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연말 갑작스럽게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은 한반도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 북쪽의 상속인 김정일 위원장이 급서하면서 북한은 체제 안정의 시험대에 들어섰고 한반도 전체는 불안정성의 우려에 빠져들었다. 위기는 도전과 동시에 기회를 내포한다. 김정일 위원장 급서 국면은 한반도 불안정성의 증대라는 우려와 함께 새로운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이라는 기회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1. 김정일 위원장 급서 국면의 파장 : 북한 붕괴론의 붕괴와 대북 정보력의 파탄
김정일 위원장이 없는 북한은 급변사태와 붕괴론의 기대와 우려를 뒤로 한 채 신속하게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권력 엘리트의 동요와 저항 없이 순탄하고 안정된 권력교체가 이뤄지고 있고 주민들 역시 특이 동향 없이 안정 속에 애도국면을 진행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라는 초특급 대형사건이 발생했지만 북한은 의외로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애하는 영도자로 호칭되면서 김정은은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서 신속한 자리매김에 성공하는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기대했던 북한붕괴론은 이번 김정일 위원장 사망 국면에서 오히려 붕괴되고 말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은 급속도로 혼란에 빠지고 김정은의 취약한 리더십으로 인해 급변사태가 올 것이라는 단선적 전망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희망적 사고’에 지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 김정일 유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는 매우 신속하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오히려 북한붕괴론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함께 스스로 붕괴하고 말았다.
북한 붕괴론의 붕괴와 함께 김정일 위원장 급서국면에서 우리는 남측 대북 정보력의 파탄도 목도할 수 있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새까맣게 모르고 있던 남측 정보기관은 전문가보다 늦게 그리고 일반 국민과 똑같이 북한방송을 보도하는 남측 방송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알았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북한 지도자의 유고 사실을 이틀 동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측 대북 정보력의 치명적인 결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도 유고 기간에 버젓이 남측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1박2일의 일본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김정일 위원장 유고 상황에서 남측의 대통령이 한국을 비운 어처구니없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대북 정보 파탄 상황은 사실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은 정치적 의도 하에서 대북정보 분석 조직을 임의적으로 흩트려 놓았고 오랜 전문성을 축적한 분석라인을 전혀 다른 직책에 배치하는 이른바 ‘내곡동 잔혹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분석 인력과 조직이 하루아침에 망가져버린 국정원은 유의미하고 신속한 대북 정보를 도출해낼 수 없었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교류협력이 중단되었고 북한과의 접촉면과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를 통한 인적정보(휴민트) 수집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남북관계 개선 만큼 휴민트의 수집이 증대되었음은 전임 정부에서 충분히 확인된 일이다.
2. 김정은 체제의 북한 : 안정성과 불안정성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이다. 즉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후계자로서 정치권력을 온전히 이양 받고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느냐이다. 결론부터 먼저 도출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단기적 안정성 가운데 장기적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안정성의 토대
우선 단기적 안정성은 몇 가지 근거에서 비롯된다. 첫째 2009년 이후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해 온 후계구축과정의 덕분이다. 지금 결과론적으로 복귀해보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 위원장은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본격적인 후계준비 작업에 나섰고 체계적이고 치밀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2008년부터 김정은을 데리고 현지지도를 다닌 것으로 파악되었고 2009년 1월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이후 2010년 9.28 당대표자회에서 공식화하기까지 군인사 교체, 헌법 개정, 국방위 확대 강화, 내각 개편,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구성, 당체제 개편 등 당정군에 이르는 정치체제 전반을 후계체제 구축작업에 맞춰 정비해갔다. 당대표자회 이후에 김정일 위원장은 김정은을 대동하고 현지지도를 다니면서 후계자 수업을 진행했고 대장복, 장군복 등의 각종 구호와 발걸음 노래 보급 등으로 정서적 정당화 작업도 병행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3년여에 걸쳐 면밀한 후계과정을 서둘러 준비해 놓은 셈이다.
지금 후계자 김정은의 공식 직함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010년 당대표자회에서 신설된 자리다. 그리고 1년여 뒤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 받을 당시에도 1992년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원장직을 신설하고 1993년에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뒤 1994년 김주석 사망 이후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권력승계를 진행했다. 절묘하게 유사한 방식의 사전 준비가 이뤄진 것이다.
단기적 안정성의 두 번째 근거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위기관리와 권력이동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망 이후 특별방송 발표까지 이틀의 시간이 있었고 이 기간 동안 북은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을 점검하고 권력집단의 동요를 막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사전에 약속받았을 것이다. 권력엘리트의 별다른 저항 없이 초기 대응과정이 무난했고 장례절차 역시 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진행되었음은 초동 대응과 위기관리가 안정적임을 의미한다. 공식매체를 통해 ‘경애하는 영도자’, ‘위대한 김정은 동지’, ‘21세기의 태양’ 등을 호칭하고 ‘심장의 최고사령관’을 거론하는 등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서의 자리매김도 전사회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신속하고 전폭적인 지지와 미국의 김정은 체제의 현실 인정도 위기국면에서 안정적으로 김정은에게 권력이동이 진행될 수 있도록 작용했다.
안정성의 근거는 또한 오랫동안 북한에서 작동되었던 ‘시스템’으로서의 수령제이다. 수령의 절대적인 유일지도체제가 정착되면서 이미 북한에는 당정군의 유기체적 시스템으로 수령제가 작동하고 있다. 수령제에서 수령은 자연인 개인이 아니라 수령, 당, 대중이 전일화된 수령제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수령이 사망한다 해도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수령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상당한 제도적 구조적 안정성을 갖는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대장명령 1호가 하달된 것은 당중앙군사위원회라는 시스템이 이미 군에 대한 제도적 장악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은 또한 수령제라는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과도 연관된다. 북한의 수령제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피포위 의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내적 정당성을 강화해 왔고 이를 통해 권력엘리트들은 분파나 이견을 허용할 수 없었고 주민들 역시 수령의 유일지배권력을 용인할 수 있었다.
(2) 불안정성 내재
안정성의 토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수령의 ‘지위’에 걸맞는 확고한 수령의 ‘역할’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수령은 ‘직책’이 아닌 지위로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즉 수령이 응당 확보해야 하는 직책 즉 총비서(당중앙군사위원장 겸직),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령의 지위를 통해 수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3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총비서직을 승계 받지 않고도 수령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그런 맥락이다. 따라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은 수령의 직책을 물려받는 것보다 수령의 지위에 맞는 실질적 역할을 조속히 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지시하고 집행하는 유일 리더십을 확보하고 주민들로부터 수령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확보하는 데서 비롯된다.
예컨대 재개되는 북미협상에서 농축우라늄 문제나 평화체제 이슈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수령은 확실한 결심을 정하고 지시해야 하는 바, 지금 김정은이 각종 현안을 챙기고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훈련과 경륜과 능력을 갖고 있는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핵문제를 강석주에게 의존하고 대남사업을 김양건에게 맡기고 군관련 업무를 리영호에게 위임한다면 이는 수령으로서의 실질적 역할이 약화되고 북한의 수령제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물론 2012년으로 예고해 놓은 강성국가의 경제적 업적을 얼마나 실현해낼 것인가도 수령의 핵심 역할을 검증받는 주요한 시험이 될 것이다.
수령의 실질적 역할 확보 여부는 권력엘리트들의 갈등과 알력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의 수령의 리더십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권력 엘리트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매 현안에 대한 단호하고 현명한 정책결정이 미뤄지거나 주저할 경우 권력 엘리트 간에 이견이 발생하고 알력이 발생할 수 있다. 수령이 확고부동한 리더십을 장악할 때는 엘리트 단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엘리트는 뜨는 권력과 지는 권력 사이의 다툼이 생겨날 수도 있다. 결국 아직은 수령의 실질적 역할을 확보하지 못한 김정은 조속히 수령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권력엘리트 내부의 균열과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 이제 후계자 김정은은 실질적인 수령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북한의 급변사태나 체제전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전환론 일반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의 저항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고 이로 인해 엘리트들이 균열되거나 권력유지에 자신감을 상실하는 정도가 되어야 사실상 체제전환이 본격화될 수 있다. 또한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동구 주변국의 체제전환 도미노 현상 등 국제적 파급 효과가 진행되는 것 역시 체제전환을 촉발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이에 비한다면 북한은 정치적 저항의 조직화와 대안적 정치집단이 존재하지 못하고 권력 엘리트들의 이익공유와 운명공동체 의식은 여전히 강고하다. 더불어 후견인으로서의 중국의 존재와 중국의 파워 증대가 북한의 체제전환을 제어하는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고 특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갈등적 상황의 존재 역시도 북한으로 하여금 내부적 변화를 주저하게 만드는 외적요인이 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내재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와 체제전환은 여전히 시기상조인 셈이다.
3.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과도기
이른 시일 내에 실질적인 수령의 역할을 해내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김정은은 김정일의 경우와 달리 수령의 직책을 서둘러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인격적 리더십, 즉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면 수령의 직책들을 먼저 확보함으로써 수령의 역할을 다져나가는 즉 제도적 리더십을 통해 인격적 리더십을 확보해가는 역순을 진행할 수도 있다.
김정일의 경우와 달리 3년상의 유훈통치를 안할 가능성도 크다.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권력기반과 상대적으로 짧은 후계구축 과정 그리고 수령의 지위와 역할의 미성숙에 따라 수령 직책을 장기 공석으로 둘 경우 권력승계에 이상이 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승계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중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북중관계의 강화가 절실한데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만으로는 예우상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만나기가 곤란한 점도 있다. 날로 강화되는 북중관계의 형식적 예우 측면에서도 서둘러 수령의 직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령의 역할을 확보하고 수령의 직책을 확보하기까지의 과도기는 김정은이 부위원장으로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는 김정은과 측근들이 위원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이고 이미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김정은이 사실상의 위원장 역할을 하면서 군 주요인사 뿐 아니라 장성택, 최룡해, 김경옥 등 당과 국방위원회 등을 장악할 수 있는 핵심측근들이 모두 포진해 있다. 또한 당중앙군사위원회는 당이 국가보다 우위에 있는 이른바 당국가(party-state)이면서 동시에 군을 앞세우는 선군정치의 북한 현실을 감안할 때, 당을 통해 군을 지도 장악하는 채널로서 가장 절묘한 지배기구라고 볼 수 있다.
4. 김정은 시대의 남북관계 : 새판짜기와 공소권 없음
김정은 시대의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데는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검토하는 것 외에도 김정은 시대의 정책기조를 전망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은 체제가 확고하게 안착하기까지는 이른바 ‘보수적 안정’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수령의 후계자로서 김정은 체제는 기본적으로 기존 정책을 계승할 것이다. 새로운 전환이나 수정을 시도하기 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과 노선,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과 입장 등을 유지하면서 보수적 입장에서 정책의 계승성을 강조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남측이 먼저 새로운 접근을 모색함으로써 지금의 경색국면을 돌파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 중단 상황은 북한의 불안정성을 관리하고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유동성을 관리하는 데 우리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북한을 관리하고 한반도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남북관계라는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 지금 시기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속된 남북관계 망실은 북한을 변화시키지도 북한의 도발을 막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최악의 남북관계와 함께 군사적 긴장고조만을 결과한 채 한반도 정세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정은 체제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새판짜기’의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남북의 대결과 갈등의 역사도 함께 안고 간 것으로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사망과 함께 스스로 역사의 부채를 안고 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라는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지난 시기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 상처를 역사 속으로 넘기는 지혜이다. 지금껏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었던 것도 박왕자씨 사건과 천안함 사태 그리고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의 사과와 책임이라는 전제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이들 대결의 상처는 김정일 위원장이 역사 속으로 책임을 안고 갔다. 이른바 ‘공소권 없음’이라는 처리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김정은 체제와 남북관계는 새롭게 전향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논리적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낮은 수준이나마 조의를 표하고 제한적인 조문을 허용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남북관계 모색에 기여할 수 있다. 포탄이 오가는 극단적인 긴장고조와 교착국면의 장기화를 겪고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대화의 끈을 만들어갈 수 있는 동의가능한 명분이 바로 조문외교이기 때문이다. 정적간에도 조문은 허용되었고 이미 국제사회는 조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외교의 장이 서는 조문외교를 일상적인 것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경색국면이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두 번의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명박 대통령도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을 공식 요청한 상대인 만큼 남북관계 정상화의 호기로서 조문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접근이다.
남북관계는 한 지도자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특수 관계이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당시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창조적 기회를 제공했다.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북은 특사조문단을 보냈고 이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뤄지고 이후 남북정상회담 논의로 발전할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역시 꽉 막힌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창의적 모색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역사의 부채를 안고 간 김정일 위원장을 통해 대결의 과거 역사로부터 남북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제 새롭게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있는 그대로 현실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고 상호 공존과 화해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대북포용정책의 재확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남북관계의 새판짜기가 이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2년 동북아 국가의 권력교체가 공교롭게도 북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북한발 권력교체의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일본과 미국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의 권력교체가 정리되면서 이제 내년엔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형성될 것이다. 적대와 대결의 구도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구도로 ‘2013년 체제’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해협력의 한반도가 평화협력의 동북아를 견인함으로써 가능하다. 김정은 시대의 권력교체와 더불어 우리의 정권교체가 선순환을 이루면서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를 이루길 기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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