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반값등록금 논의: 문제는 진정성이다.
해마다 봄이면 대학 캠퍼스 내에서 달아오르던 등록금 투쟁의 열기가 올해는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촛불로 옮겨 붙었다. 반값등록금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자 30대와 40대, 그리고 중산층이 가세했다. 대학등록금의 이해당사자들이 단지 대학생들뿐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계층이동(신분상승)의 중요한 수단이 된지는 이미 오래됐다. 최근 10년 간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급증한 것을 보면 우리사회에서 대학진학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33.2%에 불과했던 대학진학률이 2009년에는 81.9%에 달해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인플레이션 사회로 진입했다.
그동안 고등교육의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동안 고등교육에 드는 비용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담시키다시피 했다. 대학진학률과 마찬가지로 대학등록금도 지난 10년간 약 두 배 가까이 치솟아 2011년 현재 사립대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768만 6000원으로 전체 가계 평균소득의 16.6%에 달한다. 그만큼 대학등록금은 고물가와 가계부채에 전전긍긍하는 서민가정에게는 말 그대로 고통수준이다.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안형편이 어려운 상당수의 학생들은 새벽까지 알바를 해야 하고,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허리는 휠 정도를 넘어 이미 부러질 정도가 됐다.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자구적인 노력으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이들에게 대학등록금 인하는 이미 생존의 문제다.
상황이 이러한데 대학등록금 문제에 접근하는 대통령의 인식수준은 다소 안이하다는 느낌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등록금 지원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대통령의 인식과 대학등록금 인하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는 다수의 대학생들 사이에는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는데 드는 재원은 연간 6조원 정도라고 한다. 그 비용이 결코 적다고는 볼 수 없으나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정부가 부자감세와 불요불급한 비과세 감면을 철회만 한다 해도 연간 25조원 안팎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될 4대강 공사에는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십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정작 시급한 문제인 대학등록금 인하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대학등록금이 현 시점에서 왜 우리사회의 심각한 현안이 되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반값등록금은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묵으로 일관했다가 최근에 또 다시 새로 선출된 원내대표가 반값등록금을 쇄신의 핵심과제로 삼겠다고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하루 만에 한나라당은 반값등록금 출구전략으로 급선회했다. 한나라당의 목표가 애초 반값등록금에서 적정한 수준의 등록금 인하로, 그리고 또 다시 조건부 장학금 확대와 대학의 구조조정 등으로 끝없이 하향 조정되면서 한나라당의 정책에서 반값등록금은 이미 실종된 상황이다. 차분하고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한답시고 또 다시 등록금 인하라는 핵심에서 비켜가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4ㆍ27 재보선 패배 이후 민심수습을 위한 카드로 반값등록금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기회주의적 변신은 무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회주의적 변신은 국민을 속이는 기만의 정치요, 그에 따른 대가는 한나라당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혹독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요구에 반응해야 하며, 그 반응은 책임 있는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구조화 되는 상황 속에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수준과 정책에 대한 선호도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고등교육의 수요가 급증하고 다수의 국민이 이해당사자가 된 상황에서 대학등록금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정부는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인 대학등록금 인하를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좌절과 절망부터 체득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때문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이제 대학생과 학부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국정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와 결단만 있다면 반값등록금은 충분히 가능하다.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 고통 받는 젊은이들을 위해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장환석 민주정책연구원 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