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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가치와 진정성

복지국가의 가치와 진정성- 민주정부 10년과 최근의 복지논쟁을 중심으로 -


 



1. 한국사회의 현재


2010년 말 한나라당에서 대표적 신자유주의 비판학자인 장하준 캠브리지 대학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여기서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우리 자신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이 길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고통과 저항이 따르더라도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집권여당 최고위원의 입에서 자신들이 종교와 같이 신봉했던 가치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들이 맹신하던 ‘시장’, ‘기업’, ‘성장’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중심 가치들에 대해 자의든, 타의든 “이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객관적 통계수치를 보더라도 확인이 된다.



· 09년도 기업설비투자 증가율 마이너스 9.1%
· 3년간 재정적자 79조원, 국가채무 108조원 증가
· 3년간 'MB물가지수' 19.1% 상승
· 전셋값 100주 연속 상승
· 3년간 가계부채 165조원 급증
· 대학등록금 부담 OECD 30개국 중 2위(국민소득, 장학금 등 고려시 1위)
· 복지분야 예산 증가율(2006년 10.2%→2007년 9.6%→2008년 10.3%→2009년 8.5%→2010년 8.9% →2011년 6.3%)
· GDP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 7.5% OECD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 최하위
· 의료비 가계부담률 OECD 평균이 18.3%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5.7%로 멕시코에 이어 최하위
·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후퇴(2007년 64.6%->2008년 62.2%)로 민간의료보험 가입비율 2009년 77.79%로 증가
· 비정규직 2009년 8월 575만 명
·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상대임금 수준(비정규직임금(월 1,230천원)/정규직임금(월 2,660천원)


*출처: MB정권 3년 평가 자료, 민주당(2011)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한국사회에 저출산·고령화, 사회양극화 심화, 중산층 붕괴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급기야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 민심의 이반이라는 정치적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이에 그들도 자신들의 기득권과 정치적 생존을 위해선 이제 ‘그 길’이 아니란 걸 인정하고 대안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 의원의 고백은 당면한 한국사회 문제의 원인을 모두 드러내 놓진 않고 있다.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와 함께 정 의원이 언급하지 않은 언론과 재벌에게 특혜가 인정되는 독과점 시장의 결합이라는 독특하고 왜곡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는 정언유착, 정경유착 등으로 설명되는 특권적 과두지배동맹체제와 결합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권적 과두지배체제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세계화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지배통치양식으로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는 정치적 독재정권을 정점으로 재벌, 관료, 언론, 전문가 엘리트들이 수동적 지배동맹의 일원이었다면, 지금은 사회의 과두엘리트들이 능동적 지배자로서 통치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리를 옮겨가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방식으로 이권을 공유, 배분하면서 끈끈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국가권력을 포획하여 한국사회의 온갖 특권, 특혜를 독점하고 있다(고원, 2011).


이러한 지배구조가 경제성장기에는 이들에게 엄청난 열매를 가져다주고, 경제침체기의 고통과 희생은 원가절감과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층, 서민층에게 전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와 특권적 과두지배체제의 강화는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심화시켜 왔고, 이로 인한 사회갈등의 양상도 계층갈등, 노사갈등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국민이 '대접받으면 살 길은 무엇일까?' 강원도 재보궐 선거. 철원 2011.


 



2.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어떤 길이고, 어떻게 가야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최근 불거진 ‘복지논쟁’을 보면 ‘다른 길’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각성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키워드는 ‘뉴타운 개발’, ‘로또 분양’, ‘부자되세요’ 등 돈과 개발이 주류가 되는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앞서 살펴 본 이명박 정부 3년의 성적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참혹하고 고통스러웠다. 빈곤이라는 구시대적 위험 외에도 비정규직 근로자와 실업률의 증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고령화로 인한 노후소득불안, 양극화 등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해서 증폭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처럼 증폭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으로써 ‘복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무상급식’ 공약으로부터 촉발된 민주당의 ‘3+1 보편적 복지정책’과 박근혜 의원의 ‘생활보장형 복지국가’, 한나라당의 ‘70% 복지’ 등이 이러한 국민들의 새로운 가치지향에 부응하며 구체화된 것이다. 3년 전 한국사회를 집어 삼켰던 ‘욕망의 정치’(고원, 2011)는 그 달콤함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에게 여전한 미련으로 남아있지만, 그 허상의 부도덕함과 잔인함을 깨달은 국민들이 ‘분배’와 ‘복지’라는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3. 복지를 바라보는 시선


최근 복지논쟁을 보면 ‘복지’를 주장하는 목소리 중 민주당의 ‘3+1 보편적 복지정책’과 박근혜 의원의 ‘생활보장형 복지국가’가 언론과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모든 쟁점을 재원문제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복지논쟁에서 정치권이 무엇보다 중요시해야 할 것은 ‘가치’의 논쟁에서 승리하고 그 가치를 진심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진정성’있는 태도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유권자의 표심은 대부분 자신들이 공감하는 ‘가치’, ‘인간적 유대’, ‘진정성’, ‘신뢰’, ‘정체성’ 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조지레이코프, 2007). 복지를 확대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이고,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재원마련은 그 다음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 야당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대운하’에서 ‘살리기’로 명칭을 바꾸어 22.2조원의 국가재정을 투입해서 강행하고, 천문학적 국가채무에도 불구하고, 2012년까지 96~99조원에 이르는 대대적인 ‘부자감세’를 단행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개발주의적 가치와 지지기반인 건설사와 대기업, 언론, 부동산 투자자들의 이해에 부합하고, 그들로부터 정권재창출을 위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로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박근혜 의원은 진정성이 있는가? 말과 행동은 복지국가 실현하기 위한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이는 과거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시선 1. 민주정부 10년
민주정부 10년의 문을 연 국민의정부는 IMF에 의해 강제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출발하였다. 산업 및 고용분문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소득양극화와 함께 기존의 복지제도가 부실했던 탓에 신빈곤, 저출산, 고령화 등의 각종 사회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정부는 이러한 사회정책의 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적 복지’를 국정기조로 설정하였다. 생산적 복지가 국정기조로 설정한 배경에는 경제의 압축성장기부터 누적되어 온 차별과 소외문제를 시정하고,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실업과 소득불평등 심화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다가오는 지식기반사회에서 인간개발과 사회통합을 중심으로 하는 미래지향적인 사회정책시스템이 구축해야 하는 전환기적 시대 상황이었다는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국정홍보처, 2003).


대표적인 복지 정책으로는 2000년 10월부터 실시된 과 장애인의 자활과 자립을 지원한 전면개정, 국무총리산하 ‘노인보건복지 대책위원회’ 설치를 통한 범정부적 고령화 사회대비책 마련, 경로연금 지급대상 및 금액 확대, ‘노후종합복지계획’수립, 2001년 12월 ‘보육사업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발표, 제정,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 제정, 희귀난치성 질환자 보호체계 마련,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최저임금제, 임금채권보장법 적용을 전사업장(전국민)으로 확대, 국민임대주택 20만호 건설, 의약분업실시, 식품의약품안전청 신설, 국립암센터 개원 등이 있었다.


이러한 국민의정부 복지정책은 IMF의 규제 하에서 시행되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커다란 틀 안에서 보았을 때, 사실 상 사회정책 개혁의 내용과 성과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배치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정무권, 2000).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국민의정부가 도입하고 추진한 복지정책은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는 것과, ‘개인의 책임’보다는 ‘국가의 책임’, ‘선별주의적 원리’에서 ‘보편주의적 원리’로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문진영, 2009).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완고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안병영, 2000; 문진영, 2001; 박윤영, 2002; 김영순, 2005).참여정부의 사회정책 환경은 세계화, 개방화의 급진전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사회정책의 필요성, 양극화의 심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경제성장이 고용과 소득창출로 이어지는 현상(Trickle-down effect)의 약화 등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와는 다른 사회정책 수립을 요구하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새로운 사회정책 원리의 핵심은 첫째, 사회복지와 사회정책을 인적자본 향상을 위한 사회투자개념으로 인식하고, 둘째, 성장과 분배, 그리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 선순환의 관계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참여정부는 2006년 7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새로마지플랜 2010)」을 수립하여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작성하였다. 2006년 8월에는 이러한 계획들을 한데 모아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전2030」이라는 국가 재정계획을 발표하고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방향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 같은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비전은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는데 첫째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내실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도입, 근로장려세제(EITC)의 도입, 자활근로사업 확대, 의료급여의 확대 등 사회안전망의 내실화를 추진하였다. 둘째는 사회복지서비스의 대대적인 확충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위스타트 프로그램과 지역아동센터로 대표되는 아동복지를 위한 지원 확대, 노인건강관리프로그램의 도입과 자연장(自然葬)제도의 도입 및 화장시설 확보 의무화와 지원 등 장사(葬事)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셋째는 사회서비스의 확대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돌봄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고 이를 해결하기위해 산모·신생아도우미지원사업,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인돌보미, 간병도우미 파견사업 등을 실시하고, 이를 통한 사회적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 외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에 따라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가족의 수발부담을 국가가 대신하도록 하는 2007년 4월「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제정하고, 제5의 사회보험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참여정부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국민연금의 개혁도 추진하였다. 1999년 전국민연금으로 확대된 이후 국민연금은 설계에서부터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되어있어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할 경우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내적구조가 취약하였다. 저출산·고령화추세가 본격화되면서 지속가능한 노후소득 보장제도의 운영을 위해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참여정부는 관련 위원회를 구성, 운영하였으나 합의안을 도출하는데 실패하였고, 2006년 논의를 재개하여 정부는 기존 연금개정안을 수정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기초(노령)연금안을 반영하여 기초노령연금안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합의된 국민연금개정안과 기초노령연금법안이 국회에 제시되었으나, 2007년 4월 국회에서 기초노령연금법안은 통과되고 국민연금개혁안은 부결되었다. 이후 야당과의 재논의를 통해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되,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점감하는 내용으로 합의하여 2007년 7월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보건의료분야는 2004년 담뱃값 인상으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을 활용하여 임신부·영유아, 40-66세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관리활동을 강화하도록 하였다. 전염병 예방관리체계도 구축하여 국립보건원을 질병관리본부로 확대·개편하고 질병관련 시험·연구, 검역·방역 기능을 강화하였다. 또한 매년 약 12만 명의 신규 암환자가 발생하는 암 증가 추세를 반영하여 ‘전국민 5대암 검진체계’를 구축하고, 건강보험을 통한 암환자 의료비 지원 확대, 호스피스를 통한 말기 암환자 관리 사업을 지원하였다.


참여정부는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위해 중증질환자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 식대 보험 적용 등을 추진하여 2004년 61.3%에서 2005년 61.8%, 2006년 64.3%, 2007년 64.6%로 보장성을 강화하였다. 또한 건강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정책으로 과도한 약제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하여 2010년까지 약제비 비중을 29.2%에서 24%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를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인식하여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영리병원 허용검토, 민간의료보험활성화 등을 추진하면서 국민의료비 상승, 의료공공성 약화 등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상의 성과에서 볼 수 있듯 민주정부 10년은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구사회적 위험과 신사회적 위험의 동시적 해결과 예방’ 등을 목표로 사회투자형 복지국가를 추구해 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공성의 약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민생과 복지는 국민의정부, 그리고 참여정부의 정체성”이라는 중요한 원칙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이 이루어졌고, 현재의 민주당 역시 ‘보편적 복지국가’ 비전을 당의 주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시선 2. 박정희의 딸
반면 차기대권주자로 유력시 되고 있는 박근혜 의원도 다음 선거의 키워드로 ‘복지’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0년 12월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관련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민주정부 10년을 계승하는 민주당과 박근혜 의원 개인을 정책으로 비교평가 하기는 불가능하므로, 본고는 박근혜 의원의 발언에 비춰 박정희의 계승자로서의 박근혜의 복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박근혜 의원의 ‘생활보장형 복지국가론’이 아버지의 꿈인 복지국가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근혜 의원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근거를 1977년 의료보험의 도입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 의료보험의 도입을 가지고 박 전 대통령의 꿈이 복지국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민건강보험이 우리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복지정책 중 하나가 되면서 박정희 시대의 인사들은 대부분 이를 자랑스러운 본인의 업적과 관련하여 기록한다.



 


예를 들어 김종인은 “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김종대 당시 보사부 사회보험국장은 “의료보험 실시가 가능하다는 부처 최고책임자(신현확 장관)의 확고한 결심을 바탕으로 제도 내용 및 시행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실시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광찬 당시 사회보장개선심의위원회(사보심) 위원은 “사보심 연구위원들을 중심으로... 기필코 반영코자 노력했고... 의료보험 부분 계획은 보사장관에게 보고 시 이번 4차 계획에서는 빼라고 하여 이 부분을 빼고 경제기획원에 제출”했으나 박정희가 의료보험은 경제개발 4차 계획에 넣으라고 해 도입됐다고 회고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신현확 주도의 ‘박정희-김정렴-신현확’론이 있고, 신현확은 반대하는 와중에 김정렴-김종인 주도의 ‘박정희-김정렴-김종인’론이나 사보심 관여론 등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했다는 것과 당사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 외에는 일치하는 것이 없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건강보험제도가 현재 인기있는 제도라는 것 뿐이다.이런 ‘영웅주의적’ 주장은 그들의 회고담일 수는 있어도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는 것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 공적 의료보험제도 도입이 논의된 것은 4월 혁명 전후였고,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가 도입을 공약했으나 실제로 도입한 것이 왜 16년 뒤인 1977년인지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여러 관련 당사자들이 증언하는 당시 사건 하나가 도입 배경을 설명하는데 더 설득력이 있다.


“4차 5** 계획 최종 보고회의 이틀 전에 청와대 안보상황 보고 자리에서 정보부(안기부)판단관이 ‘가장 위험한 안보 취약지대는 봉천동, 상계동 등의 판자촌 빈곤 주민들입니다... 일단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 되는 상황이어서 유사시엔 예측 불가합니다... 이들에 대한 의료보장 대책이 시급합니다.’라고 건의”하였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또 이 무렵에는 “북한의 무상의료제도에 대비한 남한의 ‘무의료참상’에 관한 북한 삐라가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이 양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이들의 처우는 지독히 열악한 상황으로 격렬한 민중운동과 노동운동을 낳았다.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 1971년 경기도 광주단지사태, 사태 등 당시 노사분규는 1970년 165건에서 1971년에는 1,656건으로 10배나 폭증했다. 이후 유신체제로 잠시 억눌려 있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1975년 이후 다시 급증하는데, 공식통계만 보더라도 집단행동으로 번진 1966-71년의 파업 건수가 66건이었던 반면 1975-79년에는 파업 농성 시위가 연평균 109건에 이른다.


당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김종인이 잘 지적했듯이 노동운동과 반정부투쟁의 결합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의료보험 도입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약한 지 무려 16년 만에 의료보험을 도입한 것은 사회운동이 정권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 출처: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인가?, 우석균(2010)


 


그러나 당시 인사들의 증언이나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1977년 의료보험의 시작 동기는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위협으로부터 체제유지를 위한 ‘국민들에게 등 떠밀린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당시의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면 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였고, 그 딸인 박근혜 의원이 제시한 ‘생활보장형 복지국가’비전이 그 꿈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이 OECD회원국 평균의 3분의 1 수준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작은정부’, ‘감세’를 주장한 박근혜 의원이 ‘복지국가의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해 가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떨쳐버리기 어렵다.


4. 어떻게 가야하는가


이명박 정권 3년을 경험한 국민들은 더 이상 ‘성장우선주의’, 경제성장에 따른 ‘낙수효과’가 현실에서는 불평등과 경제 갈등을 상쇄·완화하는데 효과가 없다는 점을 점차 인식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확대된 복지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담론이 우리사회 중심에 섰고, 국민들은 이명박의 ‘747국가’가 아니라 ‘복지국가’가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고 추구해야할 ‘가치’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 발 맞춰 민주당은 ‘창조적 복지국가’로 표현되는 ‘보편적 복지 3+1’방안으로, 박근혜의원은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 공청회를 통해 ‘생활보장형 복지국가’로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민주당의 복지비전은 ‘보편적 복지’라는 기치를 처음으로 전면에 내걸었다는 큰 의미 부여와 함께 복지국가의 큰 비전과 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박근혜의원의 복지비전은 보수진영 유력 대선주자의 중대한 전략적 변경이라는 의미와 구체적 정책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김용익. 2011).


이러한 평가에 대해 차기 대선을 준비하고 대응하는 민주당과 박근혜 의원 측은 대응논리와 구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복지국가의 비전과 정책 제시를 통해 집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떻게 복지국가 비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획득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특혜와 불평등으로 인식되는 특권적 과두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정당, 신뢰받는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에서 복지로 중대한 전략적 변경을 시도한 박근혜 의원 측 보다 민주정부 10년 이후 현재의 ‘보편적 복지 3+1’방안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복지담론에 있어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은 다양한 주체들이 다양한 배경으로 복지논쟁을 진행해왔고, 그만큼 내부적 정합성은 부족한 상태여서 이를 어떻게 꿰어 정합성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사회적 연대감 역시 사회복지정책의 성공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 사회적 연대감의 형성은 언론, 재벌, 관료 등으로 대표되는 특권·특혜를 무너뜨리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이 경제정책과의 관계설정이다. 그 외에도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진보와 보수, 세대 간의 갈등 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결국, 앞으로의 복지국가 논쟁은 기존 사회갈등(성장과 분배, 증세와 감세, 큰 정부와 작은 정부, 국가와 시장 등)과 특권·특혜·불공정으로 심화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누가 평등과 연대에 바탕을 둔 정책적 일관성과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데서 승자와 패자가 구분될 것이다.




고원, “기고: 진보의 정치전략, 왜 ‘민주주의’가 중요한가”, 프레시안, 2011년 1월 25일자.
국정홍보처, 『국민의정부 5년 국정자료집 3』, 국정홍보처, 2003.
국정홍보처,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 4 : 사회』, 국정홍보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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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민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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