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경제성장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1960-70년대 성장 위주의 사고방식에 갇혀 경제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경상수지 흑자 등이 정부의 최고 경제업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MB정부 들어 더 심해진 듯하다. 이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747이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던 정부인만큼 성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업 프랜들리’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던 것도 기업이 성장의 핵심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 초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환율정책을 추구한 것도 수출대기업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층건물 뒤로 석양이 물들고 있다
MB 정부의 수출대기업을 통한 성장률 높이기 전략의 한계
MB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장자본주의의 접근법도 크게 달라졌다. MB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던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출범 이후 대기업의 숙원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비롯해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제도를 완화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고유 업종을 폐지했다. 이와 함께 법인세까지 인하하면서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노력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되고 여전히 신규투자를 꺼리는 한편 고용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면서 중소업체들의 신규 시장 진입이 힘들어지고 양극화 심화와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있다. 경제력이 너무 집중되면 경제 전체의 리스크가 커지고 창의적인 혁신을 막는다. 이런 상황을 뒤늦게 인식하고 MB 정부는 ‘친서민’ ‘공정사회’ ‘상생경제’로 새 길을 찾으려 했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 등 발언은 오히려 논란의 불씨만 더 키우고 있다.
각종 사회지표 갈수록 악화, 성장에 갇힌 경제정책 탓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모든 경제․사회 시스템이 바뀌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성장이 곧 고용의 증가를 의미했으나 세계화와 더불어 이 둘의 상관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경제사회 각 부문의 양극화는 사회통합을 저해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일방적인 성장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를 표방한 결과 현재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위기 상황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 확대, 빈부격차 심화, 자살률 OECD 1위, 출산률 세계 최저 수준 등 거의 모든 사회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지표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성장도, 시장경제도 지켜내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부동산PF 피해사례인 부산저축은행 피해자가 통장을 펼쳐보이고 있다. 후순위채권임에도 불구하고 예금자보호 문구가 적혀 있다.
우리 사회의 성장의 목표와 방법을 새롭게 정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최근의 사회․경제적 현상은 경제성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성장모형에 따르면 투입요소인 노동과 자본의 축적에 따라 경제가 성장한다. 그러나 최근 내생적 성장 모형은 경제는 내생적으로 결정된 생산성의 증가율에 따라 성장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미 2000년대 이후엔 양보다는 질에 의해 성장이 좌우되는 단계로 경제 체질 자체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연평균 성장률 9.3%에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차지하는 몫은 3.8%에 불과했으나, 2006-2009년에는 연평균 성장률 3.1%에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차지하는 몫은 1.9%로 그 비중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요소생산성을 높이려는 혁신형 성장전략의 핵심은 복지이다. 복지 분야 투자는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이며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 되는 새로운 성장모델이다. 과거에는 복지를 문자 그대로 잔여주의(residualism)적으로, 소비로 인식했기 때문에 복지를 통해 경제를 키운다는 개념이 없었다. 교육ㆍ보육ㆍ보건 등 인적자원 개발에 쓰이는 재원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인간의 창의성을 끌어올리는 혁신형 성장전략임을 알아야 한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 보육, 의료, 주거 등 인간적 생활을 보장해 줌으로써, 중산서민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고 이는 소비 증가를 통해 내수확충 및 투자를 촉진하여 궁극적으로는 성장률을 제고시킬 수 있다. 또한 복지에 대한 투자는 변화와 혁신, 창의와 도전의 활성화가 가능하게 한다. 즉, 사회안전망 제공으로 위험부담을 용이하게 하여 혁신활동의 유인을 제고할 수 있다. 내생적 성장모형에 따르면 복지 지출은 인적자원의 잠재적 활용을 극대화하고 사회갈등의 감소에 따른 불확실성 제거를 통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가 개방경제 하의 대외지향적 경제발전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 복지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민 대다수가 튼튼한 인적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패자부활이 가능한 혁신적 사업들을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요소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성장전략의 핵심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성장의 목표와 방법을 새롭게 정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동 호 민주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