의 승리라 평가하기 어렵다. 우선 후보 요인에서, 분당(을)을 제외한다면 야권연합의 후보들이 한나라당의 후보에 비해 경쟁력에서 결코 앞섰다고 말할 수는 없다. 후보자의 인품이나 도덕성, 정책수행능력을 유권자가 정확히 알 수 없는 바에야 후보의 경쟁력은 후보의 경력과 인지도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순천지역 역시 야권단일후보보다 무소속 후보들이 경력과 인지도에서 앞선 것이 사실이다. 분당(을)도 한나라당 후보가 전직 당대표였음을 감안하면, 비록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후보를 공천했지만 다른 요인들을 압도할 정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당지지도 역시 야권연합이 결코 앞선 적이 없다. 특히 야권연합과 한나라당 후보가 대결한 지역에서는 야권연합 전체의 지지도를 합해도 한나라당의 지지도에 한참 부족했고, 현재도 그렇다. 그렇다고 야권연합이 선거 기간 중 특별히 야권연합에 유리하거나 한나라당에 불리한 국면이나 이슈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나라당과 MB 정부는, 물론 성과는 별로였지만, 선거기간중 대기업과 대결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농협 사태를 북한과 연관시키는 이른바 ‘북풍’을 기도하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슈를 만들어내려 노력을 했다.
4.27 재보선은 선거에 특화된 정치적, 정책적 쟁점이 없는 선거였다. 전국적인 정책적 쟁점을 만들기 어려운 재보선의 특성도 그렇지만, 분당(을)과 김해(을)은 강력한 후보들이 의식적으로 쟁점 형성을 피했고, 강원도와 순천은 정책적 쟁점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 강원도는 이광재 지사의 이슈가, 순천은 야권연합의 이슈가 다소 쟁점이 되기는 했지만 선거 전반을 흔드는 규모가 되지 못했다. 야권연합도, 한나라당도 정치적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면에서 동일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른 요인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당(을)에서 후보 요인만 앞섰을 뿐이지 다른 요인들에서 모든 지역구를 통틀어 야권연합과 민주당은 앞서거나 혹은 앞설만한 모멘텀을 전혀 가지지 못했다.
4.27 재보선의 결과를 가름한 것은 민주당과 야권연합이 아니라 MB정부와 한나라당이다. MB정부는 무능과 부패, 불통으로 선거의 외부 환경을 한나라당에 최악으로 몰고 갔다. 4%를 넘는 고물가와 전세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대북정책과 상하이, 독도, UAE 등에서 보여주는 외교안보적 무능과 의혹들,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신뢰 부재, 사상 최악의 국가부채 속에서 삽질에만 골몰하는 오만과 불통,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민주적 작태 등은 특히 지적 수준이 높고 합리적인 30대와 40대 화이트칼라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분당(을)에서 투표의 1/3이 출퇴근 시간에 몰렸고 어느 보수 일간지가 보도했듯 30대의 83.9%, 40대의 58.8%가 손학규 대표를 지지한다는 결과는 이들이 가진 분노의 창끝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후보 요인에서도 한나라당은 유리함을 살리지 못했다. 특히 분당(을)의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계파간의 파쟁은 박빙의 최대 승부처에서 자기 지지자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강원도 후보 공천 역시 자신들과 각을 세우면서 인기를 얻은 인사를 후보로 공천함으로써 후보의 자질 논쟁을 초래했다. 아울러 한나라당과 MB 정부는 선거 기간중 불리한 이슈들을 자초했다. 선거 막판 터진 강원도의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잠적과 모르쇠로 대응함으로써 지지자들에게는 배신감을, 야권연합 지지자들에게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수도권에서는 건강보험료 조정을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을 하다가 더 큰 역풍을 맞았다.
4.27 재보선에서 야권연합과 민주당 승리의 최대 공로자이면서 숨은 공로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전혀 우습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27 재보선은 야권연합과 민주당이 승리할 이유가 많아서 이긴 것이라기보다는 MB정부와 한나라당이 패배할 이유가 너무 많았던 선거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2012년, 명실상부하게 승리할 자격을 갖추어야
승패를 떠나 4.27 재보선 결과는 야권연합과 민주당에게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우선 국민의 비판의식이 여전히 살아있고, 민주주의와 진보, 개혁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16대 대선의 이회창 후보보다 기껏해야 5만표 남짓 더 득표한 이명박 후보에게 역대 대선사상 최다득표차 승리를 안겨주었던 민주개혁진영의 유권자들이 다시 투표장에 등장하고 있다. 18대 총선 투표율을 넘어선 분당(을)의 투표율이나 50%에 육박하는 강원도의 투표율은 이들 민주개혁진영 유권자들의 결집 이외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들 지역이 모두 보수적 성향을 보였던 곳이라는 점에서 범민주개혁 유권자의 결집은 다음 총선과 대선의 전망을 밝게 한다.
다음으로는 야권연합의 가능성과 위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 효과를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분당과 강원도 모두 5% 이내의 박빙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이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분당에서는 14.4%, 강원에서는 10.5%의 득표율을 올렸음을 감안할 때, 야권연합의 영향이 승패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순천에서 무명에 가까운 김선동 후보가 쟁쟁한 국민의 정부 출신 후보들을 제쳤다는 것은 야권연합의 대의에 호남의 전통적 지지층들도 호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밝은 의미와 함께 위협적인 의미도 존재한다. 특히 김해(을)의 패배는 아주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김해는 故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도지사와 시장,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민주개혁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경남에서 민주개혁진영의 마지막 보루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부패 스캔들로 국무총리에서 낙마한 인사에게 패배했다. 이 결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야권단일후보라는 명분만 가지고는 안되며,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야권단일화가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화합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정파적 이해에 의한 밀실담합이나 무리한 버티기로 이루어질 경우 연합의 효과는 사라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현재의 승리 국면이 민주당이나 야권연합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에 기댄 측면이 크다는 사실은 또 다른 위협이다.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특별히 국민의 행복 증진에 유능해질 가능성이나 민주적 소통을 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실정에 기대는 승리는 언제나 취약성을 가진다. 이번 패배를 계기로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와 급격히 분리하면서 자기개혁이나 세대교체를 통해 다시 지지층을 결집시킬 가능성은 상존한다. 한국의 보수 언론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한나라당은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으며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근혜라는 대국민 소구력이 있으면서 이명박 정부와 일정 수준 분리된 정치인의 존재는 언제나 위협적이다.
민주당과 야권연합은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고 확고하게 착근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해야할 일은 한국의 시대정신을 꿰뚫어 국민이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는 미래 비전과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는 일조일석에, 그리고 한두 정당이나 폐쇄적인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유력한 대선후보들이 비전을 선창하고 광범위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세련화시켜야 한다. 이를 가지고 국민 속으로 파고들 때 자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둘째로 해야 할 일은 총선과 대선에 경쟁력 있는 후보군을 만드는 일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제 ‘말뚝’만 꽂아도 당선되는 시대는 지났다. 지적 수준이 높고 비판 의식이 풍부한 40대 이하 국민들이 유권자의 주류로 등장한 현재, 패거리 공천이나 밀실 야합에 의한 부적격 인사의 공천은 패배의 지름길이다. 당 개혁을 통해 기득권을 타파하고 세대교체를 가속화하여 새로이 주류로 등장한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유능한 인사들을 연합후보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들의 경쟁력이 당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당의 경쟁력이 이들 인사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칙을 지키고 화합하는 야권연합의 틀을 조속히 만들어내야 한다. 연합을 이루는 각 당의 정체성과 역량의 차이 때문에 정치적 타협의 과정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정당간의 정치적 흥정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합리성과 정당성에 기초한 연합의 원칙을 마련하고 그 원칙을 통해 나온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화합의 연합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이 야권 연합의 틀은 늦어도 연내에 확정되어야 한다. 선거가 코앞까지 이르도록 정파적 힘겨루기를 거듭한 결과를 보여준 김해(을)의 결과를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각 당의 예비후보들이 활동을 본격화하는 2012년 초까지 야권연합이 협상과정에 있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것이다. 따라서 야4당과 시민사회가 객관성을 담지한 단일수권기구를 출범시키든, 각 당간의 수임협상기구를 만들든 지금부터 대승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을 통해 연내에 야권연합의 원칙과 틀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무능은 왜 여전히 한국의 민주개혁세력이 단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단결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한국 기득권 세력의 억지와 전횡은 왜 여전히 민주개혁진영이 자신을 버리고 국민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과 야권연합이 역사가 부여한 이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승리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4.27 재보선은 아직 멀고먼 길의 중간역일 뿐이다. 아직 국민은 민주당과 야권연합을 관망하고 있다.
한상익(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