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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선거, 민주당의 선택은?

 



 


53.9%가 돌아오고 있다. 역대 최저인 46.1%의 투표율을 보였던 지난 18대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53.9%였다.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이다. 어떤 이들은 경제가 성장하고 먹고 살 만해지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 밖으로 눈길을 조금만 돌려보면 이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 비교 가능한 수준에 있는 국가들의 최근 총선 투표율을 비교해보면 대만 58.5%(2008년), 일본 69.27%(2009년), 스페인 76.03%(2008년), 포르투갈 58.91%(2011년), 이태리 80.54%(2008년), 그리스 70.92%(2009년), 터키 84.16%(2007년)로 우리보다 최소한 12%에서 많게는 38%까지 높다. 이 중에서 투표 의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와 그리스뿐이다.
문제는 낮은 투표율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낮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요 사회집단 간 투표율의 비대칭 또한 심각하다. 최저 투표율이었던 2008년 총선에서조차 60세 이상의 투표율은 65.5%였던 반면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24.4%에 그쳐서 세대 간 투표율 차이가 무려 41%에 달했다. 이러한 차이는 계층 간에도 마찬가지여서 뚜렷한 계급투표성향을 보이는 상위 계층에 비해 중산층 이하의 투표율은 20% 이상 낮다. 46.1%라는 평균 투표율만 가지고 보면 사태의 절반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한나라당 지지층의 투표율은 거의 낮아지지 않은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지지층의 투표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1987년 이후 지난 25년간 진행되어 온 이러한 변화는 민주당에게나 혹은 민주당이 마땅히 대표해주어야 할 민주적 시민들에게나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우선 이것은 민주당을 점점 더 오른쪽으로 밀어붙이는 생태학적 한계가 되어왔다.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대의제 민주주의 틀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리고 주로 보수적 유권자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택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선거 때 주로 작동하는 이러한 단기적 선택은 장기적으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민주적 시민들로서는 어차피 제도정치권이 자신들을 대표해주지 않기 때문에 실망과 좌절이 거듭되고, 이들의 정치 냉소와 이탈은 가속화 되어왔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53.9%가 일제히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의 물결을 타고 돌아오고 있다. 과거의 실망한 유권자는 조용히 혼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불만을 말해도 내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려지지 않고, 나 한 사람의 투표가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SNS는 바로 이 지점을 효과적으로 공략해준다. SNS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는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SNS에 모여서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가 함께 바꾼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53.9%의 귀환은 한편으로는 정치의 불확실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여놓고 있다. 이것은 주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의 위기로 작용한다. 8.24 주민투표의 실패, 4.27 재보선에서 많게는 25%까지 앞서가던 선거구에서의 패배, 작년 6.2 지방선거의 격변 등이 정신 차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보수정치를 흔들어댔다. 이들은 그동안 투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할 필요성
도 느끼지 못했고, 오랫동안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누구인지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해본 적이 없었던 53.9%에게 운명을 맡겨야 할 상황이다.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과거에 먹히던 온갖 색깔론을 동원해보지만 백약이 무효다. 53.9%의 유권자들을 종북이라고 불렀다가, 좌파라고 불렀다가, 반MB-반한나라-반미 세력이라고 불러보기도 하
지만 어떤 것도 효과가 없다. 46.1%의 틀 안에서 조사한 대세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분명치 않다.
53.9%의 귀환은 다른 한편으로 정치의 확실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여놓고 있다. 앞서 소개한 투표율 국제 비교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투표율이 상승할 수 있는 현실적 최대치는 70%대 중반이라고 보여 진다. 지난 총선 투표율에 비하면 약 30%정도의 공간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세대나 계층에서 상승 여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반면 반한나라당 유권자가 많은 세대나 계층의 투표율 상승 공간은 적게 잡아도 30%, 많게는 50%까지도 남아있다. 투표율 상승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인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SNS는 투표율 제고에 있어서 압도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이것은 사반세기 만에 정치의 장으로 돌아온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음을 뜻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의 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여기에 중대 변수가 하나 있다. 2012년 한국 정치의 운명을 결정할 칼자루는 민주당이 쥐고 있고, 그 칼자루를 잡은 손에서 조금씩 힘이 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성 정당 중에서 기존의 지지율과 SNS를 타고 돌아오고 있는 유권자의 힘을 합쳐서 집권의 벽을 넘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안은 민주당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기여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2012년 선거의 현실적 판세는 이렇게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에서 53.9%를 ‘민주당 지지층’이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반한나라당’이라고 표현해야만 했듯이, 이들은 민주당을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이 46.1%라는 따듯하지만 좁디 좁은 기득권의 문을 활짝 열고 53.9%라는 광야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고 있고, 불행히도 민주당은 일부의 의미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데에는 실패했다.
칼자루를 잡은 손에서 조금씩 힘이 풀리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이 정점에 달했을 때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흔들려본 적이 없었던 박근혜 대세론은 단 며칠 만에 그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무너졌다. 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이처럼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결집해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한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SNS를 타고 돌아온 민심은 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해 본 적은 없다. 그들은 과연 민주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꽤 긴 시간 동안 민주당을 주목해왔지만, 안철수 현상은 민주당이 얼떨결에 주어진 칼자루를 제대로 움켜쥐는 데에 실패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이득을 취해왔지만, 그러면서도 돌아온 SNS 공동체에서 아직까지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기를 키워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년 선거의 최대 승부처가 될 SNS에서 민주당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은 매우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중도층 유권자에게 각인되어 온 대세론과 패배주의를 걷어낼 에너지를 SNS에 축적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정책 네트워크를 개발해서 반복 각인해야 한다.
누가 후보가 되어도 흔들리지 않을 민주당의 공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가장 앞선 사례이긴 하지만 정당시스템이 잘 발달한 외국에서도 SNS를 통한 선거 승리의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어서 벤치마킹 대상도 풍부하다. 문제는 그 작업을 지금 시작할 의지와 역량이 있느냐이다.



46.1%의 벽 안에 머물다가 대세론에 길을 내어주면서 고사할 것인가, 그 벽을 깨고 과감히 뛰쳐나가 돌아온 정치공동체와 더불어 세상을 바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