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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구의 편인가?

법은 누구의 편인가? :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한가?


정동영 (민주당 국회의원/최고위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의 내용이다. 이처럼 우리 헌법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법 앞에서만인이 평등하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법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사회적 약자 계층이 존재하듯, 법 앞에서도 ‘약자’가 존재하고 있다.


지난 6월29일, 오전 7시27분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의 한 경계초소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 장병 한명이 숨졌다. 또 6월 15일에는 백령도에서 기동순찰 중이던 해병대 소속 병사 1명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직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한 경위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올 한해만도 벌써 수십차례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군에서 숨진 장병은 모두 884명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평균 126명의 장병이 숨진 것이고, 3일에 1명이 목숨을 거둔 것이다. 이 중에는 자살, 의료사고, 안전사고 등의 원인이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있는 경우들도 상당수 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는데, 목숨을 잃게 된다면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금쪽같은 자식이 목숨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그 진실마저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의문사로 남는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가족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한 가정의 아들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어가고 있을 때 정작 국가안보를 책임져야할 대통령, 총리, 국정원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무위원과 그들의 2세들은 병역면제를 받고 버젓이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모순 앞에서 과연 우리는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 법 앞에서는 강자도, 약자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군 의문사 문제를 좀 더 진지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군 의문사는 과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또 군 의문사는 앞으로 군대를 가야 하는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 우리 친구, 우리 이웃의 일이다.


참여정부에서는 지난 2005년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의거해서 지난 2006년 1월1일부터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서 활동했다. 이후 2008년 같은 법의 일부개정을 통해 의문사위의 활동 시한이 2009년 12월 31일까지 연장되었으나 그 이후 법적 시한이 다해 활동이 종료되었다.


의문사위 활동을 통해 370건의 진정 중 210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루어졌지만 112건은 기각 또는 각하, 48건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이 중 기각 또는 각하되었거나 조사 불능으로 남아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유가족들이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는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신이 영안실에 그대로 있거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경우들도 있다.


그러나 의문사위의 활동 종료 이후 군 의문사를 전담하는 기관 및 부서가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에서는 의문사위 활동 결과 및 업무가 국방부에 정식 인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이러한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이에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 민의를 대변할 책무가 있는 국회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국회 내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문제의식을 함께한 31명의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각 정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공동발의에 서명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은 궁극적으로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법으로부터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 대한민국 국회는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중 유가족들의 문제제기와 진정이 있는 경우 공정하게 재검토하고, 국방부 자체적으로 진상 규명을 하기 어려운 경우, 조사결과에 대해 유가족들이 수긍하지 않는 경우, 재조사가 필요한 경우
등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이러한 군 사망사고를 전담할 수 있는 상설수사 및 조사기관의 설치와 국가의 보상 및 지원을 명시하는 근거법률을 심사·처리하기 위해 국회법 제44조에 따라 「군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
나. 위원 수는 여야 동수 10인으로 한다.
다. 특별위원회의 활동기간은 특별위원회 구성 후 6개월로 하며, 필요할 경우 2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도록 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 제39조제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를 지는 동안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이 상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기간 동안 현실적으로 개인적 자유는 제한을 받으며, 다양한 선택의 기회들도 제약되기 때문에 군 복무 중 사망사고에 대해서 국가는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철저하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나설 의무가 있다.


국가는 국민에 우선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며, 국민의 생명 위에 군림하는 어떠한 정책과 정치적 논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존엄한 가치와 헌법 아래에서도 여전히 변칙적인 행위로 법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은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에게 과연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상대적 박탈감을 주었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통해 진정으로 외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가로부터, 그리고 법으로부터 우리 모두의 생명은 똑같이 평등하게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와 국회는 그렇게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