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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너지 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 - 후쿠시마 시대, 기후/에너지 위기 시대의 에너지 정책

한국 에너지 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 - 후쿠시마 시대, 기후/에너지 위기 시대의 에너지 정책


I. 들어가는 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발생 4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냉각시스템이 붕괴됨에 따라 발전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핵분열 생성물질의 열만으로 핵연료의 대부분이 녹아내렸고 수소폭발이 발생하여 하늘과 바다 그리고 지하로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와 원자력사고 최고등급인 7등급을 넘어선지 오래다. ‘켤 수는 있으나 마음대로 끌 수는 없는 불’인핵발전의 가공할 위협은 사고 당사국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등 주변국을 넘어 세계 모든 나라에 충격과 불안을 안기고 있다. 당연히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은 사고 직후 오래된 핵발전소 7기의 가동중단을 선언했고 2022년까지 현 17기 핵발전소 모두를 폐기하고 이를 재생에너지와 열병합발전 등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에서 핵발전 의존도가 가장 높은 프랑스에서도 스트라스부르그 시의회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의 가동 중단을 결의했고, 이탈리아는 2008년 도입된 원전 재도입 법안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국가적 차원
의 핵발전 진흥정책이 두드러지지 않은 미국의 경우에는 민간 분야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 발전기업인 NRG에너지는 4억8000만 달러가 투자된 원전 개발 사업을 중단했다(이서원, 2011).


후쿠시마의 충격으로 잠시 언론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듯 보이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는 여전히 인류의 생존과 세계 경제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중요 문제이다. 교토의정서 1차 공약 기간(2008~2012) 만료를 겨우 1년 반 남겨 둔 현재까지도 포스트교토체제에 대한 기본적 틀에 대한 국제적 합의 도출 노력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인 규범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교토체제가 어떤 형식으로 결정 되더라도 세계 8위의 온실가스 발생국이자 OECD 회원국인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은 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재래식 원유(conventional crude oil) 생산이 이미 정점을 통과하여 원유 총생산량이 점차 감소하게 되어 값싼 석유 시대는 지났다는 경고를 한 것처럼 국제 유가는 2008년에 이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97%의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특성상 이처럼 가파르게 치솟는 석유 값은 물가 불안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시스템 자체를 위기로 몰고 갈 정도의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핵발전 사고, 기후변화 문제, 고유가 현상 등 국제 에너지 위기 현상들 중 어느 것 하나 한국의 에너지 문제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구상을 통해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략을 창출한다는 야심찬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은 ‘동아시아기후파트너쉽’,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2012년 기후총회 유치 추진’ 등 대외적 활동 분야만 두드러질 뿐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실행이나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정책의 획기적 강화를 통한 에너지 자립화 등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분야에서는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핵발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의 중단 등 시대에 역행하는 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한국 에너지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 전환의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비금도의 풍력발전소


 


II. 한국 에너지 시스템 진단: 4대 구조적 문제


기후변화, 자원 고갈, 핵발전소 안전성 문제 등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에너지 분야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많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기본 방향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의 구축’이라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개념은 경제발전, 환경보전, 사회적 형평성의 실현이라는 세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에너지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서비스 제공, 이를 위한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이 특정한 사회 계층이나 세대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윤순진, 2002).


현재 한국의 에너지체제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에너지 서비스 제공의 안정성이나 환경적 영향, 그리고 사회적 형평성의 모든 측면에서 중대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에너지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에너지 저효율 및 과잉 소비와 대량 온실가스 배출 구조’, ‘에너지원의 높은 해외 의존 구조’, ‘핵발전 과잉의존 구조’, ‘에너지 불평등 구조’ 등 네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에너지 저효율 및 과잉 소비 구조와 온실가스 대량 배출


1)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 및 저효율 실태


2008년 기준 한국은 에너지소비 규모가 세계 10위에 달하는 대량 에너지소비 국가이다. 그런데 양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매우 뒤쳐져 있다. GDP 한 단위를 창출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비율로서, 국가 간 에너지 효율성의 비교지표로 사용되는 에너지 원단위를 비교해 보면 이러한 현실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7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산출한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 원단위를 보면 한국은 0.335(TOE/GDP 1천달러)에 달해 일본의 0.101보다 3배나 비효율적이고 0.187인 OECD 평균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효율이 낮다(2007, IEA).



이러한 에너지 저효율 및 과잉 소비 구조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이명박 정부에서 개선되기 보다는 더 악화되고 있다. 2010년 10월까지의 총에너지소비 증가율을 보면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로 경제성장율 훨씬 상회하고 있어 녹색성장이 아닌 적색성장 현상을 보이고 있다(정한경, 2011).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통계월보에 따르면 1997년부터 11년간 계속 향상되어 오던 에너지 원단위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09년과 2010년 연속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한삼희, 2011).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가 이렇게 높은 것은 현재 한국의 산업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경우 여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제조업 분야의 부가가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의 특성상 에너지 원단위가 높게 나오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 중에서도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제지, 비철금속 등으로 대표되는 에너지다소비산업이 에너지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총에너지 소비량의 48%를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고 이중 80%를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인 것이다(삼성경제연구소, 2009).



2) 전력정책 실패로 전력수요 급증


에너지 과잉소비를 주도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잘못된 전력정책으로 인한 전력 수요의 급증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제5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력소비 증가율은 1970년대 이래 꾸준히 낮아져서 2000년대에는 5.6% 정도였고 2010년 이후로는 3.1% 정도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 2010년 전력소비 증가율은 10.1%에 달했다.


이처럼 전력 수요가 급등한데는 겨울 한파 등 기후 요인도 존재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력가격 정책의 실패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산업용경부하전기, 심야난방전기, 농사용 전기 등에 대해서는 원가 이하의 전력 요금을 부여하고 주택용은 더 높은 요금 체계를 부여하여 이를 보조하는 교차보조로 인해 전체 전기소비의 53.59%를 차지하는 산업 분야의 전기소비와 심야 난방용 전기 소비를 부추긴 점을 들 수 있다.


등유와 전기요금의 기형적 가격 차이도 전력 수요 급증을 부추긴 중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2002~2009 기간 동안 등유 가격은 98%가 인상된 반면 전기요금은 12% 인상에 머물렀다. 등유가격은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에 연동된 반면 전기요금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인상을 억제한 결과 전기 난방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등유소비는 67%가 감소하고 전기소비는 42%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그간 매년 여름철에 나타나던 전력 피크가 겨울에 나타난 점을 들 수 있다.(표2 참조)



3) 대량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대량소비와 낮은 효율은 산업화 단계에서부터 한국이 추구해 온 에너지정책 기조의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장기 에너지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드러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은 과도한 수요 예측과 공급 지향적 정책 방향, 미약한 에너지 효율정책과 부족한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값 싼 에너지를 풍부하게 공급함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정신이었다.


이러한 에너지 정책 구조 하에서 대량의 온실가스 방출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의 추산에 의하면 2009년 기준 한국은 5억2,813만톤을 배출하여 세계 8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미국EIA, 2011). 또한 1990년 대비 118% 증가율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온실가스가 증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BAU) 대비 30% 감축 방안을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제시했으나 배출량 전망이 과도하고, 감축 목표는 미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및 탄소배출권거래제 등이 내용적, 절차적 한계로 인해 원활한 정책 집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2. 높은 해외 에너지 의존과 취약한 에너지 안보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은 에너지원을 절대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에너지의 97%가 수입에너지이고 그중 83%가 석유, LNG, 석탄 등 화석연료이다. 유가가 고공 행진을 하던 2008년의 경우 우리나라 총에너지 수입액은 1,415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중심 수출 품목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분야의 수출 총액인 1,109억 달러를 능가하는 규모였다.


이처럼 과도한 해외 에너지 의존 구조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한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비교적 안정적 가격을 유지해 오던 유가는 21세기 들어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주춤한 경우를 제외하고 유가는 계속 상승하여 원유 1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초고유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석유의 수급상황 악화로 유가가 ‘수퍼 스파이크 사이클’ 국면에 들어가 배럴당 105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 골드만 삭스의 예측이 이미 현실화 된 것이다 (Serwer, 2005).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BRICs로 대표되는 신흥 성장국가들의 빠른 경제발전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데 비해 세계 석유 매장량은 한계를 드러내 원유 생산 총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피크오일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타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유 생산량이 2009년 하루 약 680만 배럴에서 2035년 160만 배럴로 감소할 것을 예상하며 값 싼 석유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원 민족주의 경향까지 나타남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는 에너지기업의 인수·합병에 적극 개입하는 등 에너지 안보를 정부 정책 결정의 핵심 고려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다. 해외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시 소비자 물가가 0.23%p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0.35%p 하락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망 된다(삼성경제연구소, 2007).


3. 과도한 핵발전 의존 구조


현재 우리나라의 핵발전 현황을 보면 2010년 기준으로 총 141.9십억kWh에 해당하는 전력을 생산하여 전체 전력 수요의 32.2%를 충당하고 있다(WNA, 2011). 전력 생산 규모에 있어서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이며 이들 대규모 핵발전 국가들 중 핵전력 의존 비중이 32.2%로 74.1%인 프랑스 다음으로 높을 정도로 이미 핵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전력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표 3 참조)


이미 단위 면적당 원전 밀집도가 182.2kW/km2로 일본의 127.2kW/km2 보다 높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핵발전 진흥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제5차전력수급기본계획(2010~2024)에 따르면 2024년까지 이미 건설 중인 7기와 건설 예정인 4기를 추가하여 총 32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할 계획이다. 같은 기간 동안 총 발전설비 투자비 49조 원 중 원자력 분야에만 68%에 달하는 33조를 몰아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표 4참조) 더 나아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2030년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끌어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어 기저부하 전력을 거의 핵발전에 의존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핵발전 진흥정책을 펼쳤던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싸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핵발전의 신화가 붕괴된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공공연히 핵발전 드라이브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핵발전 업계, 소수 전문가, 일부 관료들의 이처럼 무모하고 폐쇄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4. 에너지 불평등 구조


그동안 우리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 및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경제산업 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위치 지워져 왔다. 이러한 정책 기조하에서 적정 에너지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는 에너지 빈곤층의 고충은 중요 고려사항이 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빈곤가구는 적정 난방수준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데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가구로 정의되는데 이러한 에너지빈곤가구의 비중이 서울시의 경우 10.3%에 이르고 있다(박은철, 2010). 이러한 에너지빈곤가구의 약 95%가 포함되어 있는 월평균 가구소득 125만원 이하인 소득 2분위 이하 집단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일반 가구의 63.6%로 소득에 따른 에너지 불평등 구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특히 IMF 이후 심화된 소득 양극화와 2004년 이래 진행된 신고유가 시대는 이러한 에너지 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저가 에너지공급망의 사각지대에 거주해 등유, LPG 등 상대적으로 고가의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연료비 지출 비중이 일반 가구에 비해 높은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연료비 지출 부담으로 여름이나 겨울철에 적정한 에너지 서비스를 공급받지 못함으로써 감기 등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병원비 부담이 높아지는 등 악순환 구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에너지 복지 정책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에너지기본법상에 에너지 사용의 보편적 권리에 관한 선언적 문구가 존재하지만 지경부가 추진했던 에너지복지법이 부처협의 실패로 폐기되면서 에너지 복지에 대한 법제화된 정책 의지는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 가스공급중단 및 단전 유예 등의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으나 에너지공기업의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화 정책 등과 같은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정책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III. 한국 에너지 정책의 전환 과제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현재 한국의 에너지체제는 에너지 저효율 및 과잉 소비와 높은 해외 의존 구조로 인해 우리 경제의 지속적 발전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인 적정한 에너지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을 약속하지 못한다. 온실가스의 대량 배출과 과도한 핵발전 의존 구조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와 에너지 가격 상승 국면에서 에너지 빈곤층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에너지 분야에서의 사회적 형평성 실현 전망 역시 난망한 현실이다. 이처럼 총체적 위기 구조에 처해있는 우리나라 에너지 체제를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1.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사회 구축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개도국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의 지속적 증대와 피크오일과 같은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자원의 고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을 위해서는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사회 구축을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의 “싸고 풍부하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책 기조를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정부의 전력 정책은 원자력 등 대용량 기저부하 발전을 대량으로 건설한 후 계절적, 시간대별 전력 소비의 불균등성으로 인해 남는 전력을 소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기 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을 펼치고, 그러한 전력 소비 구조 하에서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 다시 추가적으로 대용량 발전 설비를 건설하는 철저히 공급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펼쳐 왔다. 이제는 소비절약 및 효율 개선 중심의 수요관리 체제로 에너지 정책 기조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위주의 전력정책에 종속된 보완적 정책이 아닌 독자적인 정책으로서 수요관리의 목표를 분명하게 수립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우선 에너지효율개선 방안 중 하나로 에너지효율향상의무화제도와 같은 적극적인 수요관리 정책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정한 에너지효율개선 목표를 전력, 가스 및 기타 에너지 공급업체들에게 배분하여 의무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크레딧 거래 시장에서 인증서를 확보토록 하여 국가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효율 향상을 위한 능동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및 유럽 등에서는 에너지 공급자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전달 이용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이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에너지효율등급제 등 고효율기기 기술개발, 생산, 구매 확충을 위한 제도의 강화, 건물에너지 등급제 확대 및 에너지제로 하우스 보급 확대 등의 정책들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겨울철 전력 부족 사태를 초래한 왜곡된 전력요금 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우선 산업계의 전력 낭비를 부추기고 일반 가구로 하여금 산업계의 전력 요금을 보조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하는 용도별 교차보조 방식을 해소해야 한다. 농업용 전기요금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전력요금을 현실화하여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예방해야 한다. 다만 이로 인해 나타날 서민 가계 부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저소비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총에너지의 38.3%를 소비하고 있는 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에너지 효율 향상이 시급하다. 철강 산업에서의 혁신 공법 개발이나 초경량 소재 개발, 석유화학 산업에서의 폐열 및 공정 부산물 활용, 비철금속 산업의 전기로 효율성 증대 등 적극적인 효율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 구조를 지식서비스산업, 에너지 저소비형 미래첨단산업으로 전환해 가기위한 국가적 차원의 산업 정책 역시 필수적이다.


2. 탈화석연료, 에너지 자립 구조 구축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기후변화 등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극복하고 에너지 자립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저소비/효율화 정책과 함께 강력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인 11%를 보다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관리공단 추산에 따르
면 국내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량은 2008년도 1차에너지 소비량인 240,752천TOE의 7.3배에 달한다. IPCC는 최근 발표한 ‘재생가능에너지와 기후변화에 관한 특별보고서’에서 2050년이면 태양력·풍력·수력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최대 7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PCC, 2011).


한편 민간 연구기관인 Pew Charitable Trusts가 G20 국가의 2010년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현황을 평가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세계 청정에너지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30% 증대하는 등 대다수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세계 풍력 및 태양광 모듈의 50% 가량을 생산하고, 청정에너지 투자액이 전년대비 39% 증가한 $544억으로 세계 1위에 달할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저탄소 녹색성장을 소리 높이 외치고 있는 우리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성적이 G20 국가들 가운데 17위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가 재생가능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늘려나가는 상황에서 탈화석연료와 에너지 자립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시급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보다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2012년 이후에 폐기하기로 한 발전차액제도(FIT)를 유지하여 새로 도입하기로 한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를 보완하는 한편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 발전을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개별사업자 및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하기 위한 저리융자 등 금융지원 제도 마련도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지원 방안 기반으로 각 지역의 자연적 경제적 여건에 맞는 지역에너지자립 프로그램을 확산해 나가야 한다. 현재 정부가 대규모 재생에너지 시설 설치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자립마을 프로그램을 지역의 주체성과 지속가능성 등이 실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편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시장 원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탄소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3. 핵발전소 안전관리 및 탈핵 비전 확립


후쿠시마 사고 고려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 추진해야할 일은 허술한 방사능 방재 대책을 정비하는 일이다. 국내 핵발전 시설의 안전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관련전문가, 시민단체, 지역 주민들이 적절한 정보를 지니고 정책 결정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방사성 물질 감시 시스템 정비 및 해외 핵발전 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유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원칙의 정립, 지진, 쓰나미 등 최악의 상항에 대비하는 안전기준의 강화 등을 포함하는 “원자력시설등의방호및방사능방재대책법” 개정 작업이 시급하다.


한편 핵발전 안전 규제 시스템의 강화를 위해 규제기관인 ‘원자력 안전 기술원’을 독립기관으로 분리하고 친핵발전 인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추천 인사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규제기관 및 위원회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오래된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과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계획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고리 1호기가 30년 설계수명을 마치고 10년 연장운행이 결정되었으며 월성 1호기가 수명연장 심사 중에 있는데 그 과정이 핵발전 그룹들 간에 극히 폐쇄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전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핵발전 중심의 전력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장기 플랜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를 넉넉히 충족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안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다. 심지어는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수요를 과다 예측하는가 하면 이를 핵발전을 최대한 확대해서 충당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중심,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은 채 우리가 후쿠시마의 악몽에서 자유롭기를 기대하는 것은 몽상이다.


물론 이미 전력의 3분의 1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핵발전소의 즉각적인 폐쇄를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추가적인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스발전과 열병합발전,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여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화 정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노후 핵발전소를 대체함으로써 핵발전 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국가 비전으로 가져갈 볼 만 하다. 재생에너지, 가스발전소 등으로 2022년까지 핵발전을 완전히 폐기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에너지 복지 정책 강화


무엇보다 에너지복지를 선언적 규정이 아닌 법률적 근거를 지닌 정책 과제로 만들기 위한 에너지복지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 민주당 노영민의원과 진보신당 조승수의원의 발의로 국회 지식경제위에 회부되어 있는 에너지복지법의 신속한 입법 추진이 요구된다. 이러한 법적 기반에 근거하여 중앙 정부는 적극적인 예산 편성과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지식경제부와 한국에너지재단, 그리고 에너지 공기업 차원의 위로부터의 복지 전달체계를 지방자치 단체와 풀뿌리 지역 단체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적절한 정책 대상자 발굴, 효과적인 서비스 전달, 프로그램 사각지대 최소화 등을 실현해야 한다.


한편 기존의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수급자에게 제공되는 생계급여에 포함된 광열비 지원과 같은 공급 지원 중심이었다면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필요한 에너지 서비스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박은철, 2010). 미국에서 1976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가장 효과적인 에너지복지 프로그램으로 시행되고 있는 “저소득층가구 주택에너지효율화 사업”과 같은 프로그램이 적절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웨더라이제이션”이라 불리는 이 사업은 일정 기준 이하의 저소득층 가구의 주택을 대상으로 단열개선, 창호교체, 보일러 및 가전기기의 효율개선 등의 조치를 통해 주택 에너지 효율을 개선함으로써 에너지 절약, 전기요금 감소, 온실가스 저감, 지역 일자리 창출 등 에너지, 환경, 경제, 복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복합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과 함께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의 추진에 있어서 에너지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저소득 가구의 도시가스 접근성 개선, 신재생에너지 시설 지원을 통한 에너지 접근성 제고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만하다. 아울러 에너지 가격 구조의 왜곡으로 서민층의 난방에너지인 등유가 다른 난방 에너지원에 비해 더 비싼 에너지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동절기 등유 면세 조치도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정책 수단이라 할 수 있다.



IV. 맺음말


우리 사회에 지금처럼 녹색 문명으로의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도 없는 것 같다. 환경운동가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보통시민들이 생태위기의 심각성을 일상의 삶의 문제로 느끼고 그에 대한 근본적 처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의 경우 환경위기에 더욱 민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결의가 강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환경 재앙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는 현 에너지 시스템의 가공할 위험성과 함께 우리가 지금처럼 화석에너지와 핵분열로 만든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핵발전 사고의 불안, 기후변화의 위협, 그리고 자원고갈에 따른 고유가의 고통 등 에너지 위기 구조의 한가운데 서있는 한국도 이제 지금까지의 지속불가능한 에너지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대전환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사회의 구축, 재생가능에너지의 적극적인 개발을 통한 에너지 자립성의 강화, 에너지 복지정책을 통한 에너지 서비스의 보편적 향유 등을 실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가 있는 해이다.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 정치의 광장에서 핵발전 중심의 대량에너지 공급과 소비 시스템에 내재한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구축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


- 박은철. 2010. 에너지빈곤의 개념 및 에너지빈곤층의 실태. 「에너지빈곤층 해소를 위한 정책토론
회」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이화수 의원 정책토론회 자료집


- 삼성경제연구소. 2007. 유가 급등의 원인과 향후 전망. CEO Information 제632호


- 윤순진. 2002. 지속가능한 발전과 21세기 에너지정책 - 에너지체제 전환의 필요성과 에너지정책
의 바람직한 전환 방향 - 「한국행정학보」 제36권 제3호 (2002 가을): 147-166


- 이서원. 20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변화. LG Business Insight
2011. 5. 11


- 정한경. 2011. 겨울철 전력소비 급증, 원인과 해결방안. 「지속가능한 전력정책과 요금제도」에너지
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 공동주최 토론회 자료집. 2011. 2. 10


- 지경부. 2010. 제5차전력수급기본계획(시안)


- 한삼희. 2011. ‘녹색정부’에서 되레 나빠진 에너지 효율. 조선일보, 「한삼희의 환경칼럼」.2011.
6. 17


- IEA. 2007. Key World Energy Statistics


- IPCC. 2011. IPCC Special Report on Renewable Energy Sources and Climate Change
Mitigation


- Serwer, A. 2005. Are oil prices headed for a super spike? Fortune. 2 May 2005


- WNA. 2011. World Nuclear Power Reactors & Uranium Requirements. http://world-
nuclear.org/info/reactors.html 2011.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