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1. 북핵협상이 왜 이뤄지지 않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는 악화됐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2010년 3월 천안함 격침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다. 북핵문제도 남북관계에 연계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북핵검증합의서 채택에 실패하면서 중단되었고, 2009년 상반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제2차 핵실험, 그리고 2010년 11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공개로 북핵문제를 둘러싼 우려가 고조되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재설정에 실패함으로써 북핵해결의 집중력을 잃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이 향상되는 징후를 보임으로써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2년 9개월여 동안 열리지 못하고 장기 공전 중이다. 과거에는 북한이 6자회담 불참카드를 활용해서 한국과 미국을 압박했지만, 지금은 거꾸로다. 북한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모든 핵개발 프로그램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남북대화 등 선행조건을 내걸고 ‘기다리는 전략’과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고 있다.
그동안 한미 양국이 대북 무시전략으로 일관해온 데는 6자회담을 재개해봤자 비핵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정세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미 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한미는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요구를 2차 핵실험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를 풀고 경제지원을 얻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제재와 압박의 지속 쪽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북한이 쉽사리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아래 6자회담 재개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되풀이 하지만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평화 정착 등 주변 국가들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아래 회담제의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미국이 북핵해결의 한 방법으로 ‘리비아모델’을 제시했는데, 핵을 포기한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지켜본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도 6자회담 재개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의 후계구축 등 내부 정세 불안정도 6자회담 재개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으로의 후계구축 과정에 있는 북한 권력내부의 불안정성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6자회담 재개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세력과 김정은 세력 사이에 정책의 선명성 경쟁을 할 경우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정세 판단도 6자회담의 재개를 어렵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넷째, 한국 정부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적 사고’도 북핵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재와 압력으로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이 북핵해결의 빠른 방법이라는 정부 일각의 보수적 시각이 반영돼서 6자회담의 재개가 늦어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이든 6자회담 재개가 늦어지는 동안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공개하고 협상이 늦어질수록 그들의 핵능력은 향상될 것이란 점을 암시하면서 외부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외부 세계 역시 제재와 압력, 그리고 기다리는 전략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올 봄부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속해온 북핵협상 과정과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을 간단히 살펴보고,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핵문제의 해결이 가능한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문제’ 해결의 방안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6자회담을 통한 북핵협상 전개과정
6자회담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불량국가’ 북한과 양자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보증자’로 중국이 참가하는 3자회담을 거쳐 남북한과 한반도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 4강이 참여하여 확대한 다자협상 틀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6자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경제․에너지를 제공하고 나아가 별도의 포럼을 만들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까지 다루는 지역안보협의체의 성격도 갖추게 됐다.
원래 북한은 북․미 직접대화를 원했지만 6자회담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비핵화에 상응하는 경제·에너지 지원을 참여 국가들이 분담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추진력이 떨어진 것은 2006년 10월 9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미 접촉이 본격화되면서부터이다.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은 북․미 양자협상의 결과를 추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6자회담에서의 일본의 비협조도 6자회담 추진력을 떨어트린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분담된 대북에너지지원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6자회담이 파탄 직전에 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연시켜 그들의 핵무장구실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6자회담의 추진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를 통해서 폐쇄→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북핵폐기의 로드맵을 만들고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불능화를 완수하려 했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로 정책 추진력이 떨어졌다.
북한이 2008년 6월 27일 불능화 조치에 포함되지 않은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할 때만해도 부시 행정부와 불능화까지 진행하고 경제․에너지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얻어내고 다음 정부를 기다리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기 막바지 레임덕에 빠진 부시 행정부의 비핵화 추진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테러지원국 해제 추진에 일본과 한국이 반발하면서 북핵 불능화를 위한 6자회담의 추진력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구체화하기도 전에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6자회담의 추진력을 급격하게 떨어트렸다. 북한의 연이은 초강수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선택폭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다 내놓아 보라는 식으로 기다렸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지난 20여년간의 북핵협상에서 경제적 보상 등 대북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미국식 불만’이 깔려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차원의 제재 강화에 주력했지만 북한이 핵능력을 향상하는 쪽으로 맞서자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아마도 북한은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에 따라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뒤로 하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2009년 4월 5일)와 핵실험(2009년 5월 25일)을 통한 대량살상무기(WMD) 성능개량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이상을 급변사태와 등치시키는 외부 세계를 향해 물리적 강제력의 강화를 통해서 정권과 체제를 지키고 후계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뇌졸중에 당황해 하면서 WMD 성능개량실험과 함께 김정은으로의 후계구축을 본격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범 당시 ‘강력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선제 초강수에 실망하고 협상대신 ‘전략적 인내’를 표방하고 한국의 ‘기다리는 전략’과 공조를 취하면서 제재와 압력에 주력했다.
2009년 8월 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전후해 한반도 정세가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일부 움직임이 있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북핵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돼, 미국에서는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 한국에선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 등 북핵해결의 거대담론들이 경쟁적으로 나왔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7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북미관계 정상화, 경제․에너지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9월 미국 방문 중에 “북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안전보장과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핵해법으로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그랜드 바겐은 북한이 살라미전법을 구사하면서 경제적 보상만 챙기고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괄타결의 협상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단계별 협상은 북핵폐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장애가 조성되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그랜드 바겐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핵협상이 단계별 이행 성과에 따라 보상을 주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핵폐기와 관련한 근본적 조치에 나설 경우 대북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그랜드 바겐이 단번에 일괄타결하는 이른바 ‘원샷 딜’이라면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는 미국의 우려사항과 북한의 요구사항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단계별로 일괄타결하는 방식이다. 한미의 북핵 일괄타결안이 단번이냐 단계별이냐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일괄타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괄타결은 협상당사자들이 우려사항과 요구사항을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고 동시에 주고받는 협상방식이란 점에서 9·19 공동성명의 ‘동시행동원칙’이 반영된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에 나온 포괄적 패키지와 그랜드 바겐은 핵폐기 협상을 늦출 경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굳어질 수 있다는 다급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일괄타결의 핵심은 핵폐기와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의 교환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지고 과거 핵 동결 또는 불능화 차원의 협상이 아닌 질적으로 다른 핵군축협상과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포괄적 패키지에 관심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들고 나온 것은 미국이 포괄협상 의지를 밝힌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일괄타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기존의 선 핵폐기론에서 그랜드 바겐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리 제재 국면에서의 그랜드 바겐 주장이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신중론을 폈다. 기다리는 전략에서 갑자기 그랜드 바겐을 들고나간 이 대통령 제안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해 사멸위기에 처해있다. 북핵문제는 남북분단, 북미 적대관계 등 역사-구조적 산물로 냉전질서를 평화질서로 판을 바꾸는 큰 틀의 협상을 해야 한다. 오랜 역사-구조적 산물인 북핵문제를 단번에 그랜드 바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이 되고 말았다.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874호에 따라 미국이 제재와 압력을 지속하자 북한은 2010년 11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ranium Enrichment Program: UEP)을 공개하고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 구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다. 북한은 2009년 4월 29일 유엔안보리가 사죄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한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경수로발전소건설을 결정하고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시작할 것을 선언했다. 북한은 2009년 9월 3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를 통해서 “폐연료봉 재처리에서 추출된 플루토늄의 무기화와 우라늄 농축시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보냈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서 플루토늄을 원료로 한 핵무기 성능을 개량하고, 2010년 11월 우라늄 농축방식의 새로운 핵 프로그램을 공개함으로써 6자회담의 추진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북한은 전통적 협상방식인 교착상태→위기조성→대화재개→부분타협의 수순에 따라 위기조성 차원에서 UEP를 공개했을 수도 있지만, 북한의 새로운 핵프로그램이 의혹 수준에서 현실 수준으로 부각했다. 미국과 한국은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략적 인내와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함으로써 북핵협상은 장기간 공전되고 있다.
사실 천안함 사건이 나기 이전만 하더라도 6자회담은 빠르면 2010년 3월, 늦어도 4월중에는 이뤄질 것으로 전망돼 왔다. 2월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미간에 추가 대화를 가진 뒤 6자회담이 열린다고 보는 것이 로지컬하다”면서 “(6자회담 재개 시기는) 3∼4월로 본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3.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최근의 움직임
(1) 중국의 6자회담 3단계안과 한국의 움직임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이 향상되는 징후를 보이자 6자회담 개최국 중국이 나섰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할 때는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주장에 한미가 미온적일 때는 한미를 설득하는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자회담의 의장국인 중국은 6자회담의 실패는 곧 ‘중국외교의 실패’로 인식될 수 있고, 안보적으로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따른 ‘북한위협론’이 중국안보를 위협하는 핵개발 경쟁과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의 빌미로 활용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제재에 따른 북한 체제위기 심화와 급변사태론의 부각은 중국으로서도 방치하기 어려운 과제다. 중국은 2010년 초 북미 양자회담→ 6자 예비회담→ 6자 본회담의 3단계안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한반도 정세가 경색됨으로써 이러한 제안은 무산되었다.
천안함 사건 이전만 해도 한국은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이었다. 오히려 미국은 2009년 말과 2010년 신년 벽두 서울에서 나오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보에 당황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0년 2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이며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속도에 조응해야 한다’는 말로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 2월 말 한미전략대화를 위해 워싱턴을 찾은 유명환 장관은 6자회담 재개에 속도를 내달라는 게 방미의 주목적이라고 현지 특파원들에게 말했다. 6자회담을 개최하는 경로에 대해 거의 합의가 다 이루어졌었다는 관측이 무성하던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몇 달간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봉쇄’의 방향을 향해 치달았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정부는 ‘선 천안함, 후 6자회담’의 구도를 설정하고 천안함 격침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 책임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남북대화든 6자회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대북 강경입장을 견지했다. 북한이 천안함 사과 대신 연평도 포격으로 맞섬으로써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김정일 위원장의 뇌졸중,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일련의 사태가 한반도 정세를 지배함으로써 북핵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장기 공전에 빠져들었다. 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기간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되고,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이 의혹의 수준에서 현실로 밝혀짐으로써 6자회담 재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1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1월 19일)에서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며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에 합의함으로써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노력이 다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과 한반도의 긴장 해소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다음 단계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며, 특히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 중에서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는 그 동안 한미가 일관되게 요구해 온 것이고, 6자회담의 재개는 중국이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이 절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와 남북차원의 ‘5·24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굴복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버텨나가자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분리해서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한국 정부가 북미대화에 앞서 남북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중국이 제안했던 북미대화→6자 예비회담→6자 본회담의 3단계안은 남북회담→북미대화→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3단계 안으로 수정됐다. 올 봄부터 이러한 6자회담 재개 시나리오에 대해 한·미·중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양자접촉이 시작됐다. 지난 7월 22일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접촉이 이뤄지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물밑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8월 들어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역도’란 표현사용을 자제하면서 대화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6자회담으로 가는 전제조건 해소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지난 8월 12일 통일고문회의를 주재하며 “남북이 어렵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좋을 때보다도 어려울 때 길을 열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그동안의 대북정책 원칙을 다시 언급하지 않고 상호신뢰구축을 강조한 것에서도 대북정책의 변화 조짐을 읽을 수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8월 17일 “6자회담과 천안함이 100% 연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말했다”면서 남북관계 복원과 6자회담 재개 노력을 투 트랙으로 동시병행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강경론자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측근인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으로 교체하고 원칙 위주의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지키되 시대흐름을 반영해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급변사태론에 입각한 대북압박에서 남북관계 복원을 통한 안정화 쪽으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남북관계 안정화와 북핵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원칙 위주의 대북정책에서 유연성 있는 대북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것은 야구에 비유하지면 직구 위주에서 커브나 유인구를 적절히 배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란 점에서 최근 남과 북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어 6자회담 재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2)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제안과 미국의 냉담한 반응
북한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에 반발하면서 ‘자위적 핵 억제력의 질량적 강화’를 주장했지만, 군사훈련이 끝나기도 전에 대화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측에서 을지연습이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를 방문하고 가스관 연결 등 경협을 논의하고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의 잠정 중단’ 용의를 밝히고, 귀국길에 중국을 들러 다시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재확인함으로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 국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7월 하순 발리 남북접촉과 뉴욕 북미대화에 이어 8월에는 한ㆍ러 외교장관회담(8일)→북ㆍ러 정상회담(24일)→한ㆍ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25일)→김정일·다이빙궈 회동(26일)으로 이어진 숨 가쁜 양자접촉이 이어졌다.
문정인 교수가 ‘믿을만한 소식통’의 전언이라면 밝힌 내용에 따르면, 7월 말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 부상은 “미국과의 조건 없는 대화 재개와 관계개선을 무엇보다 강력히 희망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유훈에 따라 핵무기를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명백히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국 역시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거두고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함께 전달했다”고 한다.
방미 중 김계관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발사의 모라토리엄 조치를 취할 용의’를 표시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8월 25일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요구와 함께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무기의 실험과 생산을 잠정중단(모라토리엄)하는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될 것”이라고 밝혀, 대북지원과 6자회담을 위한 대화가 이뤄지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한·미·일 3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가동중단,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실험의 잠정중단, 핵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 기구 사찰단의 복귀 등을 제시해 놓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 재개 시 대량살상무기(WMD) 실험 모라토리엄’이라는 모호한 카드를 꺼내 들자 미국은 “불충분하다”며 추가적인 비핵화 사전조치 이행을 압박하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8월 25일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에 대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이 민간 목적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이미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HEU의 폐기와 남북관계 계선을 6자회담 재개의 핵심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고, 한국은 북한의 모라토리엄 주장에 진의확인이 필요하며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4. 6자회담 과제와 전망
1990년대 초 북한의 핵개발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과 국제사회는 지루한 협상과 제재를 반복하면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협상카드가 다원화되고 협상양식이 복잡화되었으나 미국과 북한의 기본입장이 대립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아, 북핵협상은 교착상태→위기고조→대화재개→부분타협의 양상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왔다. 북핵협상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거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IAEA 사찰관 추방, 재처리시설 재가동, 폐연료봉 추출 등의 도발로 위기가 조성된 이후 미국의 사후적인 대응조치로 시작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한국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비핵화와 관련한 선결조치와 남북관계 개선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전략적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한 일부 행동을 언급하면서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남북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 한미공조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핵 비확산 노력에 제동을 거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는 점,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야 하는 북한의 조급함 등을 고려할 때 조만간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위한 외교노력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6자회담 조기 재개 여부는 한국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한 주된 이유를 북한의 대남도발과 핵실험, 새로운 핵프로그램 공개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정세 악화를 방지하지 못하고 북한의 핵능력 향상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 재개가 늦어지면 북한의 핵능력이 향상될 것이란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재선을 앞둔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임기 말까지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변수 중 하나가 북핵문제이기 때문에 미국도 북핵문제가 악화되지 않도록 상황관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올 하반기 6자회담을 재개하지 못하면 북핵문제는 주요국 권력교체와 맞물려 더욱 강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차원을 넘어선 동북아차원과 세계적인 비확산차원의 대북전략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조만간 6자회담의 모멘텀을 살려내지 못하면 6자회담 무용론이 나오고 북핵해결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련 당사국 모두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북한은 한때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제재해제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다가 최근에는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먼저 보여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기까지는 관련 당사국들의 외교적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비핵화, 제재해제, 평화협정 등의 문제를 어떤 순서(sequence)로, 또는 동시병행으로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협의가 이뤄져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 재개가 어려운 것은 회담이 재개되면 북핵해결을 위한 포괄협상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포괄협상은 냉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판이 바뀌는 큰 틀의 구조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북핵협상 성공의 관건은 북미 적대관계 해소이다. 이는 핵포기와 체제보장의 맞교환의 문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가 긴요한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따른 미군철수, 한미연합사 해체 등을 우려해서 이를 서두르지 않았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6자회담을 재개하지 못한 모든 책임을 북한에만 돌릴 수는 없다.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냉엄하다 점을 직시하고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원칙만 있고 전략이 없는 기다리는 전략으로 남북관계를 풀 수 없듯이, 그랜드 바겐만 있고 그랜드 디자인이 없는 북핵해법으론 북핵문제를 풀 수 없다. 관광객 피격사건, 김정일 건강악화, 천안함 침몰사건 등 돌발사태가 정세를 지배할 경우 글로벌 이슈인 북핵문제의 해결의 집중력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남측정부의 대북 영향력이 커져야 6자회담 등에서 한국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남북관계 장기 경색이 6자회담의 장기 공전과 연관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급변사태론에 입각한 대북압박에서 남북관계 복원을 통한 안정화 쪽으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남북관계 안정화와 북핵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개최국으로서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2010년 11월에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의 성과가 북한의 연평도포격으로 한순간에 날아간 전례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의 원칙 위주의 대북정책에서 유연성 있는 대북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6자회담 재개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올 하반기 6자회담을 재개하지 못하면 북핵문제 해결노력은 주요국 권력교체와 맞물려 장기 공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 하반기가 남북관계와 6자회담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점에서 본격적인 대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고 유 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