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최약자로 이름 붙여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김향미·임아영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인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 하승수 변호사는 [청소년을 위한 세계인권사]라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그의 상황이 되어 그의 생각과 마음을 상상해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공감은 “그 사람이 되어보는 마음”이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단어의 결합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그들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다. 그들이 일하는 하루를 상상하고 그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을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간접 고용의 문제”- 청소노동자
대학에 다닐 때 화장실에서 ‘청소노동자’를 만났다. 60대로 보이는 그는 머리에 고운 핀을 꼽고 있었다. 그를 삶의 영역에 ‘존재하는 타인’으로 인식한 계기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에서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했다는 뉴스들이 잇달았다. 그제서야 그들이 ‘노동자’이며 ‘약자’임을 다시 한 번 인식했다. 올해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대학생들로부터 연대와 지지를 받으면서 그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임금 인상과 같은 일말의 성과를 거뒀다. 지난 5월 대학가 축제에서는 ‘청소노동자’와 함께 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그들의 ‘사회적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서울 남대문 인근 롯데손해보험빌딩. 이곳의 청소노동자 24명은 지난 1월 25일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에 가입했다.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처럼 그들에게도 세간의 관심이 몰리는 듯했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바뀌자 언론도, 시민단체도, 정치인들도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인 듯했다. 빌딩의 청소노동자들은 대학과는 달리 연대를 받을 사람들도 적고,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은 대학과는 또 달랐다. 그들은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롯데손해보험 빌딩 청소노동자 가운데 노조원은 6월 현재 7명으로 줄었다. 공공노조 측은 사측이 상품권과 현금 등으로 노조탈퇴를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6월 14일 취재차 롯데손해보험 빌딩에서 만난 임영해씨(65)는 이 빌딩에서 일한 지 1년5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임씨는 노조가입 이후에 유니폼과 신발 등을 제공받게 됐고, 월급도 75만원에서 90만3000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노사교섭을 통한 것이 아닌,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쓴 사측의 자구책이었다.
임씨의 출근시간은 새벽 4시 반. 아침식사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점심식사는 낮 12시부터 한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엔 어김없이 빌딩 앞에서 집회를 연다. 퇴근은 오후 4시. 별도의 휴식시간은 없고 휴게공간은 지하2층에 있었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태준 배우 김여진씨와 날라리 외부세력이 지난 5월말 이 빌딩에도 다녀갔다. 그때 공개된 것은 임씨 등이 사용하는 ‘전
기통신실(전산실)’이라는 좁은 휴게실이었다. 전선이 얼기설기 널부러진 ‘전산실’은 그러나 김여진씨 방문 이후 폐쇄됐다. 대외이미지가 안 좋아지자 사측에서 폐쇄한 것이다. 대신 지하2층에 있는 휴게공간을 보수해 좀 넓혀줬다. 청소노동자들은 그곳을 ‘B2’라고 불렀다. 20층에서 지하 2층까지 쉬러 올 수도 없는 현실. 그게 임씨의 노동환경이었고, ‘노조원’으로서는 눈칫밥을 먹어야한다고 했다. 24명 가운데 노조원과 비노조원으로 갈리면서 같은 일터에 있으면서도 서로 껄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이 빌딩의 청소 용역업체인 휴콥사는 노조원들이 매일 집회를 하는 바람에 건물주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간접고용’의 사슬 속에 그들은 ‘중간자’였다. 노조가 서울지방고용청에 ‘노조인정,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노동쟁의 조정을 제기했지만 지난 6월 13일 ‘사측의 합의 의사가 없어 종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7명의 청소노동자들은 집중 투쟁에 들어갔다.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지만 ‘큰 이슈’는 되지 못한다. “어쩌면 수많은 빌딩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언론에 한번이라도 나오고, 노조원 활동이 가능한 롯데손해보험 빌딩 청소노동자들은 그나마 괜찮은 것”이라는 자조적인 위로도 나왔다.
재향군인회는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1974년 서울메트로가 생긴 이래 37년 동안 수의계약을 맺고 있다. 장기간 독점 계약으로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성희롱 등 부당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천청사에서 10년 동안 청소노동자로 일해 온 ㄱ씨는 2009년 청소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ㅅ소장으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에 따라 ㅅ소장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신임 소장이 왔지만 신임 소장은 ㄱ씨를 전보 배치했다. ㄱ씨가 이를 거부하자 신임 소장은 “전보배치를 수용하지 않으면 해고 하겠다”고 통보했다.
대부분 50~60대 여성인 청소노동자들은 저임금, 과중한 업무, 성희롱 위험 등에 노출되면서도 비정규직으로서 해고의 위험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외치는 것이 곧 절박한 투쟁이 된다. 노동 3권과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일, 정규직과 차별받지 않고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일터가 그들에게 필요하다.
“따끈따끈 캠페인”- 간병사와 요양보호사에게 ‘밥 먹을 공간을’
지난 4월말 서울대학병원에서 만난 간병사들은 대부분 50~60대 여성들이었다. 간병사는 일요일을 제외한 6일, 24시간이 온전히 노동시간이다. 휴식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휴식공간도 없다. 밥은 냉동밥으로 해결하고 배선실에서 서서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사무실에 가면 ‘일주일치 식량 냉동밥 18개’라고 써 있다. 밥을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이들에게가장 절실했다. 임금도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았다. 서울대학병원에서 간병사의 임금은 환자에 따라서 일당 5만5000원, 6만5000원 가량이다. 일체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일대일 간병 시스템이라서 24시간 내내 환자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 환자 씻기기, 가레 빼기(석션), 피딩(음식물 주입), 자리 변경, 대소변 받기 등 하루 12가지가 넘는 일거리가 계속된다. 과로로 쓰러져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없다. 4대 보험 대상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호소할 수도 없다.
정경임씨(51)는 간병사로 6년째 일하는 중이다. 부산에서 36년간 살다가 ‘일자리가 있을까’ 해서 아는 언니가 살고 있는 서울 방화동으로 2004년에 올라왔다고 했다. 간병교육 센터에서 교육받고 간병사 일을 하게 됐다. 정씨는 6일을 온전히 병원에서 보내지만 병원에는 자신의 생필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 보통 환자 침대 밑에 짐을 넣어두는데, 요즘은 전동식 침대가 오면서 그
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만약 보호자가 올 경우 잠시 나가 있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서 무작정 걸어 다닌다. 정씨는 한번은 보호자가 찾아와 자리를 비켜주느라 계단 복도에서 박스를 깔고 20분쯤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참 서글펐다고 한다. 하루에 잠은 1~2시간 쪽잠을 잔다. 샤워도 몰래 몰래 한다. 병실 내 냉장고에 반찬은 김치와 멸치볶음 등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종류의 음식들이었다.정씨는 가정생계를 거의 책임지고 있다. 하루 쉬는 날에는 집안 단속하고 나면 그마저도 쉴 수가 없다. 정씨의 바람은 소박했다. 허리라도 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좀 먹고 싶다는 것. 그래도 앞으로 쓰러지지 않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도 했다. 수면부족, 영양부족, 스트레스에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것도 정씨는 알고 있다. 그는 “약한 사람들은 짓눌려 사는데 공무원들은 비리 저지르고 그런 거 보면 인간이 평등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도정록씨(56)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2명 키우는 걸 이 일로 해냈다. 13년째다. 하루 뜬눈으로 보내는 경우도 많고 3~4시간씩 잔다. 수술을 막 받은 환자를 돌볼 때는 거의 잘 수가 없다.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간병사 처우는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단다. 되레 간병사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이 더 각박해진 것 같다고도 했다. 이숙자씨(60)는 ‘보따리’가 문제라고 했다. 짐을 싸고 이동할 때 그것을 잠시 놔둘 공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씨는 “나쁜 계모 밑에서 눈치 받고 사는 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민주노총·민주노동당·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26개가 참여한 ‘따근따근 캠페인’이 시작됐다.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운동이다. 이름에서 보듯 간병 노동자들이 밥 먹을 공간, 냉동밥이 아닌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인을 상급종합병원에서 직접 고용한 곳이 거의 없다. 종합병원 11개소 간병인수 7997명 중 1.7%, 병원 간병인수 1만5300명 중 1.8%가 직접고용 되어 있을 뿐이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1일 간병서비스 이용환자는 4만1844명으로 추산되고, 급성기병원 1일 평균유료활동 간병인수는 2만7842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간 총 간병이용료는 약 6600억원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필수 서비스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민
단체들은 ‘간병서비스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간병서비스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간병서비스를 책임지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간병서비스 이용에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간병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간병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 간병네트워크 등 노동사회단체가 관련된 활동을 했고, 박은수 의원과 곽정숙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 등 일부개정 법률안 발의했다.
2008년 장기노인요양보험법에 따라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조금 더 나을까. 재가요양사나 시설요양사나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를 고용할시 국민건강관리공단로부터 돌봄 대상자 1명당 양 100만원씩 지원금을 받는다. 민간센터·시설들은 돌봄 대상자들을 확보하려고 요양보호사를 희생시키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돌봄대상자들이 일부 물어야 하는 돈도 안줘도된다고 해놓고 청소며 빨래도 해준다고 말한다. 그래야 대상자가 그 센터·시설에 등록하기 때문이다. 대상자들은 왜 요양보호사가 해준다고 해놓고 안한다며 말한다. 센터·시설은 요양보호사를 자를 수도 있어서 하라면 일자리 때문에 그냥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 노동절을 맞아 취재를 하던 중 만난 주민순씨(59)는 재가 요양보호사였다. 주씨는 오전 7시에 일어나 도시락 챙겨, 9시 15분쯤 평창동으로 이동한다. 돌보고 있는 암환자 할머니. 오전에는 대소변 받고 속옷 세탁하고 몸 주물러 준다. 점심 챙겨주고 12시쯤 그 집을 나선다. 이후 자신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먹고 1시 반 퇴근한다. 2시까지 독립문으로 이동해 또 다른 환자를 돌본다. 퇴근은 오후 6시쯤이다. 주씨는 “주방일 등 안 해도 되는 일을 해달라고 할 때 억울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선 환자에 관한 일만 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긴 힘들다는 얘기다. 점심은 김밥 한 줄 사서 남 안 보게 지하철에서 이동하면서 먹기도 한다. 주씨의 ‘업무 체크지’에는 환자의 세면, 구강관리, 몸단장, 식사도움, 청소 및 주변 정돈, 말벗과 격려 및 위로 등 항목만 20가지가 넘었다. 1명 돌보는데 월 52만원 선이라 2명은 돌봐야 소득이 된다. 식비·교통비는 전혀 지원이 안 된다. 주유수당, 월차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 명목상 다 있지만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 요양시설에서 근무했던 정명자씨는 올해 2월 17일 출근하다가 쓰러져 중환자실 거쳐 회복중이다. 산재신청을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요양원의 돌봄 대상자는 27명. 요양보호사 4명이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양시설 측은 주방 직원들이 나가자 정씨에게 10만원 더 주겠다며 식당일을 맡겼다. 급여가 130만원이 됐다. 물론 보험료 등 세금 떼면 120만원 수준. 오전 6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했다. 그런데 30명 이상의 하루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다. 쓰러지기 직전에 배추 200포기 김장을 하고 음력 정월 대보름이라 특별식을 했었다. 정씨가 쓰러지자 사측은 정씨의 동의도 없이 사표수리를 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간병사와 달리 제도권 안에 있다. 하지만 제도가 잘못된 탓에 악용되고 혼선이 많은 상황이다. 공급구조를 민간에 맡기다 보니 돌봄 대상자와 요양보호사 모두 상품화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시설 요양보호사는 2교대제의 평균임금이 123만240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시급 3950원이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평균 급여액은 82만1519원이다. 더욱이 불안정노동으로 인해 들쭉날쭉하니 변화가 심한 임금수준은 요양보호사의 일자리가 생계형 일자리로 정착되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태조사에 응한 시설 요양보호사의 42%, 재가 요양보호사의 24%가 근골격계 질환 증상자로 드러났다. 요양보호사들은 ‘어깨’ 및 ‘허리, 등’에 가장 많은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이러한 신체 부위별 근골격계 증상의 90~98%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요양보호사가 이러한 ‘산업재해’에 대해 ‘산재신청’이나 ‘공상처리’ 등의 방식이 아닌 ‘개인적 처리’로 해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요양보호사 공급 제도를 공적 영역에서 담당해야 하고, 관리감독이 절실하다. 올해 7월이면 장기요양보험법 시행 3년으로 법 개정이 가능하다. 간병서비스의 제도화와 더불어 요양보호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이 필요한 때다.
“서서 일하는 고통을 아시나요”- 마트 노동자
2008년 1월 경향신문이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도한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이 벌어졌고, 노동부도 그해 8월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대책’을 발표했다.
3년이 지난 2011년 실태는 어떠할까. 취재 결과 여전히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고,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확산되고 있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경우 계산원들의 노동환경이 대형할인매장에 비해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ㄹ마트 ㅅ점 계산대는 총 22개가 있지만 배치된 의자는 5개뿐이었다. 계산원 ㅊ씨(52)는 “강당으로 다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안다. 우리 점포는 너무 바빠서 앉을 수 없기 때문에 의자가 있어도 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SSM인 ㅎ마트 ㄱ점에도 계산대가 없었다. ㄱ씨(55)는 “사장님이 손님이 싫어한다며 치웠다”고 말했다.
계산원으로 일한지 5년 됐다는 ㅇ씨(48)는 “의자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며 “관리직에 눈치가 보이고 손님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앉아있기가 힘들다. 집에 가면 다리가 퉁퉁 붇지만 이제는 좀 적응이 됐다”고 말했다. ㅇ씨는 하루 7시간 동안 서서 일하고 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으로 주어진 1시간뿐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에서는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13.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자가 아예 없는 ‘탈법’을 행하고 있는 곳이 여전히 46.3%에 달했고 나머지는 앉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인 것으로 응답했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우 요통, 하지정맥류, 무릎·발의 통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에 배치한 의자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두 손을 놓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감독관이 300여명인데 100만개 이상 사업장을 다 다닐 수 없어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직능단체·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자가 있어도 등받이가 없거나 발받침대가 없어 “그냥 서 있는 게 낫다”는 경우도 많았다. ㅅ씨(42)는 “의자 크기는 유치원생이 앉을 수 있는 크기나 내 엉덩이 반도 못 걸친다. 높낮이 조절도 안 되고 등받이가 없어서 앉았다 일어나면 더 무릎이 아플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의자 캠페인 1년 후’ 토론회에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장시간 사용하면 그냥 서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며 “5개 마트 계산원 42명을 조사해보니 불편하지 않은 적합한 의자가 보급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 76.2%에 달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12개 대형마트를 취재한 결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둔 곳은 2개에 불과
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우리나라 계산대는 애초부터 의자 없이 서 있게 할 생각으로 만들어놔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스웨덴 볼보 공장에서는 기계에 맞춰 사람이 일하는 게 아니라 부품이 필요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차 부품이 공급되도록 작업장을 혁신했다. 이런 혁신이 산업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업체가 SSM(기업형 슈퍼마켓) 등
점포를 확장하는 추세인데 새로운 점포부터 앉아서 계산할 수 있도록 계산대 높이를 조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근본적 해결 방법은 인식 개선이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는 ‘근로 환경’이며 ‘존중과 배려’라는 것. 이성종 전국민간서비스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은 “의자 캠페인은 서비스 노동자에게 건강권이 있다는 것과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인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였다”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쉬는 의자가 아니라 앉아서 일하는 의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월 17~18일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급과 수석비서관들이 모인 국정토론회 자리에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토론을 한 데 대해 6월 21일 “대형유통매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여성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정부의 어떠한 정책 언저리에서도 언급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누가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말로는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확대하겠다는 그리고 워킹맘으로 불리는 아이를 가진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보장하겠다는 이 정부는 유통매장 안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열악한 노동현실에 처한 여성노동자들이 보이기나 하는 것일까?”라고 성명을 냈다.
공감으로부터 나오는 연대
한국은 성불평등지수 138개국 중 20위(2010년 유엔 개발계획), 성격차지수 134개국 중 104위(2010년 세계경제포럼)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15세 이상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49.4%로 OECD 평균 61.3%와 일본 62.9%, 미국 69%에 비해 크게 낮다. 여성임금노동자 중 정규직은 47%에 그친다. 여성전문 관리직 종사자와 화이트칼라 사무직을 포함한 비율은 전체 여성 취업자의 39%에 불과하다. 여성인력은 여전히 서비스, 판매업, 단순노무직, 농림, 어업 등 단순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6.2%에 머물고 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문제와 연결된다. 최저임금 문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노동자들은 여성,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4320원으로 짬뽕 한 그릇의 평균 가격(4508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지난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최저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32%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OECD 국가들 평균(37.4%)에도 미달하는 낮은 수치다. ‘여성, 비정규직’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실제로 경비·청소 관련직의 경우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73만4000원으로 남성의 63% 수준이다. 이 직군 여성노동자 가운데 74.7%가 50대 이상이라는 점에서 고령의 비정규직 여성들이 최저임금 미달로 인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최저임금 결정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답은 뭘까. ‘공감으로부터 나오는 연대’ 아닐까. ‘반값등록금’ 문제로 청계광장에서 열린 6월 21일 촛불집회에서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등록금은 반값하고 최저임금은 올리자. 반값 등록금 투쟁 승리하고 최저임금 투쟁 승리하자”라고 외쳤다. 김현경 이화여대 조형예술학과 학생회장이 “이달 초 주먹밥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이 올라야 국민의 삶이 높아지고, 더 많이 연대해야 반값등록금도 실현 가능해진다”고 말하자 ‘최저임금 현실화’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은 여성 노동자들은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등록금 문제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이 비정규직 ‘어머니’들과 연대할 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또다시 등록금·실업 문제 등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의 아픔에 공감할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누군가의 어머니, 누이, 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이해해보는 것에서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