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시대를 향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다 - 김성환 노원구청장 인터뷰
본 인터뷰는 2011년 6월 30일, 노원구청장실에서 김성환 노원구청장, 김영필 편집위원, 민주정책연구원 한상익 연구위원과 최정은 간사가 참석하여 약 5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 편집자주
김영필 : 안녕하십니까. 이번 인터뷰는 민주정책연구원이 발행하는 계간지『사람과정책』 여름호 특집인 ‘6.2 지방선거후 1년, 지방자치를 점검한다’의 한 부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성환 : 저도 창간호를 받아보고 다 읽었는데, 특히 안수찬 기자의 ‘그들과 통하는 길’은 인상이 깊었습니다. 짧지만 참 함축적인 내용이었고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어요. 제가 구청 식구들에게 파일로 회람시켜 읽어보고 노원구의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했었습니다.
김영필 : 감사합니다. 그럼, 인터뷰로 들어가지요. 자치단체장으로서의 1년 생활에 대한 감회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성환 : 제가 구청장이 될 때 우리 노원구 주민들과 했던 약속이 ‘편안한 의자 같은 구청장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그 약속 생각을 하면서 1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사실 단체장들은 눈에 보이는 업적을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도로나 건설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죠. 노원구만 하더라도 구청도 증축하고 건물을 많이 지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큰 돈 드는 일은 안하려고 합니다. 대신 기존의 제도나 인프라, 사람들을 제대로 활용해서 주민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에 주로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을 하고 그랬어요.
예를 들어 민원도 그렇습니다. 취임하고 보니 구청장실 정면 계단으로 오는 문이 아예 닫혀 있더라고요. 반대편만 열려 있는데, 누가 항의하러 오거나 하면 잠가버려요. 엘리베이터도 안서고요. 구청장실에 들어오는 것이 원천봉쇄되는 거죠.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아예 문을 잠그지 못하게 하고, 누구든, 무슨 일이든 찾아오시라고 했어요. 주민이 희망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만난다는 생각을 한 거죠.
한 번은 구청 들어오다가 주차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말씀을 들은 적도 있어요. 다 해결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들어드리는 것만이라도 진지하게 해야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것이 반은 풀린다고들 하시고, 요즈음에는 아예 항의하러 오시는 분들도 거의 없어요. 뉴타운 문제 지금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노원구청에는 데모하러 오는 주민이 없어요. 1년 만에 벌어진 변화죠.
김영필 : 작년 6.2 동시지방선거는 무상급식을 중심으로 복지가 중요한 이슈였는데, 진보구청장으로서 복지에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김성환 : 자치구 재정 여건상 복지 예산을 늘려도 한계가 있습니다. 노원구만 봐도 무상급식 지원에 30억 정도 들어갔고, 자살예방 사업을 하면서 3억 정도 들어간 것만으로도 압박이 있어요. 그래서 우선 토목사업들, 계속사업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착공하지 않은 것 중에 불필요한 사업은 다 중단시켰는데도 필요한 복지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존의 제도와 사람을 잘 활용해서 복지수준을 높이는데 주력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일이 통장을 복지도우미로 역할을 바꾸고 ‘복지도우미’라고 문패를 달아 놓은 거죠. 도움이 필요하면 통장에게 바로 연락하고, 또 통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안부를 확인하고 도와주도록 했습니다. 기존 행정제도의 명칭을 바꾸고 역할을 조정한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통장은 일이 좀 고되지만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복지 서비스가 크게 확대된 것이거든요. 이전과 똑같은 예산을 쓰는 것인데, 그렇게 명칭과 역할을 바꿔줌으로써 복지의 비전과 가치를 확대하게 된 거죠.
또 우리 노원구는 자살예방사업을 시작했는데, 우선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부 우울증 테스트를 했습니다. 한 1,100명쯤 됩니다. 뭐 아직 성과를 수치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문 상담도 하고 1:1로 매칭해서 관리를 하도록 했는데, 큰 예산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볼 때 반응이 괜찮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OECD 1위 아닙니까. 사실 국가가 나서야 되는 일인데, 우선 시작해 본 거죠.
사실 그 동안 행정기관은 복지의 조력자 내지 복지의 심판관 행세를 했어요. 국가가 내린 기준에 따라 수급권자를 심판하는 격이죠. 주민이 “수급권자로 넣어주세요.” 하면 “자식이 있어 안 됩니다.”라거나 “이건 되네요.” 하는 식으로요. 그런 행정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조건을 따지기 전에 구제할 방법을 찾는 행정이 되어야 합니다. 제도 안으로 흡수해서 보호할 수 있는 분들은 그렇게 하고, 제도로 안 되는 것은 행정력과 재원을 가지고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죠.
노원구는 기존 인력을 조정, 동별로 3명씩 복지인력을 확충해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했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매일 계획을 세워 직접 찾아가서 필요한 것을 보라고 했지요. 이것과 아까 말씀드린 복지도우미 제도를 시행하니까 공무원과 통장은 굉장히 바빠졌지만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은 바로바로 도움을 받게 된 겁니다. 요즘은 공무원들이 많이 친절해지고, 예전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씀하는 주민들을 많이 뵙니다. 주민들이 변화를 느끼고 있고, 실제로 변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복지 확대와 재정 균형을 맞추려면 지방자치 예산을 재설계해야
김영필 : 예산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나라 지방자치 재정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김성환 : 우리 노원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재정자립도가 25위입니다. 열악하죠. 그런데 복지 수요는 또 제일 많은 자치구 중에 하나거든요. 그런데 이전 한나라당 출신 구청장들이 좀 눈에 보이는 사업에 예산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신규 토목사업을 중단시켰는데도 예산 압박이 좀 많습니다. 지난 1년간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이것인데, 감세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재정 압박은 우리구 뿐 아니라 다른 자치단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실 故노무현 대통령님 시절에 종부세로 욕은 먹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부분적으로 세액이 증가하면서 자치단체장이 재정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감세로 돌면서 재정의 기본 몫도 줄어든 상태에서 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라면서 적자재정을 독려하기도 했고, 또 이전 단체장들이 과도하게 전시행정에 열의를 기울이다보니 지금은 재정을 탄력 있게 운영할 여지가 매우 좁아요. 이명박 정부 감세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지방재정이지만 복지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령연금, 장애인이나 보육 관련 제도가 확대되는데, 이것이 매칭 펀드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여기에 대응하다 보면 쓸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어요.
지방자치 예산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100% 국가가 책임을 지고, 특수한 사정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은 지자체가 책임지고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보육료나 노령연금은 지역마다 특수한 사정이 있을 여지가 별로 없잖아요. 이건 국비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거비는 지방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좀 더 들거든요. 이 경우 수급권자의 상황에 맞게 메꾸어 주는 것은 자치단체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자꾸 국가 50%, 시비 25%, 구비 25% 이런 식으로 일률적으로 매칭해 버리니 자치구가 자신의 사정에 맞는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집니다. 요즘은 서울시, 그리고 서울시 의회와 재정 협의를 많이 합니다. 최소한 조정교부금 비율이라도 높여야 어떻게 해 볼 여력이 조금 생기거든요.
김영필 : 서울시하고 풀어야 할 문제 중에 뉴타운 문제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응하고 계시는지?
김성환 : 사실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을 새로 지정한 것은 없으니, 뉴타운의 원죄는 이명박 시장 재임 때의 서울시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직 시장은 오세훈 시장이니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할 책임은 있죠.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오세훈 시장도 해결 방법은 알거에요. 주민에게 떠넘기던 기반 시설을 시가 재정으로 메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하려면 뉴타운 한 지역당 3천억원에서 5천억원을 시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데, 이건 어려운 이야깁니다.
민주당 구청장들이 중심이 돼서 뉴타운 출구전략 마련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만들었습니다. 서대문 구청장이 팀장인데, 법률과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업승인 인가가 나기 전에는 그래도 조합원 판단에 맡기면 되는데, 인가가 난 곳은 지금 중단하면 조합이 그 동안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 부담이 큽니다. 그래도 무조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사가 적절하게 반영될 방법을 포함해서 검토를 하고 있어요.
우리 노원구만 보면, 서울시 자문위원회를 통과한 곳이 절반이고, 조합 결성이 된 곳이 하나, 안된 곳이 두 군데에요. 그래서 제가 한 일이, 사업성 분석을 해서 공개를 해버렸습니다. 땅 30평 가지고 있는 사람이 30평 아파트 가지려면 2억원 이상 추가부담을 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공개했더니 주민들 사이에서 기준을 가지고 찬반 여론이 일어나고 있어요. 결정은 그 분들 몫이지만, 구청 입장에서는 객관적 사실과 정보를 공개해서 정비업체의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 거죠. 우리 노원구뿐 아니라 민주당 구청장이 있는 다른 자치구들도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경쟁과 효율의 시대를 넘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시대로
김영필 : 얘기를 좀 바꿔서, 구청장님 이야기를 좀 해 보죠. 구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단행하셔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김성환 : 외환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 파도가 몰려오면서 경쟁과 효율만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쟁과 효율보다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실 청소 하시는 분이나 의사나 꼭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그런 꼭 필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에 상응하게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비정규직으로 소외받고 있거든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정규직 전환을 한 거지요.
김영필 : 구청 운영에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김성환 : 아직은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공무원들이 좀 바빠지기는 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전과 다른 시도라면 승진 인사에 변화를 좀 준 것인데, 우리는 승진하려면 논술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을 수는 있는데, 사실 이전에는 구청장에게 충성 맹세만 하면 대충 근무 평점 줘서 승진시켜줬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승진하려면 뇌물 같은 것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는 일이 제대로 안되죠. 저는 중간관리자가 되려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노원구의 현황은 어떤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급에서 6급, 6급에서 5급 승진을 앞두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논술 시험을 보는데,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나 김두식 선생님의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책과 헌법 등을 교재로 합니다. 현재까지 2번 시행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김영필 :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있으신데, 다른 자치단체들에게 추천할만한 사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김성환 : 아까 복지 도우미 말씀을 드렸는데, 이 사업은 찾아가는 복지서비스인 ‘동복지허브화’ 사업의 한 부분입니다. 이제 행정기관은 찾아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가 필요한 분들에게 찾아가서 보살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야 제도권 밖의 위기가정이나 홀몸 어르신들까지 촘촘한 복지가 되거든요. 앞으로 지자체들은 이렇게 복지 사업을 진행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육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구청이 신규로 하는 모든 사업은 교육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분석해서 가능한 교육적 효과가 높은 쪽으로 사업을 진행하자는 것입니다. 즉 조경공사, 토목공사 하나를 하더라도 교육적 효과가 있도록 고려해서, 아이들의 교육자산으로 만들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지방행정과 교육행정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자체가 학교를 중심으로 공교육을 책임지는 체제죠. 저는 자치단체가 단순히 교육예산을 지원하는 형태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가 교육을 고민하고, 보유하고 있는 인프라로 교육효과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창의성과 체험 교육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예를 들어 구청 직원들 출근시키는 구청 버스를 낮에는 학생들의 체험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구청이 가지고 있는 여러 시설에 학생들을 연계시켜 준다거나 하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교육은 협동과 창의성 중심의, 말하자면 핀란드형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영필 : 임기가 3년 남았는데, 앞으로 노원 구민들을 위한 각오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성환 : 편한 의자 같은 구청장이 되겠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주민들을 좀 불편하게 하는 일도 할까 합니다. 저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건 국가적 의제이기도 하지만 절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거든요. 미국은 기후변화협약에 탈퇴하기도 했지만,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주요 주들은 기후변화협약에서 제안한 것을 많이 실현하고 있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다소 불편하더라도 생활 패턴을 바꾸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결국은 행복으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육식만 하던 사람이 채식 위주로 바꾸고, 자가용 타는 사람이 자전거로 바꾸면 당장은 불편해도 결국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환경을 개선하면서 더 큰 행복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높은 수준의 문화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면, 새로운 삶의 방식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경쟁의 시대가 아니라 공생의 시대에서 어떻게 우리가 슬기롭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또 실천에 옮기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진보가 집권한 자치단체에서 바닥에서부터 변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죠. 진보가 녹색과 복지의 가치를 양 손에 같이 쥐고 전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 속에서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는 새로운 삶을 배우는 이런 데에 가장 앞장서는 자치구를 만들고 싶고 앞으로 또 노력하려 합니다.
김영필 : 복지와 녹색이 숨 쉬는 공간으로 노원구가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바쁘신데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