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
전민용 (희망과대안 운영위원)
공화주의를 다시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민주공화주의입니다. 혹자는 자유민주주의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헌법에 들어간 것은 역설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억압한 유신헌법이었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헌법 제1조에 처음 등장하고 1948년 건국 때도 헌법 제1조로 제정된 민주공화국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제1의 정체성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민주국가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의 주체를 규정하는 개념입니다. 공화국은 내용과 목적을 가리키는 말이며 국가가 공공적 기구라는 뜻입니다. 민주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여 모두에 의한 나라라는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앞으로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되기 위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달성에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2008년 촛불집회부터 시위현장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많이 들립니다. 현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도 공화주의도 더 노골적으로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당과 정치인은 공당과 공직자로서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소명과 의무를 분명히 자각해야 합니다.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공공성을 높이고 무엇보다 지금 시기에 맞는 시대적 대의를 판단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시대적 대의보다 자기 정파나 정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당리당략은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 야권 선거연합 과정에서 종종 어려움에 빠졌던 경우도 대부분 대의보다 자기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야권의 연합정치를 보더라도 당리당략과 사익에 빠진 입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제1야당인 민주당 또는 야권연대가 집권을 하는 것이나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시대적 대의일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시
대적 대의라는 1차 목표에 종속되는 2차적인 목표일 뿐 입니다. 시대적 대의를 가장 잘 이룰 수 있는 길을 우선하지 않고 자기정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모두 공당임을 포기한 당리당략입니다.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 시대적 대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야권 연합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시대적 대의는 모두 함께 세상을 크게 바꾸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세상을 크게 바꾸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추진되어온 주류적 방식의 경제 정책들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와 각 나라의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대안적 에너지 체계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지금처럼 전쟁 위기가 상존하는 한반도 상황으로는 어떤 발전적인 협력체제도 만들기 힘들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도 현재 MB정부의 무능과 실정 심지어 퇴행까지 지켜보면서 세상을 크게 바꾸는 새로운 길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파탄 난 남북관계와 토목공사로 신음하는 4대강 뿐 아니라 양극화 심화, 세계 최고의 자살률, 너무도 불행한 아이들, 절망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청년 실업, 일자리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건강 불안, 출산 파업, 환경과 에너지 문제,
대기업 경제력 집중 심화, 힘겨운 중소기업,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 등 국민들의 피폐한 삶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치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체계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전환기에 와 있습니다.
다음 정부는 이런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가는 정부가 되어야 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는 내용과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나 장하준의 경제학 서적이 돌풍을 일으키며 팔리고 있는 것이나,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서적들이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새로운 변화의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대체적으로 보편적 복지, 공정한 사회, 남북 평화체제와 상호보완적인 지속 가능한 성장체제를 중심으로 대기업, 교육, 사법, 환경과 에너지 문제 등에 대한 개혁 청사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야권연합정치는 시민과 함께 세상을 크게 바꾸는 시대적 대의를 1차적 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할 힘을 갖기 위해 총선과 대선에서 크게 이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시민사회가 야권 연합정치를 추진한 배경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넓은 의미의 정치운동입니다. 시민운동이 목표로 하고 있는 많은 진보적 과제들은 최종적으로 정치영역에서 법제화를 통해 제도화해나가야 합니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정치적 판단을 공론장과 정치권에 제공하고 소통시켜야 합니다. 현실의 제도와 법과 정부정책이 주권자인 시민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만약 제도와 법과 정책이 이런 정당성을 상실했을 경우에는 폐지나 개선을 요구하고, 이것이 권력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시민적 저항을 조직하는 역할도 시민운동에 주어진 과제입니다.
시민운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시민운동의 활동 방식 자체가 끊임없이 공론장에서 자신들의 올바름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권력이 없는 시민운동으로서는 시민들의 동의에 기초한 힘만이 유일한 권력입니다. 명분과 시민들의 대표성이 무기입니다. 이 힘은 시민운동이 자신이나 자기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도덕성에 기초합니다.
시민정치운동을 추구하는 시민운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업적 정치가들은 당리당략과 사익 때문에 정치적 균형 감각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균형 있는 정치적 판단은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정성을 가질 때 다수의 시민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습니다. 시민정치운동은 이런 공정성에 기초해서 시민의 정치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판단과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시민운동은 선거 시기에 공정 선거 감시운동, 투표 참여 운동 같은 기본적인 유권자 운동부터 낙천낙선 운동, 당선 운동 같은 더 적극적인 운동까지 펼쳐왔습니다. 이런 운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여야 간의 정치적 중립성을 뛰어 넘는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6.2 지방선거’ 전후로 시민사회 일부에서 시민정치조직을 만들고 여야 간의 정치적 중립성을 넘어 야권의 선거연합을 촉구하고 협상의 직접 당사자로 선거연합을 추진했고, 연합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 하였습니다. 이런 판단은 지금 시기 구체적인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건전한 시민들의 균형 잡힌 상식에 기초해서 내린 정치적 판단이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대결로 치닫고, 4대강 사업을 강행하고, 각종 권력 기구를 통치에 활용하고, 미디어를 장악하려 하고, 공공연한 정치적 탄압을 시도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심화시키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후퇴시키는 등 소통이 안 되는 MB정권의 퇴행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적 판단은 ‘6.2 지방선거’ 전후의 각종 여론조사와 ‘6.2 지방선거’,‘7.28, 4.27 재보궐선거’ 등의 선거 결과에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시민들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한 판단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선거연합 과정에서 배워야 합니다
최근 개혁진보 진영 선거연합의 일정한 성공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DJP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 과거의 대표적 연합정치는 개혁진영이 보수진영의 일부와 손잡고 보수층의 지지 기반으로 확장해가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보수표 일부를 가져오고 보수 진영은 분열된 상태에서도 표 차이는 몇 십만 표에 불과했습니다. 이때는 진보진영과의 공개적인 연합은 가져올 보수표에 역작용을 할 가능성이 높았고, 진보 쪽 표는 상당수가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6.2선거에서도 민주당 일부에서는 진보정당과의 연합이 표를 얻는데 불리할 수 있다는 부정적 판단을 내리는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진보정당 후보로 단일화를 하더라도 당 지지도가 낮아 당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되지도 않을 일을 하고 있고 실패하면 시도하지 않은 만 못하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6.2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은 개혁진보 선거연합을 지지했고, 부정적 우려들을 씻어주었습니다. 최근 ‘4.27 재보궐선거’까지 국민들이 야권연합 후보들을 지지한 것은 MB정부의 퇴행적 통치에 대한 응징의 의미가 1차적이지만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에 대한 대안이 기존의 보수와 진보 사이의 어떤 지점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6.2, 7.28, 4.27 선거를 거치면서 개혁진보진영은 2007년의 무참한 패배와 보수장기집권의 우려를 털고 최소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습니다. 국민은 이 과정을 통해 정치권에 몇 가지 중요한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현 정부의 일방적이고 퇴행적인 국정 운영을 심판한다. 개혁진보진영이 제대로 힘을 합하면 지지하겠다. 자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라. 오만하면 언제든지 등 돌린다. 감동을 주는 연합을 하라.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좋은 후보를 내라.”
특히 4.27 선거 결과 여러 지역에서 나타난 2% 라는 근소한 차이는 국민은 아직 어느 쪽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고 미래의 희망과 대안을 누가 만들어 가는지 냉정하게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연합정치와 시민정치운동의 진화가 필요 합니다
이미 연합정치는 다가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선거가 정권심판의 성격이 강했다면 다가오는 선거들은 이에 더해 미래 권력을 만드는 미래 지향적인 선거입니다. 더구나 단순한 권력 교체로는 불가능한 세상을 크게 바꾸는 시대적 대의를 실천해야 하는 선거입니다. 따라서 연합정치의 진화가 필요합니다.
연합정치의 진화는 개혁진보진영이 하나로 뭉치는 진일보한 선거연합을 중심으로 시대적 대의에 맞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상을 광범위하게 합의해야 하고, 각 정당은 치열한 내부 혁신을 통해 믿을만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고, 개혁을 추진해 갈 소신과 책임감 있는 정치인들을 대거 진출시켜야 하며, 이 과정을 뒷받침할 진보적 시민정치운동의 폭넓은 확산이 있어야 가능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퍼즐조각처럼 맞아 떨어져야 세상을 크게 바꾸는 시대적 대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세상을 크게 바꿔야 하는 시대적 대의에 따라 시민정치운동의 역할도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의 연합의 중재자, 촉진자의 역할에 더해 공동의 기획자와 참여자의 역할까지로 확대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의지가 담긴 가치와 정책을 제안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참여를 조직해야 합니다. 정당 혁신과 정치 질서 재편에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시민정치운동이 야권연대의 중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진보정당들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단일 구도를 만들어 정권을 심판하는 후보단일화가 대부분인 선거연합에서는 중립성만 잘 지켜도 가능했지만 세상을 크게 바꾸자는 가치를 제1의 목표로 내세웠을 때는 기계적 중립성에서 발전해서 공정한 중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공정한 중립성은 정당들 사이의 이해관계에서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을 지키되 정당들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시대적 대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정의로운 기준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을 크게 바꾸자는 시대적 대의에 모두 동의한다면 다음 정부는 어떤 형태든 개혁진보 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정부 형태가 될 것입니다. 공동 정부를 통해 집권하려면 주요 가치와 정책에 대한 매우 정교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집권 이후에 추진할 과제별 우선순위와 추진 방안과 일정 등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은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보여준 민주당의 정책 내용과 추진력도 미흡하다고 보지만 진보정당들의 지나친 이념 지향적 경직성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현실성 및 집권 경험과 진보정당들의 진보적 대안들이 잘 만나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시민사회도 중재의 역할 뿐 아니라 시민적 가치와 정책을 수렴하여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토론하고 합의해 나가려면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크게 바꾸자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을 크게 바꾸는 시대적 대의가 가능하려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개혁을 추진할 교두보가 될 총선에서도 크게 이겨야 합니다. 선거 공학적으로도 많은 분들이 분석하듯 총선 승리가 대선 승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총선에서 가장 크게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추진해야합니다.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보여준 선거연합의 틀을 뛰어 넘는 감동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의 선거연합 결과를 보더라도 선거연합에 적극적이었던 정당들이 더 성과가 좋았고,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선거연합보다는 전국적이고 포괄적인 선거연합이 더 유리했고 아예 기호를 하나로 만드는 연합을 만든다면 훨씬 더 크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았을 때 가장 크게 이길 수 있는 경로로 제안되고 있는 것이 개혁진보 정당들과 시민정치운동 세력과 새로운 가치관과 감성을 보이는 새로운 세대들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시대적 대의를 내걸고 가장 넓은 연대를 이루고 하나의 당과 하나의 기호를 만들어 선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은 정당 내 다양한 제도를 통해 보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승리의 방법으로는 차선책이지만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제일로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선책으로 제안되는 방법은 시민정치운동 세력 등 외부의 세력이 참여하여 통합의 범위와 수준을 높이는 방법으로 개혁과 진보라는 두 개 정도의 간명한 정당들로 재편하고 서로 선거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생각하기 싫지만 정당 통합은 실패하고 지루한 선거연합 협상만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있겠지요.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는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는 쉬운 정답을 선뜻 받지 못하고 에둘러 어려운 길을 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승리의 길을 피해가는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치적 판단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입니다. 대의에 대한 원칙과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 사이의 균형 감각이나 전체의 이익과 부분의 이익 사이의 균형 감각 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균형 감각과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입니다. 자기나 조직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다보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또한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항상 새로운 판단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익숙한 판단인 고정관념에 자꾸 의존하려 합니다. 당연히 구태의연한 판단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익이고 손해인지 아는 이해관계는 대부분 비교적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하기 위해서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조직이나 사람들이 나와 같은 판단을 하는 것을 나 자신이 기꺼이 바랄 수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협상에서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을 관철하려하면 협상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을 생각하더라도 크고 멀리 보아야 할 것입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조금씩 양보하여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연합이 성사되었다면 더 큰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파이는 양보하기 전보다 더 커졌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소 우직해 보이지만 대의에 충실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믿음과 이성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갑니다.
고정관념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기인하는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고정관념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합정치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고정관념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우리가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꽤 피로함을 느끼는 것은 복잡한 일을 수행하는 전두피질이 주로 작동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입니다. 일단 운전이 익숙해지고 잘 아는 길을 가게 되면 기저핵이 담당하는데 거의 전 과정이 자동으로 수행되고 에너지 소모가 훨씬 적습니다. 인간에게 새로운 것이나 변화는 부담과 때로 위험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 변화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본능적으로 거부하려듭니다. 물론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은 복잡한 것, 미지의 것, 위험한 것에 과감히 맞서 새로운 발견을 이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을 선택해서 위험을 줄입니다.
정치를 생물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 생성되는 역동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정치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새로운 것에 반대하여 진보를 가로막는 강력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변화하는 것만이 진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변화의 기로에 있을 때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
이 크므로 변화 쪽의 판단에 가중치를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수주의자는 말 할 것도 없고 때로 진보주의자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우리는 지사적 인간형을 진보적 인간형과 혼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제시대나 군부독재 시절처럼 폭력적 구질서를 깨뜨릴 때는 지사형 인간이 더 적합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에는 진보형 인간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진보는 한 번 먹은 자기 생각을 초지일관하게 지키는 모습이라기보다 다양성을 확대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의 한계를 깨는 모습과 더 일치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진보는 보수와도 대화하고 사회 통합적 협력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기 제일 중요한 진보의 가치는 세상을 크게 바꾸어 우리나라를 모두를 위한 나라인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보가 추구할 진보적 가치와 내용도 중요하지만 진보적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이 있을 때 가치와 내용도 현실에 맞게 계속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변화에 맞춰 새로워지지 않는 진보적 가치와 내용은 이미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연합정치에 한계를 둘 어떤 필연적인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야권연대가 변화의 한계에 대한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더 크게 변할수록 더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당의 지난 행적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개혁성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이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들의 상식을 깰 정도로 큰 폭의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개혁의 진정성을 보이는 길은 헌신과 양보를 통한 자기 혁신뿐입니다. 야권단일정당이 될 경우 최소한 비례대표 50%와 지역구 30%는 내놓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진보정당 역시 야권단일정당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연합정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고해야 합니다.
책임의 개인화라는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과거에는 자연재해나 재앙이 닥쳤을 때 한두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희생제의도 많았고 희생양도 많았습니다. 원인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손쉽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원인이 관행과 시스템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마녀사냥을 통한 한두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행은 기분 풀이는 될지 모르지만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항상 책임의 개인화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합정치를 추구하면서도 책임의 개인화라는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정 인사와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거나 특정인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대권후보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성향의 문제를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개인의 자질과 능력의 문제는 집단지성의 힘으로 돌파해 가야 합니다. 한 사람의 영웅이 나타나 난세를 구하는 영웅 신화 역시 반대 의미의 책임의 개인화라는 오랜 고정관념의 하나입니다. 어차피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지성과 윤리 양 측면에서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모여 사는 사회를 법과 제도를 통해 보다 더 오류가 적은 쪽으로 이끌어 온 것이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연합정치의 장애물이 되는 것은 고정관념의 작동입니다. 집단지성이 윤리와 만나면 공공적인 집단지성이 될 수 있습니다. 연합정치는 개인을 넘어 공공적인 집단지성의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진화해야 합니다.
영역성 확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합니다
인간사회에서 집단 간 협동이 어려운 것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 생존 기회를 높이려는 본능에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이질적 집단 및 집단 사이의 협력이 꼭 필요해진 현 상황에서는 보상이 아닌 위험으로 작용합니다. 시민단체만 하더라도 동일한 사회 문제를 놓고도 너무 많은 단체들이 경쟁을 벌입니다. 심지어 기업 내부나 정부 내부, 정당 내부에서도 이런 영역성의 병폐가 많다고 합니다.
밖에서 보기에 가장 정책적 차이가 적은 민주당과 참여당의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잘 안 되는 것은 정서적 신뢰의 문제가 큽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과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것도 일부 합의 문구의 차이가 아니라 그동안 쌓여온 정서적 신뢰의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정책적으로 가장 차이가 적었던 DJ와 YS 간의 연대는 깨졌습니다. 한 때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관계였지만 3당 합당이나 DJP 단일화는 성공했습니다. 정책이나 정서나 매우 이질적이었던 노무현과 정몽준도 단일화에는 합의했습니다. 이 모든 사례로 볼 때 고정관념을 깬다면 정책적 차이도 정서적 차이도 모두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야당과 재야와 학생운동권 모두가 차이를 극복하고 국민과 함께 똘똘 뭉쳐 거대한 군사적 물리력을 이긴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개혁진보진영은 이 때 승리한 주역들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군사독재 타도와 정치적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시대적 대의를 중심으로 단결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6월 민주항쟁 이후의 과제로 대두된 새로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수립한다는 시대적 대의를 내걸고 다시 한 번 단결해야 할 때입니다.
야권연대 내부의 합의도 어렵다고 한다면 집권 후 한나라당과는 어떻게 합의를 이루고 국정을 이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 사회와 인간 사회의 관계에는 어떤 한계도 없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관계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관계까지 모두 가능합니다. 영역성의 사고를 깨는 것이 진보입니다. 우리는 영역성을 자기 조직, 자기 정당에서 야권연대로 더 나아가 국가로 아시아로 세계로 우주로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민족, 국민, 세계 시민, 모든 생명과 자연 전체로 계속 확장해 가야합니다.
우리는 야권연대의 수준과 내용에 대해 어떤 선입견도 두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해야 합니다. 자기 영역성에 갇혀 나와 우리 당이라는 협소한 틀로 사고하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야권단일정당 주장이든 진보대통합당 주장이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직 시대적 대의인 세상을 크게 바꾸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마음을 터놓고 논의해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우리가 가려는 길이 새로운 길이고 새로운 나라인데 너와 내가 모두 새롭게 변하지 않고는 만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익숙한 방식과 생각으로는 열리기 힘든 길입니다. 이성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감성적인 느낌도 소중합니다. 진리는 책이나 토론회장이 아니라 삶의 현장과 그 속에서 외치는 절규 속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느끼고 공감할 때 같이 변해갈 수 있는 단초가 생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향후 대한민국의 20-30년의 역사를 좌우할 전환기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절박함의 정도로 볼 때는 새로운 출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정치 일정으로 볼 때 모든 정치 주체들의 앞으로 수개월 동안의 정치적 판단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작은 이해관계나 익숙한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시대적 대의를 실현할 수 있는 현명하고 감동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