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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는 유체적 에너지다

# 이야기 하나


평택에서 부산을 향해 9일 동안 410킬로미터를 걸은 적이 있다. 쌍용차 해고자를 포함해 해고 사업장 동지들과 뜻과 마음을 모아준 분들과 함께 말이다. 이른바 폭풍질주 ‘소금꽃 찾아 천리길’이다. 희망의 버스 1차가 끝나기 무섭게 한진 지회는(지회장 채길용) 납득하기 어려운 노사합의를 일사천리로 해 치운다.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이 여전히 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9일간 걸으면서 매일 언론에 기고 글 하나씩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6일차 이르러 중단했다. 생각이 생각을 밀고 나오는 과잉생각에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함께 걷는 50이 넘은 형들을 보면서 ‘과연 이 길이 이 형들을 구원하는 길일까’라는 의문이 부산에 다가갈수록 비수처럼 내 목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발은 아무런 통증도 고통도 없었다. 함께 걷는 이들의 기구한 사정을 알고 곱씹으면서 오로지 눈물만 흘렸기 때문이다. 부산역에 도착한 이후 본무대에서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걸으면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많은 음식이 맛있었지만 특히 ‘눈물’이 최고로 맛있었다.”고 그랬다. 난 걸으면서 눈물이 가장 나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격려한 것을 체험적으로 알았다. 이때까지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16명이 죽은 상태였다. 그렇게 희망의 버스와 함께 움직였다.


 


# 이야기 둘


한진 본사 앞 소위 “주경야독”(주간엔 경찰과 야간엔 독한 모기와)은 연인원 280명이라는 그것도 1시간 단위로 10일 동안 1인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첫 주자인 박노자 선생을 비롯해 유명한 분들은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 그리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24시간 풀가동되는 1인 시위다 보니 당연히 취약시간대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취약시간대(비가 오거나 토요일 혹은 일요일 새벽 등등)를 어떻게 할까 궁리를 했다. 그러나 이건 우리들만의 기우였다. 취약시간대가 사람이 더 많았으며 수원에서 택시타고 오는 시민까지 있었다. 낼 모레 미국유학길에 오르는 전직 기자는 물론, 괴산에 사는 모녀는 과거가 생각나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샜다. 이것이 희망버스의 실체며 유기적 에너지의 근원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우연히 만들어졌다. 그러나 응축된 에너지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간 크레인 85호는 어떤 곳인가.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만에 자결한 장소이자 한진 정리해고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런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을 시작했다. 쉽지 않을뿐더러 비극적 결말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이 비극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 즉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미래인 내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커피숍에서 농담처럼 시작한 희망의 버스가 이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로 발전 하리라고는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진심은 통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자발적 참여 의지는 공간을 열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이 갖고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 파급력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공감할 때 비로소 폭발한 다는 것을 희망의 버스는 일깨워줬다. 재벌기업이 벌이는 일상적 폭력과 경제적 이익에 대한 폭압적 수탈이 도를 넘었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희망버스를 밀고 간 기름이며 기폭제였다.


어쩌면 돌파구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김진숙과 만나 강력한 폭발음을 낸 건 아닐까. 또한 김여진으로 대표되는 소셜테이너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노동현장은 늘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외부의 도움이 있을라 치면 예의 ‘외부세력’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홍대 투쟁에서 이 외부세력이 별개의 불온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알게 했다. 날라리 외부세력은 붉은 커튼을 열어 재치고 비로소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 내가 외부세력이다. 어쩔래? 라는 발랄함과 당돌함으로.


 


“노동 디아스포라”로 이어진 희망의 버스


희망의 버스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라는 슬로건을 처음부터 걸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거부감이 크진 않았다. 슬로건이 사회 현상과 상태에 정확히 조응해서일까? 오히려 공감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으로 아우성을 치고, 농민들은 쌀값으로 몸살을 넘어 생존기반이 붕괴됐다. 비정규직 860만은 숫자로 보면 다수이며 주류지만 경제적 정치적 지위로 보면 여전히 소수이며 비주류 하청 인생이 아니던가. 희망의 버스가 달려가고자 했던 방향은 바로 “노동 디아스포라”였다. 쫒겨나고 탄압받고, 사람 대접 못 받는 비루한 인생을 선택지 없이 받아 들기만 해야 했던 우리네 삶에 새로운 근거지와 기반을 조성하고 싶었다. ‘노동 현안 문제가 중심 의제화 되긴 오랜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렇다. 너무 늦은건 아닌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핵심의 문제임에도 아직까지 중심의제화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식의 문제라고 잘라서 말하기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서로의 이해“력”과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이며 지금부터라도 함께 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민과 노동이 서로에게 긍정의 신호와 자극을 줬다면 그것으로 일차는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시민이 노동자며 노동자가 시민이다. 이것을 우리는 노동디아스포라인 희망의 버스를 통해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프레카리아트”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노동


프레카리아트는 프레카리오(불안정한)와 프롤레타리아토(프롤레타리아트)를 합친 조어다. 이 말은 2003년 이탈리아 거리에 ‘낙서로 등장했다고 한다. 이 말은 결국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이다. 2011년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물론 그 과정에서 폭력과 상처 폭압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졸업이후 삶 자체가 저당 잡힌 채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 노후는 물론 정년이후가 어찌 될지 몰라 여전히 OECD가운데 자살률이 높은 대한민국은 지금 프레카리아트의 천국이 아니던가. 희망의 버스를 탑승한 다수가 바로 불안정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희망의 버스는 누구의 기획을 넘어 불만과 불안한 삶에서 언제나 준비된 버스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현상을 단순히 일시적 혹은 일회적 현상으로 규정해선 안 될 이유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국가가 해야 할 첫 번째는 뭘까? 2007년 유렵연합보고서에선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같은 보고서를 보는 것은 어렵고 지난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현재 수준에 대한 재구성으로 충분히 되는 조건에 이미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재벌 금고에 쌓이는 사내 유보금이 천문학적 수준을 넘었다. 불안정한 노동의 시대에 안정적인 재벌들의 안정적인 구조라니.... 희망의 버스가 멈출 이유를 찾을 길이 없다.


 


“브레이빅이 주는 교훈”


희망의 버스는 어떤 성과를 남겼는가.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희망의 버스 최초의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달성한 것인가. 최초 목적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무사귀환이었으며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의 한 걸음 전진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목표에 대한 초과달성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제를 많이 남겼으며 이 과제를 시급히 처리해야할 모레시계를 선물 받았다. 바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실천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불가피 하다는 주장을 편 소위 진보 인사의 글을 읽고 경악한 적이 있다. 나아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구호와 주장이 사회주의가 아니냐는 주장은 곱씹어 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희망의 버스가 발뒤꿈치의 각질이 벗겨지듯 낡은 곳을 향한 맹렬한 질주였다면 어쩌면 이제는 우리 내부를 향한 질주를 꿈 꿔야 하는 건 아닐까?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논쟁을 넘어 공공성이라는 가치 중심의 새로운 논쟁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례로 턱없이 부족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근본적 개선 없이, 혹은 개선의지 없이 현상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수준 낮은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한 사회의 잠재력을 갉아 먹는 재벌구조와 오너들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 없이 경제 구조가 호전되거나 나아질 순 없는 지경임에도 여전히 노동자 타령하는 우리안의 진보를 보면, 전진은 누가 가로 막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올 7월 세계를 흔들었던 노르웨이 브레이빅을 보면서 끔찍함을 넘어 한국사회의 미래와 오버랩 되었다면 과잉인가? 브레이빅은 70여명을 사살하고도 담담한 표정으로 준비한 이야기를 다 했다. 해외 극우당의 열렬히 지지자들이 대부분 하층 노동자라는 사실은, 비정규직 860만명이라는 숫자의 역설적 희망만을 말 할 수 없는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혹은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문제와 노동문제를 장식처럼 이야기 한다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노동자들은 외면구조화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근원적 해결책이 절실하다.


 


“희망버스”는 공간과 의제의 탈주를 시작했다.


희망의 버스는 이제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공간과 의제를 넘어 다시 달릴 차비를 완비하고 있다. 희망의 버스는 불안을 거름삼아 투쟁의 의지를 방향등 삼아 다시 전진할 것이며 함께 나갈 것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너머의 문제를 조금씩 당기고 구체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운전기사도 쉬어야 하고 차량 정비도 해야 하고 기름도 넣어야 할 시기다.


2011년 희망의 버스가 보여줬던 유쾌하고 발랄한 투쟁은 2011년에도 어김없이 재현될 것이다. 쌍용차 “희망텐트촌”이 희망의 버스의 변주이며 시작일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주장이 버스 한 곳에 담겨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깊은 곳으로 고통과 아픔을 향해 달려 갈 것이다.


 


물은 아직 끓지 않았다. “희망버스”는 아직 85도에 다다랐을 뿐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질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 본문은 하단에 첨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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