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내용 바로가기

빈곤(貧困)과 고독사(孤獨死) 그리고 독거노인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혼자 사는
독거노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 100만 명
시대. 서울에만 13만 여명의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


 


 세계 일류도시라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화려한 네온사인이 모두 꺼지고 태양이 솟아오를 때쯤 스멀스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추레한 행색으로 골목골목을 헤매며 지난밤의 잔해를 ** 파지와 빈병을 줍는 노인들. 하루 종일 파지와 빈병을 주워 또 다른 하루를 연명해야하는 도시의 빈민들이다.
 가진 재산 없이 지하 단칸방 월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84,000원의 노령연금으로 한 달을 살아 내야 하는 이들에게 파지 줍기는 생명과 다름없다. 1kg 당 160원 상당하는 파지를 하루 종일 주워야 1~2천원 손에 쥐기도 쉽지 않지만 싸움이라도 해서 줍지 않으면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니 눈보라와 비바람 치는 악천후가 아니라면 거리로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다.
 빈병과 파지를 주으러 나갈 수 있을 만큼이라도 건강하면 그건 축복이다. 실제로 거리로 나오는 노인들보다 더 많은 수의 노인들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어둡고 습한 지하 단칸방에서 질병과 외로움, 배고픔과 고독사의 두려움을 견디며 죽음보다 못한 하루를 살아 내고 있다.


 2009년 겨울은 내내 독거노인들과 함께 했다. 서울시의 마포구와 서대문구, 강서구, 양천구  일대에 살고 계시는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현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었다. 현실은 독거노인이라는 비루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낸 그들의 삶은 고스란히 살아있는 민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었다. 그래서 그들의 기록은 소중했다.
 독거노인들의 집은 마치 일부러 숨기기라도 한 듯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차 한대 들어가기 힘든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담과 담사이로 난 좁고 어두운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머리를 숙이지 않고서는 안될 만큼 작은 문이 달린 방이 보인다. 하루 종일 한 뼘의 태양도 들여 놓지 않는 방. 벽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가득하고 바닥에서는 습기와 냉기가 올라와 방석을 깔고 앉아도 발이 시려올 정도다.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서 뭐 하려구? 늙은이 구질구질한 꼴 보러왔나?”
 기자를 대하는 노인들의 첫마디는 차갑기 그지없다. 독거노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금 구차한 당신들의 삶에 쏟아진 새삼스러운 관심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다.
 동행한 복지재단의 사회복지사가 쌀과 부식 등을 전달하며 근황을 묻는다.
    “얼른 죽어야지. 이 꼴로 오래 살아서 뭐해. 돈 없고 병든 늙은이들을 누가 좋아한다고...”


자조 섞인 한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여든 일곱 김** 할머니는 남편의 첩실 몸에서 태어난 일곱 자식과 자신이 낳은 딸 하나 모두 여덟 명의 자녀가 있지만 그 어느 자식하나 어머니를 돌보지 않는다. 생활비는 커녕 용돈 한 푼 보태주는 자식이 없다.
 당신이 낳은 딸은 태중에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고 성장해 출가 후에도 사는 게 어려워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며 첩실 몸에서 난 일곱 자식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양의 의무를 저버렸다.


 감옥 갈 각오로 불법 벌목까지 해가며 뒷바라지 한 자식들이지만 머리가 굵어 진 후에는 제 어미가 아니라는 이유로 구박이 자심했다.
 이미 수십 년 전 구박에 못 이겨 집을 나온 할머니는 남의집살이와 행상, 날품과 파지 줍기로 힘겹게 살아왔다. 늙고 병들어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자 주변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보았지만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호적상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된 것이다.
 젊은 시절 손톱이 빠지도록 일을 해서 모아둔 돈으로 단칸방을 얻었지만 수입이 없다보니  곶감고치 빼먹듯 보증금을 빼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집을 줄여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재개발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왔다.
 집주인들은 대부분 떠난 은평 재개발 구역 내에 살고 계신 할머니. 몇 달 후면 포크레인이 들어와 집을 부수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집을 비울 수가 없다.
   “나는 모른다. 깔고 앉은 방세 가지고는 변두리 지하실 방도 얻지 못하고. 늙은 몸 거리로 내 몰아도 할 수 없지.


    차라리 얼른 죽기나 했으면 좋겠어. 늙은 목숨이 왜 이리 질긴지...” 


 
여든의 성** 할머니는 조손가정의 가장이다. 오십 무렵에 혼자되신 할머니는 이혼을 한 후 노동일을 하다 몸을 다쳐 돈벌이를 할 수 없는 아들 대신 어린 두 손자를 맡아 키운 지 십오 년이 넘어간다. 공공근로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조끼를 입으신 할머니는 일거리가 있다는 연락만 오면 언제든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두 손자의 급식비는 학교에서 지원을 받았고 간간히 쌀이며 도시락이며 저소득층에 주는 혜택을 받아왔는데 어느 날부터 급식비와 도시락 지원이 중단되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할머니가 일정 가격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5년 전 할머니는 연남동 철길 옆 자투리땅에 무허가 판잣집을 지었다. 당시 오갈 데 없는 철거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이루고 살던 곳이며 최근까지도 판자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곳이다.
 그런 판자촌에 재개발의 깃발이 나붙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판자촌의 딱지를 사들였고 투기꾼들이 개입하면서 딱지 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 16평 할머니 집값은 억대를 호가하게 되었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45년 살아온 집 한 칸이 전부인 할머니.
 부동산업자들은 집을 팔고 남의 집살이를 하면 다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며 솔깃한 제안을 하지만 수급자 지정을 받기 위해 팔십 노구에 손자들을 데리고 남의 집을 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가난한 막노동꾼의 아내로 살다보니 아들에게는 가난한 엄마, 손자들에게는 가난한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가난이 웬수라 하나있는 아들조차 잘 가르치지 못해 노동판을 전전하다 장애인 신세가 되어버렸고 손자들마저 당신의 가난을 대물림 하는 것 같아 할머니는 늘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나는 아무래도 좋아. 우리 손자들 잘되는 것만 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엄마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아이들이야.


   우리 손자들은 나처럼 가난하지 말아야 하는데... 할미가 밥이나 먹이지 뭐 해준 게 있어야지.”


여든의 박** 할머니는 강서구 화곡동 허름한 주택가 단독주택 뒷방에 세 들어 살고 계신다.
 깊게 굽은 허리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누군가의 수발이 없이는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건강마저 좋지 않지만 최근까지도 수급자 지정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촌부의 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글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입하나 덜자고 신랑 얼굴도 모르고 간 시집. 포악한 남편을 만나 극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그 때문에 30대에 이혼. 홀로살이 어언 50년이 되어간다.  
 젊은 시절에야 식모살이든 날품을 팔든 공장에서 일을 하든 먹고 사는 것은 해결할 수 있었으나 70이 가까우니 늙고 병든 몸으로 그동안 벌어놓은 전세보증금마저 까먹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형편을 알게 된 이웃의 도움으로 기초생계수급자 신청을 하러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할머니는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혼 후 혼자 산지 50년이 가까워 오는 시점. 호적을 떼어보니 남편과 자식들의 이름이 버젓이 할머니의 호적에 등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혼 전부터 첩실을 안방으로 들였던 남편.  본처와 법적인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첩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본처의 호적에 올렸던 것이다.  
 50년 전 남편이 내민 이혼서류는 가짜였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할머니는 당연히 그것이 무슨 서류인지 알 수 없었고 50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기위해 이혼소송을 시작한 할머니는 2년 만인 2010년 소송에 이겨 그렇게 바라던 수급자가 되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실제로 독거 상태인 할머니가 받아야 할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남편도 자식도 다 있는 첩실이 대신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호적만 가지고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존제도의 허점이 아닐 수 없다.


 
일흔 일곱의 고** 할아버지는 북가좌동의 주택가 허름한 단독주택 지하방에 월세를 살고 계신다. 20여 년 전 암으로 아내를 잃은 후 라면은 할아버지의 주식이 되었다. 부엌살림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노인의 경우 밥하고 국을 끓이는 일조차 쉽지 않기에 손쉬운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일이 적지 않다.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이라는 옛말처럼 할아버지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빨래는 언제 했는지 옷에서는 땟국이 줄줄 흐르고 불량한 위생상태와 영양실조로 인한 피부병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다는 할아버지. 건빵으로 점심을 때워가며 키운 자식들이지만 아내와 사별 후 지속되는 불화로 인해 연을 끊고 산지 오래됐다.
  “차라리 무자식이 상팔자야. 자식이 없으면 수급자라도 되지. 나같이 자식이 있는 늙은이는 굶어 죽게 생겼어도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치사하게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


   노인일자리 사업 있으면 그거 나가고 그것도 없으면 파지, 넝마, 고물 주워다 팔고... 그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뭐.”
 홀로살이 20년에 자식에 대한 미련도 기대도 다 버렸다는 할아버지. 자식에게 기대 살며 눈치 보고, 구박받고, 학대 받는 것 보다는 춥고 배고플지언정 홀로 사는 것이 마음은 편하다고 강변한다.
 말씀은 그렇게 해도 빈곤의 문제는 코앞의 현실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보일러를 켜는 대신 손바닥만 한 전기장판에 의지해 잠을 청해야 하는 할아버지.
 겹겹이 옷을 껴입고 솜이불을 둘둘 말고 지낸다 해도 뼈 속까지 시려오는 영하의 추위를 참기는 쉽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동사무소에 달려가 수급자가 안 되면 차상위(차상위 계층)라도 해 달라 애원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하다.
 부양 가능한 자식들이 셋이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이다. 자식이 있다고 해도 연락을 끊고 산지 오래됐고 남보다 못한 관계라 실질적으로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현실이 어떻든 자식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정부지원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창구를 찾는 노인들이 절박한 처지에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한정된 예산안에서 집행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노인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원을 원하는 독거노인들의 불만은 다른 곳에 있다. 호적과 같은 서류만으로 심사를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살고 있는 생활을 평가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지원을 못 받을지언정 창구에서 딸 같고 손자 같은 공무원에게 면박 아닌 면박을 당하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지는 않게 배려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독거노인들에게 빈곤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또 다른 하나는 외로움과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다. 독거노인들의 외로움은 우울증으로 발전되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결국에는 고독사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나 죽으면 보증금 빼서 장례나 치러줬으면 해. 저기 서랍 속에 내 수의도 준비해뒀어. 기왕이면 깨끗하게 죽어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남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은데... 매일 기도하는 게 그거야. 깨끗하게 죽어서 일하는 선생님들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해마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잠시 그들의 죽음에 슬퍼할 뿐 독거노인들의 안전과 안부를 챙겨줄 관리 제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복지단체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가정 방문과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안전을 보살피고 있지만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고독사를 방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급격한 노령화에 따라 독거노인가구 수 역시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고독사하는 노인의 수도 늘어갈 전망이다. 우리보다 먼저 노령화가 시작된 일본의 경우 정부차원의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고독사를 예방하고 있다. 우리도 시급하게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이 반드시 남의 일만이 아닌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빈곤과 고독 속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독거노인들. 자칫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물질적 지원과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같은 복지제도라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복지제도에 앞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앞선 세대 즉,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존중이다. 노인세대와 앞으로 노인이 될 세대들을 위해라도 시혜나 동정이 아닌 배려와 존중이 기초가 된 복지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기온이 점차 내려가니 독거노인들의 안부가 걱정된다. 올 겨울에는 더 이상 독거노인 고독사 뉴스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되어있습니다.


   빈곤(貧困)과 고독사(孤獨死) 그리고 독거노인.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