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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구의 편인가? 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중심으로 -


 


 



 


 


법은 누가 만드는가?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겨울, 국회에서는 한 달 가까이 ‘공성전(攻城戰)’이 벌어졌다. 정부가 80여건의 법률을 전쟁하듯 밀어붙이겠다고 선전포고했고, 80여석에 불과한 야당은 정무위원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등 상임위원회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본회의장을 걸어잠근 채 전투에 돌입했다. 농성과 몸싸움 끝에 여야는 일방처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그 뒤
에도 상임위에서의 날치기, 본회의 직권상정과 날치기는 계속 됐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몸싸움이 벌어졌고 18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몸싸움 국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1 8대 국회의 입법전쟁은 법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무색하게 만든다. 법이 육박전 끝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논란의 소지가 있어 여야간 합의가 어려운 법은 모두 날치기와 몸싸움 끝에 만들어졌다. 대기업을 위한 법들, 가령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 금산분리 완화를 목적으로 한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그 산물이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해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방송법도 마찬가지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국회입법의 원칙을 명문으로 선언한 헌법 40조의 정신은 실종되었다.
 18대 국회에서 매우 극단적이고 유난히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입법과정은 늘 현실적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반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법은 현실에서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법은 일제통치의 수단이었고, 유신시대의 법은 유신독재통치의 수단이었다. 87년 이후에야 비로소 법이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민주적인 내용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국가보안법 등 여전히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는 과거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경제분야의 법들은 개발독재시대 이래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여야의 정권을 바꾸고 대통령을 바꾸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쉬울 수 있다. 국민의 뜻이 직접 반영 되는 선거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제정과 개정은 국민 손으로 직접 할 수 없다. 선거를 통해 개혁적인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국민이 기대했던 것만큼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도 법이 바뀌지 않고, 또 국가재원의 배분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법과 재정은 이미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강한 ‘경로의존성’을 갖고 있다.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은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세력의 강하고도 집요한 저항이다. 그래서 개혁은 쉽지 않다. 그리고 개혁세력의 집권은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법과 재정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국민의 편에, 사회적 약자에게 가깝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지독히 어려운 숙제를 하는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법제화하지 않고서는 어떤 변화도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변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을 공고하게 하고 그 개혁의 경로를 단단하게 하려면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 입법절차를 통해 통과되는 법의 상당수가 정부가 만들어서 보낸 법이거나, 정부가 보내온 법을 의원 이름만 빌리는 이른바 청부입법인 것이 현실이다. 또 의원발의 법안도 정부가 반대하면 국회통과는 사실 어렵다. 이런 불균형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것인가? 물론 행정부와 국회의 쌍방과실이긴 하지만 책임소재를 좀 더 분명히 밝혀보면 8:2 정도로 정부 과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입법 과정에서 주도권을 과도하게 행사하기 때문이다. 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지면, 헌법이 부여한 권한에 의해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부는 집행을 위한 시행령을 만들 권한을 갖고 있는데, 정부는 법도, 시행령도 모두 다 정부가 만드는 경로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관료의 주도권이 아주 강하게 유지 되어온 사회이기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이고, 그 경향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법의 경로의존성과 시행령을 통한 법의 무력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여신금융전문업법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최근 음식점연합회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음식점 문을 닫고 여의도에 와서 시위를 하는 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카드수수료가 시위의 원인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1%대의 카드수수료를 내는데 동네 슈퍼나 안경점 등 중소상인들은 3%대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가맹점의 수수료율 격차가 문제이고,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카드수수료를 떼고 나면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왜 카드수수료가 대기업과 중소업자들 간에 차이가 나는가, 또 왜 그렇게 비싼가가 문제다. 이 논의는 이미 17대 국회에서도 오랜 기간 검토되었다. 국회에서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는 카드사업자들과 협의를 거쳐 -사실상 카드사업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카드수수료를 일부 인하한다고 발표하곤 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카드수수료가 인하되었지만,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여전히 대형업체들은 낮은 수수료, 중소업체들은 높은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17대, 18대 국회에 이어진 법 개정 논의는 적정한 카드수수료는 얼마인가를 초점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카드사들은 대형마트, 백화점과 중소가맹점이나 재래시장의 카드이용 원가가 다르니 수수료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원가가 왜, 어떻게 다른지 ‘원가의 내역’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17대 국회 말 카드수수료의 원가에 대한 분석보고서가 만들어졌지만 공개되지 않은 채, 법 개정은 미뤄졌다.



 18대 국회에서는 드디어 법이 개정되었다. 국회 초인 2008년 8월에 동료의원들과 함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발의해 2010년 2월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니, 1년 반이 걸린 셈이다. 국회에서 ‘원가’와 수수료 차별에 대한 논의가 1년 넘게 이어지자,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은 수수료 격차를 없애겠다면서 대신 법 개정은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어찌 보면 법 개정을 통해 거두고자 했던 목표가 이뤄진 셈이니, 물러서는 게 어떤가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카드사와 금융당국은 이미 17대 국회 때인 2007년에도 수수료 인하를 약속했었다. 지켜도 되고 혹은 안 지켜도 따질 길이 없는 약속 갖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은 분명했다. 거듭된 논의 끝에 ‘원가’와 수수료 격차에 관해 금융당국에 감독권과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 중소가맹점들이 단체를 설립해서 카드사와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이 정무위를 통과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시행령을 만들면서 중소가맹점의 범위를 너무 제한했기 때문이다. 입법의 취지를 벗어난 시행령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0년 만들어진 시행령에 따르면 단체를 만들 수 있는 중소가맹점 수가 전체 가맹점 수의 42%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2010년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고, 당시 금융위원장은 기준을 변경해 늘리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2011년 5월 금융위원회가 중소가
맹점 기준을 일부 조정하여(연평균 매출액 1억2천만원으로 확대) 전체 가맹점의 58.5%가 중소가맹점 범위에 포함되었다. 또한 앞으로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가맹점 단체 설립 기준을 1억5천만원으로 올려 전체 가맹점의 65%까지 중소가맹점범위에 포함되도록 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런데 아직도 시행령 개정 움직임이 없어,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를 지적하고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금융위원장의 답변을 받았다.


 







 


여신전문금융업법(대안)의 주요 내용



  가.   신용카드 결제대상을 금전채무의 상환, 금융투자상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상품, 사행성게임물 등을 제외하고 모두 결제 가능하도록 확대함


  나.   다른 신용카드가맹점을 위하여 신용카드등에 의한 거래에 필요한 행위를 대행하는


         수납대행가맹점을 신설하고, 수납대행가맹점의 준수사항을 규정


  다.   신용카드회원의 예금잔액 범위 내에서 결제되는 직불카드 및 선불카드의 결제대상을


         신용카드 결제대상과 차별화하여 확대하여 금융이용자 편의를 제고 하고자 함



  라.   신용카드업의 허가요건 중 전문인력과 전산설비 등 물적(物的) 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요건에 대해서 신용카드업의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이를 계속 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함


 


  마.   신용카드업자가 소속모집인을 등록하도록 하고, 모집인 등에 대해서 모집 관련법규를


         준수하도록 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등 모집인 제도를 개선



  바.   신용카드가맹점이 신용카드업자와 거래조건과 관련하여 합리적으로 계약을


         체결·유지할 수 있도록 단체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며,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업자와


         신용카드가맹점 간의 거래조건과 관련하여 합리적으로 계약을 체결·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용카드업자에게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업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도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함



  사.   신용카드업자 외의 자에게 양도가 금지되는 신용카드 거래에 의하여 발생한 신용카드


         가맹점의 채권에 신용카드업자에 대하여 가지는 매출채권을 포함시키고, 자산유동화


         법에 따라 자산유동화를 하는 경우에는 양도 제한의 예외를 인정함



  아.  겸영 여신업자에 대해서도 약관에 대한 규제를 적용함



  자.   과징금 부과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를 마련하고, 금융위원회에게 과징금 과오납


         금을 환급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며, 과징금 환급시 환금가산금을 환급받을


         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


 


 


포괄위임입법 금지의 원칙



 실제로 제정되거나 개정된 법은 시행령을 통해 집행된다. 대통령의 명령 형식을 취하는 시행령은 법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법의 시행에 필요한 규정을 정하는 것이지만 종종 위임범위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헌법 75조는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입법부가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할 때 포괄적인 내용을 위임함으로써 행정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거나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입법부는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을 명확히 하고, 정부는 그 범위 안에서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 2010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당시의 입법 취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중소가맹점들의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국회의 입법취지를 무력화시켰다.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시행령을 다시 개정하겠다고 나섰지만, 국회가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한 뒤 시행령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집행되는지를 감시하지 않는 한 국회의 손을 떠난 법이 엉뚱한 길을 가는 경우는 종종 있다. 만들어진 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끝까지 봐야 하는 이유이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왜 약자의 편이 아닌가?



 법은 누가 만드는가에 관한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와, ‘올슨의 집단선택이론’이 참고가 된다. 이는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이론이다. ‘다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수가 힘을 발휘 한다’는 것이니 상식과는 정반대다. 조직된 소수를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바
가 분명히 있어도 조직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조직되어 있는 이해집단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조금 더 성장하는 것은 조직되어 있지 않은 다수 유권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정책과 법, 국가재정의 배분에 잘 반영할 것인가에 관한 숙제를 푸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에 관해 정부와 국회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조직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유권자의 그런 결심과 행동은 정책과 법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 결과가 정부의 ‘친서민’과 ‘공정’ 노선 천명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는 3년째 의제에 올라가지도 못했던 수많은 개혁입법들에 관한 논의가 새삼 시작되었다. 납품단가연동제, 대규모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공정거래문제, 하도급법 위반 업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같은 법들이 그 예다. 조직되지 않는 다수의 국민은 힘을 갖지 못하고, 법과 정책, 예산편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가 국회의 논의 방향을 바꾸고,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꾸듯 집단화된 국민 다수의 힘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법은 우리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수많은 필부필부 (匹夫匹婦)의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살 착한 국민 대다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직된 소수’에게만 친절한 법 때문에 오늘도 피해를 입고, 손해를 보고 있다. 그래서 법이 누구의 편인가, 왜 법이 약자 편이 아닌가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리고 투표가 법을 바꾸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